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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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삶의 상수,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보편성은 있죠 종이에 연필과 컴퍼스로 원을 그리자. 원의 크기는 사람마다 제각각 달라도 원의 둘레를 재서 지름으로 나누면 누구나 똑같은 원주율 파이(π) 값을 얻는다. 길이를 재는 단위로 ㎝를 쓰든 우리나라의 전통 단위인 자를 쓰든 마찬가지다. 원의 지름이 변수라면 원주율 파이는 상수다. 박경미의 <수학 비타민>에 초코파이에 들어있는 초코의 함량을 구하는 재밌는 계산이 나온다. 초코의 함량비를 ‘초코/초코파이’의 분수로 적고 ‘초코’를 약분하면 1/파이가 된다. 원주율 파이의 값 3.141592...를 넣어 계산하면, 초코파이 안 초코의 함량비율이 약 32%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같은 계산을 확장해 애플파이에 들어있는 애플의 함량을 구하면 이것도 32%다. 전 세계 어디서나 A파이에 들어있는 A의 함량이 약 32%로 같은 이유는 지구 어디서나 파이(π)의 값이 똑같기 때문이다. 외계인도 파이를 먹는다면 외계인의 X파이에 들어있는 X의 함량도 32%다. 우주 어디서나 π 값이 같기 때문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전파라 좋은 것도, 전자파라 나쁜 것도 아니다 방송국 전파로 라디오를 들으며 전자파 유해성 기사를 읽는다. 음악을 듣게 해주는 전파는 고맙지만, 전자파는 왠지 피하고 싶다. 전파는 좋은 것이고, 전자파는 나쁜 것일까? 전자파는 표준 용어가 아니어서 전자기파로 부르는 것이 맞다. 전파도 좀 이상하다. 자연에는 전파(電波)와 자파(磁波)가 따로 없어, 둘은 서로를 만들어내며 전자기파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radio wave인 전파를 직역해 라디오파라고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전기만의 파동으로 오해하는 이는 없고, 이미 널리 쓰여 이제 와서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물리학은 자연을 객관적인 실체로 기술하고자 하지만. 어쨌든 인간은 인간의 언어로 자연을 기술한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 물리학의 간섭 내 일에 간섭하지 마! 무언가를 하려는데 다른 이가 막아설 때 우리가 하는 말이다. 우리 삶에서 간섭은 이처럼 방해나 훼방의 뜻을 가질 때가 많다. 하지만 물리학의 간섭은 이와 달라, 서로 만나 줄어드는 소멸(destructive)간섭도, 만나서 커지는 보강(constructive)간섭도 있다. 물리학의 간섭은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다. 빛과 소리를 포함한 모든 파동은 진행하며 서로 간섭한다. 긴 줄의 양 끝을 두 사람이 나눠 잡고 시간을 맞춰 동시에 위아래로 휙 움직이자. 양 끝에서 만들어진 두 파동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한가운데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줄은 위아래로 큰 폭으로 떨린다. 이처럼 결이 맞은 두 파동이 더해져 진폭이 늘어나는 것이 보강간섭이다. 두 파동이 만나 이루는 합성 파동의 진폭이 0이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줄 끝을 위아래로 휙 움직여 파동을 만드는 바로 그 순간, 다른 쪽 끝을 잡고 있는 사람은 거꾸로 줄을 아래위로 휙 움직여 파동을 만들 때 그렇다. 위아래가 뒤집힌 모습의 두 파동이 진행해 가운데에서 만나면 덧셈이 아닌 뺄셈이 되어 그곳에서 진폭이 0이 되는 소멸간섭이 일어난다. 결이 딱 맞는 둘이 만나면 늘어나지만, 결 맞지 않아 많이 다른 둘이 만나면 거꾸로 줄어든다.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가운데서 만난 두 파동은 잠깐의 만남과 간섭 후에 제 갈 길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파동은 만남을 쉬이 잊어, 시간이 지난 둘의 만남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빛의 여행엔 시간 낭비가 없다 빛은 출발한 곳에서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직선을 따라 직진한다. 평평한 거울에 닿은 빛은 입사한 각도와 같은 각도로 반사하고, 맑은 연못 바닥은 실제보다 얕아 보인다. 기하광학의 여러 성질을 고전 물리학은 딱 하나의 원리, 가장 시간이 짧은 경로를 따라 빛이 움직인다는 페르마(Fermat)의 최소 시간의 원리로 설명한다. 우주에서 가장 급히 움직이는 빛은, 어떤 경로로 움직일지 정할 때도 시간이 기준이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가장 빠른 속도로 간다. 빛의 여행에는 시간 낭비가 없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절대성을 반영하는 시공간의 상대성 앞에서 본 내 모습은 뒤에서 본 모습과 다르다. 나는 나라서 변하지 않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내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누가 어디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이 상대(相對)라면, 절대(絶對)는 보이는 겉모습은 달라도 늘 변함없이 유지되는 동일성이다. 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시공간의 상대성을 알려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관찰 결과의 상대성이 아니라 자연법칙의 절대성이다. 움직이는 시계가 더 느리게 간다는 시간의 상대성은, 등속으로 움직이는 누구에게나 빛의 속도가 같다는 더 근본적인 절대성의 결과다.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그 근간에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이해할 수 있든 없든 복잡계는 복잡계다 우리 사는 세상은 정말 복잡해 보인다. 사전에는 ‘복잡하다’의 풀이가 ‘일이나 감정 따위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로 적혀 있다. 