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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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조두순’ 이후 ‘n번방’ 세계적 재난도 견디기 어려운데, 그 와중에 터진 반인륜적 범죄가 우리를 충격에 빠트렸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서로를 고립시키더니 퍼질 대로 퍼져버린 반인권적 범죄가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켜 버렸다.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선언한 헌법국가에서 인간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조두순’을 넘어 웹하드 카르텔, 버닝썬, 웰컴 투 비디오 그리고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사건까지 끊이지 않는 추악한 범죄가 이제 음지로 파고들었다. 아동 성폭행범의 대명사 ‘조두순’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성폭행·강제추행이라는 전통적 젠더폭력에서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통·소지하는 새로운 젠더폭력으로 양상만 달라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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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위헌적 기생정당의 길로 갈 것인가 ‘기생’은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남에게 빌붙어 사는 삶이다. 공생처럼 보이지만 다른 생물의 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얹혀살이 관계다. 우리는 남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는 사람에게 ‘기생충 같은 놈’ ‘빈대 붙지 말라’고 힐난한다. 자립할 의지도 생각도 없는 것이라면 어디든 기생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일 수 있다. 독자적인 노선도 정책도 없고, 선거 공약도 없이 다른 정당 것을 그대로 복사해서 활용하면 기생충과 다를 바 없다. 기생정당이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관계가 그렇다. 전자가 숙주요, 후자가 기생생물이다. 기생의 티는 강령과 당헌에 그대로 드러난다. 비례대표 의석 확보용으로 급조한 정당이라 강령은 대여섯 줄에 불과하고 당헌에는 목적 조항도 빠져 있다. 한 줄짜리 비전과 몇 줄의 강령으로는 당의 이념과 비전, 정강정책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미래통합당이 숙주이기 때문에 굳이 애써서 내용을 채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가짜정당이라는 논란에도 법정 요건이라는 형식은 갖추었으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성립했다. 아무리 정당 설립이 자유라지만 독자성도 없고 숙주에 빌붙어 시한부 인생을 사는 기생정당이 민주주의국가에서 버젓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정당정치의 오점이다. 비례대표 배분용 정당투표는 정당의 정책과 선거공약이 있어야 가능한데, 미래한국당은 비례후보 명단만 있을 뿐 아무것도 내놓지 않을 것이다. 당명에 붙여진 미래라는 장밋빛 수식어가 무색하게 미래는 없다. 총선 후에는 숙주에 포식되어 사라질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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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미리 알 권리’도 알 권리인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했지만 시점이 문제다. 그 의도가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하필 살아있는 권력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두고 기존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왜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부터 법무부가 공소장 제출 거부와 비공개를 결정한 것인지 설득력 있는 이유를 대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공소장 원문이 아니라 공소사실의 요지자료를 제출한 근거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들지만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는 법률체계상 상위규범인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법무부의 비공개 결정이 국회와 법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국민적 관심이 커 알권리 차원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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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망나니, 칼춤 그리고 검찰 인사를 당했다. 인내심의 임계점에 달한 인사권자의 강력한 견제구이자 경고다. 이번 검찰인사를 두고 ‘자업자득, 수사방해를 위한 보복인사, 또 다른 길들이기’ 등 다양한 관점과 반응이 혼재한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간 국민을 갈라놓고 혼미하게 만든 검찰의 칼춤을 멈춰 세워야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필요하고도 시기적으로 적절했으며 당위성 있는 인사권 행사다. 무소불위의 검찰을 독립성 보장이라는 이유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임명권자의 직무유기다. 검찰수사의 중립성을 위해 정치권력은 삼가고 절제해야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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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넘치는 직권남용죄 고소·고발 적폐청산에 동원된 대표적 범죄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다. 