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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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유가족들이 삭발하던 날 흰 천 위에 흰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떨어졌다. 80대 부모들부터 60대 형까지 흰 천 위에 앉은 그들은 영정을 품에 안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고, 머리도 백발인 그들이 삭발식을 하는 뒤로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는 천 팻말을 들고 사람들이 섰다.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이 흰 천 위에 앉았고, 그 뒤로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서 있는 모습이었다. 성공회대성당, 6월항쟁이 시작된 그 자리에서 35주년 기념식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면서 늙은 유가족의 눈에서 소리 없이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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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무덤 앞에 붉은 장미 한 다발 어제는 비가 내렸다. 바짝 마른 대지를 적시는 비를 맞으며 마석 모란공원에 갔다. 현충일인 6월6일은 내 동생의 기일이기도 하다. 벌써 34년 전 동생은 유서 써놓고 몸에 불을 지르고 먼저 저세상으로 갔다. 1988년 6월은 뜨거웠다. 지열이 훅훅 달아올랐고, 대학생들은 88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공동 올림픽을 개최하자고 판문점으로 달려가다가 연행되던 때였다. 민주화 시대가 열리던 초입, 그해 정치는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직선제로 광주학살의 원흉 노태우가 대통령의 권좌에 앉아 있었고, 그해 8월 총선에서는 여소야대 국면이 열렸다. 1980년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했다. ‘민중의 심판으로 학살의 원흉을 처단해야 한다’는 동생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을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을 맡고 있던 동생 박래전은 절박한 심정으로 고민했다. 그는 결단을 하고, 생일날 몇 통의 유서를 썼고, 생일 이틀 뒤에 학생회관에 올라가 “광주는 살아 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자!”고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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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이번 5월에는 ‘평등의 봄’을 이 칼럼이 지면에 실리는 날이 공교롭게도 20대 대통령이 국회에서 취임식을 갖고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날이다. 이 칼럼을 쓰는 필자는 초조하다. 대통령 취임식 준비로 바쁜 국회 2문 앞에서 오늘로 한 달째 단식농성 중인 두 활동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쪽이 됐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나날이 그들의 몸은 말라간다. 독자들이 이 글을 보는 시간에 어쩌면 그들이 단식농성을 벌이는 국회 농성장은 치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평등의 봄’을 맞자는 절실함은 치워버릴 수 없을 것이다. 새 대통령 취임식에 방해될 리 무방한 단식농성장이 안전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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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세월호 침몰현장의 노란색 부표 목포 해경부두에서 3015경비함정으로 83㎞를 15노트 속도로 3시간 달려 도착한 곳에 노란색 부표가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외에는 짙푸른 바닷물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왼편으로 동거차도와 서거차도가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병풍도가 보이는 맹골수도의 한가운데 세월호 침몰현장이다. 안산에서 새벽 2시에 버스 두 대에 싣고 달려온 뒤였다. 목포 시내에는 가로수마다 노란 수건이 매달렸고, 세월호참사를 기억하자는 현수막들이 바람에 긴장해서인지 팽팽했다. 날은 화창했고, 곳곳에서 벚꽃이며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아침이었다. 매년 침몰현장을 찾아가지만, 이번처럼 날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어떤 해에는 비가 내리는 해역에서 비옷을 입고 선상추모식을 하는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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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더 좋은 정치를 하라는 0.73% 20대 대선이 끝났다.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보다 0.73% 더 표를 받아서 당선되었다. 정권교체 여론이 선거 막판까지 50%를 넘었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0% 이상의 표 차로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했음에도 결과는 이렇다. 선거 과정에서 지워졌던 20대 여성들이 막판에 전략투표를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선거가 끝난 지 오늘로 6일, 한쪽에서는 정권 인수위원회를 구성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들어갔다. 