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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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짝사랑 “나 봄 타나 봐요.” 봄앓이하는 분들이 많아. 외롭디야~. 뭔 똥차 앞에서 방귀 뀌는 소리. 난 살짝 모자란 반거충이(야무지지 못한 사람) 같아. 성격조차 모나고 까슬까슬해. 주머니 사정이 언제는 좋았더냐. 눈먼 돈 생기면 책과 음반을 친구 삼아. 길을 잃으면 운명처럼 왼쪽으로 가. 평생 외로운 좌파 아웃사이더. 슬픈 노래에 울면서 그나마 잔잔하게 살 수 있었던지도 몰라. 분주한 ‘인싸’나 ‘그럴싸’보다 친구가 적으면 또 어때. 녹색 사막 골프장은 근처에도 안 가. 지난 봄날 앞뜰 청보리밭이 내 눈엔 컨트리클럽. 마당에 공을 던지면 우리 개들이 다 찾아서 물어와. 도무지 어떤 게임도 할 수가 없어. 스스로 왕따 되어 혼자서 휴일을 보내기도 해. 누군가 꼭 봐줬으면 하고 피는 봄꽃이 핀다. 외롭게 핀 꽃들에게 반가운 친구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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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부럽지가 않어~ 장맛비인가 꾸물꾸물하덩만 반짝 볕이 나더니 벚꽃이 만개했다. 장독대 장이 떨어졌나 매우 심심하고 시시하던 차였어. 맘이 설레고 쿵쾅거리네. 벚꽃이 피면 인생들 얼굴도 따라서 핀다. 벚꽃 피는 날 벗들 모여 노는 걸 ‘벚꽃놀이’라 하지. 꽃놀이를 누가 마다하리오. 엊그젠 섬진강 모래톱 제월섬에 들러 만보기를 켰다. 2000보까지 살짝 보다가 말았어. 요새 그 숫자가 때아닌 밀레니엄 소동만 같아라. 2000년 즈음, 휴거다 종말이다 난리굿을 펼치던 자들. ‘휴가’도 ‘연말’도 없는 대대손손 노동자들이 무슨 ‘휴거’람. 인간들아~ 휴가부터 가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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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파김치 음치라고 부끄럽거나 괴로워할 일이 아니야. 여러 장점이 있는데, 노래방 출입을 즐기지 않으니 일단 돈이 굳어. 그 돈으로 쇠고기 사 먹고 잘 살아. 고성방가를 시도할 일도 없으니 경찰서에 끌려갈 일도 없어. 또 싸움질 장소에서 실렁실렁 콧노래를 부르다가 괜히 얻어터질 일도 없다. 모임 자리에 노래를 한 자락 해보라며 청하질 않을 테니 곤란을 겪을 일도 없고. 또 있는데, 엥, 까먹었다. 아무튼 음치도 있어야 가수도 있는 법. 국회의원 한번 해보겠다며 못 부르는 노래를 눈의 흰자를 내보이면서까지 ‘무조건 무조건이야~’ 부르는 장면은 어이없고 재밌다. 음치도 물론 정계 진출에 하등 지장은 없다만 표는 좀 깎아 먹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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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사랑의 계절 개굴개굴 개골개골~ 잠에서 깬 개구리들의 노래방 마을. 조팝나무 가지를 꺾어서 개구리를 잡아먹던 시절이 있었지. 소금구이 치킨이 없던 시절엔 소금구이 개구리가 요깃거리였다. 곡괭이를 이용해 개울 돌을 들추고 잠든 개구리를 잡기도 했어. 덤으로 가재도 슬쩍. 개구리가 양껏 안 보이면 애먼 가재로 불이 붙어 개구리 대신 가재잡이 놀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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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쇠똥구리 말똥구리랑 쇠똥구리는 이웃사촌. 그중 말똥구리는 예민한 성질인가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항생제를 먹은 말들이 싼 똥을 굴렸다가 그만 변을 당한 모양. 한번은 몽골에서 말똥구리 200마리를 수입했다던데, 녀석들 안부가 궁금해. 한편 쇠똥구리는 어떻게든 버티는 중인가 봐.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덩만 참말 그러한가. 쇠똥구리는 똥을 둥그렇고 야무지게 뭉쳐 삐뚤빼뚤 밀고 간다. 덩어리가 약간 촉촉할 때 훨씬 잘 굴러가. 솜털이 가슬가슬한 참다래나 복숭아처럼 둥그런 똥덩어리를 발차기로 굴리는 걸 보면, 저는 힘들겠으나 엄청 귀여워. 한정반 리미티드 에디션이 아니라 ‘내 밑으로 오디션’ 자랑대회를 하는 듯 뽐내면서 어기영차. 지나가던 개 한 마리 멈칫. 개들 사이에서 공중화장실 격인 전봇대에 실례를 한 뒤 쇠똥구리를 쳐다보는데, 똥냄새에 컹컹 뒷걸음질. 똥을 굴리기를 참말 잘했지 안 그랬음 개에게 물릴 뻔. 쇠똥구리에게 학삐리(?)들이 시시포스의 신화를 들려주곤 하는데, 웃기지 말라고 그래. 쇠똥구리에게 똥 굴리기는 형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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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새출발 미성을 가진 김동률의 노래 ‘출발’이 듣기 좋은 봄날.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아기 병아리떼처럼, 자~ 출발이다. 기지개를 켜고 뜨락에 나오면 나도 같이 출발이다. 하루는 맹구가 공부하기로 맘을 먹고 책을 꺼내 들었대. 친구가 맹구를 보더니만 “깜딱이야~ 너 시방 들고 있는 게 책? 니가 책을 본다고?” “응~ 나 이제 새출발이야~” 친구는 놀라서리 “살다살다 별일을 다 보네. 근데 책 내용이 뭐야?” 맹구가 갸우뚱하더니 “등장인물이 너무 많구먼. 숫자들도 헷갈리고. 끝까지 다 읽으면 이해가 되겠지 뭐.” 