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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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기억이라는 장소 콧바람 쐬러 한양에 댕겨왔는데 그새 강력한 한파로 집이 땡 얼었네. 방심하고 모터기를 감쌌던 온열기 전원을 껐다가 낭패를 본 셈. 알려진 바 영험한 목사라고도 하덩만 신내림은 고사하고 물내림도 못하게 생겼네. 수세식 변기가 얼어 물이 안 내려가. 그렇담 비상용 바깥채 푸세식이 있지. 생태변소 이름이 거창하게도 ‘수양각’. 고드름이 언 한데에서 엉덩이를 깐 채 쪼그리고 있노라면 전신이 오돌돌, 수양은커녕 볼일도 못 보게 된다. -
임의진의 시골편지 전기장판 너무 추워 패딩을 걸치고 돌아댕기는데 동네 할매가 전기장판을 대문 밖에 내다 놓으셔. “어디가 고장나부렀나요?” “아니 불이 나부렀당게라. 송장 치를 뻔 봐부렀소잉.” 수십 년도 더 된 장판이 과열됐나 봐. 여태 뜨신 아랫목 노릇을 하느라 고생이 참 많았겠다. 여긴 도시가스도 안 들어오고, 기름보일러 아낄 참 조금만 날 풀려도 달랑 전기장판만 쓰는데, 에고~ 불이 나야 바꾸시네. 뵌 친한 목사 형님이 전기장판 아니 전기방석에 오래 앉았다가 고문을 당한 듯 불그레 저온화상을 입었당마~. 또다시 에고~. -
임의진의 시골편지 걍 냅둬유 무서운 한파가 닥칠 거래서 지붕에 올라가 연통을 속으로 박박 긁어 청소하고, 장작개비를 거실 구석에 바삐 들였다. 구워 먹을 고구마도 쟁여뒀고, 나이를 거꾸로 먹고도 싶어 떡국 봉다리도 샀지. 기막힌 눈구경을 원없이 했으면 바라. 일기예보 가지고도 나는 이리 호들갑을 떠는데, 솔숲은 또 대숲은 꿩이나 힝힝 울고 무심하게 자울댈 뿐이야. 성근 바람에 마른 건초가 살짝 뒤척이는 게 고작이다. 이 숲은 마치 충청도 사람들처럼 무심하고 태평해. 여름날 충청도 어디서 수박을 파는 장꾼의 대화. “저기요 이 수박 어떻게 파세요?” “고 가생이 수박 말여유? 팔겄쥬. 안 팔 거믄 멀라 놔둬꺼슈.” “잘 익은 거겠죠?” “지대루 익었겄쥬. 안 익었음 수박 탓이지 내 탓이거슈?” “달겠지요? 안 달면 어떡해요.” “그람 달겄쥬. 안 달어두 수박 맛은 나겄쥬 뭐.” “만원만 깎아주세요.” “걍 냅둬유. 개나 줘불쥬 뭐.” -
임의진의 시골편지 왜 불러 완벽한 사람이란 세상에 없어. 이를 전제로 깔고 사람을 만나야 해.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고이 접어두길 바라.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다 허술하고 어리석은 부분이 있기 마련이야. 작년에 중국 허난성엘 갔을 때 배운 글귀가 있다. 시골집마다 벽에 붙어 있던 액자. 유독 중국 인민들이 좋아하는 격언이란다. -
임의진의 시골편지 인사성 뒷산 참나무 한 그루가 바람에 쓰러져서 밑동은 산지기 아저씨가 가져가고, 나머지 곁가지는 내 차지다. 엔진 톱으로 잘라 틈틈이 쟁이고 있다. 겨울엔 장작불 땔감을 하는 일이 나로선 큰 과업이야. 손수레로 옮기면서 어르신들 길에 보이면 새해 인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산길을 비척비척 다니시는데 이곳에서 수십년을 보았으니 지금보다 젊은 시절도 기억하지. 양옥집 짓고 이사들 온 젊은 축들은 인사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아파트에 살던 방식대로 산다. 애들조차 인사를 않는 경우도 있덩만. 새들도 바람도, 고라니도 인사를 하면서 다니는데… -
임의진의 시골편지 배추밭 “아끼지 않은 말은 시가 아니다. 입 다물어야 속 차오르는 배추밭을 지나며…” 김용만 시인 신작 시집 시의 한 소절. 칼럼을 쓰는 시방, 창문 건너편에 보이는 배추밭. 김장철에도 살아남은 배추 포기들이 밭에 천불전처럼 좌정해 있다. 눈 내리면 배추밭이 아니라 눈밭, 얼고 녹고 해가며 단물 쭉쭉 오르겠다. 요샌 말이야 방방 시끄럽고 소란한 데 오래 앉아 있질 못하겠어. 입 다문 배추밭이 부럽고 그리워. 좋은 소문보다 나쁜 소문, 뜬소문, 가짜뉴스 발원지. 누구 좋단 소리보다 흉보는 게 또 가장 재밌다지? ‘아무말 대잔치’에 뛰어든 앵무새들이 누리소통망엔 정말 징하게도 많덩만. 사생활 보호에 취약한 유명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조차 해. -
