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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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신에게 소설이란 무엇인가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이 ‘잘’되면서 그 책을 기획한 나도 기쁘고 뿌듯하다. 얼마 전에는 대형서점의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매대에 책이 진열된 것을 보고 괜히 눈물이 나려 했다. 김동식은 ‘복날은 간다’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300편이 넘는 소설을 쓴 작가이고 나는 그의 독자였다. 가볍게 읽히면서도 자기 자신과 우리 사회를 향한 무거운 물음표를 던지는 그의 글에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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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이더리움을 샀다 며칠 전 ‘이더리움’이라는 가상화폐를 샀다. <사람은 왜 노동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 있는 요즘, 그 질문에 도저히 답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생과 중·고등학생들까지 주로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일해서 뭐해, 출근하는 것보다 비트코인 사면 돈을 더 버는데” 하는 내용의 글이 매일 올라온다. 해외에서 가상화폐를 사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팔고 15~30%의 이상한 환차익을 보는 원정대도 생겼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이 조롱받는, 그 가치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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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여전한 당신들의 안녕을 바라며 ‘스마트안경점’은 망원우체국 사거리에 있는 적당한 규모의 안경점이다. 1991년부터 자리를 잡은 그곳에서 나뿐 아니라 성산동과 망원동의 아이들이 대부분 첫 안경을 맞췄다. 주인인 30대 남자는 언제나 친절했다. 시력검사를 하고, 테와 렌즈를 고르고, 시간이 걸려 안경이 완성되고 나면 그는 “자, 한 번 볼까” 하면서 손수 안경을 씌워주었다. 그때 볼의 약간 윗부분에 그의 손이 닿았다. 참 따뜻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스무 살이 되어 나는 망원동(성산동)을 떠났다. 그러고는 학교 때문에, 군대 때문에, 직장 때문에, 그 무엇 때문에 계속 멀어져 있었다. 한동안 안경점에 갈 일도 별로 없었다. 이전처럼 안경을 자주 부러뜨리지도 않았고 시력이 크게 변할 일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직장 근처에는 ‘안경나라’나 ‘다비치’ 같은, 점원을 몇 명씩 두고 영업하는 대형 안경점들이 있어서, 주로 거기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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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페이스북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서른다섯을 먹도록 아직 해외에 나가본 일이 없어서 무척 큰 결심을 하고 후쿠오카행 항공권을 예매했는데,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출발하기로 한 그 주에 아이의 수술 일정이 잡혔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서 벌어진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의사는 수술 다음 날 어린이집에도 갈 수 있을 만큼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아버지라는 인간이 혼자 해외로 떠나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마침 이런저런 일정들도 생겨서 티켓을 취소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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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대학원생도 ‘연구자’다 지난주에는 모 대학에서 열린 ‘학문 후속세대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발표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작자 미생’의 발표문을 제출했고, 학회의 간사가 그것을 대신 읽었다. 거기에 몇 년 전의 나와 닮은 여러 대학원생이 있었다. 3년 전까지, 내 신분은 대학원생이었다. 정확히는 박사 과정 ‘수료생’, 학위 취득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하고 논문 인준만 남은 단계를 가리킨다. 나 역시 논문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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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아무튼, 나의 고향은 망원동입니다 지난봄에 누군가가 나에게 “고향이 어디예요?” 하고 물었다. ‘망원동’이라고 답하자 그는 “망원동을 고향이라는 사람도 있네요” 하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어느 특정 동네를 고향으로 답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향을 묻는 질문에 ‘홍대입구’나 ‘망원동’이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해 왔다.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으니 홍대입구라고 하는 게 가장 알맞기는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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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아무튼, 나의 고향은 망원동입니다. 지난 봄에, 누군가가 나에게 “고향이 어디에요?”하고 물었다. ‘망원동’이라고 답하자 그는 “망원동을 고향이라는 사람도 있네요” 하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어느 특정 동네를 고향으로 답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도시를, 아니면 강원도나 충청도와 같은 지역을 대기가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향을 묻는 질문에 ‘홍대입구’나 ‘망원동’이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해 왔다.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으니 홍대입구라고 하는 게 가장 알맞기는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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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택시, 그 환대와 불편함의 공간 지난달 청춘직설란에 쓴 ‘아재들에게’가 SNS에서 꽤나 관심을 받은 모양이다. 대리운전을 하며 바라본 50대 남성들의 모습을 담은, 타인에게는 당신의 자기서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없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우선은 50대 남성들로부터 “아재들 건드리지 마라, 우리도 힘들다”하는 직간접적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요약하면, 선배들의 경험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나도 그것을 부정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귀를 열어 후배들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경험은 몸으로 실천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조금 더 환영받는 아재가 되지 않을까 한다. 곧 생물학적 아재가 될 나에게 하는 제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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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아재’들에게 얼마 전 대리운전 콜을 한 50대 남성 셋은 나에게 “여기 룸살롱 좋은 데 없어?” 하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그들은 아니 뭐 대리기사가 그런 것도 모르나, 하며 웃었다. 하긴 내가 유흥업소에 손님으로 가본 일이 없는 것과는 별개로 직업상 “어디를 많이 찾으시더군요” 하는 조언 정도를 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민망했다. 차에 오른 그들은 한참 골프와 유흥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나의 성실성에 대해 칭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리운전까지 하는 젊은이들이 흔치 않다는 것이었다. 직원으로 채용하고 싶다고, 그리고 팁을 좀 주어야겠다고 목소리들을 높여서, 나는 적당히 설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들은 트렁크에서 골프 가방을 챙겼다. 나에게 정해진 비용만을 정확히 지불하고 “잘 가요, 파이팅!” 하고는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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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지금도 종종 떠오르는 ‘수서역 천사’ 나를 비롯한 대리운전기사들이 손님에게 바라는 몇 가지 ‘매너’가 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기사가 전화를 하면 받아달라는 것, 차의 비상등을 켜고 기다려달라는 것 정도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리운전이라는 노동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행위만 언급하자면 그렇다.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을 관리하고 제공받는 사용자도 어떤 ‘의무’를 지는 것이다.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순간부터는 평범한 우리들 역시 일종의 사용자가 되고, 곁에 앉은 노동자에게 지켜야 할 당연한 예의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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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당신의 노동을 취소합니다 대리운전을 하지 않은 지가 몇 달 되었다. 생계의 수단으로서 그 일을 완전히 손에서 놓은 것은 아니지만 노동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만큼 간헐적으로만 한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충청도까지 가는 20만원짜리 장거리 콜이라든가, 10분만 운전하고 기본료를 받을 수 있는 간편한 콜이라든가, 하는 것들만 주로 다녀온다. 이제는 ‘계속 대리운전 하나요’란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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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국민을 위한 대리대통령을 바란다 ‘최순실 게이트’를 목도해야 했던 작년 어느 날, 문득 대통령의 ‘대’를 구성하는 한자어가 궁금해졌다. 크다는 뜻의 ‘大’와 대신한다는 뜻의 ‘代’ 중 하나일 것 같은데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사전을 찾아보고는 조금 우울해졌다. 사실 짐작은 하면서도 아니길 바랐던 단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한자어로 ‘大統領’이었다. 번역하면 ‘크게 거느리고 다스리다’라는 뜻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