친구가 책을 빼앗아 표지를 펼치는 순간, 앗! 전화번호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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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춘삼월 정월대보름 그날 밤, 귀밝이술 나누고 달구경을 하려는데 먹구름의 훼방. 그래도 “귀 밝아라~ 눈 밝아라~” 덕담을 나눴지. 노씨 문중에 가장 술을 잘 잡수시는 분 성함은 노상술. 어려서 상민이, 상열이, 상국이, 그런 이름들 속에 상술이도 있었지. 영국은 막걸리트 대춰, 프랑스는 잔 자크 부으숑, 일본은 도도 마사부네, 술 사주는 친구는 도느로 똥다까. 귀가 밝아지는 이름들이오. ‘이미자, 강수향’의 듀엣곡 ‘춘삼월’ 찾아 듣고 앉으니, 유치찬란 내레이션이 배를 쥐게 해. “가자~ 양떼가 뛰노는 벌판을 넘어 또 다른 행복의 목장을 찾아. 그대와 둘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 가자. 임과 나의 오붓한 행복의 동산으로 가자, 가즈아~. 춘삼월 꽃이 피면 봄놀이가 그립고 구시월 낙엽 지면 단풍놀이 그립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가는 봄에 오는 봄에 내 청춘이 늙어가도 무정타 한탄 말고 얼씨구절씨구 놀잔다~” 남성가수 강수향은 ‘호반의 벤치’를 비롯해 듀엣곡에서 걸쭉한 목소리를 뽐냈던 옛 가수. ‘아리랑’이 담긴 노래를 각별히 사랑하는데, ‘춘삼월’도 그중 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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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방실방실 버릇, 습관이 잘못되면 인생이 ‘삐딱선’을 타고 얼컹덜컹 흔들리게 된다. 버르장머리를 이쪽에선 ‘버르젱이’라 하는데, 보통 나이 어린 자를 꾸짖을 때 ‘저거 버르젱이가~’ 어쩌고들 한다. 하지만 그 반대일 때가 사실 많다. 버릇이란 시간의 누적인지라 늙어가며 뿌리가 깊고 표출도 잦게 마련이지. ‘내가 평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인데’라고 화를 뿜는 자가 보통 자주 성질머리를 부리는 스타일. 아래는 나이 들어 경계해야 할 잘못된 버릇 3종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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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부부싸움 “그카지 말고 문 끼라 바라.” 싸우고 방문을 걸어 잠그자 애걸하는 소리. ‘만다꼬 싸워가꼬’ 그러는지 원. 무섭게 눈알을 부라리며 싸우는 부부들, 언성을 높여 소리를 꽥 지르면 사람 잡아먹는 식인종도 무서워 도망가겠다. 벽마다 커다랗게 확대해서 뽑아놓은 애들 사진과 부부 사진은 다정도 해라. 식인종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사진작가’라지. 사람을 콱 ‘찍고’, 어두운 곳에 ‘가두고’, 물에 ‘담그고’, 벽에 ‘말리고’, 가위나 칼로 쓱쓱 ‘자르고’ 그야말로 후덜덜이야. 가족사진마다 전우애에 불타는 부부들. 있을 때 잘한 추억의 사진이 요래 남았구려. 명절이면 할머니가 배를 깎아. 할머니에게 만만한 배란 할배. 저 할배 영감탱이 하면서, 쓱쓱 칼날을 세우며 ‘있을 때 잘해~’ 협박을 한 차례 더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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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이러기야 그 가을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갔나. 꿈 찾아 가버린 기러기 말고 이곳에 눌러사는 ‘이러기’가 있지. 사람들은 오늘도 ‘일억이야’ 로또를 사고, 기러기야 말고 ‘이러기야’, 해찰하고 한눈팔면서 알콩달콩 살아간다. 희망이 어떤 경우 망상, 욕심일 때도 있겠으나 로또 한 장 사며 ‘일억이야’ 꿈꾸면서 웃고, 서민들은 그래 커피값 무서워 별다방 못 가니까(?) 식당에 딸린 자판기 커피에 흡족한 미소. 지갑에 접어 간직한 일억의 꿈은 마술사의 마법이 필요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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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우웨이 가끔 인간도 곰처럼 겨울잠을 잔다면 참 좋겠단 생각을 해봐. 동면하고 깨어나 삼일절 만세를 부르면서 싸돌아다니고파. 겨울에 달리지 않던 말이 봄에 푸른 들판을 내달리듯. 무위도식을 나쁜 뜻으로만 여기는데, 너무 조이고 바지런한 인생을 상찬하는 세태 때문이다.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먹는 일’은 사실 인생 모두가 바라는 바 아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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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까치발 아이 시간, 때를 가리켜 요쪽에선 ‘참’이라고 쓴다. 이번에 뭘 하겠다 할 때 ‘이참에 할라요’, 저번은 ‘쩌참에~’. 시장통에서 감자를 고를 때, “쩌참에 거슨 알이 굵고 실하듬마 이참엔 쥐방울만 해부요. 어따가 꼼쳐(숨겨)부렀소?” 따질 때도 ‘아참 쩌참’ 갖다가 붙인다. 밥이나 술을 먹을 때 ‘새참, 밤참, 술참’ 하는데, 여기서 참도 때를 가리킨다. 새벽은 새복참, 아침은 아적참, 초저녁은 해거름참. 참이 찰지게 달라붙어 입말을 구성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