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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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증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해주신 재밌는 얘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한 일꾼이 하루 품삯을 묻는 만석꾼 고용인에게 첫날 딱 쌀알 한 톨을 달라고 했다. 이튿날에는 하루 전 품삯의 두 배인 쌀알 두 톨, 다음날은 마찬가지로 전날 품삯의 두 배인 네 톨. 몇 번 손가락을 꼽아보던 만석꾼은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동의한다. 일주일 지나도 하루 품삯으로 채 한 숟가락에도 못 미치는 쌀알을 달라고 하니, 아주 멍청한 일꾼이라고 생각하면서.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예측 가만히 손에서 놓은 돌멩이는 아래로 떨어져 바닥에 닿는다. 정말?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수백만 번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관찰했다고 해서,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바로 이 돌멩이도 잠시 뒤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물론 이 돌멩이는 아래로 떨어진다. 위로 거꾸로 솟는 것을 본다면 정말 내일 아침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아래로 떨어지는 돌멩이는, 동쪽에서 뜨는 아침 해와 마찬가지의 확실성을 가진다. 이러한 확신의 근거는 무얼까?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법칙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밝혀 나아갈 방향을 큰 틀에서 제시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당위의 가치가 담긴, 사람이 만든 법칙이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법’이다. 약하고 강한 징벌을 받을 수 있지만, 어쨌든 어기는 것이 가능은 하다. 어기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면 우리는 법을 만들지 않는다. 자동차의 공중 비행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 이유가 없다. 법이 필요한 이유는 어길 수 있기 때문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허공 1977년 미국에서 발사한 보이저 1호는 지금도 저 먼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1990년 명왕성 정도의 거리를 지날 때, 보이저 1호는 카메라를 돌려 우리 지구가 담긴 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냈다. 사진 속 지구는 정말 작아 보인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이 사진에서 얻은 영감과 통찰을 담아 <창백한 푸른 점>을 출판하기도 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을 저 작은 푸른 점 위에서, 때로는 복작복작 싸우고 미워하고, 때로는 서로 돕고 사랑하며, 우리 모두는 짧은 삶을 산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무한 세상에 100보다 더 큰 수는 없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주변을 둘러봐도 100보다 더 많은 수가 모여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덧셈을 배우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100에 100을 더하면 더 큰 수인 200이 된다. 아주 큰 수에 아주 큰 수를 더하면 아주 더 큰 수를 얻는다. 그럼, 세상에 가장 큰 수가 있을까? 가장 큰 수는 없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보일 수 있다. 누가 A가 가장 큰 수라고 주장하면 A+1은 A보다 더 크다고 얘기해주면 된다. A가 얼마여도 우리는 항상 A보다 더 큰 수를 생각해낼 수 있다. 가장 큰 수를 종이에 적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수를 향해 갈 수는 있다. 1에서 시작해 점점 1씩 더해 나가면 우리는 무한(無限)을 향해 나아간다. 무한을 향해 한 발씩 전진할 수는 있어도, 무한에 도착해 깃발을 꽂을 수는 없다. 무한은 아무리 다가서도 늘 한참 저 앞에 보이는 무지개를 닮았다. 저 앞에서 우리에게 손짓해 한 발씩 다가설 수는 있어도, 닿을 수는 없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사람과 사람 사이, 작용·반작용의 법칙 사과는 아래로 떨어진다. 지구의 중력이 아래 방향으로 사과를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따른다. 지구가 사과를 아래로 당길 때, 사과도 지구를 잡아당긴다. 그런데 왜 지구가 안 떨어지고 사과가 떨어질까? 이 간단한 물리학 질문에 지구가 사과를 당기는 힘이 사과가 지구를 당기는 힘보다 더 커서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은 다르다. 뉴턴의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사과가 지구를 당기는 힘은 지구가 사과를 당기는 힘과 정확히 같다. 물론 방향은 반대다. 지구가 사과를 아래로 당길 때, 사과는 지구를 위로 당긴다. 똑같은 크기의 힘이 사과와 지구, 각각에 작용한다. 그런데 왜 사과는 아래로 떨어지지만, 지구는 위로 움직이지 않을까?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대칭 독자에게 묻는 질문이다. 매일 거울에서 보는 얼굴은 진짜 내 얼굴일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다른 이가 보는 내 모습과 정확히 같은 걸까? 매일 거울을 보면서 머리 모양과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모두에게 이 질문은 무척 엉뚱하게 들리리라. 그리고 이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라고 답한 분이 많으리라. ‘삑!’, 정답이 아니다. 매일 거울을 보며 살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거울은 늘 좌우가 뒤바뀐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른쪽 눈 밑 작은 점이 거울에서는 왼쪽 눈 밑에 보인다. 왼팔에 시계를 찼는데 거울 속의 나는 오른팔에 시계를 차고 있다. 