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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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역병, 우리의 거울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변했지만, 바이러스 재난은 변할 조짐이 없다. 변하지 않는 거로 따지자면 사람도 코로나 바이러스 못지않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말은 질리도록 했지만, 사태에 걸맞은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지난 7월 발표된 한국판 뉴딜도 결국 경기를 부양해 빨리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지금 사태가 ‘이전’과 별개로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면 이런 대책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0 경향포럼>에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코로나19라는 ‘외생변수’가 문제고, 지금의 경제는 “이 악재만 사라지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도 비슷한 전제가 깔린 걸 본다. 그러나 바이러스 재난이 ‘지금의 경제’와 엮여 있다면, ‘이전’으로의 복귀는 가능하다고 해도 문제의 원인을 지속하거나 강화할 뿐이다. 원인이 같은데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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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행복은 ‘성장’순이 아니다 2018년 폭염 때도 그랬지만, 이번 장마를 기후위기와 연결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보면 지구 평균 온도는 0.85도 올랐지만 우리나라는 1.8도 올랐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대량 생산-유통-소비-폐기의 경제와 생활양식이라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비밀’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그 ‘무엇’을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저탄소 경제”와 탄소배출 감축을 말하지만 ‘성장’은 여전히 성역에 속한다. 언제부턴가 성장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성장에서 생기는 문제는 ‘더’ 성장하면 해결되는 것이고, 진짜 문제는 성장을 못하는 것이다.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 행복은 성장에 비례한다. 우리는 성장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21세기, 우리는 여전히 ‘성장 신화’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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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이것은 그린 뉴딜이 아니다 “대한민국 대전환” “새로운 100년의 설계” “160조원.” 거대한 수사와 숫자를 동원했지만 한국판 뉴딜은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의 착실한 추종자다. 디지털 뉴딜은 물론이고 ‘그린’ 뉴딜도 방점은 성장에 찍혔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로서는 자가당착이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재난 뒤에는 기후위기를 비롯한 자연생태계의 훼손, 탈규제 자본주의를 앞세워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찾아 지구를 헤집어 놓은 세계화 경제, 우리에게 군림하는 성장지상주의가 차례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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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성장’은 힘이 세다 “모든 것을 바꾼다”는 기후 문제의 본질은 자본주의다(나오미 클라인). 자본의 끝없는 확대재생산에 기초하는 자본주의 문제의 본질은 성장이다. 세계화가 이루어진 자본주의 경제에서 ‘성장’은 가장 힘센 말이 되었다. 경제성장은 ‘언제나’ ‘무조건’ 좋다. 경제가 성장을 못 해도 ‘감소’가 아니라 ‘역성장’이라 부른다. 성장의 지표인 국내총생산(GDP)은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왜곡한다. 생산은 무조건 좋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발전은 GDP에는 좋아도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화폐로 환산되지 않는 시장 밖에서의 유익한 활동과 거래는 무시된다. 분배를 고려하지 않는 GDP가 증가했다고 우리 삶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GDP에 일희일비한다. 성장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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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그린’과 성장 사이에서 결과에 대한 처방만 있고 원인에 대한 고민이 없다. 정부의 포스트 코로나 경제 대책을 보고 난 느낌이다. 정부의 구상은 코로나19 재난으로 생긴 경제 침체를 ‘한국판 뉴딜’로 극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침체는 재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재난의 결과에 대한 적기의 대응도 중요하지만, 재난의 근원을 놓고 사회 전반을 반성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아쉽게도 정부의 구상에서 자연의 지속적 파괴와 값싼 노동력에 기반하는 ‘경제발전’ 패러다임에 대한 진솔한 고민은 찾기 어렵다. 사업만 무성하고 성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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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재난의 최전선과 뿌리로 가라 큰 병치레는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럴 때, ‘병’은 타성에 젖은 삶을 깨우는 죽비다. 코로나19 이후 개인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부쩍 늘어난 까닭이다. 이번에 우리는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두 눈으로 보았다. 항공기, 기차, 자동차의 움직임이 줄고 공장이 멈추자, 자연이 돌아왔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잿빛 하늘은 가고 파란 하늘이 돌아왔다. 인도 북부 펀자브주에는 히말라야 경관이 돌아왔다. 우리가 성장을 위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아니 무슨 짓을 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면 이 변화도 다시 사라질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성장을 한다고 자연생태계를 계속 파괴하면, 바이러스 감염과 재난은 더 자주 더 심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런 과거가 우리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적 전환이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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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거리 두기’와 지역화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 ‘거리 두기’라는 생소한 말이 어느새 일상어가 되었다. 