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최신기사
-
세상 읽기 닫힌 학교급식 교문을 열며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든다. 먹는 일은 즐거워도 지지고 볶고 수챗구멍 닦는 일까지는 고역이다. 하물며 적게는 100명, 많게는 수천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학교급식 현장의 신역은 얼마나 고되겠는가. 기피 업종이 되어버린 학교급식 종사자들의 고충에 잔반 처리도 한몫한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의 불쾌감도 있겠으나 멀쩡한 음식을 버릴 때 마음도 무겁다. 손은 많이 가건만 학생들이 젓가락을 잘 대지 않는 나물 반찬이나 생선 요리가 종종 그렇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메뉴에서 빼어버릇하면 학교급식의 의의는 흩어진다. 학교급식은 고른 영양을 기본으로 밥, 국, 반찬 등 전통식의 골격을 갖추고 음식 경험을 넓히는 교육 행위이기 때문이다. 수학 싫다고 수학 과목을 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세상 읽기 있지만 없는 농어촌 공약 ‘어묵의 계절’이 돌아왔다. 엄동설한에 치러지던 대통령 선거 때 출마자가 시장에서 어묵꼬치를 먹는 장면은 대선의 상징이었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으로 선거가 모내기철로 바뀌면서 어묵보다 덜 뜨거운 메뉴를 먹지만 시장에서 펼쳐지는 ‘선거 먹방’만큼은 유구하다. 전통시장 방문이 낡았다는 비판도 많지만, 도시가 아닌 농어촌에서 사람 모이는 곳은 터미널과 시장이다.
-
세상 읽기 산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경북 의성에는 흰 자두꽃이 한창이다. 산불 현장 답사에 동행한 농민은 저 꽃에서 열매가 제대로 열릴지 걱정했다. 산불 열기로 밭의 멀칭 비닐도 녹았는데 여린 꽃과 나무도 화상을 입었을까 싶어서다. 게다가 지력이 약해져 산사태가 날 수 있어 다가올 여름도 두렵다. 이런 형편이건만 산불로 금사과 사태가 날까 걱정하는 시중의 말들이 박절하다.
-
세상 읽기 쌀이 그렇게 나쁩니까 8만㏊, 평수로 환산하니 2억4200만평이다. 30평 아파트를 떠올려보니 가늠도 안 되는 엄청난 넓이다. 계엄 사태로 엄혹했던 지난해 말, 농식품부가 2025년 주요 농정 목표로 벼 재배면적 8만㏊를 감축하겠다고 뜬금포를 날렸다. 벼 재배면적 70만㏊의 12%인 8만㏊를 축소하면 쌀 40만t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속이다. 쌀 40만t은 매해 한국이 수입하는 쌀의 양이다. 쌀은 덜 먹는데 벼농사가 쉬워 쌀 생산량이 줄어들지 않으니 관리 비용이 들어 감산해야 한다는 기조는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느닷없이 8만㏊를 줄이라 하니 농민과 행정업무를 맡은 지자체 공무원들 모두 어리둥절하다. 1970년대 통일벼를 심지 않으면 단속 공무원들이 모판을 엎었다더니 2025년에는 대체 무엇을 엎을 것인가.
-
세상 읽기 농민들을 왜 불러 살면서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은 경찰서의 부름이다. 그런데 19일 서울 방배경찰서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하원오 의장과 최석환 사무국장을 불러들였다. 경찰은 지난 연말 트랙터 농민들과 응원봉 시민들이 만난 남태령 시위가 미신고에 의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사회운동가들은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과 대치하거나 저항하는 일이 잦다. 그러나 이번에는 칠순의 농민운동가와 전농 안팎의 살림을 맡아왔던 사무국장이 당당히 조사를 받겠다며 제 발로 방배경찰서로 향했다.
-
세상 읽기 ‘농업판 전세사기’ 뒤통수 맞은 청년농민 요 몇년 자녀들이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농민들의 소식을 듣곤 했다. 수도권으로 어렵게 올려보낸 자녀들이 월세를 절약해 미래를 준비하도록 쌀 팔고 깨 팔아 돈을 보탰건만 졸지에 사기를 당하고 말았으니 이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까지 피해를 주는 악질범죄다. 그런데 요즘 청년농민들이 농업판 전세사기를 당했다며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
세상 읽기 트랙터의 시간에서 호미의 시간으로 한덕수 권한대행의 첫 행보는 양곡관리법을 위시한 농업4법 거부권이다. 윤석열 정부의 1호 거부권도 양곡관리법이었는데 탄핵정국에서도 1호 거부다.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농업4법을 날리면 대신 쌍특검과 헌법재판관 임명은 받으라고 민주당이 던진 미끼가 아니었을지 미심쩍다. 결국 농민들은 소똥을 푸고 땅을 다지는 트랙터에 ‘농민헌법 쟁취, 윤석열 체포, 국민의힘 해체’를 써 붙이고 서울로 내달렸다. 경찰 차벽에 막혀 골바람 부는 남태령에 농민이 고립되자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심야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그렇게 이틀 만에 동작대교를 열어젖히고 트랙터 헤드라이트와 응원봉을 반짝거리며 한남동으로 향했다. 농민과 시민들은 ‘남태령대첩’이라며 “이겼다!”를 외쳤다. 명량대첩에서 들어본 ‘대첩’은 싸움에서 크게 이겼다는 뜻이다.
