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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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넋두리 노래잔치 한 번은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지낸 가수 양병집 샘과 얘길 나눴다. 밥 딜런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우리말로 옮기신 분. 내가 2절을 새로 만들어 노래를 녹음하게 되었는데, 부탁을 겸하여… 천국에 가실 때까지 종종 안부를 여쭙곤 했다. ‘소낙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도 양샘이 번안한 곡. 장마통에 노래 ‘소낙비’가 쏟아진다. “무엇을 들었니 내 아들아. 무엇을 들었니 내 딸들아. 나는 비 오는 날 밤에 천둥 소릴 들었소. 세상을 삼킬 듯한 파도 소릴 들었소. 성모 앞에 속죄하는 기도 소릴 들었소. 물에 빠진 시인의 노래도 들었소.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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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몰강물 장마가 시작되자 목마르던 수국이 양껏 물을 마신다. 비에 쓸려나갈 집도 아니고, 비에 떠내려갈 ‘빼빼시’(마른 몸)도 아닌데 어찌 지내냐 걱정들을 하고 그래. “암시랑토 안해~” 답한다. 그럭저럭 정도가 아니라 단호하게, 아주 괜찮다는 말을 이 동네에선 그리한다. “도농놈의 자슥들~ 얼척이 없어가꼬 말이 안 나오네잉” 뉴스를 째려보던 아재가 넘기는 탁배기 한 사발. 찌륵찌륵 비도 내리고 부추전은 구수한 냄새. 인생 탁한 물이 흐르는 듯하면 밝고 고운 벗님 만나서 어둠을 씻는다. 여기선 맑은 물을 ‘몰강물’이라고 해. 몰강물이 하늘에서도 내리고 땅에서도 흐른다. 곽재구 시인의 ‘참 맑은 물살’ 그 시처럼 맑은 물이 쏟아진다. “참 고운 물살 머리카락 풀어 적셨네 (…) 아무 때나 만나서 한 몸 되어 흐르는 눈물나는 저들 연분홍 사랑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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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황금 만능 딸이 결혼을 하겠다며 굴뚝새만큼 작은 남자친구를 데려왔는데 힘이나 쓸까 미덥지 않았던지 아버지가 딸에게 물었다. “저 친구 부모님은 경제 사정이 좀 어떻다니?” 그러자 딸이 대답. “그러니까요. 그 집에서도 우리 집 그 부분이 가장 궁금하시대요.” 경제 사정 황금 두꺼비는 모르겠고 황금심은 좀 아는데, 당신이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나요, 알아주어야 하는 옛 가수 황금심. 대표곡 ‘알뜰한 당신’을 들으면서 여름날 무료함을 나른함으로 바꾸는 중이다. 집에 어디 황금은 쥐꼬리도 없지만 황금심의 옛 노래가 있으니 안심이 된다. 지금부터 딱 백년 전 그때 그 시절, 먼 길을 찾아왔는데 그 사정을 몰라줘. “울고 왔다 울고 가는 서러운 사정을 당신이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나요. 알뜰한 당신은 알뜰한 당신은 무슨 까닭에 모른 척하십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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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조용한 코끼리 교향곡이나 록밴드 음악을 듣는 일 빼곤 대체로 조용하게 사는 편. 뾰족하게 굴며 스포츠카를 방방 대는 이웃이 있질 않나 저 건넛집엔 누가 드럼을 배우는지 밤낮 두들겨 팬다. 악기 종류가 색소폰에서 바뀐 모양, ‘삑사리’가 장난 아니다. 하루 몇 차례 ‘산불조심’ 안내방송 차량도 요란하다. 산동네 살면 숯불만 피워도 방화범 취급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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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도둑과 수도승 예일대를 나와야 출세를 하는가 봐. 예일대란 그 예일대가 아니라 ‘예전’에 하던 ‘일’을 ‘대대’로 이어가는 출신 말이다. 진짜배기 예일대 졸업생도 입맛에 맞은 직업 구하기가 보통 일 아니지. 또 하버드대를 졸업해서 최근에 행복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된 그 친구 말고는 못 봤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스님도 하버드 출신인데 능력이 되지만 승용차 하나 맘대로 못 타. 서울에 사는 스님이나 천주교 수사님을 가리켜 수도에 산대서 수도승 수도자라 부른단다. 산골이나 바닷가에 사는 분들보다 매연을 좀 마셔야 하는 거 빼고는 형편이 대체로 나아. 사람 많은 곳에 맛난 빵이 있고, 외롭거나 우울할 틈도 없지. 성직자도 사람이라서 고립되면 우울증을 앓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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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국룰 삼겹살 말고 오겹살. 우리들 몸에도 있다. 나잇살이라 불리는 뱃살이 생기면 잘 안 빠져. 그렇다고 비만하지는 않지만 경각심에서 그렇다는 거다. 지실마을 사는 누이가 고기를 구워준다고 해서 친구들이랑 방문. 요들린(스위스 민요 요들을 부르는 여성)인 누이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주로 토끼풀 상추를 위주로 저녁 만찬. 