서로 다른 두 측면이 ‘복잡함’의 의미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는 것은 대상의 속성인 한편,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것은 인식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복잡함의 의미를 대상과 인식의 속성으로 나눠 생각해보면 네 조합이 가능하다. 대상이 단순해서 이해도 단순한 경우, 대상은 단순한데 보여주는 현상은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경우, 대상은 여러 가지가 얽혀 있어 복잡한데 그래도 단순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대상도 인식도 모두 복잡한 경우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우리는 ‘원자들의 모임’만은 아니다 재앙이 닥쳐 대부분의 인간이 사라지기 바로 직전, 후손을 위해 딱 하나의 과학 이론을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일까?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서 리처드 파인만은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원자론을 후손에 남길 딱 하나의 이론으로 꼽았다. 물리학은 일석이조를 훌쩍 넘어 일석백조를 꿈꾼다. 하나로 여럿을 설명할 수 있을 때, 자연의 다양한 현상을 적은 수의 단순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물리학자는 등골이 오싹한 경이감을 느낀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고, 원자론의 과학을 발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떠올리면, 파인만의 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지는 인력이 두 원자 사이에 작용하지만, 거리가 아주 짧아지면 서로를 미는 반발력이 작용한다는 것도 파인만의 책에 담겨 있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 사이에는 거리에 따라 변하는 밀고 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만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세상의 ‘마찰’ 보며, 떠올리는 미래의 폭주 자연에는 딱 네 종류의 상호작용이 있다. 해 주위를 도는 지구의 운동은 중력이 만들고, 겨울날 차문 손잡이의 짜릿함은 전자기력 때문이다. 서로를 강하게 밀치는 전자기력을 이기고 양성자 여럿이 오밀조밀 원자핵 안에 모여 있을 수 있는 것은 강한 핵력 덕분이다. 강한 핵력이 없다면 원자핵도, 원자도, 세상의 온갖 물질도, 그리고 나도 없다. 한편, 약한 핵력은 원자핵을 다른 원자핵으로 바꾸는 과정에 관여한다. 수소가 만나 헬륨으로 바뀌는 태양의 핵융합도 약한 핵력으로 가능하다. 초여름 따가운 햇볕은 약한 핵력이 만든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경험, 겪고 나면 달라진다 듣고 읽어 알기는 어려워도 직접 겪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겪은 과거의 경험은 머릿속 어딘가에 각인되어 나를 바꾼다. 우리 각자뿐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도 그렇다. 함께 겪은 모두의 경험은 우리 사회를 바꾼다. 1980년 광주, 2014년 세월호 등이 그렇다. 겪고 나서 마주한 세상은 겪기 전과 달라진다. 여럿이 공유한 시공간의 한곳에서 함께 겪은 것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빚어낸다. 나나 우리나 겪고 나면 달라진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질량 작을수록 쉽게 움직이고 쉽게 멈춘다 같은 힘으로 밀어도 쉽게 움직이는 물체와 잘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있다. 커다란 바위는 아무리 밀어도 꿈쩍하지 않지만, 크기가 작은 바위는 조금은 움직일 수 있고, 이보다 더 작은 돌멩이는 슬쩍 밀어도 쉬이 움직인다. 힘으로 밀 때 물체가 안 움직이려고 뻗대는 정도가 물리학의 질량이다. 물질의 양이 많으면 질량도 크다. 작은 당구공이 커다란 볼링공보다 쉽게 움직이는 이유다. 질량이 큰 물체가 가만히 정지해 있으면 밀어도 잘 움직이지 않고,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기도 어렵다. 멈춰 있다 움직이거나, 움직이다 멈추거나, 물체의 운동 상태가 변한다. 물체가 현재의 운동 상태를 지속하려는 경향을 관성이라고 한다. 질량이 바로 관성의 척도다. 질량이 클수록 관성이 크고, 운동 상태의 변화에 더 강하게 저항한다. 질량이 커 처음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 나중에 멈추기도 어렵고, 쉽게 움직이는 것이 쉽게 멈춘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진동수가 같아야 공명도 크다 아이 그네를 밀어주던 때가 생각난다. 그네는 앞으로 갔다가 내가 있는 뒤쪽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앞으로 막 움직일 때 그네를 미는 것이 좋다. 이렇게 반복하면 그네는 점점 더 높이 오르고 아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이보다 내가 더 즐거웠던 시간이다. 이렇게 그네를 밀어주는 것은 물리학의 ‘공명’과 관계가 있다. 함께 울린다는 뜻이어서 우리말로 ‘껴울림’이라 한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물리학의 단열, 세상 속 단절 어릴 때 사용한 유리 보온병을 기억한다. 안쪽 유리병을 바깥 유리병이 둘러싸고 있는데 둘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둘 사이의 안쪽 면은 거울처럼 도금해놓기도 했다. 바닥에 떨어지면 잘 깨져 낭패를 본 적도 많았다. 왜 유리 보온병은 잘 깨졌을까? 얼굴을 비춰 볼 수도 없는데 왜 거울처럼 도금을 했을까? 온도가 다른 두 물체를 딱 붙여 놓으면 온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열이 전달된다. 높은 쪽의 온도는 내려가고 낮은 쪽의 온도는 올라간다. 결국 둘의 온도가 같아지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온도가 다른 두 물체를 붙여 놓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아니, 온도가 더 높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