매일 거울을 보지만, 난 단 한 번도 내 참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익숙하다고 진실은 아니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권력장을 바꾸는 ‘무거운 존재’ 질량이 있는 모든 것은 아래로 떨어진다. 지구 중력장에서 질량에 비례하는 크기의 힘을 받는다. 이 힘이 바로 무게다. 질량과 무게는 물리학에서는 명확히 의미를 나눠 쓰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무게는 질량에 중력가속도를 곱한 것이라서, “내 몸무게는 60㎏”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내 몸무게는 60㎏중” 또는 “내 몸의 질량은 60㎏”이라 하는 것이 맞다. 우리가 계속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무게와 질량 사이의 비례상수인 중력가속도는 어디서나 거의 일정하니, 오해의 소지는 별로 없다. 오류를 교정해 바꿔 불러야 한다고 우길 생각도 없다. 과학의 정량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가 무게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이 많다. 어떤 이의 입은 무겁다 하고, 팍팍하고 힘든 일상을 삶의 무게라고 말한다. 한 작가는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 했고, 요즘 우리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필자는 마음이 무겁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빈칸 올해는 150주년을 기념하는, 유엔이 지정한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의 해’다. 1869년 멘델레예프는 당시 알려져 있던 60여개의 원소를 원자량과 화학적 성질을 이용해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했다. 그가 만든 주기율표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표 안에 놓인 ‘빈칸’에 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표는 그 빈칸에 더 찾을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아직 모름’을 인정하지 않는 빈칸 없는 표는 미완의 표를 완결된 표로 보이게 하는 착시를 만든다. 멘델레예프가 남긴 빈칸은 이후 이곳에 들어맞는 화학원소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원자번호 21번 스칸듐, 31번 갈륨, 32번 저마늄, 43번 테크네튬 등이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성공을 위한 최적화 문제 누구나 젊어서 성공한 삶을 꿈꾼다. ‘성공’이 뭐냐 물으면 사람마다 답이 제각각이다. 돈이 많아야, 지위가 높아야, 훌륭한 작품을 남겨야, 자신의 분야에서 큰 명성을 얻어야 성공이라 할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 또는 가정의 화목이 바로 성공한 삶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높은 수익이 성공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고, 직원의 행복을 기준으로 성공을 잴 수도 있고,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가 성공한 기업의 기준일 수도 있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상전이’ 과정을 겪고 있는 평화 평화가 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을 둘러싼 국제관계가 급물살을 탔다. 북·미 정상회담도 베트남에서 다시 열렸다. 잠깐 전쟁을 멈추자는 약속에 불과한 정전협정은,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으로 이어져야 하고, 전쟁도 끝났으니 이제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는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다. 하지만 우리는 정전체제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65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생명의 필요조건 ‘열림’ 열린 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온다. 빈틈없이 문을 꼭 닫아야 안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을 막을 수 있다. 물리학에서도 열림과 닫힘, 안과 밖이 중요하다. 자연현상을 설명할 때 물리학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를 긋는 일이다. 경계의 안을 계 또는 시스템이라 하고, 그 밖은 환경 또는 주위라 한다. 어디까지를 계로 할지, 어디서부터 계를 둘러싼 환경으로 할지에 따라 문제의 성격이 달라지고, 물리학의 적용방식도 달라진다. 갈릴레오가 설명한 자유낙하운동에서 물체의 속도는 시간에 비례해 늘어난다. 이 경우 물체 주변의 공기는 계가 아닌 환경이다. 주변 공기까지 포함한 계를 생각하면 속도 계산을 달리 해야 하고, 지구의 자전도 넣으면 계산은 또 달라진다.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해야 한다. 하지만 더 단순하면 안된다”는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여기서 “모든 것”을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또는 모형으로 생각하면, 결국 아인슈타인이 한 말은, 계와 환경을 가르는 경계긋기에 대한 조언이다. 너무 넓은 영역을 둘러싸도록 경계를 설정하면 문제의 이해나 해결이 어려워진다. 마치, 우리 은하의 모든 원자와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역학 문제를 풀어 1m 높이에서 떨어뜨린 돌멩이의 자유낙하를 설명하려는 시도처럼 말이다. 경계를 너무 작게 그리면, 문제는 정말 쉬워지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말도 안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 마치, 중력조차도 계의 밖에 있어,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돌멩이처럼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은 바로, 단순성을 추구하더라도,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잃을 정도로 과도한 단순화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치우친 경계(境界)긋기에 대한 경계(警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