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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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행사는 폭력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임박했다고 전해진다. 여당이 건의한 거부권을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할 것이 예상된다. 이 글을 쓰는 건 이미 늦은 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태원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사람들을 다시 절망케 하는 폭력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쓴다. 박근혜도 그랬다. 그는 겨우 열일곱 살 아이들이 희생자의 대부분이었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가혹하게 핍박했다. 불법사찰과 감시, 공권력을 동원해 애도조차 못하도록 했고,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국회에서 제정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시행령으로 무력화하려 했고,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하면서 대통령의 7시간을 조사하려 하자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강제해산까지 시켰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유가족들을 탄압했다. 그 결과는 탄핵촛불로 타올랐고, 결국 그는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권좌에서 끌어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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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2024년에는 ‘해방’의 단초를 만들 수 있을까 별 감흥 없이 새해를 맞았다. 영락없이 2024년은 청룡의 해라는 말들이 SNS에서 돌아다닌다. 갑진년이니까 용의 해이고, 청룡의 기상으로 비상하자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무엇으로 올해 비상할 수 있을까? 여의주는 찾을 수 있을까? 연말에 눈도 내리고, 겨울비도 내리고, 길도 얼었다 녹다를 반복했다. 궂은 날씨를 탓하며 두문불출하고 있는데, 아내가 드라마를 보자고 제안했다. <나의 해방일지>, 2022년에 ‘추앙하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던 그 드라마다. 회당 1시간 이상 되는 분량이고, 16회라서 엄두도 못 내다가 이번에 도전했다. 서울이라는 노른자를 감싸고 있는 흰자에 해당하는 경기도 ‘산포시’에서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는 염씨 3남매의 행복 찾기 여정을 그린 드라마다. 박해영씨는 <나의 아저씨>로 익숙한 극작가이고, 주위에서 꼭 보라고 권유를 많이 받았던 터라 졸린 눈 비벼가며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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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이충상·김용원, 두 인권위 상임위원은 사퇴하라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2001년 11월25일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올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했다. 이전처럼 새로운 인권 기준을 제시하거나 인권과 관련한 조사 결과나 권고를 발표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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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책임자를 찾습니다 서울시청 광장의 한 모서리에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있다. 천막으로 만들어진 이 분향소는 매일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10시에는 문을 닫는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매일 이 분향소를 지킨다. 이태원 참사 1주기였던 10월29일, 추모대회에 시민들이 많이 참석했다. 추모대회가 끝나고 서울시청 광장에 가득 찼던 군중은 모두 돌아갔다. 저녁 먹고 난 다음에 지하철을 타려다가 분향소에 들렀다. 아무래도 시민들이 북적이던 1주기 추모기간이 끝난 다음이니 쓸쓸하게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지킬 것 같아서다. 그날은 밤 10시가 넘어도 분향소 문을 닫지 못했다. 분향소에 시민들이 계속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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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한국판 ‘베버리지 보고서’를 만들 수 없을까 베버리지가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라는 이름의 보고서(베버리지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2월이었다. 전쟁 와중에도 이 보고서가 간행돼 판매된다는 소식을 들은 영국 시민들은 1.6㎞나 줄을 서서 보고서를 샀다.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보고서는 6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전쟁의 비극이 진행 중이던 때, 전쟁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그 시점에 베버리지는 “전쟁이 모든 종류의 역사적 유적을 파괴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어떤 제약도 없이 경험을 활용할 기회이다. 세계 역사에서 혁명적인 순간은 부분적 보수가 아닌 혁명을 위한 때이다”라면서 사회복지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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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오송 참사와 ‘단 두 평의 분향소’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한 지 지난 9월1일로 49일째, 그날 참사 현장에서는 오후 5시부터 ‘49재 위령제’가 열렸다. 충청북도 부지사도, 세월호 참사·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함께한 위령제에서 오송 참사 유가족들은 단 두 평이라도 분향소를 유지해달라고 충북도와 청주시에 호소했다. 위령제를 마치고 청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 1층에 있던 분향소로 돌아가려던 유가족과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이 들은 소식은 분향소가 철거되었다는 것. 충북도와 청주시는 그날 위령제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오후 8시40분부터 철거를 시작해 9시20분에 완료했다. 