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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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뜨겁고, 숨차고, 답답한 <알바트로스>. 2017년 방영된 TV 프로그램 이름이다. “어제의 청춘이 오늘의 청춘을 만난다”는 콘셉트로 기성세대인 MC들이 일일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고 청년들과 공감하는 예능이었다. 8회에서 진행자 유병재씨는 젝스키스의 장수원씨와 함께 유독 힘들기로 소문난 알바에 도전한다. “헬 알바” “골병만 남” 등의 후기가 넘쳐나는 이 일터는 다름 아닌 고등학교 급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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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의존과 돌봄은 ‘쓴맛’ 최근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에서 열린 비판적섬연구학회에 참석했다. 비판적섬연구는 북반구 대륙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남반구 군도의 관점을 세계 인식과 사회 분석에 가져오고자 하는 연구 방법론이다. 여기서 ‘북반구(Global North)’와 ‘남반구(Global South)’는 기존의 ‘1세계’와 ‘3세계’라는 말을 대체해 사용되기 시작한 비교적 새로운 용어다. 처음 1세계, 2세계, 3세계 구분이 등장한 건 냉전시대였다. 서구 자본주의 진영을 ‘1세계’, 동구 공산주의 진영을 ‘2세계’, 이에 속하지 않는 여타의 국가들을 ‘3세계’로 묶었다. 동구권 붕괴 후 2세계란 말은 사어가 되었고, 1세계, 3세계는 각각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의미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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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10억원으로 할 수 있는 일 8월 말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아라동의 작은 서점인 ‘아무튼 책방’과 올해로 24회를 맞은 ‘제주여성영화제’에서 초대를 받아 3박4일 동안 총 4회 강의를 진행하는 일정이었다. 덕분에 오후와 저녁에는 강의를 하고, 밤에는 다정한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아침에는 바다 앞에서 ‘물멍’을 즐기는, 꽤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후로 그 시간을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첫 계기는 다큐멘터리 <물꽃의 전설>(2023)이었다. 고희영 감독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제주 삼달리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모습을 기록해 엮었다. 작품의 중심에는 87년간 물질을 한 대상군 해녀 현순직 선생과 서서히 말라가는 바다의 슬픈 얼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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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평등이 뭔지 알아요? 며칠 전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와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성교육·성평등 도서를 공공도서관에서 빼라는 일부 단체의 금서 지정 운동에 반대하는 행동독서회 자리에서였다. 어린이는 금서 목록에 올라온 <함께 생각하자, 성평등>을 들고 다가와 나에게 물었다. “성평등이 뭐예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황당하게도 그 유익한(!) 책은 내가 쓰고 순미 작가가 그림을 그린 책이었다. 땀을 흘리며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다 결국 실패했다. 나는 “여자애가” “남자애가”라는 말 뒤에 따라오는 편견이 어떻게 차별로 이어지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런 설명이 어린이에게 고정관념을 만들어 줄까봐 두려웠다. 궁여지책으로 스스로를 여자 혹은 남자로 규정하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아이돌 ‘앰버’ 이야기를 해보려 했는데, 어린이는 앰버를 몰랐고 나는 어린이의 최애 아이돌인 ‘뉴진스’를 잘 몰랐다. 결국 대화 결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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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여섯 번째 대멸종 ‘인섹타겟돈’ 지난 6월 말 ‘러브버그(사랑벌레)’가 집에 들어왔다. 방충망에 문제가 있나 싶어 창 아래쪽을 살펴보던 중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만 같은 기분. 나는 눈을 돌려 오른쪽 벽을 쳐다보았다. 하얀 벽지에 러브버그들이 붙어 있었다. 그 행렬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천장에 이르렀을 때, 형광등 옆에 모여 있는 수십 마리의 러브버그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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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극단적 중도파들의 시대 “문화의 힘은 위대하다.”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을 찾은 김건희 여사의 말이다. 그날 그가 우아하게 축사를 한 행사장에서 송경동, 정보라, 이원재 등 문화예술인들이 강제퇴거당했다. 소설가 오정희씨의 도서전 홍보대사 위촉에 항의하던 중이었다. 오씨는 박근혜 정부 시절 ‘문학계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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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그 고양이가 궁금했다 고고학자 영실(옥자연)의 마음속엔 이제 막 새로운 설렘이 씨앗을 틔운 참이다. 발굴 현장에서 벌목을 하는 우도(강태영)에게 마음이 끌린 것이다. 고백을 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집 앞 복도에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은 영실은 중얼거린다. “나에게도 행운이 오려는 건가.” 그날 밤, 영실은 물과 사료를 준비해 계단에 꺼내놓는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한 사랑을 보듬듯 마주친 적도 없는 고양이를 위해 다정하게 먹거리를 준비한 영실은 물그릇 옆에 다리를 모으고 앉아 생각한다. “우도도 나를 자유로운 영혼이라며 싫어할까? 인식처럼?” 그리고 장면은 8년 전, 영실이 인식(기윤)을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점프한다. -
