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신기사
-
하태훈의 법과 사회 ‘헌법과 법치’ 검찰 전유물이 아니다 수사권을 지키려고 정치적 수사(修辭)만 내뱉은 검찰총장의 사직서였다. 반성은 없고 반발만 드러낸 사퇴의 변이었다. 과연 검찰이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을 파괴해 온 숱한 과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 피해로 고통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을 무너뜨린 건 오·남용한 검찰권 아니었던가. 검찰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해왔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
하태훈의 법과 사회 제대로 견제당한 사법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일이 작을 때 처리하지 않다가 막바지에 이르러서 큰 힘을 들여야 해결됨을 이르는 말이다. 뒤늦게 가래로라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지금은 가래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논란과 파장이 걷잡을 수 없다. 미적대다가 때를 놓치고 사태를 수습하려다 거짓말까지 들통나 정의와 신뢰의 상징이어야 할 사법부 수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법원 내부의 불만도 만만찮다.
-
하태훈의 법과 사회 인권에 여야가 따로 없다 서울 동부구치소 관련 코로나19 확산에 야당과 야권 대선주자들은 호재를 만난 듯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인권’을 공격무기로 꺼내 들었다. ‘재소자 인권을 강조했던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가 맞나’ ‘선택적 인권 의식’ ‘인권 감각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후진국 수준’ 등.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된 언론기고문도 끄집어내 그 당시 갈수록 악화하는 재소자 인권을 지적했음을 환기했다. 맞는 지적이자 비판이다.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 최우선시해 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수치다.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면서 재소자들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으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집단감염뿐만이 아니다. 무더위에 열사병으로 죽어 나가고, 지난해 5월 부산구치소에서는 의료진이 없어 제때 진료받지 못한 정신질환 수용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비판과 공격이 야당의 임무라지만 왠지 씁쓸하다. 맞는 말 하고도 싹수없이 한다는 느낌이 든다. 욕먹기 딱 좋은 밉상 짓으로 와 닿는다.
-
하태훈의 법과 사회 말이 짐이 될 때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을 거친 민주주의 시대에 ‘독재’ ‘반민주’라는 단어가 거침없이 쓰이고 있다. 마치 독재시대로 회귀해 사는 것은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정권 비판에 단골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야당 국회의원이나 보수 논객은 그렇다 치고 반정부 투사 이미지로 단숨에 대선후보 반열에 오른 검찰총장의 언사에도 등장하고 있다. “친문독재” “민주주의는 죽었다” “독재정당”이라고 적힌 손팻말이 국회의사당 한쪽을 가득 메웠다. 야당의 백드롭(배경 현수막)도 예외는 아니다. 집권 여당이 공수처법 개정안에 이어 공정경제 3법을 밀어붙이자 국민의힘은 ‘거대 여당의 입법독재, 국정농단이 일상화’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독재로 흥한 자 독재로 망한다’라고도 비판했다. 이에 발끈한 민주당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을 ‘평생 독재의 꿀을 빨던 세력’으로 몰아세우면서 때아닌 독재 논쟁이 격화되었다.
-
하태훈의 법과 사회 기본권은 누구에게나 기본권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 과정에서 휴대전화 잠금 해제를 강제할 수 있는 법률안(일명 ‘한동훈 방지법’)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자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헌법 유린이라는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피의자에게 방어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논거다. 언론과 시민단체, 말 깨나 좀 한다는 사람들이 인권옹호자가 되어 공격대열에 합세했다. 장관의 지시에 침묵만 지키는 민변 출신 여당 국회의원들을 향해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는 전직 국회의원도 있었다. 국민의힘은 “헌법도 보이지 않는 법무부(法無部) 장관, 오로지 ‘내 편’만을 위한 인권”이라는 논평을 냈다. 평소 인권에는 관심도 없거나 애써 외면했던 이들조차 맹비난에 가세했다. 차라리 고문을 허하라는 극단의 비판도 들어야 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똑같아야 할 기본권이 상대를 공격할 때만 꺼내 드는 전가의 보도로 쓰이고 있다.
-
하태훈의 법과 사회 해답은 공수처 출범이다 검찰 수사가 미진하거나 의혹이 일면 특임검사가 임명된다. 주로 검사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2010년 도입된 특임검사로도 모자라면 특별검사가 등장한다. 이렇듯 단판으로 끝내질 못한다. 두세 번 수사한 사건이 무수히 많다. 굵직한 사건에서는 어김없이 3종 세트가 등장한다. 검찰의 수사가 때로는 선택적 수사, 때로는 정치권력 눈치 보기 수사라서 불신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수사 삼세번은 낯설지 않다. 마치 삼심 재판을 하는 것 같다.
-
하태훈의 법과 사회 이 또한 공정한가 불공정에서 촉발된 촛불혁명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이 지금은 역설적으로 불공정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형국이다. 불공정의 크기와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입은 상처는 만만치 않다.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가 정점인 줄 알았더니 뒤이어 추미애 법무장관도 자녀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검찰개혁 추진을 저지하려는 세력의 기도된 의혹 제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집요하게 파헤치는 야당과 언론의 흔들기로 그들의 도덕성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거대 여당에 맞설 무기와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야당은 호재를 만난 듯 인사청문회와 그 이후 몇 달째, 국회 대정부질문 내내 열을 올리고 멈춰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언론도 하루 1000개가 넘는 기사를 쏟아내며 정쟁의 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드러내고 있다. 결과적으론 특권과 반칙, 기득권층의 부와 명예의 대물림을 끊어내겠다던 개혁세력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인식 심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다를 것으로 기대했던 진보세력에 대한 상실감이 더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다급한 상황 속에서 대통령은 출범 당시의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대국민 약속을 소환하며 불공정에 대한 분노를 다독이려 제1회 청년의날 기념식에서 37번이나 공정을 외치기도 했다.