충북도나 청주시는 분향소를 49재까지 운영하기로 했고, 49재가 끝났으니 철거가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위령제에 참석해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보았을 텐데도 ‘엄정하게’ 행정력을 집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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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대한민국에는 한민족이 없다 곧 광복절이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다. 그래서 고민하게 됐다. 대한민국에 민족은 있을까? 동일한 혈통과 언어와 문화전통을 지닌 한민족은 있는 것일까? 일제강점기 시절에 혹독한 시련 앞에서도 대한독립을 외치다 산화해간 독립운동가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본다면 뭐라 말할까? 대한민국에는 세 개의 민족이 있는 것 같다. 제1민족은 사대의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에 복종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왕을 위해 목숨 바칠 것을 맹세했다. 해방 뒤에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조공을 들여왔고, 지금도 그렇다. 일본군 위안부들이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권리를 찾아주려고 나서기보다 이들의 권리를 묵살하는 데 발 벗고 나선다. 상전과의 관계가 어그러진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든 바로잡아보려고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한다고 하는 짓마저 적극 나서 대변하고 있다. 항의 한번 못해보고 그들의 반도체도, 자동차도 미국의 시장을 위해 열심히 협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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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현장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있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사는 일은 고단하다. 한때 정부가 69시간 노동제를 도입하려고 할 때 중견 활동가들이 모였다. “주 69시간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중론이었다.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들 때까지 활동가들은 일한다. 워낙 일이 넘쳐나고, 활동가는 부족하기 때문에 일은 늘 밀려있고, 쌓여있다.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는 일도 힘들고, 사건을 사회적 의제로 이끌어내기 위한 기자회견, 토론회를 해야 하고, 집회와 농성을 준비하고, 정책도 만들어낸다. 1년 차 변호사, 교수가 토론회 자리에서 발제를 하는 동안 10년 차 활동가는 원고를 사정해서 받고 복사물도 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활동가의 지위가 낮은 곳도 없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욕도 참 많이 먹는 게 활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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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6·10 민주항쟁과 인간의 존엄 ‘6·10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주요 행사들이 지난주에 대부분 끝났다. 정부가 주최하는 ‘6·10 민주항쟁 기념일’ 행사에 정부가 공식 불참하는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기념식이 열렸던 6월10일 오후에는 ‘제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서울시청 옆 도로에서 열렸다. 높고 긴 제단 위에 올라간 죽은 이들의 얼굴 사진들을 보면서 저들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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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대통령에게 돌려주고 싶은 말 자유민주주의를 유난히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 1년이 지났다. 자유와 민주 중에도 특별나게 자유를 좋아하는 대통령이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연설을 하면 자유를 몇 번 언급했나를 갖고 언론들이 기사를 써댄다. 지난 4월28일과 29일 미국 하버드대와 의회 연설에서 대통령은 “거짓 선동과 가짜뉴스라는 반지성주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위기에 빠뜨린다”고 했다. 이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은 민주세력, 인권운동가 등으로 위장하고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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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아직도 ‘세월호’냐고 묻기 전에 4월16일은 사람이라면 함께 울어야 하는 날이다. 세월호참사 9주기였던 지난 16일, 오전에는 인천에서 일반인희생자 추모식이 있었고, 오후에는 안산에서 기억식이 있었고, 저 멀리 침몰해역에서는 선상추모식이 있었다. 전국에서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되고 진행됐다.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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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2017년 3월31일에 있었던 일 2017년 3월31일, 새벽 4시경 안산에서 목포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TV는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는 전 과정을 따라가면서 생중계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7시간 이상 사라졌고 참사 이후 진상규명 요구를 권력을 동원해 철저하게 막았던 대통령, 한순간에 국가를 폭력과 퇴행의 정치로 1970년대의 유신 시대로 되돌리려 했던 대통령,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농단을 저지르다가 결국 시민들의 성난 촛불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쫓겨난 대통령이 수감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3년 동안 바다 아래 침몰해 있던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들어오는 걸 보러 내려가던 버스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