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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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낯선 사이 고통 호소가 협박이 된 사회 우리 사회에서 2019년 말부터 발생한 코로나19는 2020년 1월3일부터 사망자 집계가 시작되었다. 9월25일 현재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그간 코로나 누적 사망자는 2434명이다. 한편, 지난 23일 대한신경과학회는 4년 동안 자살한 이들이 하루 38명으로 총 5만2950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통계청 결과도 비슷하다. 지난해 하루 평균 자살한 환자 수는 37.8명. 작년에만 1만3797명(37.8명×365일)이 자살로 사망했다는 얘기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성희롱이 취사선택될 때 외국어 번역어 가운데 ‘성희롱’만 한 심각한 오역도 없을 것이다. 영어의 ‘sexual harassment’가 성희롱(性戱弄)이라니. ‘harass’는 학대하다, 함부로 하다, 지속적으로 괴롭히다 등 ‘질 나쁜 폭력’을 뜻한다. 그러나 성적인 농담, 희롱으로 번역되면서 가벼운 의미의 ‘수작, 집적거림, 지분거림’ 등으로 변질되었다. ‘성희롱’은 가해자에게, 범죄를 장난이나 실수로 정당화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했다(일본어에서는 ‘섹슈얼 하라스먼트’를 줄여서 그냥 ‘セクハラ’라고 쓴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세 남성은 여성가족부 전문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하태경, 유승민 대선 후보(이하 유승민 전 의원)가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내놓은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이들의 주장이 무지에서 온 확신인지, 남성 표를 의식한 선거 전략인지는 모르겠다. 둘 다 문제지만, 그나마 후자는 정치인으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수술실의 CCTV가 의사의 집중력을 방해한다” “통일부도 없애야 한다”는 논리가 얼마나 표로 연결될지는 모르겠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검사의 정체성, 진보의 정체성 오독을 우려하는 심정에서, 서두에 이 글의 요지를 분명히 하고 싶다. 이 글은 이념과 직업에 근거하여 자신이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정체성의 정치를 비판한다. 특히 이 문제는 현 정권에서 많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중요하다. 우선, ‘윤석열 X파일’은 존재와 사실 여부를 떠나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X’니 ‘파일’이니 하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검증보다는 추측과 대립만 양산할 뿐이다. 매체들은 다른 표기를 고민하기 바란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기후위기와 여성적 가치? 팬데믹은 지구의 일상이 되었다. 인간의 환경 파괴가 지질층까지 변화시켜, 충적세(沖積世)에 이어 ‘인류세(人類世)’가 도래했다. “아프다”는 뜻의 ‘이타이이타이병(いたいいたい病)’은 1910년경부터 보고되었다. 일본 도야마현에서 발견된 대량의 카드뮴이 인간의 뼈에 축적되어 사망에까지 이르는 병이다. 100년도 더 된 사건이다. 당시 일본, 아니 인류는 무엇을 배웠는가. 이제는 지구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뉴타운과 빈집 초등학교 반장 선거부터 나는 한 번도 기권한 적이 없다. 기권은 ‘전두환당’에 투표하는 것보다 더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기권도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면 보이콧 운동을 조직해야지, 기권은 최악이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투표하고 싶지 않다(이 글은 투표일 전에 썼다). 일단, 더불어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이번 선거의 원인인 젠더 이슈의 현실은, 성소수자 인권을 내세운 오태양 후보의 홍보물이 훼손되는 수준이다. 지금 내게 이 상황은, 마치 돈 없는 이들이 살 집을 고를 때 소음과 먼지 중 무엇을 더 견딜 수 있는지 택일하라는 것 같다. 실제 나는 먼지가 덜한 집을 택했다. 소음은 집 밖에서 일하다가 잠잘 때만 귀가하여 귀막이를 하든 견딜 방법이 있지만, 먼지는 창을 닫아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모두 허사다. 주로 집에 있게 되었고, 온 동네가 공사 중이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화이트리스트가 블랙리스트를 만든다 논공행상(論功行賞). 요즘 말로, ‘화이트리스트’다. 원래 화이트리스트(국가)는 무역 용어로, 우대하는 상대방을 뜻하지만 최근에는 블랙리스트의 반대말로 권력자가 선호하는 인물로 통용되고 있다. 흑백, 인종주의적 표현이기도 하다. 