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최신기사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탄소중립, 공경과 겸손으로 탄소중립에 속도가 붙었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선언 이후 정부 부처별 추진 전략이 나오고, 기업의 탄소중립 선언도 늘고 있다. 지난 4월 지구의날, 40개국 정상이 참여한 ‘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이틀 전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했고, 어제와 오늘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탄소중립에 추진 속도가 중요하다면, 추진 방향은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방향은 기술과 경제 일변도였다. 기술 혁신으로 탄소를 감축하겠다는 발상에는 현재의 생활양식은 변함없이 유지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생활양식의 전면적 전환 없이 제한된 시간 내에 기술만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탄소중립은 감축 못지않게 시간과의 싸움이다. 며칠 전 기상청은 1.5도 상승까지 7~13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
녹색세상 농촌이 살면 모두가 산다 의식주의 바탕인 ‘땅’은 사람이 만들 수 없다. 부족하다고 ‘더’ 만들 수도 없다. ‘자연의 다른 이름’인 땅은 상품이 될 수 없다. 상품이 아닌 땅을 상품화한 부동산은 ‘허구 상품’이다(칼 폴라니). 부동산 자체가 모순이고 문제다. 땅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투기 의혹이 집 문제로 시달리던 민심에 불을 질렀다. 보궐선거를 앞둔 정부와 정치권은 앞다투어 대책을 쏟아냈다. 이참에 완벽한 부동산 투기 근절책이 나온다고 하자. 그럼 이제 부동산 시세 차익을 바라는 사람은 없어질까? 청년들은 ‘영끌’ 없이도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을까? 앞날의 계획을 열띠게 말하다 집 얘기만 나오면 풀 죽는 일은 사라질까?
-
녹색세상 후쿠시마 10년 ‘망각의 힘’ “원료 생산부터 핵폐기물 처리와 폐로 과정까지 전체 발전 주기를 고려하면 핵발전도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핵발전은 사고 위험과 핵폐기물, 보안 문제 등 단점이 너무 크다. 갈수록 발전 비용이 증가하고 부지 선정, 설계, 시공, 가동까지 적어도 12년 정도 걸리는 핵발전은 비용과 시간 싸움인 기후위기에 적합하지 않다. 핵발전소는 폭우, 폭염, 태풍 등 기후재난에 안전하지 않다. 지금까지 핵발전을 늘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나라가 없다. 경직성 발전원인 핵발전은 유연한 발전원인 재생에너지 발전과 충돌한다. 탈핵과 탈석탄은 기술적·경제적 문제보다는 사회적·정치적 문제다.” 이상은 최근 ‘탈핵신문미디어협동조합’이 펴낸 <기후위기와 탈핵>에서 핵발전이 기후위기의 대책이라는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한 내용의 요약이다.
-
녹색세상 구원은 삶의 전환으로 온다 올겨울도 조류 인플루엔자로 가금류 2540만마리가 ‘살처분’ 당했다. 그런데 이제는 별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듯하다. 고기는 가축을 길러 얻는 게 아니라 돈으로 사는 상품이 되었다. 편리해졌지만 그 고기가 한때는 우리 같은 ‘생명’이었음을 알기 어려워졌다. ‘예방적’ 살처분은 대부분 생매장이고, 생매장은 동물보호법 위반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제품의 재료에 생긴 문제의 확산을 원천 봉쇄하는 선제적이고 과감한 처방으로 묵인된다.
-
녹색세상 희망은 어떻게 오는가 새해, 여전히 코로나19로 시달리지만 어디선가 ‘희망’을 보고 싶었다. 대통령의 신년사를 읽었다. 글은 ‘바람’으로 가득했고, 희망은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바람을 늘어놓는다고 희망이 생기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고, 해야 할 것을 기억하고 실천할 때,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다. 그 다름, 새로움에서 희망이 움튼다. 희망은 그렇게 온다. 현실과 동떨어진 바람은 희망이 아니라 근거 없는 ‘희망 사항’일 뿐이다.
-
녹색세상 코로나 학기를 마치며 코로나 학기, 비대면 수업으로 얼굴도 한번 못 본 우리 학생들, 안녕하세요. 지난 학기 저는 여러분과 <인간학>이란 교과목으로 ‘사람’과 ‘삶’에 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인간 이해의 관점으로 ‘근원적 유대’를 반복해 강조했던 걸 기억하겠지요. 모든 게 긴밀히 연결된 세계를 하나의 ‘집’으로 보면 우리는 그 집의 구성원이고 경제(오이코노미아)는 집(오이코스)의 ‘살림살이’를 뜻합니다. 하지만 근대의 자연과학적 관점은 모든 것을 고유성과 생명을 제거한 ‘물질’로 균질화합니다. 물질과 운동만 남은 추상의 세계는 기계로 재구성되고 그 안의 모든 것은 부품으로 재탄생합니다.
