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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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경향신문에서 처음 칼럼 연재를 제안받은 게 2017년 봄이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쓰고 대학에서 나온 이후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을 쓰기까지, 경향신문의 독자들이 늘 곁에 함께했다. 7년, 한 시절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기간이다. 나의 글을 읽어준 당신들 덕분에 나는 행복했고, 고마웠고, 늘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대학 시간강의와 맥도날드 물류 상하차 일을 하면서, 120만원이 아내와 나와 아이의 한 달 생활비가 된 시절이 있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었다. 작년에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한 이후엔 더욱 그렇다. 학교나 도서관이나 독서모임에서, 기업이나 기관들에서 강의를 요청해 온다. 고마운 마음에 갈 수 있으면 어디든 간다. 나의 책을 읽었거나 읽을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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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삶 요즘 강의하러 가면 담당자가 묻는다. 오늘은 어떤 차를 타고 오셨나요, 성공하셨을까요. 내가 탁송을 타고 움직이는 것을 알아서다. 나는 타인의 차를 옮겨주면서 이동하는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오늘은 오후 2시에 인천에서 강의가 있는데, 나는 강릉에서 인천 송도의 유원지까지 중고차를 옮겨다 주고 10만원을 받고 근처의 학교로 갈 예정이다. 이렇게 움직인 지는 반년 정도 되었다. 나의 아내는 종종 말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KTX를 타면 그 시간에 잠도 잘 수 있고 밀린 일도 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러느냐고. 나도 그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이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 나는 맥도날드에서 월 80시간을 일하고 50만원 남짓을 벌었다. 그렇지 않은 시간엔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하거나 연구실에서 논문을 썼다. 그때의 나에게 돈을 내고 기차를 탈지 돈을 받고 운전을 할지 물으면 숨도 쉬지 않고 답했을 것이다. 돈을 받고 운전하겠다고. 지금은 그때보다는 형편이 나아졌으나, 어려울 때의 삶의 태도라는 것이 처지나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고 해서 함께 바뀌면 안 된다. 좋은 차를 타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움직일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삶에서는 무엇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정해진 이야기를 채우며 살아가기보다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살아가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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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다정한 기술사회의 도래는 가능할 것이다 얼마 전 나의 서점을 찾은 사람이 말했다. 챗GPT를 잘 활용하면 삶이 편해질 테니 당신도 써 보라고. 요즘 그걸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웬만해선 유행을 역행하려 하는 내 주변의 작가들도 한 번쯤 써 본 듯하다. 누군가는 내게 챗GPT에게 단편소설을 쓰게 해 봤더니 꽤 그럴듯하게 써서, 사실은 자신보다 잘 쓴 것도 같아서, 그걸 그냥 제출할까 고민했다고도 했다. 내가 아아 그렇군요, 하고 그다지 열없는 반응을 보이자 그는 제가 쓰는 걸 한 번 보여드리지요, 하고는 자신의 노트북을 열었다. 그 이후엔 뭔가 신세계가 펼쳐졌다. 나는 그때 글쓰기 8주차 수업의 커리큘럼을 작성해야 했는데 그가 프롬프트에 “성인을 대상으로 한 8주차의 글쓰기 강의 계획서를 작성해 줘”라고 입력하자 10초 만에 내가 상상했던 모범적인 커리큘럼이 작성되었다. 그가 여러 조건을 넣을 때마다 그것은 정교해져 갔다. 장르는 에세이이고, 피드백을 몇회차 할 것이고, 계획서 내용을 조금 더 흥미롭게 해 달라. 나는 그가 보는 앞에서 GPT4라는 것의 월구독을 하고 말았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제 당신의 삶도 달라질 것이라고, 써 보다가 어려운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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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원주 아카데미 극장의 보존을 바라며 나는 서울 마포구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이르러 지하철이 연장되고 내가 사는 망원동 인근에도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메트로폴리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무 살이 되고부터는 강원도 원주에 있었다. 잠시 머물 것으로 알았으나 학교와 직장 때문에 거기에서 20여년을 살았다. 내가 다닌 대학은 시내와는 30분 정도 떨어진 데 있었다. 30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터미널이라든가 중앙시장이라든가 하는 중심가가 나왔다. 내가 영화관에 간 건 2003년 겨울, 대학에 와서 첫 연애를 시작했던 때였다. A는 외지 사람들이 원주민이라고도 불렀던 원주 사람이었다. 시내의 영화관 앞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기 위해 그와 만났다. 