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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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요강 나비 푸세식 변소는 특히 여름에 냄새 진동. 구더기도 바글바글. 안채와 멀리 떨어진 변소를 가려면 언니 오빠 누나 형이 꼭 따라가주어야 해. “꼼짝 말고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줘.” 진짜 기다리는지 내뺐는지 일을 보다가 확인도 하지. “지금 밖에 있지?” “아니~ 없다~” 칫, 없긴 뭐가 없어. “사실 나 니 언니 아니야. 히히히히~” 귀신 흉내를 내면 “그만해~ 무서워. 무섭다니까~” 측간 귀신 아니라 모기 흡혈귀가 변소 안과 밖에서 피 사냥을 시작해. 변소에 나타난다는 측간 귀신 이야기라도 들은 뒤엔 변소를 무서워 못 가고 옷에 오줌을 지릴 정도로 꾹 참아. 똥을 누는 중에 머리를 너풀너풀 풀어 헤친 측간 귀신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 똥 위에 주저앉아 발을 구르며 엉엉 울어버릴 테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여우와 곰 대중작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는 종말이 닥친 길 위에서 아빠와 아들이 꽁냥꽁냥 주고받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소년은 아빠와 줄곧 말을 나누며 생존의 길을 떠도는데, 책의 끝부분에서 아빠가 죽고 이젠 다른 대화 상대를 만나게 된다. “여자는 소년을 보자 두 팔로 끌어안았다. 아, 정말 반갑구나. 여자는 가끔 신에 관해 말하곤 했다. 소년은 신과 말을 하려 했으나, 가장 좋은 건 아버지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실제로 아버지와 말을 했으며 잊지도 않았다. 여자는 그것으로 됐다고 했다. 신의 숨이 그의 숨이고, 그 숨은 세세토록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건네진다고.” -
임의진의 시골편지 빈대떡 신사 서울 한남동 대로변 LP 가게 바이닐앤플라스틱에 들렀다. 여비가 간당간당해서 <도미도 레코드 가요힛트앨범> 딱 한 장만 사 들고 나왔지. 과거 내 음반 인터뷰로 만나 음악 일로 종종 뵙기도 하는 기자 출신 음악전문가 최규성 샘의 설명글이 앨범 속에 들어 있네.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50년대에 발표된 대중가요들은 제작 음반사조차 불명확한 혼돈의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
임의진의 시골편지 소도둑 ‘맬갑시’란 말. ‘괜히, 아무런 이유 없이’란 뜻. 특별하게 이유랄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맬갑시 전화를 넣고, 맬갑시 만나서 맬갑시 앉아 있다가 맬갑시 혼자 웃고 울다가 맬갑시 집으로 돌아왔다. 맬갑시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좀 진하고 무거운 말로 ‘무담시’란 말도 쓴다. 이유 없이 누가 괴롭히면 ‘무담시’ 그런다며 징징대도 괜찮은 게, 무담시 그러면 상대가 지나친 거다. 비하여 맬갑시는 훨씬 가볍고 능청스러워. -
임의진의 시골편지 살인미수 가루 어릴 적 우리 집 목사관엔 동네에선 ‘처음’ 갖춘 살림살이들이 여럿 있었다. 교회 손님이 많다 보니 얼음이 얼리는 큼지막한 냉장고가 있었다. 교회에 쓸 피아노도 처음, 어깨너머 피아노를 치는 누이들을 부러워했는데 가끔 내 멋대로 삑사리 연주회, 듣고 있던 참새들이 가소롭다면서 짹짹댔다. 전화기도 동네에선 처음 놓았고, 컬러텔레비전도 아마 몇 번째였던 거 같아. 집에서 극장 구경을 하게 되다니, 참말 별세계 신세계였다. -
