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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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가을로 접어들며 무더위가 가니까 지내기는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가뭄과 호우 때나 반짝하는 기후에 관한 관심도 함께 가버릴까 걱정이다. 올해도 세계 곳곳이 혹독한 기후 재난에 시달렸다. 유럽과 중국은 가뭄, 파키스탄은 홍수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고 한국도 기상 관측 사상 최대라는 비가 서울과 중부 지방을 덮쳤다. 모두 ‘유례가 없는’ 규모였고, 이 불길한 수식어는 해마다 강도를 높여 등장할 것 같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의 첨예한 대립 같은 국제적 분쟁과 갈등이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기후위기의 국제적 공조를 어렵게 한다. 국내 상황은 더 암울하다. 지난 정부에서는 탄소중립 ‘선언’이니 탄소중립위원회 ‘발족’이니 하며 담론은 있었는데, 지금 정부에서는 아예 담론조차 실종됐다. 핵발전 확충 명분이 필요할 때만 기후는 위기가 된다. 기후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모습은 지난 호우로 일가족 3명이 숨진 반지하 집 바깥에서 우산을 쓰고 쪼그려 앉아 있는 대통령을 닮았다. 꼭, 구경꾼 같다. 집권당은 집안 싸움하느라 기후는 안중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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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법과 원칙? 법의 원칙!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대우조선해양 파업으로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척박한 노동 현실이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현재 총 10만여 조선업 노동자의 70%가량이 하청노동자이며 임금은 20~30년 경력에도 월 200만원 정도로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다.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대비 임금이 30% 넘게 줄었다니 파업 때 요구한 30% 임금 인상은 그간의 물가 인상은 포함하지도 않은, 임금의 원상회복 요구였다. 조선소 일은 고강도 고위험 노동이다. 재해율과 사망률이 제조업 평균의 2배가 넘는 데다 2016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현장에서 숨진 88명 중 77%가 하청노동자였다. 주기적으로 불경기가 닥치면 임금 삭감과 대량 해고도 하청노동자를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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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멈춤의 미학 올여름 20일가량 대구와 전주에 있는 수녀원에서 ‘피정’을 도와주며 지냈다. ‘피속추정(避俗追靜)’에서 나온 피정은 번잡을 피해 고요를 추구하는 기도의 시간이다. 가톨릭 수도자는 매년 ‘8일 피정’을 한다. 침묵하며 일상을 ‘멈춤’으로써 삶에서 세상의 소음과 먼지를 벗겨 낸다. 마음을 맑게 하고 눈을 밝게 하여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을 살핀다. 원하는 앞날을 그리고 삶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여 세상으로 돌아간다. 효율과 경쟁 위주의 현대 사회는 멈춤에 익숙하지도 호의적이지도 않다. 멈춤은 퇴보이고 기껏해야 정체일 뿐이다. 방학이라는 멈춤의 때가 있는 학교도 이젠 별로 다르지 않다. 대학은 방학과 함께 계절학기가 시작된다. 대학에서 안식년은 언제부턴가 연구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렇게 멈춤을 없애면서 대학의 속도는 빨라졌고 방향 감각은 무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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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하나뿐인 지구, 우리 모두의 집 올봄 새소리 듣는 재미에 들려 요즘은 아침에 깨면 창밖의 새소리부터 들린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하루를 여는 생기가 넘친다. 새는 잘 모르지만, 박새와 지빠귀 종류의 새소리 같다. 재잘대는 소리를 좇아 뜰의 나무들을 살펴보는데 운이 좋으면 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보기도 한다. 손바닥만 한 새가 부리를 여닫으며 지저귀는 모습은 앙증맞지만, 소리를 내느라 온몸을 불룩거리는 걸 보면 숙연한 느낌도 든다. 새들도 밤에는 어디선가 잠을 자느라 조용하다가 새벽이 되면 다시 지저귄다. 비가 오면 어디선가 비를 피하느라 조용하다가 비가 그치면 다시 날개를 편다. 관심을 가지고 새를 보니 뜰의 나무가 새가 사는 ‘집’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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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탈핵, 탈석탄’을 염원하는 생명·평화 순례 5년 만에 ‘탈원전’에서 ‘원전 확대’로 핵발전 정책이 180도 변했다. 전력의 안정적·경제적인 수급과 기후위기 대응이 주된 명분이다. 그러나 정권과 정책이 변한다고 진실마저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핵발전은 정권에 상관없이 언제나 위험하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지금도 여전히 보여주는 비극적 진실이다. 안전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핵발전은 ‘통합’이 너무 당연한 것이라 취임사에서 뺐다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핵발전은 불평등과 차별을 키우는 갈등과 분열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을 하면 나올 수밖에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인 고준위핵폐기물의 ‘영구처분장’을 원할 지역은 이 땅 어디에도 없다. 정부는 30년 넘게 후보지를 물색해왔지만, 모두 실패했다. ‘화장실 없는 집’, 핵발전소가 딱 그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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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싸움이 아니라 희망을 보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구호가 ‘공정과 상식’이었다. 언제나 듣기 좋은 말이라 선거 전략상 정했다 해도, 이제는 대통령 당선인의 책임감으로 공정과 상식을 근본 원칙으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기미는 도통 찾아보기 힘들다. 여전히 원내 제1당이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쪽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양쪽 모두 자기가 하는 것은 공정과 상식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다음은 국민 통합을 약속한 윤 당선인이 마음에 새겨둘 만한 말이다. “통합의 길을 약화시키는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중요한 단어들의 의미를 공허하게 하거나 변질시키는 것입니다”(프란치스코, <모든 형제들>). 형식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공허한 말이 돼버렸다. 통합에 꼭 필요한 ‘공정’이 오염되면 권력의 자의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지배 도구로 변질된다. 다행히 상식은 쉽게 공허해지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상식인지 아닌지는 사람의 ‘공통 감각’(common sense)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상식은 공정의 잣대다. 