추운 날이었다. 나는 영화관이 어디인지도 몰랐기에 그가 내리라고 하는 정류장 앞에 내렸다. 영화관의 이름은 ‘아카데미 극장’, 표를 예매할 방법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런 건 필요 없다는 그의 말에 현장에서 표를 구매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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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제주도 숙소 숙박권을 드립니다 제주도 모 기관에서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과거형으로 서술한 것은, 하루 전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태풍 카눈이 한국에 상륙하는 날 저녁에 강연이 있었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도서 지역의 특성상 가는 사람도, 부른 사람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하루 전날 담당자께 전화가 왔다. “작가님이 오시기도 힘들고 가시기도 힘들고, 도민들도 태풍이 오는데 강의를 들으러 오는 것도 그렇고, 취소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강연 당일에 메시지가 왔다. 예약한 숙소에 입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그래, 1박2일 일정이니까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7만원까지 숙소비 지원이 된다고 해서 강의할 기관 근처에 바다도 보이는 가성비 좋은 비즈니스호텔을 잡았다. 숙소에 전화해서 환불이 되는지 묻자, 당일 환불은 안 된다고, 그러나 태풍으로 인한 것이면 숙박 앱 고객 센터에 전화해 보라는 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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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책 읽는 노르망디 해변 지난 5월 홍세화 선생이 강릉에 왔다. 내가 문을 연 서점 ‘당신의 강릉’의 첫 행사는 그를 모시는 것이었다. ‘교사는 어떠한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라는 제목으로 교사인 이원재 작가도 함께 강원도 지역의 학생, 학부모, 교사 등과 만났다. 그는 바다를 보고 하루 숙박하고 다음날 돌아갔다. 얼마 전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엊그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에 부분 개각이 있었는데 새 교육부 장관에 34살의 청년 가브리엘 아탈이 기용됐습니다. 그는 동성결혼자이기도 합니다. (…)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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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대리운전 타고 강연 다니는 작가 대리운전을 시작하고 <대리사회>라는 책을 쓴 것이 벌써 7년 전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대리운전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나아졌느냐고 하면,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그렇지 않다. 강릉으로 이주한 이후 KTX를 타고 오가는 비용이 적지 않다. 왕복 5만원 이상이 나오니까 한 달에 4번이면 20만원이 이동비용으로 나온다. 물론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비용이 별도로 붙는다. 그래서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대리운전 콜이 나오면 탄다. 대리운전 비용이야 그때그때 다르지만 그래도 15만원 안팎은 되니까, 한 달에 한 번만 타도 그 비용이 상쇄된다. 월요일 저녁마다 서울 강남 ‘최인아 책방’에서 글쓰기 클래스를 한다. 저녁 9시반에 강남에서 대리운전 앱을 켜면 수도권 어디든 갈 수 있다. 이래저래 일과 삶을 연동해 나가며 계속해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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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서점에 오시면 작가가 책을 드립니다 두 달 전 작은 서점을 열었다. 귀한 지면을 개인 홍보에 쓰는 것 같아 그간 굳이 쓰지 않았는데, 얼마 전 오픈 이벤트 하나가 끝나 그 감상을 적어두려 한다. 이 서점은 5평 남짓한, 8명이 들어오면 꽉 차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그래도 책을 팔고, 사람을 만나고, 책을 만든다. 얼마 전 소설집 <회색 인간>으로 유명한 김동식 작가와 서점에서 만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북토크를 하면 2시간 정도 몇명의 사람들과 함께 진행하고, 그들의 책에 서명을 해주고 작가는 곧 떠날 것이었다. 그러기엔 무언가 아쉬웠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절반, 작가님이 절반을 부담해, 1박2일 동안 서점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 책을 사서 선물하고 서명도 해 드리고 원한다면 사진도 찍어 드리고 하면 어떻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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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열 살, 일곱 살, 두 아이를 나는 “김대흔씨” “김린씨”라고 부른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고 그들을 글로 써야 할 때만 그렇게 한다. 페이스북에 ‘부글부글 강릉일기’라는 제목으로 종종 아이들과의 일들을 쓰다 보면 나를 만난 사람들이 묻는다. 김대흔씨와 김린씨는 잘 있느냐고. 그들은 왜 아이들을 그렇게 호칭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웃기려고 그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을 존중하기 위해 그러느냐는 사람도 있다. 