국정농단과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기소된 이가 전직 대통령과 사법부 수장을 포함해 십 수 명에 이른다. 사실 직권남용죄는 기소건수나 유죄가 인정된 사례가 적다는 점에서 잊혀진 범죄유형이다. 기소도 2~3%에 불과하고 유죄판결을 받는 공무원도 거의 없었다. 과거 정권교체기마다 반짝 등장한 적이 있지만 이번 적폐수사처럼 검찰이 비장의 무기로 활용하지는 않았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 서슬 퍼런 칼날을 세웠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본격화되면서 직권남용죄의 고소·고발이 폭증했다. 연평균 5000~6000건에 불과하던 고소·고발 건수는 2017년 들어 9741건, 지난해에만 1만4345건을 기록했다. 상급자와 의견충돌이 있거나 조금이라도 지시가 부당하면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경향도 있다. 공직사회에서 경쟁자를 견제하고 흠집 내기 위한 목적으로도 오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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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진술거부인가, 진술거부권 행사인가 그 말이 그 말일 수 있다. 피의자가 ‘진술을 거부’하거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했거나 검찰의 신문에 답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표현이 주는 뉘앙스는 차이가 있다. 진술을 거부했다는 표현은 ‘거부’를 부각시켜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거나 수사태도가 불성실했다는 부정적 의미를 떠올리게 만든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말하면 보장된 권리를 행사한 것이어서 당연한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여 8시간 내내 진술을 거부하고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언론의 보도태도가 이처럼 양 갈래다.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여론을 형성해 보려는 입장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입장이 대조적이다. ‘권력자의 갑질’이라는 표현을 제목으로 뽑거나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하기 바란다’는 야당 정치인의 멘트를 기사화한 언론은 수사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쪽이다. 이에 반해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는 데에는 전직 장관이든, 일반 시민이든 차이가 있을 수 없고 검찰에 대항할 수 있는 피의자의 유일한 무기라는 기사는 헌법과 원칙을 지켰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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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준사법기관’에 걸맞은 검찰이어야 “검찰이 누구누구를 사법처리할 방침이다”라는 표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검찰이 수사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사법처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니까 언론도 따라 쓴다. 여기서 사법처리란 수사를 해서 기소했다는 뜻이다. 공소장 제출로 법원에 재판을 청구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굳이 ‘사법’처리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상 ‘사법(司法)’이란 무엇이 법인지를 말한다는 의미로 사법부가 하는 업무다. 그만큼 행정부에 속하는 검찰의 사무가 사법부의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법처리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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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피의사실 흘리기·받아쓰기 지나치다 검찰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피의자 신문조서도 없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공소시효 만료 직전 전격적이었다. 압수수색도 전방위로 행해졌다. 대상과 장소가 다소 포괄적이고 특정되지도 않았다. 일부 기관은 압수수색이 아니라 자료제출을 요청해야 할 곳도 있었다. 피의자도 피고발인도 아닌데 압수수색을 당해 마치 피의자인 것처럼 비치고,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수사정보가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다. 언론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을 ‘기정사실’로 만듦으로써 피의자를 압박하고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을 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언론은 동조라도 하듯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거른 채 검찰이 흘리는 조각정보를 짜 맞추어 퍼뜨리는 데 몰두했다. 베껴 쓰기까지 더해지니 조 장관 일가의 혐의와 관련한 기사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왔다. 