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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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고개 숙인 남자’라는 판타지 젠더 갈등이 문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시대의 젠더 갈등을 초래한 한국사회의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 더 문제인 것 같다.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란 성별 고정관념에 기대어 사회적 상황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식론적 틀을 말한다. 예컨대 1997년 외환위기를 “남성=아버지의 위기”로 해석하는 경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포스트 외환위기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유행어가 무엇이었나? “아빠 힘내세요”였다. 더불어서 “부-자되세요!!” “신(新)현모양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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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먼 온 톱 열 살이 채 되기 전에 TV에서 본 개그 프로그램의 콩트가 아직도 기억난다. 아니, “기억난다”기보다는 “잊혀지지 않는다”에 가까울 것 같다. 내용은 이랬다. 옛날옛날 한 옛날에, 한 마을의 돈 많기로 유명한 부잣집의 딸내미가 덩치가 크고 못나기가 그지없는데, 그게 또 외동인지라 오냐오냐 자라 버릇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니 혼기가 차도록 데려가겠다는 남자 하나가 나서지를 않아 부모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만석꾼은 누구든 딸을 데려가기만 하면 큰돈을 물려주겠다고 공언한다. 이에 가난하지만 영민한 총각이 찾아와 그 천방지축을 기꺼이 아내로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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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혁명-이후 “왜 영화에서는 ‘혁명-이후’를 다루지 않을까?” 나는 종종 생각한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처럼 노골적인 혁명 서사를 보고 난 후에는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힌다. <설국열차>는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은 건 무한동력엔진을 장착한 윌포드 트레인에 올라탄 사람과 생명체들뿐이다. 영화에서 멈추지 않는 기차는 폭주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로 해석되었다. 기차에서의 삶이 철저하게 구획된 계급사회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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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보이는 것’이 들려드릴 이야기 “안녕하세요, 손희정입니다. EBS <까칠남녀> 종방 후 1년 만입니다. 공중파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것, 여전히 할 수 없는 것, 하지만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유튜브로 돌아왔습니다. 퀴어와 퀴어 앨라이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본격 퀴어 토크쇼 <손희정의 TMI>.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2019년 1월 초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기획, 제작하는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에서 론칭한 <손희정의 TMI> 첫 녹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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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어떤 정치인은 더 해롭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전당대회를 전후해서 주목을 끌기 위해 연출하는 어떤 장면들은 끔찍하다. 5·18 유공자를 “괴물”이라고 칭하는 것이나 “저딴 게 대통령”에 이은 청년최고위원 후보의 아무 말 대잔치를 보고 있자면, 혐오 선동과 막말 외에는 정치적 자원을 갖지 못한 정치인의 해악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선동 이후, 5·18 유공자에 대한 가짜뉴스 유포와 모독 행위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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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위력에 의한 간음죄, 최협의설을 넘어서야 “지옥이 꽉 차는 날, 죽은 자들이 땅 위를 걷게 될 것이다.” 좀비 영화 고전인 <시체들의 새벽>(1978)의 홍보 문구다. 줄줄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법조계 #미투 가해자 안태근, 연극계 #미투 가해자 이윤택, 그리고 충남도 전 지사 안희정 등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말이다. 강간범들이 이미 지옥을 꽉 채우고 있어서, 저들이 지옥에도 못 가고 여기서 떠도는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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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돼지를 그대 품 안에 기해년이 밝았다. 노란돼지(己亥)의 해라니, 제일 좋아하는 돼지 이야기를 하나 풀어놓을까 한다. 에코 페미니스트인 마리아 미즈가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라는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어머니와 암퇘지”라는 일화다. 1945년 초,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농부의 딸이었던 미즈는 독일 아이펠의 서쪽 마을에 살고 있었다. 당시 마을은 먹을 것과 온정을 구걸하는 독일 패잔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저녁 수프를 끓이고 감자를 삶아 그들을 거둬 먹였다. 미즈의 다섯 오빠는 모두 집을 떠나 참전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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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한 끗 차이’를 만드는 페미니즘 여성혐오를 예술로 포장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는 것 같다. 안티페미니스트 레토릭을 읊조리다 공연이 중단되고 말았다는 래퍼 산이의 ‘웃기고도 슬픈 에피소드’는 이를 잘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이제는 창작의 원천으로 페미니즘 인식론을 참고할 때다. 강의 중에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페미니즘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 있나요?” 나는 100점짜리 페미니스트 캐릭터의 전형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캐릭터와 이야기, 영상언어 등을 진부하지 않게 구성하고 조합해내는 페미니스트 상상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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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두려워 말라, 그들은 그저 세상을 바꾸고 있을 뿐 지난 11월3일. 학생의날을 맞이하여 교사들의 교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해결 및 예방책 마련을 촉구하는 ‘스쿨미투’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서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은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고 외쳤다. 2015년 이후 대중 페미니즘 운동은 대체로 익명의 청년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 운동의 형태였다. 얼굴과 이름을 내놓고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했을 때 여성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와 2차 가해, 무고죄 고발, 그리고 조리돌림이었으므로 이는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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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페미니즘과 포퓰리즘이 만날 때 “극우와 기독교가 만나는 곳에 ‘가짜뉴스 공장’이 있었다.”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대한민국 언론사에 남을 만한 문장이다. 성소수자나 난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차별을 선동하는 가짜뉴스의 레토릭이 보수 기독교의 레토릭과 비슷하다는 점은 페미니스트들도 계속 주목해왔던 문제였다. 한겨레가 이 ‘합리적 의심’이 ‘팩트’임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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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가부장제 이후’는 아직 오지 않았다 “여성가족부가 ‘가부장제 이후’의 새로운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 나가겠다.” 진선미 의원이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여성가족부 장관 내정 인사 중 일부다.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제 모권사회가 됐다고들 해요. 결혼을 하게 되면 처갓집 근처에서 살아야 하고, 집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더 크다고 말이죠.” 아, ‘가부장제 이후’란 이런 의미인 것인가? 하지만 과연 이런 일들이 한국 사회가 부권사회에서 모권사회로 넘어갔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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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반지성적 의미 왜곡에 대응하는 법 안티 페미니스트의 “페미나치” 운운이나 홍준표의 “괴벨스 정당” 운운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최근 이런 반지성주의적 의미 왜곡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하다 명쾌한 응답을 하나 만나게 되었다. 미국 코미디계의 신성 트레버 노아의 발언에서였다. 얼마 전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정치 풍자 토크쇼 <데일리쇼>에서 “프랑스 정부와 갈등이 좀 있었다”며 입을 열었다. 아프리카계 선수가 다수 포진하고 있는 프랑스 대표팀의 월드컵 승리를 축하하면서 “아프리카가 승리했다”고 던진 농담이 문제가 됐다. 프랑스 내에서 반발이 거세지자 주미 프랑스 대사는 트레버 노아에게 항의 편지를 썼고, 이 발언은 개그를 넘어 미국식 다문화주의와 프랑스식 동화주의 사이의 날선 논쟁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