사실 아이들과 멀어지고파서 일부러 쓰기 시작한 호칭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볼 때마다 여러 욕망이 찾아왔다. 잘 크면 좋겠다, 건강하면 좋겠다, 한글을 빨리 떼면 좋겠다, 구구단을 외우면 좋겠다, 받아쓰기를 잘하면 좋겠다, 어휘력이 높으면 좋겠다 등등. 그러다 보니 기대와 실망이 번갈아가며 찾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들에게 그러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인가. 결국 부모와 아이는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한없이 가까워지다 못해 동일시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나의 욕망을 아이에게 대리시키는 게 괜찮은 것인가. 그건 서로를 불행하게 할 뿐이다. 나는 그들이 내 눈치를 보는 대신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어울리게 하는지 스스로 선택해 나가며 한 개인으로서 자립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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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국어교사모임 추천 도서지만 수업시간엔 읽을 수 없어요 어느 고등학교의 국어 교사가 학생들과 시 수업을 할 시인을 한 명 추천해 달라고 했다. 나는 내가 아는 젊은 시인 K를 추천했다. 그는 학교폭력의 아픔을 가진 사람이고, 그러한 폭력에 대한 천착을 계속 시도한다. 학교폭력 근절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아니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어서, 그와 관련한 시를 쓰고 학생들과 함께 낭송한다. 언젠가는 집 인근의 학교 정문에서 학교폭력과 관련한 자신의 시를 학생과 교사들의 등교시간에 맞추어 낭송하고 있는 그를 보고, 그의 진정성이란 의심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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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저의 서점에 와 본 분들이 계실까요 작년에 존경하는 C선생님에게 함께 글쓰기 강연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모 대기업 사원들을 대상으로 3회차. 그가 사회를 보고 내가 강의 후 함께 대담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했다. 너무나 감사해서 아, 네, 선생님 물론입니다, 하고 두 손으로 전화를 받을 지경이었다. 강연비만 해도 내가 그동안 받아온 액수의 배는 되는 것이었으나 우선 그와 함께 무엇을 한다는 자체로 기뻤다. 분명 무언가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 그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 사원들 앞에 섰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아니었다. 다만 C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김래원이 나온 어느 영화에서 엑스트라가 뱉은 명대사처럼 ‘그래 C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거야. 할 수 있어’ 하는 마음이 되었던 것이다. C는 먼저 사회를 보는 자신에 대해 소개했다. 그러면서 “저의 서점에 와 본 분들이 여기 계실까요?” 하고 물었다. 그는 서점을 운영한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람들은 눈치를 보다가 수십명 중 단 한 명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들도 민망하고 나도 민망하고, 누구보다도 민망한 사람은 C일 것이었다. 선생님, 사람들은 서점에 잘 가지 않아요, 선생님이 가장 잘 아시잖아요, 그런 건 왜 물어 보셨어요.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C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저의 서점에 와야 할 분들이 이렇게나 많네요. 기쁩니다.” 그 순간 강의장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래 가 보면 되지 뭐, 하는 안도감. 그 한마디만으로 그곳의 모든 부정의 기운이 긍정으로 바뀐 것이다. 무슨 마법을 보는 듯해서 잠시 멍해져 있는 동안 그가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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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사람과 세상을 사유하다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좋아하는 배우와 만났다. <재벌집 막내아들>에 출연한 김신록씨였다. 진행자가 그의 수상 소감인 “저는 연극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사유한다”를 언급했을 땐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때 다른 출연자가 말했다. “이런 말은 대부분이 알아듣는 단어를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사유라는 단어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김신록씨는 다음부터는 ‘생각한다’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그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사유하다’라는 단어를 많이 써왔다. 최근의 책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처지에서 깊이 사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본 일은 없는 것 같아서, 생각과 사유는 어떻게 다른가, 하고 생각, 아니 사유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