문화와 삶 ‘열대 우림 속 선인장’의 최후 최근 스크린 세이버가 돌아가는 컴퓨터처럼 살고 있다. 전원이 완전히 꺼지지 않고 풀타임으로 가동 중인 뇌는 잠을 잘 때에도 충분히 쉬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는 침대에 가지고 들어가는 스마트폰이다. “잠깐만 놀자”며 스마트폰을 깨우면 한두 시간은 ‘순삭’이다. 각종 SNS, 쇼핑 앱,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전전하다 지쳐 눈을 감을 땐 뇌는 이미 활성화된 상태다. 여기서부턴 난잡한 꿈의 문이 열린다. 대낮에 맑은 정신으로 그 시간을 돌이켜 보면 꽤 낯설고 아득하다. 명멸하는 액정, 익숙하게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 취할 만한 정보를 찾아 빠르게 움직이는 눈, 톡하고 손끝으로 화면을 찍으면 바로 펼쳐지는 자극의 세계. 내 의지로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버튼만 누르면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반자동 기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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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뻔뻔한 도둑질 한 정치인이 개인 SNS에 자신의 정치 행보를 알리면서 “얼룩말 세로처럼 훨훨 활보하겠다”는 말과 함께 세로의 탈주를 패러디한 이미지를 올렸다. 그 이미지 안에서 세로는 인간처럼 두 발로 서서 어깨를 당당히 편 채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이걸 본 순간,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물론 인간이 동물에 빗대어 스스로를 설명하는 역사는 유구하다. 특히 의인화된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는 인간의 자기 이해와 지혜가 고여 숙성되는 향기로운 술통과도 같은 장르다. 실제로 동물은 인간과 다양한 속성을 공유하므로, 그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우화는 인간이 설정해 온 동물들 간의 위계를 뛰어넘는 동류의식을 품고 있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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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먹방과 ‘육두구의 저주’ 얼마 전, 급체에 걸려 고생을 좀 했다. 문제의 음식은 라면이었다. 전날 밤 늦은 시간에 유튜브 먹방 알고리듬에 걸려들어 침샘이 폭발하는 시련의 밤을 보내고 나서, 오전 일정을 마치고 허기진 김에 분식집에 들어가 라면을 주문했다. 한꺼번에 열라면 여덟 봉을 끓여먹던 그가 참 맛있게도 먹었던 덕분이었다. 먹는 내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밤에 본 것이 비단 먹방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알고리듬을 타고 보게 된 영상들의 키워드는 바디프로필, 헬스 브이로그,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 레시피, “한 시간씩 줄 서는 호떡집”, 프로아나(극단적으로 마른 몸을 지향하는 사람), 항정신성 식욕억제제와 그 부작용, 그리고 “곱창이 땡겨 먹다보니 10㎏”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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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마스크와 헬라세포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됐다. 지난 3년간 마스크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마스크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신뢰할 만한 방역 도구였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때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기도 했으니까. 마스크 대란 때는 인간의 생명에는 무관심한 비정한 시장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었다가, 공적 마스크가 등장했을 땐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획일적인 인구관리의 현장이 되었고, ‘마기꾼(마스크+사기꾼)’ 같은 유행어를 통해서는 외모평가를 쉽게 하는 문화가 펼쳐지는 스크린으로 다가왔다. 한국인의 시민성과 공동체 의식이 드러나는 광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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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세이브 아워 시네마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친다. 학기 초가 되면 새로 만난 학생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영화란 무엇인가?” 답은 다양하다. 세계를 볼 수 있는 창, 협업, 종합예술, 상품 등등. 누군가는 “영화는 물”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컵을 감독이라고 한다면, 어떤 컵에 담기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이 된다는 의미다. 각자의 답이 이처럼 달라지는 건, 영화는 물론이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반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