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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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태반에 암수가 있다고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며 은행나무문(門)에 속하는 유일한 종인 은행나무는 암수딴몸이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다는 뜻이다. 소나무처럼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있는 암수한몸이 식물엔 흔하지만 동물에선 암수딴몸이 대세다. 어류나 파충류에선 짝짓기를 안 하고도 새끼를 낳는 처녀생식 개체가 가끔 발견되지만 포유류는 필히 암수가 짝짓기를 해야 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감자와 다양성 11월에 들어섰는데도 돼지감자 샛노란 꽃은 한창이다. 잎도 푸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땅 아래에서는 탄수화물을 만드는 효소가 부산하게 움직이며 덩이줄기를 살찌우고 있을 게다. 북미가 고향이며 뚱딴지라고도 불리는 돼지감자는 퇴비 없이도, 따로 잡초를 제거해주지 않아도 잘 자라고 추위에도 강하다. 춥고 척박한 지역에서 잘 자라기는 감자도 돼지감자 못지않다. 단위면적당 수확량도 좋아 감자는 인간 집단에 거뜬히 안착했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박쥐는 억울하다 나는 드라마 <칸나의 뜰>에서 인터페론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1978년에 방영된 드라마라 떠오르는 대목은 거의 없지만 인터페론이 항암제로 거론되었다는 사실만은 기억난다. 미생물인 대장균 유전자를 변형시켜 인슐린을 최초로 생산하고 이를 당뇨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한 때가 1982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마도 드라마에 등장한 인터페론은 동물 혹은 인간의 세포나 조직을 갈아서 얻었음이 분명하다. 항암제로 한 번 주사하기에도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적혈구가 ‘바이러스의 무덤’이 되는 상상 1927년 남극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육지 대부분이 빙하로 덮인 부베섬을 향해 항해하던 선원들은 혈색이 흰 물고기를 발견한다. 남극해에 사는 이 얼음물고기는 붉은빛 적혈구가 거의 없는 유일한 척추동물이다. 차가운 물에 산소가 넉넉히 녹아 있는 까닭에 얼음물고기는 혈관의 표면적을 넓히는 방식만으로도 너끈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끈적한 적혈구를 없애는 것이 추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비둘기 새끼를 본 적이 있는가 비둘기 새끼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병아리 새끼나 개를 어미 삼아 쫓아다니는 오리 새끼를 본 기억이 있다 해도 말이다. 왜 비둘기 새끼는 보기 어려울까? 아마 그 이유는 둥지를 잘 숨기는 데다 새끼가 자랄 때까지 한곳에 머무르는 비둘기의 습성 때문일 것이다. 닭처럼 가축화되진 않았지만 비둘기는 인간 집단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생명체다. 본디 절벽이나 암벽에 구멍을 내고 둥지를 트는 습성이 있던 비둘기는 개구쟁이들의 눈길을 피해 아파트나 빌딩 구석에 은밀하고 안온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비둘기는 새끼에게 액상 치즈처럼 노랗고 점도가 높은 젖을 먹인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암수 비둘기 모두 젖을 공급할 수 있는 까닭에 새끼는 두세 달 동안 둥지에서 무사히 성체 크기로 자라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하마의 붉은 땀, 인간의 투명 땀 코끼리 다음으로 큰 육상 동물인 하마가 붉은 땀을 흘린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마의 땀을 분석한 일본의 연구진은 붉고 분홍빛을 띠는 두 가지 산성 화합물의 구조를 규명하고 그 결과를 ‘네이처’에 게재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하시모토 박사는 하마의 땀 성분이 자외선을 차단할 뿐 아니라 체온 조절 및 항균 작용까지 한다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결과였다. 사람들은 하마의 땀에서 자외선을 차단하는 새로운 선크림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바다소와 해달 약 1만1000년 전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 인구는 약 7800배 늘었다. 약 100만명이던 당시의 인구가 현재 거의 78억명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세계 인구를 집계하는 영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는 1초에 서너 명씩 늘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농경이 시작된 사건을 일컫는 신석기 혁명은 사실 석기와는 깊은 관련이 없다. 