-
하태훈의 법과 사회 검사장은 기자에게 무엇이었나 “검사장과 기자가 통화 15회, 보이스톡 3회,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등 327회에 걸쳐 계속 연락을 취하였다.” 소위 검·언 유착 의혹사건의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이다. 두 달여 동안 연락을 주고받은 횟수로 치면 보통 관계가 아닌 듯하다. 하루에 몇 번씩 안부 인사만 건넸을 리도 없다. 기자는 검사장을 취재원쯤으로 생각한 것일까. 취재 활동의 조력자였을까. 절친이거나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라 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상식 밖이다. 기자의 변호인은 당시 이슈가 워낙 많았는데 예를 들어 이만희 신천지 회장 살인죄 고발 건이 나오면 기사 링크를 보내고 코멘트를 듣는 등 정상적인 취재 일환이었다며, “그게 많은 것이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검사장도 “기자들이 먼저 기사 링크를 보내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아 취재 활동 차원의 메시지가 오갔을 수 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기자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는 더 많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공모관계의 의혹은 일축되었는지 모르지만 이게 검사장의 올바른 처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검사장이 언론 기자에게 특정 정치인에 대한 평을 하고,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처리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것이 검사의 직업윤리상 허용되는 일인가. 개인적인 기고나 의견표명에 제약을 두고 있는 검사윤리강령에 반하고 수사공보 준칙제도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그런 과정을 통해 수사 기밀이 새 나갈 수도 있고 피의사실이 흘러나갈 수도 있다.
-
하태훈의 법과 사회 실체적 진실 발견의 딜레마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는 길은 험난하고도 지난하다. 검찰 수사도 모자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자문을 받아야 하고 수사 결과에 이의가 있으면 항고심사위원회도 거쳐야 한다. 이미 끝난 사건도 특별수사팀, 특임검사를 임명해서 재수사의 대상이 된다. 때로는 특별검사도 가동된다.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기도 하고 한 번으로는 끝내지 못하고 삼세번 재판을 받아보고 싶어 한다. 이렇게 기나긴 과정을 거쳐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면 사건은 종결되어야 하지만 불신과 비난, 논란이 재점화되기도 한다. 납득이 안 된다며 대법원 앞에서 시위도 벌인다. 훗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오판이 확인되어 재심도 열린다. 형사소송을 하는 이유와 목표가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면 확정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진실은 발견되어 확정된 것이니까 그 확인된 진실 앞에 모두가 승복해야 하는 것 아닐까. 법치주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선언한 것이므로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닐까.
-
하태훈의 법과 사회 만사형통? ‘사법 자제’, 가수 조영남씨의 화투 그림 대작(代作) 사기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확정하면서 사용한 언어다. 사법통치(juristocracy)와 사법 과잉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 시의적절한 원칙 선언이자 경고의 메시지다. 앞으로 끼어야 할 데만 끼겠다는 사법부의 다짐으로 들린다. “미술 작품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대한 다툼이 있지 않은 한 가치 평가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 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 원칙은 비단 예술이나 문학작품의 표절 시비, 친일 역사 논쟁 등에 한정되지 않아야 한다. 정치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과 사법의 손을 빌리는 형사사건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정치의 사법화에 던지는 경고장이어야 한다. 고소장을 들고 검찰청으로 달려가고 어떤 사건이든지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보려는 정치권의 욕구를 자제하라는 소리로도 들린다. 민사적 다툼도 형사고소로 해결하려는 국민에게 던진 메시지로 새겨들어야 한다.
-
하태훈의 법과 사회 입법부답게 ‘일하는 국회’ 21대 국회가 4년의 대장정에 올랐다. 임기 시작과 개원일은 법에 정해져 있어 닻을 올리긴 했으나 언제 등원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국회 문은 아직 닫혀있어 행정부나 사법부 소속 공무원이 임기 시작과 동시에 일터로 출근해 본연의 업무를 시작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최대 의석 차 여대야소의 입법 지형이 다를 뿐 국회 개원 언저리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다. 개원을 앞두고 여야가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벌이는 대치국면과 지각 개원 우려는 익숙한 풍경이다. 여야 모두 20대 국회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를 쓰고도 최악이라는 오명을 받은 만큼 일하는 국회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 180석의 여당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개혁 입법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쪼그라든 야당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열심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의욕이 넘쳐 모두가 기대하는 바대로 굴러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몸집 큰 여당은 숫자로 밀어붙일 유혹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고 여기에 투쟁과 대립의 무기로 맞설 야당이 버티는 한 식물국회·동물국회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열정과 치열함으로 무장했을 초선 의원 비율이 절반을 넘으니 낡은 정치와 결별하고 새로운 정치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임기 중반에 치르게 될 대선으로 의정활동이 뒷전으로 밀려날 우려도 있다. 어쨌든 기대 반 우려 반 긴 여정은 시작되었다.
-
하태훈의 법과 사회 n번방 재발방지법 이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30년 전 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위기를 모면한 주부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당시의 시대상에 비추어 놀랄 일은 아니지만, 성폭행 피해자는 오히려 과잉방위로 기소되고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다행히 항소심에서 뒤집혔고 대법원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었다. 여성의 성과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된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이 영화는 성폭력 피해자를 당해도 싼 부도덕한 여자로 몰아세우고 여성의 인권보다 혀 잘린 성폭행범 청년의 구만리 같은 앞길을 걱정해 주는 등 한국 사회의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당시 피해자의 마지막 대사는 현재의 성범죄 피해자를 그대로 대변한다. “재판장님, 만일 또다시 이런 사건이 제게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여자들에게 말하겠습니다. 반항하는 것은 안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안된다고, 재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