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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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우는 아기 재우기 태어나서 나는 석 달 열흘을 꼬박 울었다 한다. 물론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젖을 물려도, 기저귀가 젖지 않았는데도 자지러지게 울었다고 한다. 어머니, 아버지가 번갈아 업어 재우던 어느 날 울음을 뚝 그쳤는데 그게 마침 100일째였다는 것이다. 살아생전 어머니는 상가에 다녀온 일꾼이 괭이 가지러 금줄을 제치고 집 안에 들어온 탓에 부정을 탔노라고 굳게 믿었다. 젖먹이가 우는 일이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5~19%에 달하는 영아는 그 울음이 좀 별나다. 3주에서 석 달에 걸쳐 일주일에 3일 이상 하루 3시간 넘게 울기 때문이다. 소아과 의사들은 이들이 영아 산통 혹은 배앓이(baby colic)를 한다고 진단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부모 모습이 내 얼굴에 비친다 두어달 전 초여름 삼촌 문상 갔을 때 일이다. 먼저 와 계시던 이모가 내가 가까이 오길 기다려 대뜸 “형부가 들어오시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고 운을 떼었다. 나도 외할머니를 소환하며 가볍게 응수했지만 나이 들어가는 처남이나 처고모 얼굴에서 장인어른의 모습을 찾아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아마 이런 경험은 내 또래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으리라. 스스로는 잘 느끼지 못하나 가족 이력을 잘 아는 사람의 인식 체계에 쉽사리 포착되는 이런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원하지 않았지만 이웃이 돼버린 모기 풀은 인류의 친구다. 양과 사슴 같은 초식동물의 먹이도 풀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본격적으로 인간 집단에 들어온 밀과 귀리도 역시 풀의 한 종류다. 태양을 향해 높이 오른 나무와 달리 빠르게 멀리 퍼지는 습성을 지닌 풀은 거침없이 땅을 파헤치는 인간을 특히 좋아하고 따른다. 자못 비장한 차전자(車前子)라는 별명이 있는 질경이는 사람이나 소가 끄는 수레바퀴에 깔릴 때 씨앗이 튀어 나가 새싹을 틔운다. 놀랍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땀은 송골송골 땀의 계절이다. 점심 먹을 때마다 손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에어컨 없던 시절에는 바람 잘 통하는 나무 그늘을 찾거나 땀띠를 추스르려 산밑 바위틈 샘골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일설에 따르면 땀띠는 땀 두드러기에서 ‘땀때기’를 거쳐 온 말이다. 두드러기라니 일종의 피부 질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땀 때문에 두드러기 비슷한 증상이 생긴다니 그렇다면 땀에 어떤 독성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불멸의 꿈 혈액 도핑을 아는가? 이 행위는 승리를 바라는 운동선수가 자신의 혈관에서 일정량의 피를 뽑았다가 몇 주 뒤 수혈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줄어든 혈구를 벌충하고자 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가 부지런히 소임을 다하면 혈구의 수는 머잖아 정상으로 회복된다. 이때 자가 수혈로 적혈구 수가 늘면 운동 능력이 최대 20%까지 향상될 수 있다고 한다. 사이클 영웅 루이 암스트롱도 이런 수법을 썼다. 지금은 시합 전후 적혈구 수를 분석함으로써 이런 불법적인 일도 여지없이 적발해낸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우리 엄마 젖을 다오 북한강 중간께의 청평에는 안전 유원지가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처음 만나는 집은, 낮에는 음식점이고 밤에는 사이키 조명 아래 춤을 출 만한 공간도 있었다. 그러니 종업원 중에는 덩치 큰 친구도 있었는데, 듣기로는 씨름 선수 출신이라고 했다. 오가는 손조차 뜸한, 비 오는 어느 날 나는 그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참외 줄랴 참외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애잔한 기타 선율과 함께 오래전에 들었던 낮은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지표면의 유일한 생산자, 잎 봄인가 싶어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사위가 어둡다. 나무 잔가지 사이의 빈틈이 하루가 다르게 채워진다. 