임의진의 시골편지 홍콩 극장 ‘안득기’란 사람 이야기처럼, “이름이 뭐요?” 물으면 “안득기요”, 아니 “이름이 뭐란 말이요?” “안득기란 말이요.” 그처럼 아무리 불러도 안 듣기(들리)고 대답 없는 사람이 된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 그가 죽고 홍콩 영화도 뒷전으로 밀린 거 같아. 요새 아이들은 홍콩 영화를 잘 모르덩만. 지난주 영화음악 강의를 할 게 있어 홍콩 영화들을 다시 봤다. 애정하는 영화 <첨밀밀> <화양연화> <중경삼림>. 배우 이소룡, 성룡, 주윤발, 장국영, 양조위, 양자경, 장만옥… 기억 저편 아스라한 이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임의진의 시골편지 잠보 잠보 장맛비가 온다니 지붕에 올라가 빗물받이 낙엽들 털어내고, 큰비가 내릴 때마다 바닥이 질겅질겅한 포도밭 고랑을 삽으로 단도리. 몸을 부렸으니 노곤하여 술술 잠이 잘 올 텐데, 요새 밤마다 ‘꿈 동무, 잠 손님’이 쉽게 오지를 않는다. 생각만 많고 말이야. 희극배우 W C 필즈가 말하길 “최선의 불면증 치료는 오로지 잠을 많이 자는 것뿐이다”. 정확한 정답이다만, 혈압을 확 솟구치게 만드는 말이기도 해. 야식을 즐기진 않는데, 배가 부르면 포만감에 잠이 올지도 모른다고 누가 그래서 라면을 끓여 보기도 했다. 속만 부글부글하고 아침에 얼굴은 호빵맨처럼 부어있덩만. -
임의진의 시골편지 소설 클럽 인생이 통째 어그러져 산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 명산에 구경 가자, 가서 맛난 거 묵고 오자’ 꼬드김. 등산을 목적으로 만든 모임이 있다. 요상한 산악회 같은 건 아니고. 하나둘 뼈마디가 눌리고 쑤셔대서 이젠 해체 국면이야. 현주소지가 지목이 산으로 되어 있다. 멧산 말이야. 멧돼지도 살고 멧비둘기도 살아. 애당초 산에 사는데, 어디 다른 산엘 굳이 가고프겠는가. 결국 끌려가면 배낭에 기필코 시집이라도 넣어 간다. 초면이라도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 “요즘 무슨 책 읽어요?” 대충 둘러대는 경우도 있지만 다행히 내 인연들은 우수한 편에 든다.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는 책이라면 꼭 구입해서 정독한다. -
임의진의 시골편지 천사와 보살 교회엔 천사가 있고 절집엔 보살이 있다. 마을에도 천사가 살고 보살이 산다. 보통 부르기를 “저 아재는 천사다, 저 아짐씨는 보살이다”. 뭐 맛난 거 나눠 먹으면서 서로들 칭찬해. 산골짜기 절에 다니다가 관절이 아프면 가까운 천주교 공소나 교회로 종교를 갈아탄다. 보살이 집사나 스텔라, 마리아 자매가 되고 날개도 없으면서 천사가 되기도 해. 천사 하면 당신도 날개를 떠올릴 텐데, 교회에 가면 집사다 뭐다 벼슬을 주면서 날개를 보통 달아준다. 하지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듯 어디나 인간이 모이면 묘한 갈등이 생겨. 잘되라 쭉쭉 밀어주기도 하지만 벼랑에서 밀기도 하지. 교회를 그만두고 다시 절집에 돌아가기도 한다. 배신 한번 때렸다고 부처님이 그렇게 야박한 분은 아니셔. 반대로 절에 갔다가 다시 교회에 와도 예수님이 뭐 배신을 밥 먹듯이 한 베드로를 수제자로 두신 분인지라 어서 옵쇼~다. -
임의진의 시골편지 오래된 카페 오겹살은 두꺼운데, 뒷주머니 지갑도 덩달아 두꺼워야 먹을 수 있어. 삼겹살이면 감지덕지. 비건 식구들도 한자리에 낑겨 열무와 버섯만 구워 먹어도 배가 부르지. 요새 누가 유흥업소에 새 메뉴로 떴다며 우기는 그놈의 삼겹살. 낡은 카페에 모여 자글자글 노릇노릇 삼겹살을 구웠어. 록밴드 ‘이글스’가 불러 히트한 ‘새드 카페(Sad Cafe)’. 호텔 캘리포니아만큼 인기를 끈 노래를 한 곡 청해 듣기도 하면서 말이지. -
임의진의 시골편지 발버둥 억척이란 말엔 다분히 오기와 억지가 담겨 있을 테지만,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한 인생의 수고와 고생이 설핏 느껴지기도 해. 먹고살기 힘든, 어려운 시절에 누구나 발버둥을 치면서 살아가지. 철학만큼 숭고한 ‘먹고사니즘’… 숨이 턱밑에 훅훅 걸려도 야물게 이를 문 당신, 꼭 껴안아 주고파. 지난 바람 부는 날, 나비 한 마리의 열심인 날갯짓을 보았어. 고약한 마파람을 뚫고 어기영차 날던 나비가 꽃에 다다랐을 때 나비는 더욱 빛나고 고운 날개빛을 띠더라. 낮에도 별은 뜨는데 보지 못하는 것뿐. 나비를 무척 좋아했던 ‘울 오마니’ 생각을 했어. 하늘 보금자리 찾아간 엄마. -
임의진의 시골편지 그래잉 저래잉 담 넝쿨 하얀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학교 댕겨올 아이들도 없는데 종일 골목에서 피어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다른 학교가 있긴 해. 노인대학이라던다. 이런 우스개 얘길 들었지. 노인대학에서 ‘영어회화 기초반’에 입학한 할배가 집에 돌아와 할멈을 콕 찌르며 저녁 인사 “우리 할멈~ 꾹 이쁘닝.” 그러니까 할매가 “먼 주책이요잉. 쭈글탱이가 머가 이쁘다고 놀리요잉잉~” 등짝 스매싱. 아침에 할배가 일어나서 “국 모닝~” 아침 인사. 할매 왈 “국이 머냐고라? 된장국이재 머여. 생일도 아닌디 미역국 끓이까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