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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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온실가스 감축과 노동시간 단축 꽃도 덥다고 한다. 수도권 대학에서 ‘중간고사’라는 꽃말을 가진 벚꽃이 올해는 중간고사를 한참 앞두고 활짝 폈다. 지난달 20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58차 총회는 ‘제6차 종합보고서’를, 다음날 우리나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저쪽은 엄중하고 긴급했고, 우리는 안이하고 느긋했다. IPCC는 보고서에서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 평균 온도가 1.09도 높아졌고 현재 각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모두 실행해도 2040년 이전에 1.5도 상승을 전망하고 인류의 미래가 향후 10년간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렸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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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야만과 무지의 시대 레이첼 카슨은 살충제의 위험을 고발한 <침묵의 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은 평생 바다를 연구하고 사랑한 해양생물학자이자 생태사상가였다. 카슨은 수려한 문체로 해박한 바다의 지식을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에 담아냈다. 1963년 한 심포지엄의 개막 연설에서 카슨은 바다가 온갖 유독 폐기물을 던져버리는 “쓰레기장으로 전락”한 현실을 개탄하며 “방사성폐기물을 바다에 투척하는 행위”를 가장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로 꼽았다. 이후 1972년 해양오염 방지에 관한 협약(런던협약)과 이 협약에 대한 ‘1996년 의정서’로 방사성 물질의 해양 투기도 전면 금지되었다. 그러나 올봄이나 여름, 우리는 핵발전소 오염수의 바다 투기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카슨의 우려가 재현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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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한 옛날 모세가 이집트에 살고 있을 때 이야기. 어느 날 모세는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족을 때리는 걸 보고 그를 때려죽였다. 그리고 이집트 인근 ‘미디안’으로 달아나 남의 양 떼를 쳐주며 살았다. 한번은 양 떼를 치던 모세가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게 되었다. 하도 놀라워 가까이 보려고 다가갔더니 이런 말이 들려왔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 떨기나무가 있는 곳은 모세가 양 떼를 치던 곳과 ‘다른’ 땅이었다. 그곳은 거룩한 땅, 곧 하느님께 따로 ‘떼어 놓은’ 곳으로 거기에 들어가려면 의식을 거쳐야 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고대 세계는 온갖 ‘신’이 거주하는 거룩한 곳으로 가득했고 자연은 생명의 원천인 ‘어머니’로 공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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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새해, 소소한 상을 차려보자 지난해 10월 초, 서강대학교 구내의 예수회 공동체에서 성북구 길음동의 한 수녀원으로 이사했다. 대학가에서 16년을 살다가 주택가로 옮겼으니 내겐 꽤 큰 변화다. 새로운 곳에 쪼그만 주방이 하나 있다. 주방을 보며, 이참에 요리를 좀 해볼까 생각했다. 소소한 상을 차려 사람을 부르고 담소하며 함께 먹는 모습을 그려보니 괜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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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에는 무한 책임이 아니라 ‘사법적 책임’과 유가족의 ‘보상받을 권리’를 말한다. 책임은 대법원 판결까지 미뤄지고 생명은 돈으로 환산된다. 그들은 사과하지 않는다. 버티기 힘들면 ‘죄송한 마음’이라는 주어 없는 말로 넘어가고, 합리적인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로, 상식적인 물음에는 ‘언급이 부적절하다’로 비켜간다. 그들은 위로 갈수록 더 무책임하고 더 뻔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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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모순의 현실에서 벗어날 때 지난달 17일 경향신문 10면 상단에 “SPC 빵공장 노동자 끼임사 … 1주 전 비슷한 사고 있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같은 면 바로 아래에는 “기재부 ‘형사처벌’ 빼자 중대재해법 힘빼기 노골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모순의 현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SPC 계열사 SPL에서의 사망사고 이후에도 산재 사망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지난달 18일 밀양 한국화이바에서 추락으로, 19일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지게차에 깔려, 20일 DL이앤씨 경기도 광주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추락으로, 21일 SGC이테크건설 경기도 안성 물류창고 신축 현장에서 추락으로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DL이앤씨의 사망사고는 올해만 벌써 4번째다. 일하다 죽고 죽고 또 죽는 참혹한 현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더 엄격히 적용하고 개정한다면 강화하는 게 마땅하지만, 지난 8월 기획재정부는 기업의 입맛대로 경영책임자의 처벌 폭과 수위를 크게 낮추자는 법·시행령 개정 의견을 노동고용부에 전달했다. 