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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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이백예순 날 살기 위하여 인간은 바다를 버리고 좁고 건조한 육상에 정착한 성급하고 무모한 조상의 자손이다. 2004년 시카고대학 해부학자 닐 슈빈은 북극 엘스미어 섬에서 발이 있는 물고기 화석을 찾아내 바다와 뭍을 잇는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연결했다. 뼈와 근육으로 구성된 물고기 지느러미는 닭의 날개, 인간의 팔과 그 기원이 같은 상동 기관이다. 재담을 즐기는 사람들은 엄마의 말을 거꾸로 듣는 자식 물고기가 뭍에 오르는 그림을 그리고 씩 웃었지만 사실 그들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바다전갈과 같은 맹폭한 포식자를 피해 또는 지각 변동으로 바다가 높이 솟아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물고기 조상들은 육상으로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 사나운 소를 길들여 인간 집단으로 끌어들이는 데 2000년 넘게 걸렸다는 연구 결과에서 짐작하듯 동물이 육상에 정착하는 데는 분명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유월을 안고 사월에 피는 꽃 모란꽃이 피었다. 이제 곡우(穀雨)를 지나 4월 하순에 접어든다. 봄비 덕에 겨울을 넘긴 보리가 푸르름을 더하고 그루터기 남은 논에 물이 찰 즈음이다. 한 열흘 더 지나면 여름에 들고(立夏) 소나무는 연둣빛 새 가지를 한 뼘 더 키울 게다. 시나브로 푸르게 어두워질 한 해의 익숙한 모습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말 것이다. 시인의 노랫말에 ‘유월을 안고’ 핀다는 모란이 4월에 꽃을 피웠다. 몇 해 전 학회 참석차 부산의 한 대학을 찾았을 때도 4월에 핀 모란꽃을 보았으니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삼수갑산 가까운 북녘 아닌 경남 마산 출신, 김용호의 시집 <푸른 별>이 출간된 1956년 당시 6월에 피던 모란이 70년이 지나지 않아 4월에 꽃을 피운다? 그렇다면 대체 모란의 봄은 어디로 갔을까?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똥 누는 시간 12초 새에게는 이빨이 없다. 껍데기에 탄산칼슘이 풍부한 알을 낳느라 이빨을 잃었다는 가설도 있고, 만드는 데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드는 이빨에 투자하는 대신 새끼를 빠르게 부화하고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지키는 일이 새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가설도 등장했다. 최근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진은 부리와 이빨을 가진 약 1억년 전 익티오르니스 공룡의 화석을 자세히 분석한 뒤 뇌를 발달시키기 위해 새가 턱의 근육과 이빨을 포기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무를 파고 벌레를 먹거나 껍데기를 깨고 연한 조갯살을 먹는 데 부리만으로도 충분했으리라는 것이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빼앗긴 봄날의 꿈 머잖아 알알이 붉은 열매를 매단 채로 산수유꽃이 필 것이다. 꽉 닫혀 있어야 할 ‘북극 냉장고’ 문이 지구온난화로 슬쩍 열리면서 미국 텍사스주에 보기 드문 폭설이 내렸지만 그래도 꿋꿋이 봄은 온다. 봄의 출현을 알리듯 꽃봉오리가 벌고 노란 우산을 펼친 듯 20여개의 꽃잎을 일제히 드러내는 산수유의 모습은 가히 장관(壯觀)이다. 동아시아 원산인 산수유는 지구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이후 거의 7000만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꽃을 피워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잎 없이 꽃을 피운다. 산수유처럼 광합성 공장을 가동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성질 급한 식물들은 안타깝게도 작년에 쌓아둔 식량을 덜어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른 봄꽃을 찾는 꿀벌들은 먼 거리를 움직이며 적은 양일망정 꿀을 모은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행복한 숨 쉬기 서해가 지척인 남도의 들녘에 어린아이가 바람을 맞고 있다. 고개를 들고 지그시 눈을 감은 아이는 이내 손바닥을 편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천천히 반복한다. 약 20년 전 미국으로 이사 가느라 아버지 산소에 잠시 들렀을 때 두 돌배기 아들의 모습이다. 봄뜻이 완연했고 대도시와 사뭇 다른 시골 공기의 신선함을 어린아이도 몸소 만끽했음에 틀림없다. 행복하게 숨을 쉬는 일은 내게 바로 저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배추와 인간 눈 덮인 고깔 모양 움 안에서 꺼낸 통배추를 반으로 가르면 하얗고 노란 색조가 완연하다. ‘가운데 갈비’란 뜻을 담아 중륵(中肋)이라 불리는 두툼하고 흰 조직엔 수용성 탄수화물이 풍부하다. 