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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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다양한 자연현상, 동일한 자연법칙서 비롯한다 “딱 하나로 정해진 중력법칙을 따라 행성 지구가 태양 주위를 오랜 시간 공전하는 동안, 정말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이토록 아름답고 경이로운 온갖 다양한 형태의 생명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는 이렇게 내가 옮겨 본 유명한 마지막 부분이 있다. 어쩔 수 없는 물리학자인 나는, 고정된 중력법칙과 생명의 다양성이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다윈의 통찰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현상의 다양성은 자연법칙의 단순한 동일성과 함께한다. 같아도 다를 수 있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로또, 투자가 아닌 단순 확률게임 우리나라 로또는 45개의 숫자 중 6개를 맞힌 사람이 1등에 당첨되는 방식이다. 지난주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은 모두 12명이었고 각자 22억원의 상금을 받게 되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정말 부럽다. 로또 한 장을 사면서 우리는 희망도 함께 산다. 당첨되면 부모님께 아파트를 사드릴지, 차를 바꿀지, 행복한 고민을 며칠 이어 할 수 있다. 그렇다면, 1등 당첨확률은 얼마나 될까?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물은 ‘창발’로 흐르고, 삶은 ‘창발’로 이어진다 우리 몸을 구성성분으로 나누고 또 나누면 결국 원자에 닿는다. 살아 있지 않은 원자들이 모여 살아 있음을 이룬다. 이처럼 구성요소가 갖고 있지 않은 속성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진 전체가 새롭게 보여줄 때, 이를 ‘창발’이라고 한다. 마치 지평선 아래에 있던 해가 떠올라 어느 순간 갑자기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미시적인 세상에서 볼 수 없던 것이 거시적 규모에서 새로이 드러난다는 의미로 ‘떠오름’이라고도 한다. 생명은 생명 없는 원자로부터 떠오른다. 생명뿐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대부분은 창발의 결과다. 액체인 물이나 고체인 얼음이나 같은 물 분자로 이루어지지만, 수많은 분자가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되면 흐르는 물이 되고 딱딱한 얼음이 된다. 물은 창발로 흐르고 삶은 창발로 이어진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생명의 장엄함을 보며 떠올린, ‘변이’의 힘 진화론을 ‘유전적 변이의 차별적 선택’으로 줄여 말할 수 있다. 변이를 가져 부모와 다른 자식 중 일부는 성공적으로 생존하여 같은 변이를 가진 손자손녀들을 만들어낸다. 살아남은 개체만 다음 세대의 후손을 남기니 무척 당연한 얘기다. 유전되지 않는 변이는 진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으니, ‘변이’ 앞 ‘유전적’도 중요하다. 다윈 진화론의 얼개를 이해하고 나면 이처럼 자명한 진실이 발견될 때까지 그처럼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오히려 더 신기하게 느껴진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물리학의 다음과 ‘다음 소희’는 지금이 정한다 길에서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잠깐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자니 아쉬워 친구가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자고 말한다. ‘다음’이 정확히 언제냐고 묻지는 말자. 갑자기 말 더듬으며 당황하는 친구 얼굴을 보게 될 테니. 그냥 “그래, 다음에 보자”가 적당하다. 우리는 시간의 순서로 일어나는 사건 중 현재를 기준으로 미래의 정해지지 않은 시점을 ‘다음’이라 할 때가 많다. 다음은 언제가 아니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우리 모두의 본성이 다르지 않다 나를 나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심(心)과 생(生)이 함께 있어 한자 성(性)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나무뿌리처럼 바탕(本)이 되는 본성(本性), 사람 위 하늘(天)로부터 부여받은 천성(天性)으로 적기도 한다. 대비되는 한자로 습(習)이 있다. 고대 갑골문에는 날 일(日)이 대신 적혀 있다 하니, 해 위로 높이 나는 새의 깃(羽) 모습에서 온 한자다. 나면서부터 나는 새는 없으니 어린 새가 날갯짓을 배워 익히는 것과 같은 것이 습(習)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재난, 예측은 못해도 대비할 수는 있다 코로나19, 산불과 지진, 그리고 전쟁. 여러 재난이 인류를 줄곧 찾아왔고 아무도 원치 않아도 또 다른 재난이 다시 닥칠 것이 분명하다. 거의 확실한 재난도, 규모와 시기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재난도 있다. 큰 지진과 미래 감염병을 미리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도, 기후 변화와 인구 감소는 예측이라 할 수도 없다. 이미 우리 곁에 온 겪기 시작한 미래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삶의 상수,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보편성은 있죠 종이에 연필과 컴퍼스로 원을 그리자. 