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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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의 인권수첩 ‘정보경찰’ 없애야, 경찰도 정권도 산다 정보경찰은 희한하다. 경찰의 임무를 다룬 ‘경찰법’ 제3조에는 ‘치안정보의 수집·작성·배포’라는 규정이 있다. 정보경찰의 임무다. 문제는 뭐가 치안정보냐는 거다. 보통은 범죄정보를 떠올리겠지만 경찰이 말하는 치안정보의 개념에 범죄정보는 없다. 범죄정보는 경찰청 정보국이 아니라 경찰청 수사국 범죄정보과 같은 곳에서 다룬다. 사이버 범죄정보라면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서, 국제범죄정보라면 외사국에서 다룬다. 범죄정보를 뺀 치안정보라는 게 무엇일까. -
오창익의 인권수첩 ‘민주주의’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 수사권 조정안이 신속처리법안에 포함되자 검찰이 갑자기 포문을 열었다. 검찰총장은 외국 방문을 취소하고 급히 돌아왔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진행했던 사법개혁 논의를 정면에서 거부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정부 차원의 논의를 계속했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차원에서의 논의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부 차원이든 국회 차원이든 검찰이 의견을 개진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니 뜬금없는 반발이다.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나서서 검찰의 주장을 경청하겠다고 했지만, 반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떤 관료도 이렇게까지 오만한 적은 없었다. -
오창익의 인권수첩 김원봉조차 독립유공자가 될 수 없다면 여러 운동이 있었지만 독립운동은 질적으로 전혀 달랐다. 헌신과 희생이란 말을 자주 쓰지만 그 말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독립운동가들은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했다.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 또는 인권운동과 달리 어디든 기댈 구석조차 없었다. 자신은 물론 가족의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연일 승승장구하던 제국주의 일본과의 싸움은 승산 없어 보였고 독립은 몽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풍찬노숙도 끝없이 반복했다. 조선 최고의 갑부였지만 나라를 빼앗기자 만주로 떠나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던 이회영의 형 건영은 상하이에서 굶어죽었다. 당장의 불행은 물론 자식들의 미래까지 불행해질 게 뻔한 상황에서 독립운동에 나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오창익의 인권수첩 교정교화 위해 가석방 활성화해야 형벌은 범죄자의 죗값을 고통으로 치르게 하는 거다. 가장 확실한 고통은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감옥은 자유를 제한하여 고통을 주도록 설계된 제도이니 갇힌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고통을 받는다. 신체의 자유 제한에는 가족 관계의 단절, 생계 박탈, 사회적 평판의 추락 등 따라붙는 고통 또한 만만치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루 평균 5만4774명이 감옥에 갇히는데, 재판을 받고 있는 미결구금자는 1만8867명으로 전체 수용자의 34.5%다. ‘불구속 재판’이라는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면 상당한 숫자를 줄일 수 있다. 예산도 줄이고, 피고인의 방어권도 보장하며 진짜 범죄자인지를 가리기 전에 형벌을 주는 왜곡도 막을 수 있다. 구속은 증거를 없애거나 도망칠 것 같은 사람을 잡아두기 위한 이례적 절차이지만, 현실에서는 유무죄 판단보다 더 중요한 표지가 되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나쁜 범죄자, 기각되면 죄가 없거나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된다. 간편한 도식이다. -
오창익의 인권수첩 ‘5·18 망언’ 자유한국당은 전두환의 길을 따르나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언동, 근거 없는 모략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쏟아내는 섬뜩한 말조차 매번 반복하는 통과의례라 여길 수도 있다. 집권을 목표로 서로 겨루는 사람들이니 정당 사이의 다툼과 간극은 일상이라 해도 좋다. 서로 다른 의견을 빗대면서 공동체를 발전시킬 지혜를 구할 수도 있고, 갈등 자체가 민주주의의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오창익의 인권수첩 19세기적 발상, 광화문광장 개발 파리를 들었다 놓은 사람은 나폴레옹 3세였다. 제2공화국의 대통령이었다. 제2제정의 황제가 되었지만, 삼촌 나폴레옹 1세의 후광 말고는 달리 설명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파리가 프랑스의 심장이라며 ‘파리 대개조’라 불리는 도시개발을 추진했다. 1853년부터 1870년까지 17년 동안 도시개발을 추진했다. 좁고 굽은 골목길은 넓고 곧게 바꿨고, 상하수도까지 말끔하게 손봤다. 핵심은 보나파르트 왕가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었다. 