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최신기사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개척 서사의 보편적 DNA, 미나리 영화 <미나리>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펄 벅의 소설 <대지>였다. 1931년 미국의 작가 펄 벅이 중국 난징에서 집필한 소설 <대지>는 193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1938년엔 노벨문학상도 받았다.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중국인을 주인공 삼아 ‘땅’에 대한 애착과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1937년 영화화되었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푸른 불꽃 “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의 영혼들은 상처 입지 않아. 상처는 태어난 이후 지구에서 생기는 거지.”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Soul)>은 관객에게 태어나기 이전의 시공간을 소개한다. <소울>에는 여러 기발한 착상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무아지경의 순간이다. 무아지경에 이르는 그 순간, 망각 속 미지의 시공간과 접속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물아일체의 방법이다. 뉴욕 번화가의 어느 모퉁이에서, 간판을 그야말로 예술적으로 돌리는 아저씨나 요가 수행자, 연주자 등이 자기 일에 몰두할 때, 소위 유체이탈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내 안의 괴물 혹은 옆집의 괴물 전통적으로 괴물은 몇 가지 원칙하에 만들어졌다. 하나는 이종결합이다. 스핑크스처럼 머리는 사람, 몸은 사자이거나 페가수스처럼 말의 몸에 새의 날개가 달린 식으로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위치의 변동이다. 영화 <판의 미로>에 등장하는 괴물처럼, 눈동자가 손바닥에 달려있을 때 괴물이라고 부른다. 이런 피조물들은 신처럼 숭앙받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이거나 흉측스러워 추방해야 할 대상으로 다뤄지기도 한다. 괴물은 대개 상상의 산물이기에 SF 영화나 판타지 영화에 등장한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미국이 영화고, 영화가 미국인 이유 특정 지명이 산업을 대표할 때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그런 곳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실리콘밸리, 다른 하나는 할리우드이다. 실리콘밸리가 IT 산업 등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을 상징한다면 할리우드는 영화이다. 영화가 할리우드고, 할리우드가 영화이다. 역사가 짧은 나라가 미국이라지만 그 역사성을 아카이브로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 역시 미국이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영화강국이 된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자본과 기술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미국은 영화를 통해 역사를 기억한다. 오락성 상품으로 만든 상업적 작품도 많지만 기록적 가치를 넘어 역사와 철학을 담은 작품도 많다. 미국이 곧 영화이고 영화가 미국이기도 한 셈이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영화와 저널리즘 그리고 판타지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판타지이다. 현실에서 찾기 어려운 이상이 영화엔 종종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어려운 것이 허구의 세계에서는 실현되곤 한다. 사필귀정이나 공명정대와 같은, 세상의 정의로운 흐름 같은 것 말이다. 영화를 구매하는 비용 중 일부에는 판타지 구매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건전한 기대감과도 같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여성 그리고 주인공 “러브란 무엇인가”,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은 목하 영어 공부 중이다.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고애신(김태리)은 봉건적 배경의 진보적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 진보성을 보여주는 게 바로 ‘배움’이다. 근대식 학당에 출입하고, 외국어를 배운다. 남몰래 총기 사용법도 배운다. 배우는 것 자체가 여자에겐 도전이었으니 말이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시간과 신 시간을 장악할 수 있었다면,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세우고, 진시황릉을 남겼을까?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원했다. 그러니까,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죽음은 시간의 문제다. 하지만 시간은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소위 권력을 가진 인간은 공간을 차지하면서 정복감을 느끼고자 한다. 내 이름이 새겨진 땅을 더 넓히고, 나를 우러를 공간을 높게 높게 쌓아 올린다. 만리장성이나 황릉은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정복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좌절의 전리품일지도 모르겠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아파트 그리고 서울 유하 감독의 <강남 1970>은 강남 개발이 시작되던 시절, 땅과 돈 그리고 욕망을 그리고 있다. 허허벌판, 백사장이 금싸라기 땅으로 바뀌는 동안 누군가의 욕망은 돈으로 환전되었다. 개발독재, 개발행정이라는 말이 일반화된 만큼 영화 속에서 개발은 곧 폭력과 협잡의 결과물이었다. 영화 <아수라>의 가상 인물,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모습이나 용역깡패들과 손을 잡은 부패 검사 우종길(이성민)이 등장하는 <검사외전>에서도, 늘 땅은 일그러진 욕망의 종착점이었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종말 그 이후 묵시록을 지칭하는 아포칼립스는 ‘폭로’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묵시록에는 언제나 세상의 끝, 종말이 등장한다. 전염병이 돌 수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지진이나 화산폭발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종말과 함께 폭로되는 세상의 살풍경은 곧 신의 언어로 해석되기도 한다. 종말 역시도 신의 메시지라는 의미이다. 종교적 언어가 세상을 지배할 땐, 종말은 말 그대로 끝이었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한낮의 아이는 우리의 아이 물 반 곡물 반, 죽을 먹고 난 소년이 배식당번을 찾아가 부탁한다. “조금 더 먹어도 될까요?” 배식당번은 눈이 두 배나 커져서 부리나케 구빈원장을 찾아간다. 턱이 젖을 정도로 기름진 식사를 하던 그들은, “장래 교수형감”이라는 저주와 함께 매질을 한다. 그것도 모자라 5파운드에 사내아이를 팔아넘긴다. 1838년작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한 장면이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아름다운 뉴욕, 남루한 욕망 얼마 전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종영했다. 원작인 <닥터 포스터>를 쓴 작가 마이크 바틀렛은 그리스 신화 <메데이아>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메데이아>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 중 가장 정열적인 여성 캐릭터이다. 그녀는 이아손에게 반해 아버지를 배신하고, 국보를 빼돌렸으며 심지어 동생을 죽여 그 시신을 산산이 찢어 버린다. 이아손을 사랑했기 때문에 메데이아는 조국, 고향, 가족 모두를 버리고 이아손을 돕는다.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모니터와 TV 그리고 스크린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이 드디어 재-개봉한다. 물론 <사냥의 시간>은 우리 시간으로 2020년 4월23일 오후 네 시에 첫 개봉한다. 하지만 재-개봉이란 표현을 에둘러 쓰는 까닭은 이미 여러 번 개봉 일정이 밀리고,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표류’라는 단어도 심심치 않게 쓰였다. ‘윤성현 감독, <사냥의 시간> 개봉 연기 후 표류 중’ 이런 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