그에 따라 화려한 사치재인 꽃은 사위어 가거나 어둠 속에 잠긴다. 한 이십 년도 더 된 어느 봄날, 성산동 굴다리 지나 수색, 화전을 향해 가다 서오릉 표지판을 보고 샛길로 접어들어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서 나는 내 인생의 또 다른 봄을 보았다. 봄은 채워짐이었다. 야트막한 산에는 가을이면 떨어질 운명인 이파리들이 그야말로 만개한 상태였다. 새로 돋은 활엽수 이파리들은 꿈처럼 눈부셨다. 그 뒤로 나의 봄은 늘 저리 어둡고 밝았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무심한 질소 기다림은 인간의 일이고 행성의 움직임은 우주의 일이라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계절은 바뀔 게고 그렇게 봄은 왔다. 봄이 오니 서둘러 산수유가 노랗게 꽃을 틔웠고 벚꽃도 곧 필 것이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뜻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그 소임을 다한 꽃이 지면 열매를 키우는 몫은 잎이 전담한다. 하늘 높이 태양이 떠오르면 식물은 일제히 기공(氣孔)을 열고 이산화탄소를 흠뻑 들이켠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액체로 환골탈태한 뒤 설탕으로 흐르다 저장 기관에서 고체로 안착한다. 쌀알이나 옥수수, 알밤이 그런 것이다. 이런 모든 일은 빠르고 실수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재료와 에너지 모두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너무 느리면 전자 전달계 고압선을 흐르는 전자가 밖으로 튀어 나가거나 에너지가 헛되이 소모될 수 있는 것이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당신의 간은 밤새 안녕하십니까 간은 붉다. 들고 나는 피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쉴 때 간은 우리 몸에 필요한 전체 산소의 약 20%를 쓴다. 유난히 붉은 색조를 띠는 기관은 산소와 피의 요구량이 크다고 보면 대체로 틀림이 없다. 콩팥과 심장도 그런 곳이다. 이들 두 기관과 달리 간에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혈관이 연결된다. 산소를 듬뿍 담고 심장에서 출발한 신선한 피는 간에 들어오는 피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혈액은 소장과 대장에서 온다. 이렇듯 우리 몸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소화기관에서 소화하고 흡수한 영양소가 일차로 결집하는 곳이 간이다. 그렇기에 간은 몸의 안과 밖을 잇는 경계에 선 관문이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밤 긴 겨울엔 나우 자자 소나무는 양지바른 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소나무가 이 추운 겨울날 푸른 잎을 매달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이다. 동지 지나 아직 짧은 햇살일망정 광합성에 쓰려는 사철 푸른 나무의 시도가 사뭇 애처롭다. 하지만 광합성 작업에는 햇볕 말고 물도 필요하므로 땅 아래 소나무 뿌리로 흐르는 물이 얼어 있으면 안 된다. 누런 솔가리로 아랫도리를 감싼 소나무는 태양으로부터 광속으로 8분이나 걸려 찾아온 빛 에너지를 애면글면 보존한다. 이제 소나무 잎 안에 든 엽록체는 이산화탄소를 고정하여 적은 양이나마 포도당을 만들 수 있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지구에는 배설기관이 없다 바다는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원시 지구 안 마그마에서 분출한 수증기가 지표면 온도 하강에 따라 비로 떨어져 내리며 바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생명과 상상력의 원천인 바다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아주 오래전 오랜 기간에 걸쳐 벌어진 사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까마귀 온다 수원에 까마귀 떼가 나타났다. 2016년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에 첫 모습을 드러냈던 까마귀가 벌써 몇 년째 찾아든다. 울산이나 김제처럼 사방으로 너른 들녘에서 나락이나 지렁이를 먹던 까마귀는 밤이면 근처 나무숲에 잠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울산 태화강변 대나무숲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숲과 논을 오가며 겨울을 지낸 까마귀는 다음해 3월이면 어김없이 날개를 틀어 번식 장소인 북으로 향한다. 수원 까마귀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