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최신기사
-
경제직필 바이든 정부에 거는 기대 저명한 경제학자 로드릭은 국제경제 체제가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한다고 보았다. 하나는 국민주권, 둘은 대중민주주의(노동 보호), 셋은 경제통합. 그런데 이 셋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서유럽은 대중민주주의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주권과 경제통합을 이룩한 체제로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국민주권과 대중민주주의를 지켰지만 경제통합은 19세기 말보다 못한 상태로 내버려두었다. 또한 1980년대 이후 성립했던 신자유주의 체제는 경제통합을 강화했지만 대중민주주의를 희생시켰다. 자유무역을 위해 경쟁력을 잃은 산업의 노동에 일방적 고통을 부과하고, 열린 자본시장을 위해 경제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실업을 심화시키는 것이 국제 표준이 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21세기에 들어와 보호무역주의와 민족주의가 강화된 것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하고 있다.
-
정동칼럼 국제 규범 파괴하는 ‘무역의 정치화’ 미래 예측은 언제나 난감한 일이지만 요즘 들어 세계 경제의 향방을 가늠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경제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던 경제학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세계 경제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경제의 울타리를 벗어나 정치에 따라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헌법적 관행과 전후 형성된 세계 무역 질서의 경계를 넘어서서 무역정책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었던 정경 분리의 원칙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경제정책의 정치화는 경제정책이 포퓰리즘에 포획될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합리와 타협이라는 균형추 대신 보복의 역학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 전쟁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더구나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트럼프식의 정치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려 경제 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
-
정동칼럼 임금논쟁 경제학계의 작은 논쟁이 주요 언론에서 대서특필되는 사건이 이달 초 발생했다. ‘서강학파’로 분류되는 한 교수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근거 중 하나로 사용되는 그래프의 확대해석을 비판하였고, 보수언론은 그 비판을 소득주도성장의 근간을 흔드는 주류 경제학계의 때늦은 대반격으로 보도하였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서 진영 간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이번 비판은 엄격한 통계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족보가 없는 좌파 이론’이라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감정적, 이데올로기적 비판과 차원을 달리한다. 또한 이러한 논쟁은 정책의 학문적 기반을 높일 수 있어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학계의 논쟁이 이데올로기로 재포장되어 과잉 단순화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
정동칼럼 경기 부양, 재정정책이 중심돼야 2년 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노무현 정부 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일이 여럿 발생했다. 북한이 북핵 위기를 고조시키면서 햇볕정책을 기조로 하는 신참 정부의 외교 능력을 시험대에 올려 놓는가 하면, 저금리 뒤끝에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면서 서민 중심 경제를 표방하는 정부를 당혹하게 했다. 그래도 거시경제의 흐름에 있어서는 문재인 정부 쪽이 운이 좋았다. 신용카드 대란 탓에 노무현 정부의 첫해 경제성장률은 당시 기준으로는 참혹한 2.8%를 기록한 반면, 문재인 정부는 예기치 못한 선진국 경기의 동반 상승에 힘입어 3.1%의 원년 성장률을 달성했다.
-
정동칼럼 3만달러 현대 정치는 국민소득 통계의 노예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나 총리의 인기가 국민소득 수치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 수장의 능력이 임기 중의 국민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뿐이다. 더구나 정부가 발표하는 국민소득과 국민이 느끼는 ‘삶의 질’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독일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우리의 70%에 불과하며, 뉴질랜드 국민은 미세먼지를 우리의 20%만 마시며 산다는 사실은 국민소득 통계에서 무시된다. 또한 국민총소득을 인구로 나누어서 계산한 1인당 국민소득은 소득분배가 변하는 경제에서 일반 국민의 생활 수준을 대표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80년 하위 50% 성인이 국민총소득의 20%를 가져갔으나 최근에는 13%밖에 못 가져 가고 있다. 그래서 성인 인구의 평균 소득은 같은 기간 60%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 50% 성인의 평균 소득은 정체 상태에 있다.