이렇게 되면, 애초에 너무 느슨하게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무력화되고 사망사고를 비롯한 중대재해는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입만 열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말하지만, 효율과 이윤이 안전과 생명을 압도하는 현실을 방치하거나 조장한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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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교육경쟁에 반대하다 지난달 하순 기획재정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자유시장 경제의 핵심 개념인 ‘자유경쟁’이라는 표현”이 빠졌다며 교육부에 시정 의견서를 전달했다. 학생들이 “경제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을 길러야 한다는 이유라지만,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교육부도 경제부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질책성 발언이 일조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기재부 관료들과 현 정권이 자유경쟁을 얼마나 신봉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육 규제 완화와 성과 중심의 경쟁 체제를 주장해온 인물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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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가을로 접어들며 무더위가 가니까 지내기는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가뭄과 호우 때나 반짝하는 기후에 관한 관심도 함께 가버릴까 걱정이다. 올해도 세계 곳곳이 혹독한 기후 재난에 시달렸다. 유럽과 중국은 가뭄, 파키스탄은 홍수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고 한국도 기상 관측 사상 최대라는 비가 서울과 중부 지방을 덮쳤다. 모두 ‘유례가 없는’ 규모였고, 이 불길한 수식어는 해마다 강도를 높여 등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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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법과 원칙? 법의 원칙!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대우조선해양 파업으로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척박한 노동 현실이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현재 총 10만여 조선업 노동자의 70%가량이 하청노동자이며 임금은 20~30년 경력에도 월 200만원 정도로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다.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대비 임금이 30% 넘게 줄었다니 파업 때 요구한 30% 임금 인상은 그간의 물가 인상은 포함하지도 않은, 임금의 원상회복 요구였다. 조선소 일은 고강도 고위험 노동이다. 재해율과 사망률이 제조업 평균의 2배가 넘는 데다 2016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현장에서 숨진 88명 중 77%가 하청노동자였다. 주기적으로 불경기가 닥치면 임금 삭감과 대량 해고도 하청노동자를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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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멈춤의 미학 올여름 20일가량 대구와 전주에 있는 수녀원에서 ‘피정’을 도와주며 지냈다. ‘피속추정(避俗追靜)’에서 나온 피정은 번잡을 피해 고요를 추구하는 기도의 시간이다. 가톨릭 수도자는 매년 ‘8일 피정’을 한다. 침묵하며 일상을 ‘멈춤’으로써 삶에서 세상의 소음과 먼지를 벗겨 낸다. 마음을 맑게 하고 눈을 밝게 하여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을 살핀다. 원하는 앞날을 그리고 삶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여 세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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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하나뿐인 지구, 우리 모두의 집 올봄 새소리 듣는 재미에 들려 요즘은 아침에 깨면 창밖의 새소리부터 들린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하루를 여는 생기가 넘친다. 새는 잘 모르지만, 박새와 지빠귀 종류의 새소리 같다. 재잘대는 소리를 좇아 뜰의 나무들을 살펴보는데 운이 좋으면 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보기도 한다. 손바닥만 한 새가 부리를 여닫으며 지저귀는 모습은 앙증맞지만, 소리를 내느라 온몸을 불룩거리는 걸 보면 숙연한 느낌도 든다. 새들도 밤에는 어디선가 잠을 자느라 조용하다가 새벽이 되면 다시 지저귄다. 비가 오면 어디선가 비를 피하느라 조용하다가 비가 그치면 다시 날개를 편다. 관심을 가지고 새를 보니 뜰의 나무가 새가 사는 ‘집’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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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탈핵, 탈석탄’을 염원하는 생명·평화 순례 5년 만에 ‘탈원전’에서 ‘원전 확대’로 핵발전 정책이 180도 변했다. 전력의 안정적·경제적인 수급과 기후위기 대응이 주된 명분이다. 그러나 정권과 정책이 변한다고 진실마저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핵발전은 정권에 상관없이 언제나 위험하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지금도 여전히 보여주는 비극적 진실이다. 안전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핵발전은 ‘통합’이 너무 당연한 것이라 취임사에서 뺐다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핵발전은 불평등과 차별을 키우는 갈등과 분열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을 하면 나올 수밖에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인 고준위핵폐기물의 ‘영구처분장’을 원할 지역은 이 땅 어디에도 없다. 정부는 30년 넘게 후보지를 물색해왔지만, 모두 실패했다. ‘화장실 없는 집’, 핵발전소가 딱 그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