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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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민주주의와 한국적 클리셰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 선보이자마자 보수적 언론사 몇몇은 우려의 글을 실었다. 우려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잔혹성에 대한 걱정이고 두 번째는 과도함에 대한 주저함이다. 잔혹성과 과도함은 연관되어 있다. 잔혹성은 허리를 꺾고, 내장을 꺼내 먹는 식의 야수적 표현을 향한다. 보기에 불편한 것이다. 상상이라지만 묘사된 좀비의 폭력이 익숙했던 것보다 과한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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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온라인 커뮤니티 전성시대 과거 대선에서는 직능단체가 주최하는 간담회나 토론이 매우 중요했다. 얼굴을 맞대고 각각의 요구를 전달할 수도 있고, 단체의 유효 표수로 업계의 불편함을 개선할 기회로 삼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이 직능단체라는 단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직능단체가 직업과 직능, 직위별로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라면 지금은 그 이익을 대변할 의견 집단이 온라인 커뮤니티로 대체된 듯싶다. 주식·경제 채널 ‘삼프로 TV’나 게임 관련 온라인 채널에 주요 대선 후보들이 방문한 이유 역시 비슷하다. 대중과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것도 이런 특성화된 온라인 채널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활동과 반응이다. 대선 후보들은 그동안 취향이나 취미 공동체로만 여겨지던 온라인 커뮤니티를 방문하고, 거기에서 민의의 추세를 짐작하며 바로 그 온라인 커뮤니티 담론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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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척하는 삶의 고통과 슬픔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두 작품 <패싱>과 <파워 오브 도그>는 모두 “척”하는 삶을 주제로 삼고 있다. <패싱>은 흑인이면서 백인인 척 살아간 여성의 이야기이며 <파워 오브 도그>는 성소수자임이 분명하지만, 카우보이 마초로 살아갔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척’하는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가면은 사회가 씌웠다고 보는 게 옳다. 미국 상류, 주류 사회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사실상 모순어법이다. 상류, 주류, 흑인이라는 게 한 문장 안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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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일과 죽음의 사회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되고 난 후 뉴스는 온통 두 사람 이야기뿐이다. 몇몇 다른 기사라고 해도 또 대선에서 파생된 것들이 대개다. 레거시 미디어라 불리는 지면, 지상파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들, 심지어 유튜브에서도 정치이야기가 넘친다. 코로나19를 길들이며 이전의 일상을 회복해가려고 노력 중이지만 여전히 극장가는 한산하다. 이 한산한 극장가에 두 편의 영화가 십시일반의 노력으로 걸렸다. 시간차를 두고 선보인 두 작품은 <노회찬 6411>과 <태일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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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오징어 게임’ 열풍에 대한 직관적 분석 1 <오징어 게임> 열풍이 쉽게 식지 않고 있다. 해외 유수 언론에서는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서 거듭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의 문화콘텐츠 전반에 대한 분석에 나섰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영화 <기생충> 등 연이은 한국 문화콘텐츠의 성공이 이제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불발탄처럼 어쩌다 터진 게 아니라 잘 매설해 두었던 불꽃이 터진 것이다. 우선, 해외 언론의 반응은 당황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싶다. 칸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 등을 통해 일종의 할당제처럼 내어 주던 한 자리가 아니라 단숨에 중심과 주류로 등극해 버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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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일확천금의 두 얼굴 연휴의 기대작이라면 영화 <보이스>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었을 것이다. 두 작품은 모두 일확천금을 소재로 삼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일확천금을 얻는 쪽에 대한 이미지다. <보이스>가 일확천금을 노리는 쪽을 범죄자로 보고 있다면 <오징어 게임>에서 그것은 기회이다. 만약 한국형 서사와 소위 미국형 서사가 구별된다면 바로 이 관점의 차이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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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뻔한 서사? 생명보다 귀중한 얘기는 없다 “나는 내러티브를 좋아하지 않는다.” 2017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다비드 그로스만이 대담 도중 뜻밖의 말을 했다. 소설가가 내러티브, 서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는 국가 이데올로기, 가족 이데올로기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관습법과 질서가 완고한 내러티브로 이뤄졌다는 취지의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신념의 형태로 권력이 되어 버린, 소위 껍질이 더 중요해진 이데올로기를 싫어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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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폐기물의 재앙과 상상력의 경고 메타버스(metaverse)가 화제다. 메타버스에는 여러 하위 영역이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은 바로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이다. 1999년 영화 <매트릭스>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2018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여기에 속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2045년 그러니까, 24년 후의 미래, 사람들은 ‘오아시스’라는 가상현실 공간에 매료돼 있다. 고글, 장갑, 슈트를 비롯해 게임을 즐길 장비를 착용하고 사람들은 오아시스에 접속해서 게임도 하고, 클럽도 가고, 휴가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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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피해자는 용서보다 복수를 원한다 “테러: 살인, 납치, 유괴, 저격, 약탈 등 다양한 방법의 폭력을 행사하여 사회적 공포 상태를 일으키는 행위”. 사전을 찾아보면, 테러는 폭력적 방법으로 사회에 공포를 일으키는 행위를 일컫는다. 목적에 따라 두 개로 나뉘기도 하는데, 사상적·정치적 목적을 위한 테러와 뚜렷한 목적 없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로 구분된다. 테러는 영화가 사랑하는 소재 중 하나이다. 테러 영화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다이 하드>의 테러범들은 정치적 테러인 척했지만 사실 돈을 노린 집단이었다. 폭탄, 총기 등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보니, 테러 영화는 우리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장르이기도 했다. 범죄 영화가 주로 칼을 쓰는 조직폭력배 영화로 집중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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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크루엘라를 아시나요? 크루엘라를 아시나요? 고백하자면 영화 <크루엘라>의 예고편을 보기 전까지 그녀의 이름이 크루엘라인지 몰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악녀, <101마리의 달마시안>에 등장하는 마녀 같은 여자의 이름이 크루엘라인지 몰랐던 것이다. 하긴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의 가죽을 탐내는 악녀일 뿐 고향도, 나이도, 이름도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능적 배역,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해 필요한 악, 그녀는 그저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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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윤여정, 운과 의지의 연금술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났다. 윤여정씨가 여우조연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예상한 대로 수상했다. 기대한 바인데도 무척 기쁘다. 기쁨은 비단 영화평론가이자 동종업계 종사자들에게만 해당하지는 않는 듯싶다. 시민, 영화 소비자, 관객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다. 그건 아마도 윤여정이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 전 생애가 주는 어떤 뭉클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1947년생 한국 나이로 올해 75세인 윤여정이 인생 최고의 순간을 바로 지금 맞았다는 것에 어떤 위안과 행복을 느끼는 듯싶다. 인생 살아볼 만할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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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노년, 어떤 삶의 조각들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우리에겐 <미나리>다. 한국 국적은 아니지만 한국 혈통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가 6개 주요 부문에 후보작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훌륭하고 다양한 작품들이 많지만 가장 눈길이 가는 건 <미나리>다. 미국 제작사, 미국 배급사, 미국 감독이라지만 한국 국적의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역사까지 새로 쓰며 주목받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한국어를 쓰며, 한국 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 영어를 쓰지 않고, 오스카 후보가 된, 겨우 여섯번째 배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