거리 두기는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국경의 빗장을 잠그는 등 문단속에 들어간 나라가 벌써 여럿이다. 국가 간 거리 두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시·공간의 압축을 추구하며 고도의 교통·통신 기술로 세계 전체를 빠르고 긴밀하게 연결해온 세계화인 듯하다. 국제적 거리 두기는 세계화와 정반대 움직임을 뜻한다.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항공, 여행, 관광, 숙박, 식당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파편이 튀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실물경제가 출렁대니 금융경제도 휘청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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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는? ‘니네베’는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다. 가로지르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니, 굉장한 번영을 구가하던 대도시였나 보다(<요나서>). 여기에 ‘요나’라는 예언자가 나타나 니네베의 멸망을 선포한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니네베가 하느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란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언제나 사회의 약자, ‘과부와 고아와 떠돌이’의 하느님이며, 하느님께 대한 죄는 이들의 억압과 착취로 나타난다. 니네베의 번영은 이들 약자의 피땀으로 이뤄졌고, 이들의 울부짖음이 하느님께 닿았나보다. 이 하느님은 이집트의 압제와 수탈에 허덕이던 히브리인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이들을 해방하려 이집트를 쳤었다(<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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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신종 코로나’로 본 세상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움직임이 세계 전역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바이러스 효과’는 세상을 잇고 있는 연결의 밀도와 강도를 잘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의 빠르고 광범위한 확산은 세계를 촘촘히 이어주는 항공교통 때문이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고 하늘길을 통제하니 당장 관광산업이 주력인 지역들로 불똥이 튄다. 중국 자동차 부품 공장이 휴업을 하니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국내 자동차 공장이 멈춰 서고, 협력업체들도 덩달아 피해를 본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가동을 멈추는 사업장이 많아지면 국제 분업으로 이어진 산업 분야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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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상식과 현실 ‘상식의 사회.’ 새해의 바람이다. 현실이 강고하다고 상식을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이 현실에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016년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광장의 시민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이어야 할 이 말을 목이 쉬도록 외쳤다. 그렇게 정권교체를 이루었어도, 헌법 제1조의 상식과 현실의 괴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은 65%의 득표로 80%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지만,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28%의 득표에도 15% 미만의 의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국민은 주권자로 행사한 권력의 15% 정도를 빼앗긴 셈이다. 이러한 상식 밖의 정치 현실을 뜯어고치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득권 고수에 혈안이 된 거대 정당들의 어깃장으로 누더기가 되어 ‘준’이라는 딱지가 붙고서야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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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툰베리의 “How dare you?” 영국의 콜린스 사전과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각각 ‘기후파업’과 ‘기후비상’을 선정했다. 올해 이 두 단어의 사용 빈도가 이전에 비해 100배 정도 늘었다는 선정 이유는 세계적으로 기후에 관한 위기의식이 그만큼 높아졌고 기후 관련 담론도 많아졌음을 보여준다.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도 이런 변화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정상들로부터 기후비상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찾아보기는 여전히 힘들다. 2년 전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공식 선언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다 치자.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후행동정상회의 연설에서 노후석탄화력발전소 4기 감축과 2022년까지 6기 감축 계획을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책의 일환으로 발표했지만,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의 추가 건설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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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제주공항과 제주의 미래 제주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의 하나다. 1~2분에 한 대씩, 거의 쉴 새 없이 항공기가 뜨고 내린다. 이착륙 지연은 일상이다. 지난해 제주공항 이용객은 3000만명에 달했고, 국토교통부는 2045년에는 이용객이 4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현재의 공항으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공항을 신설하면 더 많은 사람이 제주에 올 것이고, 그만큼 경제적 효과도 커질 것이다. 대부분의 운항 노선을 제주에 의존하는 지방 공항들도 활성화될 것이다.” 제2공항 건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논리다. 제주공항의 수용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 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사전타당성조사를 의뢰한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기존 공항의 개선과 확장으로 미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용역사업 자체와 보고서가 수년간 은폐되었다는 것이 지난 5월 드러나면서 의문은 증폭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제주공항은 제주도에 있다는 사실과 그 함의를 외면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 ‘진짜’ 문제는 제주공항의 수용력이 아니라 제주도라는 ‘섬’의 수용력이다. 제2공항은 제주공항이 아니라 제주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