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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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시로운 생각 카페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지루하다고 말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른 한 사람이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우리는 왜 매번 지루할까?” 한 사람이 묻자 하품을 마친 다른 한 사람이 따분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매번은 아니야, 자주 그럴 뿐.” “그런데 너는 지금 하품만 하고 있잖아.” 하품하던 사람이 놀랐는지 갑자기 딸꾹질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하품에 딸꾹질”이다. 어려운 일이 공교롭게 계속되고 있다. “움직이자!” 한 사람이 단호하게 말하며 딸꾹질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그들은 어디론가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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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평등에 다음은 없다 어렸을 때의 일이다.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온 남자아이가 놀림을 받았다. 분홍색을 입었다는 이유로, 여자 색깔의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아이는 충격을 받았는지 사흘간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가 분홍색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날, 선생님은 아이들을 한데 모아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각자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말해볼까요?” 치킨을 말한 아이, 김치를 외친 아이, 수줍게 빵이라고 대답한 아이도 있었다. “나도 빵 좋아하는데.” 빵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웅성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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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신호들 어릴 적부터 종종 넘어졌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면 웃음이 났다.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이내 울음을 터뜨렸지만, ‘걸려 넘어지는 일’은 내게 어떤 신호처럼 다가왔다. 너무 빨리 가고 있다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주위를 살피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생각하게 했다. 보이지 않는 돌부리도 있었다. 그것은 나를 좌절시키고 포기하게 만들었다. 걸려 넘어진 뒤 다시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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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봄에도 봄을 기다리는 사람 약국에 들렀다.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를 사는 사람, 만일에 대비해 상비약을 구입하는 사람,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이 조제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한겨울 추위 같은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다. 준비할 때의 비장함, 바로잡을 때의 간절함이 물씬 느껴졌다. 마스크 안의 속사정이야 알 수 없겠으나 표정이 어두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대비하는 사람과 수습하는 사람의 마음은 별도리 없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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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지난번과 다음번 “지난번에 이렇게 하니까 안 됐어.” 블록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말한다. 아이는 블록 쌓기에 여념이 없다. 무엇을 짓는 거냐고 물어도 수줍게 웃을 뿐 뾰족한 답변을 하지 않는다. “그냥 높이 쌓는 거야?” 물었더니 고개를 젓는다. 아이는 다시 쌓기에 집중한다. 지난번에 블록 쌓던 시간을 헤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안 됐던 경험을. 그냥 높이 쌓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스스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을 구현하려는 아이의 손놀림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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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속에 담긴 속담들 틈나는 대로 국어사전을 펼친다. 글이 무섭게 잘 풀릴 때나 글이 도무지 안 풀릴 때, 시간을 채우고 싶을 때나 시간을 죽이고 싶을 때,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어김없이 국어사전을 펼친다. 아무 때나 펼치는 셈이다. 숨을 참고 있을 때조차 공기가 있는 것처럼, 잊은 줄로만 알았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처럼, 그것은 언제든 열어볼 수 있게 내 침대 옆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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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가고 난 뒤에 오는 것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 2021년이 가고 2022년이 온다. 내년이 오면 올해는 곧장 헌 해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상투적으로 사용되곤 하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에 이렇게 부합하는 해가 또 있었을까. 코로나19와 두 번째 보내는 해였지만 익숙해진 것은 별로 없었다. 마스크는 여전히 갑갑했고 연일 속보를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는 생활을 넘어 생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하려고 했던 일이 할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매번 체념이 뒤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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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견딤에 대하여 퇴사를 결심한 친구를 만났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 부러진 음절들이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10년을 넘게 다니며 좋은 기억도, 힘든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사이 그는 두 번의 승진을 했고 부서와 업무가 달라지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일했다.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의 생활은 회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주중에 만나면 회사에서의 고단한 노동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주말에 만나면 그의 입에서 다음주에 치러내야 할 업무가 술술 흘러나왔다. 그에게 회사는 단순히 밥벌이 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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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뚜벅뚜벅, 또박또박 쓰기 노동자로 산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말하기 노동자로 지낸 지도 꽤 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연단에 설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자기 암시를 통해 ‘연단’을 ‘무대’로 바꾸어 생각했다. 무대의 세 번째 뜻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특히 좋았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현장 같기도, 이곳에서 하는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로 탄생하는 순간 같기도 했다. 한 번도 대충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이야기의 배경이 다 다른 만큼, 거기에 걸맞은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했다. 현장의 눈빛이 커다란 응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눈빛에는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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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돌아오는 젊은 시인을 기다리는 밤 지난 10월3일, 수경 누나를 보러 갔다. 꼭 1년 만이었다. 재작년부터 한가을은 늘 누나와 함께였다. 생전에 주고받은 e메일을 들여다보며 ‘잘 지내지? 거기에도 쌀 있지?’ 같은 물색없는 질문을 던진 후 혼자 웃기도 했다. 누나가 살아 있을 때 못다 전한 말을 이제야 건네는 것처럼, 대답을 듣지 못해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고 혼잣말하기도 한다. “누나라면 저 하늘의 색을 뭐라고 표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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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잃었지만 잊을 수는 없는 “안색이 왜 그래요?” 상대는 분명 나를 염려해서 한 말일 텐데,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마주한 나는 평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피로해 보여서일까. 방금 전의 내 모습을 알 수 없기에 속이 복잡했다. “뭔가를 잃어버린 표정 같아요.” 다시 돌아간 자리에서 그가 말을 이었다. 3년 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사이 내게 일들이 있었다. 소중한 이들을 잃었고 나는 그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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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관중은 없었으나 사람이 있었다 김희준이 쓴 <행성표류기>(난다, 2021)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마무리는 분명히 있어, 엄마.” 김희준은 1994년에 태어나 2017년에 데뷔하고 2020년 불의의 사고로 영면한 시인이다. 그해 그의 생일에 맞춰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이 나왔다.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표류를 마치고 언니의 나라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생면부지의 시인을 생각한다. 마무리는 분명히 있다고 말할 때, 그의 눈은 분명 반짝였을 것이다. 표류할 때 원래 가고자 했던 방향과 목적이 선명해지기도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