공정하다고 아무리 우겨도 상식에 맞지 않는 건 공정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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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더불어민주당 회생법 <신명기>는 히브리 성경에서 ‘모세오경’이라고도 하는 ‘토라’(율법)의 다섯 번째 책이다. 이 책을 보면, 모세는 광야의 40년 여정을 마치고 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율법을 자세히 일깨워준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몹시 걱정스러웠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풍요가 이스라엘에 위기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풍요에 취해 하느님의 가르침을 잊고 멸망의 길로 갈 것이다. 성서학자 월터 브루그만이 말했듯이, “번영은 기억상실”을 가져온다. 그래서 모세는 요르단을 건너려는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율법을 ‘기억하라’고 거듭 말한다. 풍요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그러나 고난의 땅 광야에서 받은 하느님의 계명을 잊어버린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때 최대의 번영을 누린 후 남북으로 갈라져 북쪽은 아시리아, 남쪽은 바빌론에 멸망한다. 솔로몬의 번영에 멸망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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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바이러스가 선생이다 코로나19에 힘들게 버텨온 지 햇수로 벌써 3년째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가파르게 늘어나 하루 10만명을 넘었고 방역대책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거리 두기는 마스크와 달리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날이 갈수록 사회적·경제적 피해가 늘어났다. 학수고대하던 백신이 개발됐지만, 비웃기라도 하듯 알파에서 베타, 감마, 델타, 오미크론으로 감염력이 높거나 백신 효능을 떨어뜨리는 변이가 등장하면서 백신의 ‘게임 체인저’ 대망론도 무산됐다. 코로나 사태에서 다시 확인된 것은 우리가 문제를 모르거나 외면한다는 것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증상과 원인을 혼동한다. 당장 고통스러운 증상을 문제로 생각하지만, ‘진짜 문제’는 원인이다. 코로나19는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백신은 증상 대응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 문제의 답은 아니다. 증상만 처리하려 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양상만 바뀔 뿐 증상은 반복된다. ‘사스’와 ‘메르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다. 백신은 개발하기도 힘들지만 진짜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한 채 코로나 사태만 종식되면 그냥 이전처럼 살면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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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성장의 한계’ 50년, 무엇을 할 것인가? <성장의 한계>가 올해로 출간 50주년을 맞는다. ‘인류의 곤경에 관한 로마클럽 프로젝트 보고서’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지금까지 1000만부 이상 팔리며 세계적으로 성장에 관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 프로젝트는 데니스 메도스를 책임자로 17명의 MIT팀이 1970년 여름부터 18개월간 수행했다. 이 팀은 ‘월드3’라는 컴퓨터 모형을 사용하여 1900년에서 2100년까지 전 세계의 인구, 농업생산, 천연자원, 산업생산, 오염의 추세를 12개의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당시는 우리나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도 10%에 달하던 고도성장의 시대로 ‘성장의 한계’라는 말은 상상하기도, 인정하기도 힘들어서 관심만큼이나 많은 비판과 반박이 쏟아졌다. 게다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도 충족하지 못하던 가난한 나라는 더 성장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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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꿀잠’을 아시나요 어릴 때, 방학이 되면 어머니는 으레 나를 외갓집에 보내주셨다. 어려서 그랬겠지만 그땐 외갓집까지 버스 타고 가는 게 그렇게 좋았다. 아마도 날 반갑게 맞아주시는 외할머니와 이모가 계셔서 더 그랬을 것이다. 여름엔 또래들과 실컷 뛰어놀다 골목에 놓인 널찍한 평상에 누워 쉴 때의 기분 좋은 나른함, 겨울엔 잔뜩 빌려온 만화책을 옆에 쌓아두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읽는 재미가 각별했다. 학교가 힘들거나 지루해질 때, 방학하면 다시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내게 힘이 됐던 외갓집은 어릴 적 내 마음의 보루였다. 지금도 마음이 스산해질 때면 나를 토닥여주는 소중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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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기술이 우리를 건져낼 수 있을까 “We are sinking.” 지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무장관이 허벅지까지 차는 바닷속에서 연설하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기고 있는 투발루의 절박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감행한 수중 연설이었다. 하지만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과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 노력’을 담은 글래스고 합의문은 코페 장관이 다급하게 요청한 “내일을 지키기 위한 오늘의 과감한 대안적 조치”에 비해 한가하기 짝이 없다. 합의문에 화석연료가 언급된 것 자체가 처음이라는 의미 부여도 안이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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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의 나락 한 알 ‘일상’을 생각한다 단계적 ‘일상회복’이 곧 시작될 모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비상한 2년을 보낸지라 ‘일상’이란 말이 아스라이 그립다. 그동안 크나큰 타격을 입으며 견뎌온 자영업자에겐 긴 가뭄 끝 단비일 터다. 하지만 지난달 국회 주변에 경찰의 저지를 뚫고 어렵사리 차린 ‘자영업자 합동분향소’가 말해주듯, 막다른 골목에 몰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이들의 일상은 영영 회복될 수 없다. 견디다 못해 폐업하고 빚에 시달리는 이들의 일상은 어떻게 될까? ‘아시아나 케이오’를 비롯해 코로나를 빌미로 기업이 해고한 노동자들의 일상은 어떻게 회복해야 하나? 강제로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방역의 이름으로 빼앗긴 민주주의의 일상, 집회의 자유는 온전히 회복될까?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지만 지난 4월 평택항의 이선호, 이달 초 여수의 현장실습생 홍정운처럼 일하다 사고로 죽는 것이 예사인 참혹한 노동의 일상은 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