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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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밥 먹듯 운동하자 호젓한 산길에서 집채만 한 개를 만나면 우리 몸은 어떻게 반응할까. 도망칠 태세를 갖추거나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뭐가 있는지 눈을 부라리며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은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기에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콩팥 위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것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서둘러 근육에 혈액을 보내야 한다. 당장이라도 수축과 이완을 거듭할 근육에 산소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엔 당질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스트레스 반응 체계를 가동해 유기체의 적응 능력이 향상되는 일은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동물에서 일관되게 발견된다.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30분쯤 뒤에 최고치에 도달한 호르몬 수치는 1시간 정도가 지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물론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진 후에 그렇다는 말이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잠도 자고 살도 빼자 요즘처럼 밤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자주 잠에서 깬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멍하니 어둠을 응시할 때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고 일어나면 키가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해부학 논문을 보면 침대에 들기 전보다 아침에 15㎜ 정도 더 크다. 우리 몸 중심인 척추가 중력을 덜 받아서 그럴 것이라 짐작하지만 사실 밤에 무방비로 누워서 자는 동물은 인간 말고는 없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저 바다의 기억 입담 좋은 저술가 빌 브라이슨은 책 <바디>에서 인간의 몸이 59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중 수소와 산소, 탄소, 질소, 칼슘과 인 등 6가지가 전체 원소의 99%를 점유한다. 무게로만 따지면 산소가 60%를 넘는다. 자연계에서 가장 가벼운 축에 속하는 산소와 수소 기체가 만나 무거운 액체인 물을 만들고 그 물이 우리 몸의 60% 넘게 차지하기 때문에 숫자로만 따지면 수소가 압도적으로 많다. 미량 원소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수소가 3억7500만개라고 치면 철은 2680개, 코발트는 1개, 요오드는 14개 존재한다. 하지만 숫자가 적다고 해서 이들 미량 원소를 무시할 수는 없다. 실제 인간의 체중을 고려하면 요오드의 양은 약 20㎎에 이르고 수도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굶어야 커지는 것 살이 찌는 것과 늙는 일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 있다. 지난 5월 나고야 의과대학 나카무라 박사 연구팀은 나이가 들면서 시상하부 신경의 섬모 길이가 짧아지고 살이 찔 가능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세포 대사’에 발표했다. 신경세포 표면에 곶처럼 튀어나온 섬모는 길이가 줄면 포만 신호가 와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 섬모가 짧아지면서 포만 신호 수용체가 정박할 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험에 따르면 위와 장에서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도 이 수용체 단백질이 없는 쥐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쉽게 심각한 비만에 이른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남녀의 다름을 아는 일 ‘두발잡이’ 인간의 진화적 본성은 걷는 쪽일까, 아니면 뛰는 쪽일까? 잘 모른다. 그러나 그 어느 포유동물보다 훌륭한 냉장용 땀샘을 진화시킨 인간은 오래 걸을 수 있다. 과거 시험에 응시하고자 길을 나선 선비는 하루 100리를 걸었다고 한다. 약 40㎞다. 현대 인간은 많은 시간을 앉아 지낸다. 그러다 불현듯 한 치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러닝머신 위에서 쳇바퀴 돌 듯 뛰면서 땀을 흘리고 만족스러워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심장 늙은이, 간 늙은이 ‘사람은 세 번 늙는다.’ 인터넷에서 본 2019년 기사이다. “언제?”라고 물으며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매혹적인 제목이다. 스탠퍼드 대학 위스-코레이 연구진은 그 나이를 명토 박듯 말했다. 궁금한가? 34, 60세 그리고 78세이다. 이 숫자를 두고 곰곰이 생각하면 질병으로 보든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으로 보든 노화는 단순히 나이에 따른 직선형 변화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해보다 34세 즈음에 많이 늙는다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도대체 이 숫자들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공룡 발아래 잠든 숲속의 공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지칭개와 꽃다지가 일제히 솟구치는 걸 보면 말이다. 