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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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정의는 너의 아이로부터 <더 글로리·사진>가 화제다. 복수극이다.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들에게 비참한 폭행을 당했으나 학교, 경찰 심지어 친모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했던 문동은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그리고 자신을 무자비하고 집요하게 괴롭혔던 무리의 우두머리 박연진의 딸 담임이 되어 나타난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의 담임이 당한 만큼 돌려주겠노라 선언하자 가해자는 난생처음 불안을 경험한다. 다행히 <더 글로리>의 동은은 아이에게 체벌이나 폭력을 가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이를 볼모로 잡고 있는 효과만큼은 분명하다. 제아무리 천하의 나쁜 사람이라 해도 자식을 인질로 잡힐 땐 작아지나 보다. 작가 김은숙이 노린 지점도 바로 이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식을 ‘맡긴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을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평범한 사람들의 새로운 역사 영화를 위해 돌아보니, 2022년 한 해, 많은 역사 영화들이 개봉했다. 여름 극장가에 <한산>이 있었고, 소현세자의 죽음을 그린 <올빼미>(사진)가 11월 개봉했고, 12월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다룬 뮤지컬 <영웅>을 영화로 개봉한다. 20세기 초 한국 문화계에 등장한 신조어 팩션(faction)은 역사적 사실에 작가적 상상을 보탠 이야기를 지칭했다. 이순신이 무과 시험에서 낙방한 상상을 그린 <천군>과 같은 소품들도 있었지만, 한 광대를 ‘너(爾)’라며 특별히 호명했다는 실록 한 줄에서 출발한 <왕의 남자> 같은 명작도 있었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괴롭더라도 기억해야 할 너의 이야기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 숫자처럼 일상화되어서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하고 이 사회는 본래부터 저러해서, 저러한 것이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죽음조차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나와 내 자식이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행운에 감사할 뿐, 인간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해간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표현의 자유를 말할 자격 앞으로 아카데미에서는 다양성을 갖춘 영화만이 작품상 후보가 될 수 있다.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이를테면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참여 여부가 작품상 후보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배우처럼 눈에 띄는 영역뿐만 아니라 스태프, 마케팅 홍보와 관련된 외적 영역과 영화적 묘사나 주제까지 살핀다.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영화는 점차 아카데미에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떳떳한 거래를 하는 진짜의 세계 윤종빈 감독의 영화 세계는 유사 가족의 재해석이다. 진짜 아버지와 가짜 아버지, 진짜 형제와 가짜 형제. 한국형 누아르, 갱스터 영화는 브라더, 형님, 아버지, 누님과 같은 유사 가족관계로 위장한다. 카르텔에 비유되는 권력 조직 대개가 그렇다. 조직폭력배나 깡패 집단만 그런 게 아니다. 힘 많은 합법적 권력 집단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남이가’ 정신 아래 형, 동생, 형님, 아우, 아버님, 어머님, 누이, 동생 등의 끈끈한 비밀 결사로 묶이는 것이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미완의 과거와 영화적 화해 ‘내부자들’의 협잡꾼들 단죄와‘암살’처럼 밀정을 처단하는 건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닐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길믿는 일이란 정말로 쉽지 않다 약산 김원봉은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2015)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안윤옥, 염석진처럼 허구의 이름인 줄 알았는데, 조승우가 연기한 김원봉은 실제 의열단장 김원봉이었다. 조선독립운동사가 늘 사해평화주의로만 이해되던 시절, 의열단의 행적 자체가 뒷전에 밀린 바도 있지만 결국 북에서 생을 마친 약산의 생애가 그 이름을 낯설게 한 이유였을 것이다. 우리 독립운동사가 복잡다단한 이념의 파도 속에서 반쪽짜리이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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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안나들, 그리고 법의 울타리 리플리 증후군의 장본인이기도 한 리플리는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많은 리플리씨>의 주인공이다. 리플리는 타인의 삶을 훔치기 위해 거짓과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하이스미스의 소설이나 그것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자신보다 더 나은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본능적 갈망이다. 사회적 관계와 상대적 차별에 의한 산물이라기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지만 숨기고 사는 생래적 질투로 보는 것이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고독하고, 믿음직한 품위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사진)의 영어 제목은 ‘Decision to leave’이다. 영어 제목을 먼저 봤다면 아마도 대부분 ‘떠날 결심’이라고 번역할 듯하다. 사전을 찾아보니, ‘헤어지다’는 맺은 관계를 끊고 따로 갈라서는 것을 뜻한다. ‘결심’은 어떻게 하기로 자신의 뜻을 확실히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떠나다’는 어떻게 설명되어 있을까? 떠나는 것은 벗어나서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게 되는 것이란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왜 헤어질 결심이 떠날 결심으로 영역되었는지 알게 된다. 관계를 끊고 갈라서려고 했지만 결국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게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다가서는 하나의 열쇠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상투어에 반대함 “남편이 산에 가서 안 오면 마침내 죽을까 봐 걱정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여주인공 서래가 이렇게 말하자, 형사 해준은 의심한다. ‘마침내’라니. 서래는 외할아버지가 한국인 독립운동가인 중국인이다. 박찬욱 감독은 서래 역을 맡은 탕웨이의 한국어가 문장도 완벽하고 정확해서 더 독특했다고도 말했다. ‘마침내’라는 단어에 대한 이물감은 한국어 사용자만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다. 만약 영어로 번역한다고 하면 그 어감과 문맥이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을 듯싶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행복한가요? 행복한가요? 이런 질문을 일상에서 던진다면 위험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왜 사니, 행복하니 같은 존재의 근본에 대한 질문은 영화나 드라마 속 대사로나 등장할 법하니 말이다. 하루하루의 일상 가운데서 묻기에, 행복이란 무척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다. 행복하냐는 질문은 뒤로한 채, 우리의 일상은 주로 이거 얼마예요? 식사는 했어요? 언제까지 끝내야 해요?와 같은 생계형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역사가 결코 우리를 파괴할 수는 없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이다. 문학사상의 한국어판 <파친코>에는 이 문장이,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낙제했을 때 쓰는 단어인 페일(fail)이 망치다로 번역된 것이다. 전문가가 번역을 했으니 틀림없겠지만 어쩐지 거꾸로 번역을 한다면 망치다라는 표현에 루인(ruin)이 먼저 떠오른다. ‘루인’은 짓밟는 폭력을 연상시킨다. 실패, 낙담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 페일(fail)의 폭, 어쩌면 소설 <파친코>의 힘은 바로 이 진폭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환상 속 영웅과 비루한 현실 언젠가 원하는 것을 갖는 비극과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비극에 대해 글을 쓴 바가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말하자면 원하는 것을 갖게 된 비극을 보여준다. 평생 늙고 싶지 않은 욕망, 죽고 싶지 않은 욕망은 실현 불가능하다. 그런 불가능한 욕망이 문학과 영화, 예술에 남는다. 영원히 늙지 않는 초상화 속 인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