-
세상 읽기 지역소멸의 ‘위기탈출 넘버원’ 아이들을 기를 때는 예쁜 줄 모르고 키우는 일에만 급급하여 내내 아쉽다. 그런데 귀여운 아기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며칠 전 국민영양관리계획 우수기관으로 상도 탄 춘천시 보건소에서 영양플러스사업의 일환으로 여는 조리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생겼다. 영양플러스 사업은 임신부와 영유아의 취약한 영양 문제를 해소하고 식생활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단위 영양프로그램이다. 보충 식품 꾸러미를 제공하고, 영양교육·상담 등이 이루어지는 사업 효능이 매우 좋은 보건복지 프로그램이다. 비수도권에서는 임신부와 영유아 부모는 다문화가족인 경우가 많다. 이날 춘천시 보건소에서 영유아 음식을 만들어보는 특강 대상도 다문화가족이었다. 농촌지역인 읍면 단위 참가자들은 드물고 주로 시내권에 거주하는 주민들 참여가 많았다. 이날의 메뉴는 강원도 특산물인 옥수수를 활용한 옥수수치즈전과 제철인 파래를 활용한 파래새우전, 서리태 콩조림, 아기들 먹기에 좋은 동부묵볶음이었다. 보충식품으로 콩을 받으면 겨우 밥에만 넣어 먹었다던 캄보디아 출신의 젊은 엄마에겐 ‘콩밥 탈출’의 날이었다.
-
세상 읽기 무기여 농촌으로 오라 텔레비전에 소식이 들려오면 눈과 귀가 저절로 쏠리는 고장이 있다. 경북 상주시, 그중에서도 외서면이다. 외서면 봉강마을은 농활을 갔던 곳으로 혈연과 학연 아닌 아름다운 ‘지연’으로 남았다. 상주에서도 골짜기라 할 수 있는 외서, 내서, 은척, 화서면 일대는 황금 들판에 붉은 감나무가 어우러져 흡사 이발소 그림 같은 풍경을 지녔다. 하지만 요즘 이 마을들은 대구 50사단 군부대 이전 문제로 시끄럽다. 시내와도 떨어져 있고 전형적인 농업지대인 이 마을들은 상주에서도 땅값이 가장 싸고 개발 가능성도 없어 청정농업지대로 남았다. 그 어렵다는 유기농 포도농사를 비롯한 친환경농업을 꿋꿋이 이어가며 로컬푸드 매장에 농산물을 내는 농민들도 많다. 친환경농업에 뜻을 둔 이들의 배움터인 친환경농업학교도 이곳 외서면에 들어서 있어 귀농귀촌이 이뤄지는 깨끗하고 조용한 마을들이다.
-
세상 읽기 정부는 ‘벼멸구 피해’ 안 보이나 20대 딸에게 ‘벼멸구’를 아는지 물으니 의외로 알고 있었다. 근래 언론에서 벼멸구 피해 소식을 그나마(!) 다루고 있어서 들어본 것이냐 물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출연자였던 방송인 박명수의 별명이 벼멸구였기 때문이란다. 나는 당연히 알고 자랐다. 1975년 벼멸구로 큰 피해가 났고, 이후 1978년, 1983년, 1987년, 1990년에도 큰 피해를 입었다. 병해충은 식량계획에 영향을 주는 국가적 문제로 인식해 전 언론사에서 비중있게 다뤄 도시내기들도 벼멸구나 ‘이화명충’ ‘물바구미’ 정도는 알고 살았다.
-
세상 읽기 농촌의료 최후 보루, 공보의마저 빼앗나 농번기나 성묘 시기에 지역 언론을 통해 농촌 주민들에게 ‘교상’을 조심해 달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곤충이나 뱀에게 물리는 불상사가 교상인데, 농촌에서는 벌에게 쏘이거나 뱀에게 물리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2020년 홍성준 외의 연구자들이 쓴 <도시와 농촌에서 발생한 독사 교상 환자의 임상적 양상과 합병증 비교 연구>를 보면, 뱀물림 사고로 읍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 57.1%가 농촌지역 환자였다. 다만 고령자가 많고 병원과 거리가 멀어 응급처치가 도시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교상 환자 예후가 훨씬 더 좋지 않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의료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래서 농촌 주민들이 가장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시군 보건소에라도 뱀독소 치료제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뱀에게 물릴 일은 농촌 주민이 더 많건만 치료는 농촌에서 더 어렵다.
-
세상 읽기 주 5일 경로당 급식, 조리노동의 문제다 가스불 켜기 겁나는 계절, 독거노인인 아버지의 식사도 걱정이다. 그간 경로당에서 점심을 잡쉈지만 얼마 전 급식도우미 여사님이 힘들다며 그만두었다. 노인 25명의 점심을 책임졌던 여사님이 가져간 임금은 고작 69만원. 59만원은 지자체가 지원하고 나머지 10만원은 경로당 노인들이 보탠 돈이다. 장보기와 조리, 설거지까지 하는 노동의 가치가 저랬다. 여기에 일주일 치 부식비가 15만원 내외. 고물가 시대에 15만원어치 장을 봐서 지지고 볶는 일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생선을 선택하면 과일을 빼야 했다. 텃밭 채소나 각자 집의 밑반찬을 추렴하거나 기부도 받으면서 그럭저럭 식사를 꾸려왔어도 끝내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점심은 멈추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