오히려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사육하게 되면서 한곳에 머물러 살게 된 생활 양식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편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먹거리를 찾아 수렵과 채집을 하는 대신 인간 집단의 울타리 안에 동물과 식물 일부가 편입된 것이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먹고살기의 생물학 일본 음식점에서는 생간(生肝)을 먹을 수 없다. 비행기 갈아타느라 나리타 공항에서 맥주 한 병 마신 시간이 일본 체류의 전부인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겠지만 사실 저 말을 한 사람은 일본인 친구다. 공동 연구차 한국에 잠시 머무르는 그를 신촌 뒷골목에서 만났다. 허름한 음식점에 앉자마자 곁들이로 나온 처녑과 생간을 보고 화색이 돌던 그 친구에게 나는 그것을 아예 한 접시 주문해 주었다. 그는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자연도 움직이고 고르고 ‘선택’한다 독도에서 설악산과 소백산을 거느린 태백 준령을 육안으로 볼 수 있을까? 혹시나 호사가의 카메라에 잡힌 영상이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없다. 직선거리가 가장 짧은 경북 울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200㎞가 넘는다. 그 정도 떨어진 곳까지 보이려면 태백산맥이 아주 높거나 아니면 지구가 편평해야 할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이 되었으니 문제는 태백 준령의 높이에 있다. 이렇게 단정 지어 말하는 까닭은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히말라야 만년설을 찍은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사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도사람들이 일을 작파하고 모두 칩거하는 바람에 인도인들도 30년 만에 히말라야산맥을 다시 볼 수 있었다는 넋두리가 사족처럼 붙었다. 200㎞ 떨어진 펀자브 사람들에게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려면 히말라야산맥처럼 크고 높아야겠지만 한편 공기도 티 없이 맑아야 했을 것이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기침 눈높이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위로 오르면서 촘촘하지만 더 가는 줄기를 가진 느티나무를 보며 나는 뿌리에서 물관을 거쳐 비상하는 물을 상상한다. 물이 줄기의 가장 높은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위로 오를수록 점점 더 커지는 물관의 저항을 무너뜨려야 한다. 나무는 줄기와 물관의 표면적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본줄기의 단면적과 거기서 갈린 두 줄기 단면의 면적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찍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그림으로 기록을 남겼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느티나무 형상을 머릿속에서 거꾸로 뒤집어 보면 목 아래 기관에서 갈라지는 기관지 모습이 떠오른다. 기관은 지름이 약 1.5㎝이며 후두 아래로 10㎝ 정도를 내려간 다음 좌우 기관지로 갈라진다. 그 기관지는 15~23차례 더 나뉘다가 포도송이 모양의 작은 폐포에 연결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바이러스를 위한 변명 물 한 방울의 부피는 0.05㏄다. 스무 방울을 합쳐야 겨우 1㏄가량 된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아마도 땅콩 한 알 정도에 해당하는 부피가 물 1㏄에 가까울 것이다. 무게로 따지면 약 1g이다. 적은 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상황에 따라서 이는 엄청나게 넓은 공간으로 바뀔 수도 있다. 1989년 노르웨이 베르겐대학 연구진은 바닷물 1㏄에 바이러스 1000만마리가 산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보고했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동면을 꿈꾸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벼 그루터기만 남은 논에 서리가 내리면 어른들은 서둘러 겨울 맞을 채비를 하곤 했다. 떼어낸 문틀에 두 겹의 창호지를 바르고 그 사이에 국화잎을 몇 장 집어넣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나중에 소읍으로 이사갔을 때는 광에 시커먼 연탄을 쌓아두었지만 시골에서는 겨우내 볏짚을 땔감으로 썼다. 바람 잘 통하는 대청마루에는 통가리가 놓이고 두어 가마 고구마도 채워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장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월동 준비라는 말에서조차 격세지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