교차로마다 자기 동상을 세우고 그 중심에는 삼촌의 위업을 과시하는 개선문을 두었다. 곧게 뻗은 길은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보는 것 같은 바리케이드 시가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민중들의 시위에 대응하고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는 게 속셈이었다. 파리 대개조로 가난한 프롤레타리아는 파리에서 쫓겨났고 부르주아만의 도시가 되었다. 물론 지금의 파리는 아름답다. 파리 대개조의 후속 작업이 20세기 초까지 이어졌기 때문이고, 작가만이 아니라 문화부 장관으로도 탁월했던 앙드레 말로 등의 부단한 노력이 함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오창익의 인권수첩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 세밑에 이목이 쏠린 곳은 국회였다. 유치원 3법은 어찌되는지, 김용균씨의 참담한 죽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있을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호소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기준을 확립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여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하고 증진하자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세계 최악의 산업재해 국가가 거듭날 계기를 만들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이 법이 개정되어 산업재해 사망이 줄어든다면, 그건 온전히 김용균과 어머니 덕분이다. -
오창익의 인권수첩 KT 통신대란과 배부른 집안싸움 “세월호 사건을 우려먹은 이번 정부가 한 게 뭐가 있나.” 국회의원 최연혜의 말이다. KT 통신대란을 꼬집은 말이다. “국가기간시설은 전시나 테러의 1순위 대상이고, 특히 북한의 1순위 타격 대상” 같은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 세월호에다 북한 테러까지 들먹이면 그 말을 경청하긴 쉽지 않다. 꼭 언어의 품격을 따지자는 건 아니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갑자기 교양인이 되어 한 놈만 팬다는 천박한 이야기를 멀리하고, ‘야지·겐세이·뿜빠이’ 같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
오창익의 인권수첩 경계를 넘어 국가가 단순히 안보와 치안만을 담당하는 시대는 진작 끝났다. 이젠 국민의 삶 구석구석에 국가의 역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헌법도 국가운영의 틀을 제시한다는 차원보다는 국민의 삶의 원리를 규정한다는 의미로 거듭나고 있다. 독재시절에는 그저 대통령을 몇 번이나 할 수 있다거나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하겠다는 독재자의 의지만 담긴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70조는 다만 하나의 기준을 제시할 뿐이다. -
오창익의 인권수첩 혐오범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축구해설자 이영표는 아내가 분만할 때 ‘주님이 주신 고통’을 느끼라며 무통주사를 거부했단다.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왜 유아적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겠다. 성서를 잘못 읽은 탓이고, 전형적인 신앙의 왜곡이다. 그래도 이영표는 아내에게 출산의 고통을 강요하지는 않았단다. 폭력이나 위협도 없었고, 다만 권유했을 뿐이고 아내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단다. 부부 사이의 일이니 어쩌면 남이 뭐라 할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 아내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
오창익의 인권수첩 여군의 자리는 어디인가? 2015년 7월. 경북 영천역에서 여성의 치마 속을 불법촬영하던 남성이 붙잡혔다. 현행범이었다. 범인은 육군 대위, 육군 3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한국 육사에다 미국 육사까지 나온 ‘인재’였다. 이런 경우 일벌백계가 답이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평등 교육,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을 강화했어야 했다. 하지만 3사관학교는 거꾸로 움직였다. 조직, 더 정확하게는 조직의 책임자인 지휘관의 앞날을 걱정했다. 이들에게 급선무는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피해자와의 합의가 중요했다. 사건을 감추고 파장을 줄이는 게 관심의 전부였다. -
오창익의 인권수첩 오늘도 조용한 국가인권위원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시민참여형 개혁기구는 경찰청이 만든 경찰개혁위원회였다. 새 정부 출범부터 경찰개혁위원회 출범까지 달포밖에 걸리지 않았다. 구성도 남달랐다. 위원들은 모두 외부 인사였다. 경찰관이나 전직 경찰관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고위직 경찰관들은 갑자기 낯빛을 바꿔 개혁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처구니없고 속은 쓰렸지만, 그것도 촛불의 성과라 여기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