-
녹색세상 선언 말고 계획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의 ‘기후위기비상선언’과 국회의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에 이어 나온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은 중요한 진척이다. 하지만 선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대통령의 선언을 듣고 바로 든 생각은 ‘선언 말고 계획’이었다. 지난해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에게 ‘연설 말고 계획’을 가져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온실가스 감축 계획 대신 ‘세계 푸른 하늘의날’ 제안을 가져갔다.
-
녹색세상 줄여야, 산다 추석 며칠 후, 신문에서 본 어느 ‘자원순환센터’는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로 변해 있었다. 명절 탓만은 아니다. 쓰레기는 코로나19 감염증 발생 후 배달이 늘면서 폭증했다. 아니 사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쓰레기는 넘쳐났다. 어디 플라스틱뿐인가. 여전한 음식물 쓰레기에 ‘패스트 패션’으로 부쩍 늘어난 의류 쓰레기, 유독성 물질이 들어 있는 전자 폐기물. 우리가 쏟아내는 쓰레기는 이제 처리의 한계를 넘은 듯하다. 재사용과 재활용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쌓이는 쓰레기를 감당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러니 ‘진짜’ 해결책은 쓰레기를 줄이는 것, 덜 쓰는 것이다. ‘절약’은 소비를 계속 늘려야 돌아가는 성장 사회에서는 생소한 말이다. 하지만 소비가 바로 쓰레기로 이어지는데, 절약을 뺀 그 어떤 대책이 효과가 있을까.
-
녹색세상 역병, 우리의 거울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변했지만, 바이러스 재난은 변할 조짐이 없다. 변하지 않는 거로 따지자면 사람도 코로나 바이러스 못지않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말은 질리도록 했지만, 사태에 걸맞은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지난 7월 발표된 한국판 뉴딜도 결국 경기를 부양해 빨리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지금 사태가 ‘이전’과 별개로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면 이런 대책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0 경향포럼>에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코로나19라는 ‘외생변수’가 문제고, 지금의 경제는 “이 악재만 사라지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도 비슷한 전제가 깔린 걸 본다. 그러나 바이러스 재난이 ‘지금의 경제’와 엮여 있다면, ‘이전’으로의 복귀는 가능하다고 해도 문제의 원인을 지속하거나 강화할 뿐이다. 원인이 같은데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
녹색세상 행복은 ‘성장’순이 아니다 2018년 폭염 때도 그랬지만, 이번 장마를 기후위기와 연결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보면 지구 평균 온도는 0.85도 올랐지만 우리나라는 1.8도 올랐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대량 생산-유통-소비-폐기의 경제와 생활양식이라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비밀’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그 ‘무엇’을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저탄소 경제”와 탄소배출 감축을 말하지만 ‘성장’은 여전히 성역에 속한다. 언제부턴가 성장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성장에서 생기는 문제는 ‘더’ 성장하면 해결되는 것이고, 진짜 문제는 성장을 못하는 것이다.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 행복은 성장에 비례한다. 우리는 성장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21세기, 우리는 여전히 ‘성장 신화’를 산다.
-
녹색세상 이것은 그린 뉴딜이 아니다 “대한민국 대전환” “새로운 100년의 설계” “160조원.” 거대한 수사와 숫자를 동원했지만 한국판 뉴딜은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의 착실한 추종자다. 디지털 뉴딜은 물론이고 ‘그린’ 뉴딜도 방점은 성장에 찍혔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로서는 자가당착이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재난 뒤에는 기후위기를 비롯한 자연생태계의 훼손, 탈규제 자본주의를 앞세워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찾아 지구를 헤집어 놓은 세계화 경제, 우리에게 군림하는 성장지상주의가 차례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
녹색세상 ‘성장’은 힘이 세다 “모든 것을 바꾼다”는 기후 문제의 본질은 자본주의다(나오미 클라인). 자본의 끝없는 확대재생산에 기초하는 자본주의 문제의 본질은 성장이다. 세계화가 이루어진 자본주의 경제에서 ‘성장’은 가장 힘센 말이 되었다. 경제성장은 ‘언제나’ ‘무조건’ 좋다. 경제가 성장을 못 해도 ‘감소’가 아니라 ‘역성장’이라 부른다. 성장의 지표인 국내총생산(GDP)은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왜곡한다. 생산은 무조건 좋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발전은 GDP에는 좋아도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화폐로 환산되지 않는 시장 밖에서의 유익한 활동과 거래는 무시된다. 분배를 고려하지 않는 GDP가 증가했다고 우리 삶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GDP에 일희일비한다. 성장은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