원의 크기는 사람마다 제각각 달라도 원의 둘레를 재서 지름으로 나누면 누구나 똑같은 원주율 파이(π) 값을 얻는다. 길이를 재는 단위로 ㎝를 쓰든 우리나라의 전통 단위인 자를 쓰든 마찬가지다. 원의 지름이 변수라면 원주율 파이는 상수다. 박경미의 <수학 비타민>에 초코파이에 들어있는 초코의 함량을 구하는 재밌는 계산이 나온다. 초코의 함량비를 ‘초코/초코파이’의 분수로 적고 ‘초코’를 약분하면 1/파이가 된다. 원주율 파이의 값 3.141592...를 넣어 계산하면, 초코파이 안 초코의 함량비율이 약 32%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같은 계산을 확장해 애플파이에 들어있는 애플의 함량을 구하면 이것도 32%다. 전 세계 어디서나 A파이에 들어있는 A의 함량이 약 32%로 같은 이유는 지구 어디서나 파이(π)의 값이 똑같기 때문이다. 외계인도 파이를 먹는다면 외계인의 X파이에 들어있는 X의 함량도 32%다. 우주 어디서나 π 값이 같기 때문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전파라 좋은 것도, 전자파라 나쁜 것도 아니다 방송국 전파로 라디오를 들으며 전자파 유해성 기사를 읽는다. 음악을 듣게 해주는 전파는 고맙지만, 전자파는 왠지 피하고 싶다. 전파는 좋은 것이고, 전자파는 나쁜 것일까? 전자파는 표준 용어가 아니어서 전자기파로 부르는 것이 맞다. 전파도 좀 이상하다. 자연에는 전파(電波)와 자파(磁波)가 따로 없어, 둘은 서로를 만들어내며 전자기파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radio wave인 전파를 직역해 라디오파라고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전기만의 파동으로 오해하는 이는 없고, 이미 널리 쓰여 이제 와서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물리학은 자연을 객관적인 실체로 기술하고자 하지만. 어쨌든 인간은 인간의 언어로 자연을 기술한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 물리학의 간섭 내 일에 간섭하지 마! 무언가를 하려는데 다른 이가 막아설 때 우리가 하는 말이다. 우리 삶에서 간섭은 이처럼 방해나 훼방의 뜻을 가질 때가 많다. 하지만 물리학의 간섭은 이와 달라, 서로 만나 줄어드는 소멸(destructive)간섭도, 만나서 커지는 보강(constructive)간섭도 있다. 물리학의 간섭은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다. 빛과 소리를 포함한 모든 파동은 진행하며 서로 간섭한다. 긴 줄의 양 끝을 두 사람이 나눠 잡고 시간을 맞춰 동시에 위아래로 휙 움직이자. 양 끝에서 만들어진 두 파동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한가운데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줄은 위아래로 큰 폭으로 떨린다. 이처럼 결이 맞은 두 파동이 더해져 진폭이 늘어나는 것이 보강간섭이다. 두 파동이 만나 이루는 합성 파동의 진폭이 0이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줄 끝을 위아래로 휙 움직여 파동을 만드는 바로 그 순간, 다른 쪽 끝을 잡고 있는 사람은 거꾸로 줄을 아래위로 휙 움직여 파동을 만들 때 그렇다. 위아래가 뒤집힌 모습의 두 파동이 진행해 가운데에서 만나면 덧셈이 아닌 뺄셈이 되어 그곳에서 진폭이 0이 되는 소멸간섭이 일어난다. 결이 딱 맞는 둘이 만나면 늘어나지만, 결 맞지 않아 많이 다른 둘이 만나면 거꾸로 줄어든다.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가운데서 만난 두 파동은 잠깐의 만남과 간섭 후에 제 갈 길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파동은 만남을 쉬이 잊어, 시간이 지난 둘의 만남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빛의 여행엔 시간 낭비가 없다 빛은 출발한 곳에서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직선을 따라 직진한다. 평평한 거울에 닿은 빛은 입사한 각도와 같은 각도로 반사하고, 맑은 연못 바닥은 실제보다 얕아 보인다. 기하광학의 여러 성질을 고전 물리학은 딱 하나의 원리, 가장 시간이 짧은 경로를 따라 빛이 움직인다는 페르마(Fermat)의 최소 시간의 원리로 설명한다. 우주에서 가장 급히 움직이는 빛은, 어떤 경로로 움직일지 정할 때도 시간이 기준이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가장 빠른 속도로 간다. 빛의 여행에는 시간 낭비가 없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절대성을 반영하는 시공간의 상대성 앞에서 본 내 모습은 뒤에서 본 모습과 다르다. 나는 나라서 변하지 않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내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누가 어디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이 상대(相對)라면, 절대(絶對)는 보이는 겉모습은 달라도 늘 변함없이 유지되는 동일성이다. 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시공간의 상대성을 알려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관찰 결과의 상대성이 아니라 자연법칙의 절대성이다. 움직이는 시계가 더 느리게 간다는 시간의 상대성은, 등속으로 움직이는 누구에게나 빛의 속도가 같다는 더 근본적인 절대성의 결과다.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그 근간에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