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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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제 마음이 참 그렇습니다” 청첩장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눈이 간 것은 신랑 신부의 어여쁜 사진이 아니라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예식장 주소였다. 신부는 ‘단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5촌 조카가 졸업한 고등학교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4·16 세월호 참사의 희생 학생들이 다니던 고등학교였기 때문이다. 안산을 갈 때마다 마음이 늘 ‘그랬다’. 이번에도 4월에 안산을 오니 “마음이 참 그렇다”라며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경사에 서로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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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질투는 힘이 없다 아버지는 돈 냄새를 잘 맡았다. 안타깝게도 잘 맡기는 하지만 꼭 대박 직전에 발을 빼는 재주를 가진 것이 문제다. 일명 ‘마이너스의 손’인 아버지의 전설적인 행보는 명절 때마다 집안 단골 안줏거리기도 하다. 부모님은 1970년 충북 산골에서 충주 비료공장의 호황을 따라 충주로 이촌을 하였다. 그러다 1983년 비료공장이 문을 닫고 지역경기가 나빠져 새로운 삶을 고민했다. 선진 농업인 축산을 해보고 싶어 충남 천안에 젖소를 기를 땅을 구하고 가계약까지 진행하였으나 우유 파동이 주기적으로 일어나 영 마음이 불안하여 결국 포기하였다. 당시 목장 부지로 사려던 천안 땅이 약 3만3000㎡(1만평). 지금 그 위치에는 상전벽해가 일어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속철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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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그 소년들도 우리가 지켜야 할 영혼이다 공분으로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일이 있다. 음주운전에 대해 무거운 죄를 묻는 ‘윤창호법’이나 어린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민식이법’ 같은 법들이 그 예다.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아동에게 가해진 무참한 폭력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고, 조만간 아동폭력에 대한 엄벌을 골자로 한 ‘정인이법’이 나올 것이다. 또한 아동보호와 복지 확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질 것이다. 왜 이렇게 꼭 귀한 생명들을 놓쳐야만 그제야 사회는 움직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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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멈춰선 농촌의 작은 목욕탕 몰아친 한파에 아파트니까 괜찮지 않을까 방심을 한 것이 패착이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방학이고, 사람 만나지 말라가 국시가 된 마당에 며칠 씻지 않는다고 큰 불편이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양치를 해도 이가 시리고 고무장갑을 끼었는데도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았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겨울에 온수 쓰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다가 이번 한파에 된통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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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컵라면의 온기라도 쥐여주려면 컵라면은 바쁘고 입맛 없을 때 뜨거운 물만 부으면 언제 어디서든 한 끼의 식사로 변신하는 요긴한 패스트푸드이지만 미디어에서는 종종 고단한 삶을 상징하는 장치로 쓴다. 특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이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면 대사가 없어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삶의 비극성을 드러낼 때도 라면이 동원된다. 비근한 사례로 인천의 주택 화재를 ‘라면형제’ 사건으로 명명하는 것이다. 화재 조사 결과 라면을 끓이다 불이 난 것은 아니라지만 이 사건은 앞으로도 ‘라면형제’ 사건으로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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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비료와 잡힌 물고기 21(n)-17(p)-17(k). 금고의 비밀번호 같은 이 번호를 보고 딱 어떤 뜻인지 단박에 맞힐 수 있으면 농사짓는 사람일 것이다. 저 숫자는 20㎏ 비료 한 포대에 질소 21%, 인산 17%, 칼륨 17%가 들어간 ‘복비’, 즉 복합비료의 함량 표시다. 여전히 칼륨이 아닌 ‘가리’라 부르는 농민들도 많다. 21-17-17 비료는 물에 잘 녹아 농업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1종 복합비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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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채식 선택 급식’ 도입 방역수칙 1단계 조정으로 일상이 어느 정도 굴러가는 느낌이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점심을 먹는 것이다. 