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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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두 국가’의 명칭 이름은 단순 호칭이 아니다.상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자 하는가를 드러내는 정치적 언어다한국과 조선이란 두 이름이 영원한 분리의 상징이 될지,경쟁과 공존의 새로운 관계 출발점이 될지는 아직 안 정해졌다어쩌면 한반도의 미래는 국경선의 위치보다는서로를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원에서 열린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에서 북한의 ‘내고향’ 팀이 일본의 ‘도쿄 베르디 벨레자’를 꺾고 우승했다. 오랜만에 남한 땅에서 남북 팀이 맞붙은 준결승전도 열렸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앞으로 한반도가 안고 갈 과제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
송두율 칼럼 미국과 유럽, 힘과 규범 사이에서 미국 중심 질서에 계속 결속이냐, 하나의 전략적 주체로 재구성이냐,규범·중재 통해 다극 질서의 균형자로 남느냐유럽은 지금 자신들 앞에 놓인 세 가지 길 사이에서결정을 유보한 채 고민하고 있다다극화 시대에서 정치적 판단력을 확보해야만 하는 과제는,유럽뿐만 아니라 분단체제 속의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며칠 전 베를린을 떠나 포르투갈로 향하던 길, 공항으로 가는 도중 하나의 포스터가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한때 냉전의 상징이었던 브레즈네프와 호네커의 포옹 장면을 패러디하듯, 그 자리에 푸틴과 트럼프가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짧고 도발적인 문장이 적혀 있었다. ‘유럽합중국, 지금!’ 그리고 그 곁에는 ‘볼트 유럽’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
송두율 칼럼 바깥의 전쟁, 안쪽의 위기 이란에서 시작된 전쟁은 미국의 힘이 더 이상 정당한 질서의 형성으로전환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에 가깝다전쟁은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으나, 그로부터 드러나는 보다근원적 위기는 미국 내부서 심화되고 있다오늘의 중동은 미국 이후 세계가 도래하는 방식을,그것도 가장 불안하고 위태로운 형태로 미리 보여주는 역사적 전조다 -
‘공론장의 이성’ 포기하지 않았던 철학자를 기억하며 3월14일 아침, 내가 사는 포르투갈에도 긴급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서거 소식이었다. 향년 96세였다. 고령이었기에 가끔 그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다. 작년 여름, 평생 그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학문적 삶을 함께했던 부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나는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손으로 쓴 짧은 편지였다. 글 사이사이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쓸쓸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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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선택된 전쟁, 생존의 전쟁 이란서 시작된 이번 충돌은 단순한 중동 지역 분쟁이 아니라, 가장 위험한 성격의 전쟁이다미국의 전략과 중국 부상, 그리고 북한·이란 생존 전략이 교차하는 새 지정학적 전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한쪽에는 전략적 전쟁이 다른 쪽에는 생존 전쟁이 될 때, 그 충돌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중동은 수십년 동안 끊임없는 위기의 지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란,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 사이에서 전개되는 국면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이 지역의 갈등은 은밀한 작전과 대리전, 제한된 군사행동의 형태로 진행됐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열이틀 동안 지속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작전 이후 상황은 분명히 달라졌다. 이제 중동의 충돌은 더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 전쟁’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공개적인 전략적 대결의 단계로 변했다. -
송두율 칼럼 ‘지정학 이후’의 세계질서 한반도가 다시 지배 도구로서의 지정학에 포획될지,흐름과 접속 조직하는 주체로 전환될지는어느 편에 서느냐의 문제가 아니라,어떤 연결의 규칙을 설계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그것은 이미 주어진 운명이 아니다.선택의 문제인 동시에 상상력의 문제다 새해에 접어들어 미국은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를 ‘마약 테러리즘’ 혐의로 체포하는 한편, 거의 동시에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의 합병 문제를 제기하며 유럽을 흔들어 놓았다. 유럽의 격한 반발에 미국은 한발 물러섰지만, 이 구상을 완전히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송두율 칼럼 새해 정담 : 정치적 결단에 대하여 한반도에 있어서 결단의 순간이란 전쟁과 평화 중 하나를 택하라는 도식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이 체제, 이 분단, 이 긴장은 과연 우리 의지인가’란 질문을 공적으로 제기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민주주의는 위험한 자유다. 한반도의 미래 역시 이 위험 감수에 대한 물음이 새해 정담의 첫자리에 놓여 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풍경은 나라마다, 사람마다 참으로 다채롭다. 서울에서는 제야에 종로 보신각의 종소리가 울리고, 베를린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니가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환희의 송가’를 연주한다. 빈에서는 빈 필하모니의 신년음악회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에 맞춰 관객들이 손뼉을 친다. 대서양의 화산섬 마데이라에서는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고,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에서는 자정 종소리에 맞춰 12알의 건포도를 먹으며 새해 행운을 빈다. -
송두율 칼럼 반중과 친미 며칠 전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 영상은 최근 포르투갈의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을 외국인의 대규모 부동산 매입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이로 인해 반외국인 정서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전체 흐름은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으나, 문제는 결론이었다. 영상에서는 이러한 현상의 주요 원인을 중국인의 부동산 매입으로 돌리며, 한국에서도 제주도를 사례로 비슷한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서울 명동과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중국인은 나가라’는 구호가 등장한 반중·혐중 시위 사례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
송두율 칼럼 숫자 너머의 세계 우리의 하루는 숫자로 시작해서 숫자로 끝난다. 정해둔 기상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는 온갖 숫자의 흐름 속에 있지만, 마시는 공기처럼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생활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숫자는 인도에서 기원한 아라비아 숫자다. 0부터 9까지의 십진 기수법은 711년부터 약 8세기 동안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했던 이슬람을 통해 유럽에 전해졌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은 이 숫자의 활용을 빠른 속도로 확산시켰고,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를 통해 중국에 이어 개화기 초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
송두율 칼럼 적대적 두 국가론 2023년 12월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에 관한 선언이 발표된 이후 이를 둘러싼 정계·학계·언론계의 많은 논쟁의 핵심을 먼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조국통일이라는 선대의 기조를 과감히 접은 김 위원장의 결단은 체제경쟁의 실패를 인정하고 결속을 다지기 위한 고육지계라고 보는 분석이 있다. 이런 분석으로부터, 흡수통일 이외에 어떤 다른 길이 없으므로 지금보다 더 정교한 대북 통일 공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한반도에 두 국가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적대적이 아니라 평화적인 관계로 발전시키는 데 계속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러한 두 갈래 주장의 주안점은 다 같이 한반도 내부의 변화에 놓여 있지만, 국제정치적 역학에 나타나고 있는 큰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
송두율 칼럼 중국 전승절과 한반도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나란히 섰다. 이 사진을 보면서 195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절 10주년을 맞아 당시 이 세 나라를 대표했던 지도자 마오쩌둥 주석,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그리고 김일성 주석이 함께 찍은 사진이 생각났다. 이 사진에는 북베트남의 호찌민 주석과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의 모습도 보인다. -
송두율 칼럼 해방과 분단의 80년 일제 패망 1년 전에 도쿄에서 출생했으나, 나 자신을 해방둥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삶 가운데 3분의 2인 60년 가까운 시간을 외국 땅에서 살았다. 이런 내 삶의 역정 때문에 개인적인 체험 공간에 채워진 기억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그것과 많이 다를 것이고 이에 따라 미래에 대한 기대 지평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