어느 사회에서나 공동체에 기여한 바의 있고 없음, 크고 작음에 따른 보상은 당연하다. 나는 이 원리가 ‘코드 인사’ ‘제 사람 챙기기’ 등으로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같이 일하려면 가치관이 맞아야 하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은 보호해야 한다. 이 같은 인간사의 기본 원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이 믿는 바, 즉 각자의 당파성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없다. 도와준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알 것이다. ‘적’과의 협치도 좋은 방법이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 그런 역량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보궐선거와 성희롱 사건 2019년 4월24일,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에 대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당시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과 문희상 국회의장 간의 몸싸움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임 의원은 문 의장을 가로막으며 “의장님 (제게) 손대면 성희롱이에요”라고 했고, 졸지에 성 범죄자로 몰린 문 의장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렇게 하면 성추행이냐”라며 임 의원의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임 의원은 “성추행”이라고 주장했고, 문 의장은 “자해 공갈”이라고 맞섰다. 이후 두 사람 모두 피해자를 자처하며 입원했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선한 영향력의 모순 권력을 사회현상으로 파악한 푸코의 입장을 차치하면, 권력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개념, 영향력(파워)이다. 요즘에는 인플루언서라는 말로 대중화되었다. 또 하나는 대안적 개념으로서 책임감이다. 파워와 책임감은 획득 경로나 실천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열망하는 ‘강하고 선한 리더’는 출현하기 어렵다. 선한 사람이 원칙을 지키면서 권력자의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는 사회라면, 이미 그런 리더가 다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특히 당대 우리 사회에서 선함은 약함을 의미한다. 착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선의를 비웃는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팬데믹 시대, ‘식물성’을 생각한다 난 저출산이 ‘문제’라 생각지 않는다. 인간을 국력으로 보고, 젊고 건강한 노동력이 많아야 한다는 사고는 근대 남성 중심 인구학(demography)의 유산일 뿐이다. 한국 사회의 여전한 해외 입양과 중장년 실업을 생각할 때, 저출산으로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남한의 인구 밀도는 OECD 국가 중 1위, 도시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3위다. 무엇보다 문제는 인간이 바이러스로 취급되는 시대에 전 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피해, 피해자, ‘피해자 중심주의’ 성별 권력 관계(젠더)는 오랜 역사 동안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어 왔다.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를 둘러싼 판단은 개인과 사회 공동체가 모두 혼란을 겪는다. 남성 중심적 사고는 공기와 같아서, 인종 문제처럼 피해와 가해 여부가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여성 조지 플로이드’는 매일 발생하지만, 보고되지 않는다. 이에 대응하는 여성주의 세력도 소위 ‘성인지 감수성(여성주의 의식)’과 여성학적 의견이 일치를 보는 것도 아니다. 여성주의자 사이의 이견이 활발한 논쟁으로 발전할수록, 남성 개인도 사회도 성숙해지지만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성교육 교과서와 아기 지난달 여성가족부는 덴마크 작가 페르 홀름 크누센이 쓴 그림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나다움 어린이 책’으로 선정했다. 삽화의 구체성 때문인지, “시기상조” “포르노 같다” “자연스럽다” “어린이 성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 “동성애 조장” “조기 성애화 걱정” 등 논란이 일었다. 이에 여가부는 일부 초등학교에 보급한 책을 회수했다. 한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블랙리스트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성을 둘러싼 이해(利害)와 이해(理解)의 복잡한 단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