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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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뭐라도 하루에 하나 SNS에 매일 책 읽는 계정을 만든 지 반년이 지났다. 정확히 말하면 읽은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골라 올리는 계정이다. 프로필에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하루에 한 권, 책 읽는 계정입니다. 함께 나누고픈 구절을 올립니다.” 사진을 함께 올려야 되는 채널이라 매일같이 책 표지 사진도 찍는다. 물론 대부분 집에서 찍은 사진이다. 예전만큼 사적인 외출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책을 읽기 위해 카페나 공원을 찾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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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마음에도 저울이 있다면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부터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부쩍 늘었다. 시간이 되는지부터 시작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글을 쓰거나 강연하거나 사회를 보는 데 내 에너지가 얼마나 투여될지, 그 일을 수행함으로써 주어지는 물질적 보상은 적정한지, 내가 얻게 될 비물질적 요소는 무엇일지, 최종적으로 그 일을 할지 말지까지 순차적으로 따져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예전에는 그저 불러주시는 게 고마워서 자세한 사항을 듣지도 않고 흔쾌히 수락하곤 했다.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온 것은 재작년 여름이었다. 강연을 하나 마치고 행사 사회를 보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몸이 휘청하는 게 느껴졌다. 앉아서 쉬면 좀 괜찮겠지 싶었는데 버스는 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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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선택의 기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이 비가 그치면 뭐라도 달라질 것 같았다. 하다못해 계절이라도. 주말에 이불 빨래를 하려고 벼르던 참이었는데, 별수 없이 다음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깨끗하게 포기했으면 생각이 이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얄궂게도 얼마 전 동네에 문을 연 코인 빨래방이 떠오르고 말았다. 빨래방이 문을 연 날, 운동화 세탁을 하려고 호기롭게 카드를 충전했었다. 운동화 세탁 및 건조는 현금으로만 가능하다고 해서 아쉽지만 카드는 지갑 속에 고이 넣어두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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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슬픔과 함께 잘 살기 며칠 전, 메리 루플의 산문집 <나의 사유 재산>(카라칼, 2021)을 읽었다. 노년에 접어든 여성이 쓴 마흔한 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첫 글 ‘작은 골프 연필’을 읽다가 예감했다. 이 책은 슬픔을 향해 쓰였구나, 슬픔을 위해 쓰였구나. 인간이라면 불가피하다 못해 친숙한 감정, 떨쳐내려고 몸부림쳐도 어떻게든 들고 일어나는 감정이 바로 슬픔이다. 향한다는 것은 마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마주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단순히 매일 아침 씻고 나서 습관적으로 거울을 마주하는 일이 아니다. 주름진 이마를, 하얗게 세기 시작한 머리를, 몸 안팎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통증과 상실을 직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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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오금은 저리고 오동은 나무니까 예닐곱 살 때의 일이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였다. 그간의 안부를 묻고 화기애애한 얘기가 오갔다. 삼촌이 나를 놀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은이는 이름에 진(鎭) 자가 안 들어가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주워왔다는 이야기, 어떤 다리 밑인지는 가물가물하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몰랐지만, 형과 사촌들의 이름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진’으로 끝나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는 항렬자 혹은 돌림자라고 불리는 그것이 없었다. 속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것일까. 나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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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부사의 운명 출근시간대에 버스를 탔더니 만원이다.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잔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반사적으로 안간힘이 느껴졌다. 더할 수 없을 만큼 가득 찬 느낌, 한도까지 끌어올리는 기운 말이다. 잔뜩 밀린 일, 잔뜩 화난 얼굴, 잔뜩 짊어진 짐 같은 것이 떠올라 도리질을 쳤다. 된소리가 있어서 그런지 발음할 때부터 잔뜩 힘이 들어가게 되는 단어다. 버스에서 내릴 때 어느새 나는 부사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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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소박하지만 커다란 꿈 “건강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친구와 통화를 끊기 전, 저 말을 건넸다. 그는 지병으로 고생하다가 작년 말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은지 묻자 전국에 있는 공원에 가고 싶다고 한다. “일단 집 근처에 있는 공원부터 가야지. 집과 병원만 오가다 보니 오래 살았는데도 이 동네가 좀 낯설어.” 하고 싶은 일이 의외로 소박한 것이어서 놀랐다. 전국에는 무수히 많은 공원이 있을 테니, 소박하지만 커다란 꿈이다. 몸과 마음이 둘 다 건강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계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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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계속 이어가는 거지 버스를 기다리는데 마스크를 비집고 또렷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진짜 지긋지긋하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고자 서로가 고개를 돌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마스크로 가려져 정확히 표정을 읽을 순 없었으나 자신은 결코 그 말을 한 장본인이 아니라는 눈빛이었다. 때마침 정류장에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외투의 지퍼를 끝까지 끌어올리고 장갑을 단단히 꼈다. 잠시 후 버스가 한 대 도착했고 몇몇이 탑승했다. 남은 이들은 왠지 좀 더 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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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그 사람의 말’이라서 얼마 전 박희병이 쓴 <엄마의 마지막 말들>(창비, 2020)을 읽었다. 술술 읽혔는데, 이상하게 페이지마다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1년여 동안 어머니의 보호자이자 관찰자, 기록자였던 저자가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당신의 말들을 모아 낸 책이다. 호스피스 병동을 전전하는 일, 어머니를 위해 도토리묵과 손두부를 먹여드리는 일을 읽노라면 삶과 죽음의 존엄성에 대해, 사랑의 방식과 죽음의 방식에 대해 헤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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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11월에 하는 일 몇 년 전 11월, 한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잘 지내니? 별일 없지?” 1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의 문자였다. 회사에서 한창 바쁜 시간대라 나중에 답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생각만 한 셈이 되었다. 야근 후 집에 돌아와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든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문자가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사나흘이 더 지나고 나서야 친구로부터 온 문자를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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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쉬는 시간에 무엇을 했었지? 쉬는 날이었다. 온종일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책도 펴지 않고 노트북도 열지 않기로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팠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에도 힘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힘이. 김치찌개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니 더욱 무기력해졌다. 포만감이 몸을 나른하게 만든 것이다. 곧바로 눕고 싶었지만 미루면 나중에 더 귀찮아질 게 빤해 설거지를 했다. 내친김에 싱크대도 깨끗이 닦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밀린 집안일을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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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점심 뭐 먹지?” 회사 다닐 때 거의 매일 이 질문을 던졌다. 점심시간은 한 시간이었고 어디 멀리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사 6개월째부터 물음은 습관이 되어버렸다. 별다를 것 없음을 알면서도 정오가 되면 반사적으로 저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옆에 앉은 동료는 참을성 있게 몇 가지 메뉴를 제시했다. 이번주에 아직 먹지 않은 메뉴를 가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선택지를 받고 나서도 나는 묵묵부답이었다. 사소한 것일지 모르지만, 오후의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