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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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예측과 예언 지금까지 총선 결과를 예측했던 많은 여론조사와 정치평론가의 논평과 해석의 시간은 끝났고 이의 결과가 드러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긴장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과연 어떤 예측이 적중을 했는지 또는 어떤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는지를 두고 또 한 차례 논평과 논쟁이 오갈 것이다. 2010년 독일에서 열렸던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예언 능력을 지녔다는 ‘파울’이라는 문어가 14번의 경기 가운데 12번의 승패를 맞혀 전문적인 축구 해설자들을 무색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정말 신통한 영물이라고 해서 당시 우승국인 스페인의 북서지방에 있는 소도시 오카르발리뇨는 파울에게 명예시민증까지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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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선거 파노라마 한국이 총선을 한 달 앞둔 3월10일, 포르투갈에서 총선이 있었다. 2년 전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던, 안토니우 코스타가 이끈 중도 좌파 사회당 내각의 몇몇 장관을 비롯한 일부 고위관리들을 수뢰와 독직 혐의로 작년 말 검찰이 전격적으로 수사한 것을 계기로 내각이 총사퇴했다. 이에 따른 조기 총선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해변 마을은 총선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선거 벽보와 현수막으로 뒤덮인 서울 거리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선거 결과 예상대로 사회당이 많은 의석을 잃고, 중도 우파 사민당의 선거연합인 ‘민주동맹’은 신승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의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포르투갈에서 2019년 창당한 ‘그만해’라는 이름의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 ‘셰가(CHEGA)’가 18%의 득표율을 얻어 대약진한 것이다. 제3당인 이 극우정당이 이제 국정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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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캔슬 문화와 증오 정치 미국이 시발점이었던 인종, 언어, 종교와 성차별과 같은 편견과 갈등을 둘러싼 1970년대의 ‘정체성 정치’와 1990년대의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논쟁에 이어서 ‘캔슬 문화’에 대한 논쟁이 최근 유럽에도 상륙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로, 중국에서는 ‘취소 문화’로 번역 소개되는 것 같다. 예매한 비행기 표나 연주회 표를 취소할 때 쓰는 ‘캔슬’이라는 단어가 생활태도나 정치문화로 점차 자리 잡은 상황은 급속히 성장한 사회적 관계망에 기초한 정보사회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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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정치와 연극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뉴스에 등장하는 많은 정치인의 얼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잘 다듬어지고 선이 아주 뚜렷한 눈썹이다. 처음에는 인터뷰에 등장하기 전에 했던 분장을 깜빡 잊고 지우지 못한 것으로 여겼다. 들어보니 그것이 아니라, 연예인뿐만 아니라 이제는 정치인도 많이 하는 반영구적인 눈썹문신이라는 것이다. 눈썹문신도 정치라는 무대에 선 배우의 분장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온 세상은 무대야. 인간은 모두 배우야. 모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인간은 평생 많은 배역을 맡게 된다’는 셰익스피어 희곡 <12야(十二夜), 또는 뜻대로 하세요>의 구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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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두 나라 이야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시시각각으로 전해오는 전쟁의 참상에 관한 보도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연일 이스라엘에 대한 규탄의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10월27일에 열린 유엔 총회의 휴전 촉구에 ‘지금은 전쟁할 때다’라는 대답으로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응했다. 대부분의 서방 매체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이 아니라 가자지구로부터 지난 10월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서 1400여명의 이스라엘 민간인을 살해한 테러조직인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이라고 보도한다. 이번 전쟁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지 간에 이미 1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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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정치인과 나르시시즘 최근 정치인과 나르시시즘에 대한 논의가 두드러지게 많다. 물론 화려한 등장과 불명예스러운 퇴장에 이어 다시 대권에 도전하는 트럼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결단한 ‘러시아의 새로운 차르’ 푸틴을 주로 염두에 두고 있다. 브렉시트 모험을 단행했던 영국의 전 총리 보리스 존슨, 이탈리아의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 리비아의 카다피,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튀르키예의 에르도안도 이와 관련해 종종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최근에 발표된 일련의 경험적 연구도 일반인과 비교해 정치인에게는 특히 자기도취적인 인격장애가 더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런 판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었기에 실증적인 연구를 떠나서도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으로 갖는 부정적인 정서는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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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이념의 시대가 오는가 미국의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에 ‘역사의 종언’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데올로기의 죽음과 함께 탈역사의 도래를 주장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오늘 한국사회에서는 이념 논쟁이 다시 뜨겁다. 게다가 이 논쟁의 화두를 윤석열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제공했기에, 이의 파장 역시 크다.