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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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늘어나는 ‘깔세’ 매장 신도시 상가 건물에는 무엇이 들어오나 궁금해서 종종 간판 구경을 위해 나서곤 한다. 컨테이너 박스에 차려진 부동산중개소들은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에 이 상가에는 병원과 약국,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들어설 예정이라면서 설레발을 치며 투자를 권유하곤 한다. 지금 집에서 쓰고 있는 행주가 다 이런 ‘컨테이너 부동산’에서 얻어온 것들이다. 하지만 막상 그 건물엔 들어오기로 했다는 유명 커피점이 아니라 저가 테이크아웃 커피점이나 한철 뜨다 지고 말 복고풍 고깃집들이 자리를 잡곤 한다. 결국 병원이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 임차인을 들이고 싶은 것은 건물주의 ‘빅피처’이자 ‘로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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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김장철은 아직 멀었다 살림살이하기 참 힘든 한 해다. 농촌 살림살이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안정적인 판로라 여겼던 학교급식도 전염병 상황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중국산 김치를 많이 쓴다 해도 그나마 국산 농수산물을 많이 소비하는 외식업이 정지 상태가 돼버렸다. 올해는 하늘마저도 가혹하게 굴었다. 최장 기간의 장마와 태풍으로 작물들이 햇빛 볼 날이 적었다. 하나 기특하게도 잘 자라서 과일 좌판에는 여름 사과인 ‘아오리’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조생종 사과 ‘홍로’가 배턴터치를 무사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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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농촌 이주노동자, 솔직히 말하자 코로나19로 농촌으로 들어오던 외국인 계절노동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농촌 일손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기대서 먹고살아온 지 공식적으로 20년 정도다. 하지만 1990년대 시설재배 농사를 짓던 우리 집에서도 ‘조선족 할머니’라고 부르던 중국동포들이 당시 일당 3만원을 받고 밭일을 했다. 시설재배 농가와 거래하는 인력소개소에 전화를 하면 중국동포들이 평소에는 식당 일이나 가사도우미 일을 하다가 농사일을 하러 오기도 하고 다른 일을 구하는 사이에 임시로 밭일을 오는 경우가 많았다. 오로지 밭일만 하는 ‘조선족 할머니’들은 드물었고 농사는 그때도 인기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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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농촌 우체국 첫 책을 낸 출판사는 ‘망원 우체국’ 정류장 인근이다. 망원 우체국에서 책을 보내며 가까운 이들에게 ‘우정’을 표시했다. 그날 번호대기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며 얼마나 설렜던지. 망원 우체국은 그토록 내게 좋은 추억의 장소이건만 경영효율화 정책에 따라 지난 4월 적자를 이유로 문을 닫았다. 대신 그 자리엔 프랜차이즈 치킨점이 들어섰다. 관공서로만 알고 있던 우체국에 적자와 흑자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정사업본부는 국가 예산을 지칭하는 일반회계가 아닌 자체 수입으로 지출하는 특별회계에 편성되어 있어 사업을 잘해서 수익을 내야 하는 조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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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급식 꾸러미에 웬 라면? 아이들이 등교를 하면서 학교급식을 먹고 오니 한갓졌다. 하지만 행복도 ‘3일천하’로 끝났다. 순차 등교로 3일 학교에 다녀오고 다시 2주일간 집에 머문다. 매 끼니 빤한 밥상을 차리곤 하는데도 놀라운 것은 쌀이 푹푹 줄어든다는 것이다. 분식으로 메우고 매식으로 때워도 평소보다 쌀도 많이 먹고 된장도 많이 먹다보니 몸도 고되고 본전 생각도 났다. 아이들은 무상급식 대상자인데 넉 달 동안 내가 해먹였으니 콩고물이라도 떨어졌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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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과수 냉해와 농작물재해보험 아주 따뜻한 겨울이었다. 도시가스비 고지서에서 전년 대비 사용량을 보니 난방비가 많이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과 칩거하다 보니 여느 때보다 가스불로 밥도 많이 지었는데 말이다. 지난겨울에는 눈도 거의 내리지 않은 데다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은 습한 겨울이었다. 시설재배 농가에서는 겨울 난방비를 조금 절약하기도 했지만 노지 작물을 키우는 농가에서는 걱정이 앞섰다. 병해충들이 이르게 활동해 작물을 망칠까 싶어서였고, 과일나무나 두릅나무 같은 임산물에 너무 일찍 물이 올라 느닷없이 꽃샘추위라도 닥치면 그대로 꽃이 얼어버릴까 싶어 마음을 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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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21대 국회는 ‘식물’처럼만이라도 4년에 한 번, 습관처럼 공보 몇 줄 읽고 신분증 들고 도장 찍는 선거권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그래도 이번 선거는 한국만 치러내는 ‘세계적인 행사’여서 참여의 기쁨이 남달랐다. ‘88올림픽’ 이후 애국심은 남아있지 않다 여겼고, 일도 안 하고 만날 쌈박질만 한다며 욕만 해대던 국회의원 선거를 하다 애국심이 샘솟을지 미처 몰랐다. 