봄날 낮 시간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반대로 밤은 짧아진다. 자고 깨는 시간을 관장하는 일주기 시계가 빛의 장단에 맞춰졌다면 인간은 겨울보다 여름에 좀 적게 자도 괜찮을까? 불규칙한 수면 유형을 보인 환자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답은 ‘그렇다’이다. 독일 베를린 수면클리닉 연구 책임자인 디터 쿤츠는 188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수면 시간을 조사했다. 참가자들은 6월보다 12월에 잠을 한 시간 더 잤다. 먹고 싸고 자는 인간의 여러 생리 현상이 어둠과 빛 리듬에 따라 진화해, 겨울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이 어둑하면 우리 뇌는 ‘어두워서 할 일이 없으니 굳이 이불 밖으로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면 문제가 없는 사람도 봄이 한창인 4, 5월에 적게 자고 겨울에 30분 넘게 더 자는 걸 보면 수면 시간에 계절성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자작나무의 신비한 ‘겨울나기 전략’ 하늘로 올라간 무게 있는 것들은 으레 아래로 내려오게 마련이다. 바닷물, 강물도 마찬가지라서 지난날 대기로 올라간 수증기가 올겨울 자주 눈으로 비로 찾아온다. 겨울 평균 기온은 올랐다지만 오히려 추운 날은 더 춥다. 삼한사온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기후를 예측하기는 어려워졌다. 반짝 기온이 올라 개나리꽃이 피었대도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성급하게 기지개를 켜면 안 된다. 야생 동물은 촘촘한 털 매무새를 추스르며 추위를 버티지만 밑동에 켜켜이 눈 쌓인 나무들은 어떻게 겨울을 나는 것일까?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술 취한 장 미생물 망년회 대신 송년회라는 말이 대세다. 이름이야 어찌 됐든 그 자리에 술이 빠지는 일은 드물다. 술은 ‘위(胃)에서 천천히 흡수되고 소장에서 빠르게 흡수되어 몸 전체에 널리 분포하는’ 수용성 화합물이다. 생리학자들은 빈속에 농도가 20~30%인 술을 마실 때 알코올의 흡수가 가장 빠르다고 말한다. 술을 마시고 약 1시간 뒤면 혈중 알코올의 양이 최댓값에 이른다. 그다음에는 그 양이 일정하게 줄어든다. 간(肝)에서 알코올을 꾸준히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혈액에서 전부 빠져나가기 전까지 알코올이 온몸에 퍼져 있다. 화학적으로 알코올은 물과 비슷하기에 수용성이 떨어지는 지방 조직에는 덜 쌓인다. 체중에 맞게 양을 조정하더라도 피하조직이 풍부한 여성은 상대적으로 혈액과 조직에 알코올 농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태반을 지나 태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탓에 여성은 술 마시는 일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김치를 먹는 뜻은 촌수로는 멀지만 사는 곳은 지척이라 집에 자주 들렀던 형은 복성스럽게 밥 먹기로 소문이 났었다. 보리 섞인 고봉밥을 젓가락으로 꾹꾹 누른 다음 길게 자른 김치를 똬리 틀 듯 얹고 아삭 소리 나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구경 삼아 보던 어머니는 숭늉 한 그릇 슬며시 마루턱에 가져다 두곤 했다. 소비량은 줄었다지만 여전히 밥상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김치에는 어떤 영양소가 들었을까?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생명의 무게 가을걷이가 끝난 휑한 논, 격자 꼴 따옴표로 남은 벼 그루터기에 연한 새순이 돋았다. 이울어 가는 가을볕이 뿜어내는 빛 알갱이는 지난 푸르름을 되살리기에는 충분치 않지만 짝짓기에 바쁜 하루살이 날갯짓을 북돋우기엔 모자람이 없는지 양지바른 곳에선 날것들이 사뭇 분주하다. 하루살이의 한 생애라야 고작 며칠이고 일년생 벼도 두 계절을 넘기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삶의 무게가 30년이 한 세대인 인간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처럼 벼나 하루살이에게도 부모가 있고 그 부모의 부모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그렇다. 그 부모의 위쪽 끝은 대체 어디에 머물게 될까? 정확한 시기나 모습, 그 역사는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생명의 대물림은 그 어떤 생명체에서도 단 한 번의 끊김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된다. 슬슬 과거로 걸음을 떼보자.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제2의 뇌, 그 은밀한 독자성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는 변비로 죽었다. 불과 42세 나이에 엘비스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자택의 가장 넓고 호화로운 화장실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부검해본 결과 그의 대장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발생 과정에서 대장의 일부 혹은 전부에 신경세포가 도달하지 않는 히르슈슈프룽병(Hirschspsrung’s disease) 환자는 대변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대장 연동운동에 장애가 생긴 탓이다. 대장 끄트머리에 멈춰선 대변에서 물기가 빠지면서 곧바로 변비로 이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