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맹공한 데 이어 얼마 전에는 “기본적으로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는 실용도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대선 때는 “낡은 이념으로 국민 편 가르지 않고 경제 도약을 이루는 데 모든 역량을 모으겠다”고 하면서 강조했던 실용과 민생의 자리에 이념문제가 둥지를 틀었다. 정치적 맥락을 잠시 접어둔다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그는 가장 철학적인 대통령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흔히 이념보다는 실용을, 이상보다는 현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정치가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그런데 실용을 강조하는 탈역사에서 빠져나와 이념을 중시하는 역사로 역주행하려는, 흔치 않은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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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잼버리와 K팝에 대한 단상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폭우와 불볕더위에 이은 태풍, 그리고 준비 불충분으로 파행되고 있다는 뉴스가 이곳에서도 떴다. 포르투갈의 유서 깊은 항구도시 포르투의 남쪽에 있는 부샤키누 수목공원에서 18세에서 25세의 청년 스카우트, 이른바 ‘로버스 스카우트’의 17차 세계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이곳 언론도 관심을 두고 보도했다. 또 리스본에서 열렸던 가톨릭 ‘세계청년대회’의 마지막 날 폐회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7년에 열릴 다음 대회의 개최지를 서울이라고 발표해 이래저래 관심도 증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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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가치 공동체의 명암 이번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정상회의에 아·태지역의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뉴질랜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초대되었다. 이를 두고 두 지역은 이미 하나의 가치 공동체에 속한다는 견해와 이는 나토의 아·태지역으로의 확장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일란성 쌍둥이처럼 집단적인 상호방위 체제인 나토와 유럽의 정치와 경제통합을 목적으로 한 유럽연합(EU)은 내용상으로 거의 같은 가치(평화, 민주주의, 자유, 법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다. 그러나 나토가 1999년 3월, 당시 나토 가맹국의 영토 밖이었던 코소보의 분쟁에 유엔의 위임 없이 ‘인도주의적인 개입’이란 이름으로 무력개입을 하자 많은 논쟁을 낳았다. ‘우리의 가치’를 짓밟는 세르비아의 ‘인종청소’를 종식한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런 집단행동이 과연 국제법적으로 정당한가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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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평행선 위에서 한국 언론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트로트가 도대체 무슨 음악 장르에 속하는지 한번 검색해 보았다. 일본에 들를 때면 가끔 보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엔카(演歌) 비슷한 대중가요가 아닌가 하면서 찾아보니 곡목이 조금 특이한 ‘평행선’이 눈에 띄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흥겨운 발라드였다. “나는 나밖에 모르고/ 너는 너밖에 모르고/ 그래서 우리는 똑같은 길을 걷지 평행선/ 나는 나밖에 몰랐지/ 너는 너밖에 몰랐지”로 시작하는 가사 내용도 간단했다. 남녀 간의 사랑이 좋은 결실을 보지 못한 상태를 묘사한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1980년대부터 사회학에서 많은 논쟁을 낳았던 ‘평행사회’를 떠올렸다. 서유럽국가들이 일반적으로 이주민이나 이주노동자 문제로 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는 가운데 등장한 개념이다.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 건너와 세대를 넘기면서 서유럽에 사는 이주민의 사회가 논쟁의 주된 대상이었다. 이들이 주류사회의 생활세계가 요구하는 이른바 ‘주도문화’와의 통합보다는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안주하는 데서 오는 긴장과 갈등이 테러리즘의 온상도 되었다고 보았다. 이 시각은 당연히 다양성을 강조하는 ‘다문화’라는 개념도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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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사죄와 화해 2010년부터 시행된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유일하게 배제된 조선 고급학교가 2013년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긴 법정투쟁을 기록해 일본사회에서 일어나는 재일동포의 차별문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이 있다. 지난 3월22일 국내에서 개봉했고, 4월 말부터는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뮌헨, 암스테르담에 이어 다른 유럽 주요 도시에서도 순회 상영되고 있다. 내가 사는 포르투갈에서는 이 영화를 볼 수 없어 영화의 시놉시스와 주요 영상의 편집을 보았다. 북한과 ‘총련’을 연관 지어 교육을 받을 인간의 보편적인 기본권을 제약하는 일본 정부의 행동양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이 영화의 상영을 지원하는 한 인사가 주독 일본 영사관에서 암암리에 이의 상영을 여러 가지로 견제하기 시작한다고 알려왔다. 이미 독일 여러 도시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시키는 외교적인 압력을 해당 독일 기관에 공공연하게 행사했던 일본 정부인지라 특별한 소식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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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눈먼 자들과 눈뜬 자들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문학사회학은 작가의 삶과 그의 창작 생활을 지배하는 사회적 배경이나 시대정신에 먼저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다른 문학세계를 형성한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또 작가의 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상황은 비록 다를지라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 제기는 물론, 때로는 시대를 앞지르는 고민을 담아 그려내는 작가와 작품을 발견하기도 한다. 포르투갈로 3년 반 전에 이주했을 때 이곳의 문학과 예술세계에 대해 나도 사실 어두웠다. 국민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나 전설적인 ‘파두’ 가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1920~1999), 그리고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조제 사라마구(1922~2010)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이 거의 모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