게다가 김치 버무릴 때나 쓰던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를 하는 것도 신기하여 일찌감치 사전투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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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인생을 ‘사재기’한 택배산업 먼저 겪은 자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에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외국에 사는 친구들 안부를 물었다. 부자 나라인 미국과 독일로 일찌감치 떠난 친구들은 난데없이 휴지와 파스타면 기근이라 했다. 생필품 사재기가 없는 나라에서 사는 일이 뿌듯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나조차도 휴지를 직접 사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부피가 크다보니 주로 인터넷쇼핑으로 구매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생필품 사재기가 없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안정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굳이 직접 장을 보러 가지 않아도 총알배송, 로켓배송, 새벽배송까지. 사람만 빼고 모든 것이 집 앞까지 배달 가능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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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꽃이 있는 삶을 꿈꾸며 전염병이 퍼지면 공포는 생명보다 생계를 먼저 공격한다. 1990년대 ‘홍콩조류독감’으로 뒤섞어 부르던 조류인플루엔자(AI)가 한국에 처음 발생한 때가 2003년 12월이었다. 닭을 먹으면 사람도 죽는다 여겨서 당시 치킨점 10%가 폐업을 하고, 70% 정도의 치킨점이 적자를 냈다. AI부터 구제역, 메르스나 사스 사태가 터졌을 때도 병에 걸려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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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밥 먹고 와라 본격적인 방학 시기다. 방학식 전 일선 초·중·고교의 행정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그중에서도 방학 중 급식 대상자 신청을 받아 방학 중에도 결식이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다. 학부모들에게 보내는 방학 중 급식 신청 문자 메시지는 방학이 오고 있다는 알람이기도 하다. ‘급식 지원 대상’이란 말도 이제 방학에만 해당한다. 서울시가 2019년 1학기 고3 학생부터 무상급식을 시작해 2021년 고등학교 1~2학년까지 적용 대상을 늘려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할 예정이다. 각 지자체들도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대부분 고등학교 무상급식을 시행하거나, 시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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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공화국 ‘군세권’과 지역의 고통 농촌 지역에서 ‘맛집’을 고르는 나름의 눈썰미가 있다. 버스터미널과 기차역 주변에서 먹지 말라는 얘기는 도시에나 해당하는 말이고 작은 고장에서는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주변이 중심지여서 먹을 만한 식당도 그 주변에 있다. 군청이나 읍·면사무소의 공무원, 농협 직원들이 빛바랜 주렴을 손으로 들추고 들어가는 백반집이 맛있다. 군부대 소재 지역이라면 나이 지긋한 군무원들이 사병들을 데리고 가서 먹는 집이 맛집이다. 임실 터미널 근처의 피순댓국집도, 원통의 작은 국숫집도 그렇게 찾아낸 나만의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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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공화국 장점마을 이야기 전북 익산과는 ‘농활’이라는 인연이 있다. 도시 학생들에게 농촌에 대한 경험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깊게 하는 데에는 농활이 큰 역할을 했다. 나도 그랬다. 지금도 뉴스에 익산 소식이 들리면 귀를 쫑긋 세웠다. 최근 몇 년간 들려온 익산의 소식은 ‘장점마을’이었다. 지난달 14일 환경부는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이 ‘금강농산’의 비료공장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비료는 크게 유기질비료와 무기질비료로 나누는데 유기질비료에는 기름을 짜고 남은 ‘유박’이나 생선을 가공하고 남은 ‘어박’ 등이 들어간다. 금강농산에서 생산하는 비료는 담배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연초박’을 원료로 쓰던 유기질비료였다. 퇴비로만 허용된 연초박을 불법으로 태우는 과정에서 온 동네에 유해가스를 내뿜었고 장점마을 주민들은 익산시와 전북도에 민원을 제기해 왔다. 수요일에 KT&G 본사 앞에 장점마을 주민들이 섰다. 그냥 피워도 사람 몸에 해롭다는 담배인데 그 찌꺼기를 태웠으니 빤한 결론 아닌가. 이 사태에 KT&G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