학교급식법은 1981년에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시행된 것은 1998년이다. 위탁급식에서 직영급식으로, 그리고 친환경무상급식의 단계로 지난 20여년 동안 꿋꿋하게 걸어왔다. 이제 학교에서는 급식세대 교사가 급식세대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급식은 의무교육이 아닌 고등학교까지도 순차적으로 무상급식을 도입하면서 명실상부한 보편적 의무급식으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친환경 농산물을 식재료로 쓰면서 질적 전환도 이루어내고 있다. 물론 중간에 경남처럼 갑자기 유상급식으로 후진을 하는 등의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차별 없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점심 한 끼를 먹여야 한다는 것에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지지한 결과가 지금의 학교급식이다. 그리고 채식급식 선택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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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늘어나는 ‘깔세’ 매장 신도시 상가 건물에는 무엇이 들어오나 궁금해서 종종 간판 구경을 위해 나서곤 한다. 컨테이너 박스에 차려진 부동산중개소들은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에 이 상가에는 병원과 약국,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들어설 예정이라면서 설레발을 치며 투자를 권유하곤 한다. 지금 집에서 쓰고 있는 행주가 다 이런 ‘컨테이너 부동산’에서 얻어온 것들이다. 하지만 막상 그 건물엔 들어오기로 했다는 유명 커피점이 아니라 저가 테이크아웃 커피점이나 한철 뜨다 지고 말 복고풍 고깃집들이 자리를 잡곤 한다. 결국 병원이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 임차인을 들이고 싶은 것은 건물주의 ‘빅피처’이자 ‘로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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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김장철은 아직 멀었다 살림살이하기 참 힘든 한 해다. 농촌 살림살이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안정적인 판로라 여겼던 학교급식도 전염병 상황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중국산 김치를 많이 쓴다 해도 그나마 국산 농수산물을 많이 소비하는 외식업이 정지 상태가 돼버렸다. 올해는 하늘마저도 가혹하게 굴었다. 최장 기간의 장마와 태풍으로 작물들이 햇빛 볼 날이 적었다. 하나 기특하게도 잘 자라서 과일 좌판에는 여름 사과인 ‘아오리’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조생종 사과 ‘홍로’가 배턴터치를 무사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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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농촌 이주노동자, 솔직히 말하자 코로나19로 농촌으로 들어오던 외국인 계절노동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농촌 일손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기대서 먹고살아온 지 공식적으로 20년 정도다. 하지만 1990년대 시설재배 농사를 짓던 우리 집에서도 ‘조선족 할머니’라고 부르던 중국동포들이 당시 일당 3만원을 받고 밭일을 했다. 시설재배 농가와 거래하는 인력소개소에 전화를 하면 중국동포들이 평소에는 식당 일이나 가사도우미 일을 하다가 농사일을 하러 오기도 하고 다른 일을 구하는 사이에 임시로 밭일을 오는 경우가 많았다. 오로지 밭일만 하는 ‘조선족 할머니’들은 드물었고 농사는 그때도 인기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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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농촌 우체국 첫 책을 낸 출판사는 ‘망원 우체국’ 정류장 인근이다. 망원 우체국에서 책을 보내며 가까운 이들에게 ‘우정’을 표시했다. 그날 번호대기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며 얼마나 설렜던지. 망원 우체국은 그토록 내게 좋은 추억의 장소이건만 경영효율화 정책에 따라 지난 4월 적자를 이유로 문을 닫았다. 대신 그 자리엔 프랜차이즈 치킨점이 들어섰다. 관공서로만 알고 있던 우체국에 적자와 흑자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정사업본부는 국가 예산을 지칭하는 일반회계가 아닌 자체 수입으로 지출하는 특별회계에 편성되어 있어 사업을 잘해서 수익을 내야 하는 조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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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급식 꾸러미에 웬 라면? 아이들이 등교를 하면서 학교급식을 먹고 오니 한갓졌다. 하지만 행복도 ‘3일천하’로 끝났다. 순차 등교로 3일 학교에 다녀오고 다시 2주일간 집에 머문다. 매 끼니 빤한 밥상을 차리곤 하는데도 놀라운 것은 쌀이 푹푹 줄어든다는 것이다. 분식으로 메우고 매식으로 때워도 평소보다 쌀도 많이 먹고 된장도 많이 먹다보니 몸도 고되고 본전 생각도 났다. 아이들은 무상급식 대상자인데 넉 달 동안 내가 해먹였으니 콩고물이라도 떨어졌으면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