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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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다시 없는 오늘, 다시없는 오늘 5년 만에 시집이 나왔다. 책이 나오기 직전과 나온 직후에는 글쓰기가 유독 어렵다. 처음에는 새 책이 나온다는 데서 오는 희열과 나왔다는 데서 오는 흥분 때문인 줄 알았다. 희열을 잠재우고 흥분을 가라앉히면 뭐라도 한 줄 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격양의 빛을 한시라도 빨리 사라지게 해야 했다. 여느 때처럼 산책하고 메모하고 가만히 상념에 잠기는 시간을 가졌다. 루틴을 지켜야만 쓰는 몸과 쓰려는 마음이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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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제대로 번복하고 반복하기 뉴스를 볼 때마다 힘이 빠진다. “그 말이 아니고”를 전달하는 기사들을 읽노라면, 정치인은 ‘번복’에 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말’이 난데없이 ‘이 말’로 둔갑하기도 하고, ‘전면 반대’라는 입장이 ‘유보’로 변동되기도 한다. 그때의 그 말이 아예 없었다고 잡아떼는 일은 물론, ‘전면 반대’라는 입장은 와전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시간으로 뒤집히는 진술과 방침 때문에 무기력이 부표처럼 떠다닌다. 국민을 상대로 간을 보는 것 같아 울화통이 치민다. 틀리면 바로잡는 게 옳겠으나, 핑계를 위한 핑계만 양산한다는 혐의가 짙다. 번복은 은닉을 위해 반복되고, 거듭되는 반복은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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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시앗 찾기 길을 걷다가 한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웃으면 봄이 와요.” 메다꽂듯, 어깨를 얼어붙게 한 그 말로 인해 한동안 나는 제자리였다. 뒤돌아보니 아이가 환히 웃고 있었다. ‘복’을 잘못 발음해서 ‘봄’이라고 했다기에는 지나치게 한봄이었다. 봄의 정중앙을 겨냥하는 말이었다. 곳곳에 꽃이 피고 볕이 푸진 봄날이었다. 웃으면 봄이 온다니, 움츠러든 몸을 쫙 펴게 만드는 말이었다. 제자리여도 좋았다. 제자리라서, 그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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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영감은 없어요 시를 쓴다고 말할 때마다 긴장된 적이 있었다. 상대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보았을 때, 때때로 그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말았을 때 나는 물색없는 말을 한 사람처럼 어색해졌다. 대체 시를, 시인을 어떻게 생각하기에 놀라지? “지금도 시 쓰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어요”라는 말도 들어봤다. 학창 시절, 내가 배웠던 시들은 이미 타계한 시인들이 쓴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나도 막연히 생각했었다. ‘요즘 사람들은 시를 안 쓰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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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작심삼백육십오일 새해에는 결심하게 된다. 작년에 미진한 느낌으로 남았던 일을 기필코 완수하겠다는 마음, 작년에도 실패한 금연을 올해는 성공하겠다는 마음, 아무리 바빠도 주변을 챙기겠다는 마음 등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미련을 해소하고 새 뜻을 펼치기 위하여, 결심은 보통 ‘하겠다’나 ‘하지 않겠다’ 형태로 서게 마련이다. 어떤 것을 하겠다는 마음은 다른 어떤 것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과 맞닿아 있다. 예컨대 헤어질 결심은 만나지 않을 결심이기도 하다. 굳은 결심은 일상에서 작심(作心)으로 뿌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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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그런데도 희망 세밑이다. 평온하고 조용하면 좋으련만 춥고 어수선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해결되지 않은 일과 해소되지 않은 감정에 둘러싸여 있어서다. 시원하게 소리치고 싶지만 목소리는 너무 작고 그 목소리는 위정자들에게 가닿지 못할 것이다. 기대를 안 했기에 실망하지 않을 것 같지만, 속을 들추어보면 이는 학습된 무기력에 가깝다. 눈 감고 귀 막은 사람들에게 의견이 전달될 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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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어두워질 줄 알기 “아, 정말 밝다.” 자정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밤늦게 일이 있어 번화가에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저 말이 튀어나왔다. 도무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밝기였다. 밤하늘에 달이 떠 있지 않았더라면, 밤이라는 자명한 사실마저 의심했을 것이다. “심지어 낮보다 더 밝은 것 같아.” 인공조명 사이를 거닐며 친구가 말했다. 그는 빛에 민감해서 잠자리에 들 때면 암막 커튼을 친다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은 밤에도 너무 밝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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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애도의 방식 이태원 참사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그날을 떠올린다. 그사이 이태원과 서울광장에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가 설치되었는데,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고’와 ‘사망자’는 책임을 미루고 지우는 단어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가리키는데, 이는 뜻밖에 일어났기에 손쓸 수 없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사망자 또한 “죽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통해 죽음을 단순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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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담을 넘고 사이로 파고드는 일 지난주 제11회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막을 내렸다. 축제의 대주제는 ‘월담’이었는데, 주제를 접하자마자 떠오른 것은 “담을 넘다”라는 의미였다. 축제 참가 섭외 전화를 받았을 때 산책하던 나는 주위를 올려다보며 막연히 어떤 담을 넘어야 하나 생각했다. 넘기 위해서는 먼저 담을 마주해야 했다. 우선적으로 혐오와 차별, 부조리 등으로 켜켜이 쌓인 사회적인 담을 직면해야 했다. 아주 오래되고 굳건한 담, 혼자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담. 그 담 앞에서 고개가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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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시큰둥해지지 않기 “응.” 긴 질문을 던졌을 때 짧은 답변을 들으면 때때로 당혹스럽다. 기대했던 것이 가슴속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도 든다. “과일 좋아해요?” “네.” “어떤 과일을 특히 좋아해요?” “다 비슷해요.” 딸기와 수박과 단감과 귤이 순식간에 뭉뚱그려진다. 하나로 포괄된다기보다 개별성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시큰둥한 답변은 묻는 이의 적극성에 찬물을 끼얹는다. 철벽 방어 앞에서 대화의 맥은 끊길 수밖에 없다. 난데없이 바닥에 떨어진 과일만 맥락 밖으로 데굴데굴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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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주고받기의 어려움 받는 일은 기쁜 일이다. 칭찬을 받는 일도, 상을 받는 일도, 선물을 받는 일도 흔한 일이 아니어서 더 그렇다. 뜻밖의 경우일 때가 많아서 놀라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 또한 기쁨을 더욱 벅차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그러나 받는 일도 쉬운 것만은 아니다. 정도가 지나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이걸 받아도 될까, 이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하는 생각은 짐이 된다. 부담이 된다. 주고받는 일은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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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뜻밖의 말들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저렇게 물었으나 걸어서 왔는지, 차를 타고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슨 목적으로 찾아왔는지도 알 바 아니다. 지금은 내 눈앞에 상대가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문득 생각나서. 생각이 나서 왔지.” 방문자는 천천히 대답한다. 그제야 마음에 평정이 깃든다. 용건은 다름 아닌 그리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