임의진의 시골편지 따스했던 기억들 휘뚜루마뚜루 뭐든 척척박사다만 못하는 게 한 가지 있어. ‘거절’을 잘 못해 끌려다녀. 하늘 뜻이 분명히 있겠지 끄덕이면서 견뎌낸다. 이를테면 뭔가 엮인 듯한 나쁜 조건, 불이익과 손해. 마음을 조금 수습하고 나면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나 차츰 깨닫게 되더라. 묘하게 따스한 기억을 건네는 만남이 기다리더라. 이 추운 밤, 선물을 배달하는 ‘산타 영감탱이’. 먹여 살릴 가솔들, 토깽이 손주들이 주르르 있고, 하다못해 루돌프 사슴들 사료값이라도 벌어야 해. 육지 도로도 모자라 하늘까지 박차고 오를라면 잘 먹여야 쓴다. 국경을 넘나드니 선물마다 관세도 세게 붙어. 남는 장사가 아닌 게야. 굴뚝 타다 떨어지면 꼬리뼈가 아작~ 난도가 높은 업종이다 보니 젊은이들 구직도 안 해. 성탄 전야 하루만 일하는 것도 아냐. 일년 내내 착한 아이 나쁜 아이 가려서 생활기록표 작성. 복지가 좋지도 않아. 빨간 제복 단 한 벌. 무거운 선물 짐보따리에 허리가 망가져도 파스 한 장뿐. 그래도 꼬마들이 선물을 받고 좋아라 뜀뛰면 그게 참말로 좋아. 산타 영감 가슴에 남는 건 따스했던 이 기억뿐. -
임의진의 시골편지 라라의 테마 붕어빵과 잉어빵 한 봉지, 휴게소의 호두과자, 여기다 극장 팝콘 세트까지 생각나는 심심하고 근질근질한 날이다. 마당에 나가보니 밤새 산 중턱까지 흰 눈이 쌓였구나. 바깥나들이가 재밌겠다. 마침 누가 극장 나들이 초대를 하는데, 영화나 한 편 보러 갈까. 영화는 좋지만 뒤풀이를 생각하니 골치 아프다. 나이가 들어선가 밤마실이 성가시다. -
임의진의 시골편지 저슬의 재즈 숨가쁘게 달려온 올해도 끄트머리.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 나오는 명대사를 기억해.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의 첫날이랍니다.” 이름 모를 시인도 비스무리 노래했지. “춤춰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입지 않은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그대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내년이라고 특별하게 달라질 게 없겠지. 그래도 새해에 대한 기대를 가져보는 게 연말연시 들뜬 마음가짐이렷다. 배고픈 원시인들은 조그만 바늘로도 코끼리를 쓰러트렸다는데, 다음 3가지 방법을 쓴대. 쓰러질 때까지 바늘로 콕콕 쑤시기. 한 번 쑤신 뒤 쓰러질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기. 녀석이 쓰러져 죽을 때쯤 그때 한 번 콕 쑤시기. 셋 다 허풍에 가까우나 ‘힘 닿는 데까지 해보는’ 용기 하나는 가상해라. 용기를 내어 우리 살아낸 한 해. -
임의진의 시골편지 째깐한 약속 볼품없고 작은 걸 남도에선 째깐하다고 해. 홍어 거시기만 하다면서 시퍼 보고(얕잡아 보고) 대접해주지 않는 머시기. 그래도 째깐한 거시기와 머시기가 있어 세상이 알맞게 굴러가지. 제대로 말하자면 ‘있어서’가 아니라 ‘있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해야겠다. 잔설 좁쌀눈이 내린 뒤에야 굵은 함박눈 떡살눈이 차곡차곡 대지를 새하얗게 덮는 것처럼 째깐한 당신의 존재가 크고 우람한 무엇까지도 존재할 수 있게 만들지. -
임의진의 시골편지 비비드라라러브 심심하던 차 촌동네에 악마가 나타났는데, 악마는 환한 서울에선 못 살고 보통 캄캄한 시골이 ‘놀라게 하며 놀기’에 따따블인 곳. ‘시골 자가에 비닐하우스 댕기는 반장 이야기’를 그대 아시는가. 뿔 달린 악마가 앞에 보여도 전혀 겁을 먹지 않더란다. “이보슈~ 내가 안 무서워?” 눈이 똥그래진 악마가 묻자 반장은 가소롭다는 듯, “헛~ 당신 누이랑 내가 수십년째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사람이오. 무섭기는커녕 쓰럽지도 않소이다.” -
임의진의 시골편지 깨달음 공부 앞밭에서 할매가 늙은 호박을 줍고, 또 남은 깻단을 세우더라. 겨울에 불쏘시개로 쓸 모양이다. 환기 좀 시키려고 문을 활짝 열었는데 마른 깻단 냄새에 몸이 쏠렸다. 호박을 하나 얻어다가 죽 쑤어먹으려고 뒷방에 앉혔어. 겁나게 오지고 감사해라. <마가복음 전남방언> 책을 산중에 사는 스님 동생에게 한 권 보냈는데 읽고 은혜(?) 잘 받았다며 인사말. 깻단 냄새가 좋다 했더니 깨와 깨달음이 같다면서 농을 한다. 주일학교에다 여름성경학교 출신인데 인연이 달랐는지 ‘그쪽’으로 갔다. 그 친구 언젠가 했던 말을 기억해. 스님들이 주로 ‘깨달음’이 어쩌고 하지만 종정 큰스님도 ‘나는 깨달은 사람이다’ 말하지 않는대. 깨달은 사람이 무슨 ‘나’라는 에고가 있겠는가 말이다. 교회 쪽 동네엔 사이비 ‘재림 예수’가 여럿이다. 말만 목사지 신흥종교 교주 노릇을 하는 분들도 솔찬하게 보인다. ‘나에게 오라! 내 말만 들어라’라는 소리를, 아주 눈 하나 깜빡 않고 겁 없이 내뱉는다. 무슨 배짱인가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