선거 승패와 관련해서 여러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오늘 칼럼에서는 거대 여당과 야당에 집중해서 의견을 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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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사고나 참사로 죽어도 좋은 목숨은 없다 20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 일정이 시작되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대전환의 시기’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기후위기에 따른 에너지 전환,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산업과 노동의 급격한 전환 등으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환경으로 급격하게 옮겨 가고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치고는 대전환을 위한 의제들이 공약으로 충실하게 나오지 않고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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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인권운동가 배은심의 마지막 투쟁 배은심 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주 수요일에 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해도 될까 망설이며 걸었는데 여느 때처럼 전화를 받으셨다. “어머니, 괜찮으신 거요?” “으이, 내가 이번에 가는 줄 알았다야”고 하신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내려왔다고, 심혈관 세 개가 막혀서 그걸 뚫는 시술을 했다고 하셨다. 그랬던 어머니인데, 그제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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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청소년들의 공간 ‘아띠’를 기다리며 노동조합을 ‘노동자들의 교회’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 “여기(노동조합)에서 인간의 권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민주주의를 배우고, 이웃사랑을 배우고, 희생과 봉사를 배우고,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우며, 사회정의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것도 실천적으로 배우고, 참평화가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
박래군의 인권과 삶 왜 집회만 안 되는가 지난 주말인 13일 고척돔 야구장에서는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렸다. 사람들은 관중석에서 KT와 두산을 응원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야구장에서는 접종완료자들의 경우 치맥을 즐기면서 응원할 수 있었다. 지난 11일에는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 축구팬 3만명이 운집해서 태극전사들을 응원했다. 14일에는 K팝 공연장에 3000명이 모였다. 반가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2년 만에 공연장이 열리고, 운동장에 관중이 들어섰다. 온라인이 아니라 대면 공연과 경기가 펼쳐진 것이다. 이렇게 일상회복 1단계가 진행 중이다. -
박래군의 인권과 삶 촛불항쟁 5주년,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5년 전이었는데 아득한 먼 옛일만 같다. 2016년 10월29일 비가 흩뿌리는 청계광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된 직후여서 몇천 명이나 모일까 생각했는데 3만명 넘는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났다. 그 촛불이 이후 6개월 동안 매주 주말 계속 타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촛불항쟁은 30만을 넘더니 곧 100만, 200만명을 넘어섰다. 그야말로 폭발이었다. 그 힘에 의해 불가능할 것 같던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결정했다. 시민들의 승리였다. 이명박·박근혜의 보수정권은 철퇴를 맞았다. 적폐청산의 요구는 드높았으며, 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분명했다. -
박래군의 인권과 삶 차별의 발견과 국회의 시간 한 여성이 경력직으로 버스회사에 지원서를 냈지만 배우자가 없다는 이유로 접수조차 거절당했다. 버스운전을 배우자와 함께하는 것도 아닌데 배우자 유무는 물을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런 경우는 ‘직접차별’에 해당한다. 중증 청각장애인 A씨가 B회사의 신입사원 채용에 응시하려고 하는데, 지원자격 중 ‘TOEIC 600점, TEPS 480점 이상의 영어능력시험점수’를 적어야 한다면 이는 ‘간접차별’에 해당한다. 중증의 청각장애인은 아예 듣기 시험을 칠 수가 없다. 형식적으로는 공정한 시험 기회를 주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차별이 되는 경우다. -
박래군의 인권과 삶 노동존중 사회로 가기 위하여 “포스 아세요?” 요즘 청소년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중 후배 활동가가 갑자기 물었다. “그걸 왜 몰라?” 내가 아는 포스는 ‘힘’(force)이었다. 포스가 느껴진다고 할 때의 그것 말이다. 그러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포스기가 뭔지 모르는 나를 타박했다. 그러면서 요즘 청소년들은 대부분 포스기를 안다고 했다. 그만큼 청소년들이 알바를 많이 하기 때문이란다. 포스기를 다룰 줄 모르면 알바 구하기도 어렵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