-
정동칼럼 미·중 무역 갈등의 해법 지난주 우리 언론이 북·미 정상회담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동안 많은 외신은 미·중 무역협상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이 동일한 규모의 관세 보복을 해오자 추가적으로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물리면서 관세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금년 3월1일까지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10%의 관세율은 25%로 자동 인상될 것이며 만일 중국이 또 보복한다면 중국산 수입품의 나머지 절반에도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통첩했다. 이에 중국이 저자세를 보이면서 본격적인 미·중 무역협상이 시작되었고 지난주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졌다는 트럼프의 발언과 함께 3월1일의 데드라인은 연기되었다. 미·중 무역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한숨 돌린 세계시장은 3월 말로 예상되고 있는 트럼프와 시진핑 간 무역 정상회담의 결과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
정동칼럼 정부의 가격통제, 만능열쇠인가? 우리는 시장에서 형성된 상품의 가격에 대해 너무 높거나 너무 낮다는 판단을 아주 쉽게 내린다. 그리고 이 잘못된 가격을 정부가 바로잡아줄 것을 요구한다. 특정 지역의 건물 임대료가 증가하면 임차인의 편에 서서 정부가 임대료를 억제해줄 것을 요구하고, 쌀 가격이 하락하면 공급자의 편에 서서 정부가 가격 지지 대책을 강구하도록 촉구한다.
-
정동칼럼 한국 산업정책의 길 산업정책은 정부가 산업구조를 변화시킬 목적으로 시행하는 정책이다. 농업 비중을 줄이고 제조업 비중을 늘리는 것과 같은 거시적 정책이 될 수도 있고,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의 특정 업종이나 특정 기업을 키우는 미시적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산업정책이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은 시장이 자원을 여러 산업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실패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장 실패가 없는데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은 없다. 산업정책의 유용성에 대한 경제학적 논쟁이 후진국의 경우에 집중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후진국에서는 재산권과 계약을 보장하는 제도가 미비하고 회계 관행과 정보의 흐름이 불투명하여 노동과 금융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들은 후진국에서조차 산업정책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무능이나 부패로 인해 정부가 잘못된 산업과 기업을 선택하고, 그래서 실패한 산업을 재정을 퍼부어 연명시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발달을 제약하는 수송, 에너지, 교육, 연구 등의 사회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넘어서서 특정 산업이나 특정 기업을 육성하는 적극적 산업정책에는 비판적이다.
-
정동칼럼 불황과 경제위기의 사이 10년 전 이맘때 한국 경제는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외환보유액은 1년 만에 600억달러가 감소했고, 환율은 급등하여 1달러가 1500원에 육박했다. 그리고 4%를 들락거리던 연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2%를 향하여 추락하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7% 성장 공약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지만, 환율 상승에 힘입어 수출경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세계금융위기에서 회복했다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2008년의 아찔한 경험은 우리 마음속에 1998년 IMF 경제위기의 트라우마를 재생시켰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도 세계 금융시장의 주변국에 불과하며 언제든 외부 충격으로 침몰할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놓았다.
-
정동칼럼 미신에 둘러싸인 성장률 옛사람들은 가뭄과 홍수가 발생하면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여 하늘이 내린 벌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임금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나에게 허물이 있는데 왜 백성에게 벌을 내리는가 하늘에 묻고 자신의 부덕을 고하는 제사를 지내야 했다. 수천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미신은 바뀌지 않았다. 강우량이 경제성장률로 바뀌었을 뿐. 사실 5년 집권의 대통령이 임기 중의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금융위기 중이 아니라면 재정을 통하여 미세한 성장률 등락을 유도할 수 있을 뿐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무역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외국 상황이 성장률의 단기 변동에 중대한 요인이 된다. 작년 한국 경제가 기대보다 높았던 3.1%의 성장을 한 것이 정부 덕택이 아니듯 금년 성장률이 2.7%로 내려가더라도 이를 정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물론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은 경제정책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차기나 차차기 대통령 때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
정동칼럼 성장친화적 소득재분배가 답이다 보수가 소득주도성장이란 단어에 본능적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보수 가치와 상극에 있는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보수의 성배인 경제성장을 달성한다고 하니. 게다가 성장이 형평한 소득분배를 가져온다고 그렇게 외쳤었는데 거꾸로 형평이 성장을 촉진시킨다고 하다니. 신성모독에 인과전도까지 가세한 꼴이다. 그래서 보수는 소득재분배가 성장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은 정통 경제학에는 족보도 없는 황당한 좌파 이론이라는 일부 학계와 언론의 주장에 쉽게 현혹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