얼짱이나 몸짱은 틀렸고 맘짱이면 족하다 하면서들 오겹살 푹푹 찌는 소릴 외면하는 시간. 인생은 함께 먹고 노래하며 웃을 때가 가장 행복해라. 그래도 꼭 식사 자리에서 살 떨리게 살 이야길 꺼내는 이가 한 명씩 있다. 잘 먹고 놀던 사람 우울하게 겁박하고 면박 주는 안기부 형사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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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나이롱환자 어디서 강연을 하는데 한 젊은이가 “체중조절 좀 하고 오께요” 한다. 알아듣지 못해 무슨 소리냐 물으니 화장실 가보겠단 소리래. 나이가 먹은 것도 서러운데 위트 있는 말을 꿀꺽 알아먹지 못하고 감도 매우 물러졌다. 어르신들이 인생의 후회를 보통 3가지 들던데, 좀 더 참을 걸 버럭 화부터 낸 점, 좀 더 베풀 걸 옹졸했던 심보, 좀 더 즐길 걸 일벌레로 지나온 세월이 그것이다. 여기에 보탤 게 수도 없이 많은데, 공부할 때 할 걸 기회를 놓친 일, 유머를 장착하여 웃고 살 걸 마냥 진지충, 고약한 성질머리와 안하무인으로 악명을 떨치는 자들이 장수도 하니 적어도 이 땅은 하느님이 부재한 요지경 세상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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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작은 불상 부처님오신날 축하 현수막을 내건다거나 연등을 하나쯤 밝힌 교회당이 있다. 과거 내가 시골 교회에 목사로 부임해 주변 절집 스님들과 친하게 지낸 일들, 낯선 풍경이라 사탄 연탄 번개탄 소리를 얻어들었다. 세상살이 눈으로는 절집이나 교회나 동종 업계이니 피차간 잘되면 좋은 일. 목사가 관대하고 그릇이 크면 신자들 말수가 고와지고 표정도 편안해진다. 적개심을 키웠다간 결국 그 칼끝이 제 몸에 쓱 박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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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뜨내기 요샌 잘 안 쓰는 외래어 ‘마도로스’, 바다에서 배를 모는 선원이나 선장을 가리키는 말.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은 기본이고 그녀가 부른 ‘마도로스의 꿈’도 애정한다. 노래풍이 구닥다리더라도 구수하고 재밌어. “뜨내기 몸이라서 꿈도 뜨내기. 비 나리는 포구에 밤도 깊어서 창 너머 흘러드는 휘파람 소리가 야속히도 내 꿈은 흘러갔구나. 뜨내기 몸이라서 님도 뜨내기. 삼베적삼 재롱에 노니는 님 산 아래 다시는 떠날 건가. 굳은 맹세도 한 방울의 물거품 부질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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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가랑비야! 이슬비, 보슬비, 가랑비가 촉촉해. 노랫말 속 가랑비를 아는가. 가수 양희은의 대표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김민기 곡 말고 김정신이 작사·작곡한 이 노래도 한때 방송 금지곡.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단 말인가. 가사가 부정적이고 퇴폐적이다.” 당시 금지 사유란다. 그저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였는데. “가랑비야! 내 얼굴을 거세게 때려다오. 슬픈 내 눈물이 감춰질 수 있도록…” 쉬운 기타 코드 때문에, 통기타를 배우는 초짜들이 애창했던 노래. 봄비 내리고 이 노랠 부르다 보면 ‘아침이슬’까지 철야 밤샘을 하게 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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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철부지 목사 시절을 돌아보면 ‘완죤’ 철부지 시절. 한번은 할매 집사님이 호박 구덩이 좀 파달래서 알았소잉 했는데, 좀이 아니라 엄청 많이 파라는 지시. 이걸 다 수확해서 뭐 할 거냐 했더니 호박죽 쑤어 교인들이랑 나눠 먹자고. 욕심이 많은 분이라서 한 덩어리나 주시면 생큐지. “그만 팝시다. 아따메 쓰트레스 쌓이요잉” “목사님! 시방 수가 틀리다고라우? ‘수 틀리믄’ 수를 바꿔야재. 거쪽으로 말고 요쪽으로 파시요잉.” 집에서 책이나 읽고픈 사람을 불러다가 잘 부려먹고, 할매는 간만에 눈물 대신 미소를 짓더니 밭도랑을 춤추며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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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춘곤증 대구사람들은 게으름뱅이를 ‘겔배이’라 한다지. 그곳 변두리가 고향인 후배를 엄마가 ‘겔배이 지지바’라 부른대. 잠꾸러기는 ‘자부래비’, 연결하면 ‘겔배이 자부래비 지지바’. 엄마랑 둘이 사는 그녀가 노상 얻어 듣는 소리란다. ‘오라바이~’ 엥기며 애교를 뿌리면 쬐끔 귀엽다. 수치는 잠깐이요 이익은 영원해. 땅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심정으로, 최근 쪽팔리는 일을 계획했다가 그냥 그만뒀다. 그래 밥은 내가 사고 커피는 그 친구가 사는 것으로 쫑파티. 이후 춘곤증을 견뎌보려 커피에 샷을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