중륵을 감싸는 조직인 내엽(blade)은 당근처럼 카로틴이 풍부해 색이 노랗다. 김치의 주재료이지만 생으로도 즐겨 먹는 통배추는 어찌 보면 과일과 닮았다. 둘 다 광합성 부산물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대신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때문이다. 날이 서늘해지면 배추는 안으로 조직을 채우면서 엽록소가 만든 설탕을 과당과 포도당으로 분해해 당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인간은 단맛을 선택했다지만 배추는 무슨 까닭으로 중륵에 당을 저장하는 것일까?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태반에 암수가 있다고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며 은행나무문(門)에 속하는 유일한 종인 은행나무는 암수딴몸이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다는 뜻이다. 소나무처럼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있는 암수한몸이 식물엔 흔하지만 동물에선 암수딴몸이 대세다. 어류나 파충류에선 짝짓기를 안 하고도 새끼를 낳는 처녀생식 개체가 가끔 발견되지만 포유류는 필히 암수가 짝짓기를 해야 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감자와 다양성 11월에 들어섰는데도 돼지감자 샛노란 꽃은 한창이다. 잎도 푸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땅 아래에서는 탄수화물을 만드는 효소가 부산하게 움직이며 덩이줄기를 살찌우고 있을 게다. 북미가 고향이며 뚱딴지라고도 불리는 돼지감자는 퇴비 없이도, 따로 잡초를 제거해주지 않아도 잘 자라고 추위에도 강하다. 춥고 척박한 지역에서 잘 자라기는 감자도 돼지감자 못지않다. 단위면적당 수확량도 좋아 감자는 인간 집단에 거뜬히 안착했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박쥐는 억울하다 나는 드라마 <칸나의 뜰>에서 인터페론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1978년에 방영된 드라마라 떠오르는 대목은 거의 없지만 인터페론이 항암제로 거론되었다는 사실만은 기억난다. 미생물인 대장균 유전자를 변형시켜 인슐린을 최초로 생산하고 이를 당뇨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한 때가 1982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마도 드라마에 등장한 인터페론은 동물 혹은 인간의 세포나 조직을 갈아서 얻었음이 분명하다. 항암제로 한 번 주사하기에도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적혈구가 ‘바이러스의 무덤’이 되는 상상 1927년 남극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육지 대부분이 빙하로 덮인 부베섬을 향해 항해하던 선원들은 혈색이 흰 물고기를 발견한다. 남극해에 사는 이 얼음물고기는 붉은빛 적혈구가 거의 없는 유일한 척추동물이다. 차가운 물에 산소가 넉넉히 녹아 있는 까닭에 얼음물고기는 혈관의 표면적을 넓히는 방식만으로도 너끈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끈적한 적혈구를 없애는 것이 추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비둘기 새끼를 본 적이 있는가 비둘기 새끼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병아리 새끼나 개를 어미 삼아 쫓아다니는 오리 새끼를 본 기억이 있다 해도 말이다. 왜 비둘기 새끼는 보기 어려울까? 아마 그 이유는 둥지를 잘 숨기는 데다 새끼가 자랄 때까지 한곳에 머무르는 비둘기의 습성 때문일 것이다. 닭처럼 가축화되진 않았지만 비둘기는 인간 집단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생명체다. 본디 절벽이나 암벽에 구멍을 내고 둥지를 트는 습성이 있던 비둘기는 개구쟁이들의 눈길을 피해 아파트나 빌딩 구석에 은밀하고 안온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비둘기는 새끼에게 액상 치즈처럼 노랗고 점도가 높은 젖을 먹인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암수 비둘기 모두 젖을 공급할 수 있는 까닭에 새끼는 두세 달 동안 둥지에서 무사히 성체 크기로 자라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하마의 붉은 땀, 인간의 투명 땀 코끼리 다음으로 큰 육상 동물인 하마가 붉은 땀을 흘린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마의 땀을 분석한 일본의 연구진은 붉고 분홍빛을 띠는 두 가지 산성 화합물의 구조를 규명하고 그 결과를 ‘네이처’에 게재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하시모토 박사는 하마의 땀 성분이 자외선을 차단할 뿐 아니라 체온 조절 및 항균 작용까지 한다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결과였다. 사람들은 하마의 땀에서 자외선을 차단하는 새로운 선크림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