검찰은 부인하지만 보도 형태로 미루어 상당 부분 검찰 정보에 의존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클릭 수에 목매는 인터넷언론은 물론이고 정론을 표방하는 중앙 일간지에도 고급 외제차가 등장하는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상보도나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기사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의 조급증과 호기심을 채워주려 속보경쟁에 급급한 언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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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청문회서 국민정서법의 ‘파고’ 넘을까 청문절차에서 국민정서법의 파고를 넘어서야 적격보고서가 채택될 것이고 임명권자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지금 분위기는 부정적이다. 인사검증 기준에 따른 위법과 탈법은 없지만 왠지 석연치 않다는 기류다. 당시 있던 법과 제도를 잘 알고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특권층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박탈감과 후보자의 평소 소신에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실망감이 빚어낸 국민정서법이 그렇다. 거기에는 그동안 보여준 공적인 행동과 사회적 발언으로 형성된 후보자의 이미지에 실망한 지지자의 배신감도 자리하고 있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인물인가에 대한 회의가 숨어 있기도 하다. 후보자의 날카로운 발언에 폐부가 찔려본 사람이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분노와 울분도 있을 것이다. 후보자가 했던 말과 글을 소환하여 대비표까지 만들어 가면서 비난에 가세한 사람도 있다. 이처럼 평소 후보자를 마뜩잖게 생각했던 이들의 거센 반격이 부정적인 분위기와 기류로 흐르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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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탈검찰의 민정비서실과 법무부, 조국 지금 여의도 정가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내로남불’이다. 정치인의 뼛속에는 ‘그때그때 달라요’ DNA가 숨어 있다. 자신과 당의 유불리에 따라 과거를 싹 잊어버리고 대응하는 조변석개(朝變夕改)의 ‘말’ 정치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을 유행어로 만들었다. 여당에서 야당, 야당에서 여당으로 공수가 교대되면서 되풀이되다 보니 악순환의 정치문화로 뿌리내렸다. 상황에 따라 변신해 과격하고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반응은 히스테리 증상처럼 보인다. 그러니 정치의 불신은 당연한 결과다. 공인인 정치인이나 정당의 말이 때에 따라 달라진다면 신뢰받기 어렵다.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입각설을 둘러싼 여야의 날선 대립도 ‘내로남불’로 비난받고 있다. 야당 시절에는 극단의 표현으로 혹평을 쏟다가도 여당이 되면 180도 태도를 바꿔 이러저러한 이유로 합리화하는 모습이 카멜레온의 전형으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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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양승태의 ‘내로남불’ 분쟁에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은 증거 내밀기다. 발뺌하거나 다그치면 “증거 있어? 증거 대 봐”라고 방어하거나 공격한다. 증거가 없을 거라는 자신감에 찬 오리발이지만 막상 증거를 내밀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법정다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관계를 확정하려면 물증도 필요하고 증인도 불러 신문해야 한다. 모든 분쟁은 증거싸움이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증거로 증명하지 못하면 그 진실은 인정받지 못한다. 범죄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죄판결이 난다. 그래서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증거 수집에 열을 올린다. 때로는 증거를 인멸하기도 한다. 미행하거나 몰래 엿듣기도 하고 흥신소의 도움도 받는다. 불법으로 도·감청하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위치추적기를 달기도 한다. 증거를 시멘트 바닥에 파묻기도 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현금 가방을 건네기도 한다. 증인과 입도 맞춘다. 올 들어 적폐청산 수사 때문이었는지 압수수색 건수가 대폭 증가했는데, 수사기관은 물증확보 수단으로 압수수색영장을 활용하고 있다. 휴대전화와 이메일도 들여다보고 금융계좌도 추적한다. 자백이 증거의 왕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압수수색의 비중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때로는 영장 범위를 넘어서 포괄적으로 압수수색하기도 하고 압수수색으로 얻은 증거로 영장에 적힌 혐의와는 다른 별건의 범죄에 대한 수사를 하기도 한다. 증거로 유무죄가 판가름 나니까 증거수집에서 불법의 선을 넘어설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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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국회의 특혜와 성역을 허물어라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행한 직무상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다. 불체포특권도 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하고, 회기 전에 체포·구금됐을 때에도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될 수 있는 권리다. 소신껏 발언하고 표결하라는 면책특권은 그러나 때로는 방탄복으로 변질되고, 불체포특권은 제 식구 보호용 우산으로 전락한다. 이처럼 국회는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고 국회의원은 건드릴 수 없는 특권을 누린다. 그야말로 치외법권의 성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