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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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나는 종이다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나는 신이다>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신이 배반한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신이 사람들을 배반했다는 것이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데, 다 보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통’ 교회에 가면 목회자는 자신을 ‘만유의 주(Lord of all)’인 신의 뜻을 대신 전파하는 ‘종(servant)’이라고 낮춘다. 신도들은 주의 종 말씀에 의지해서 신이 약속한 구원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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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건폭, 학폭, 검폭 ‘조폭’을 뿌리 뽑겠다며 범죄와의 전쟁을 치른 게 언제였던가. 건폭! 학폭! 검폭! 온 나라에 때아닌 온갖 ‘조폭 담론’이 난무하고 있다. 시작은 건폭. 지난해 12월부터 경찰은 건설 현장을 정상화하겠다며 건설노조에 협박당한 사례 신고를 받았다. 올해 1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건설노조에 저주를 퍼부었다. “경제에 기생하는 독”, “조폭들이 노조 탈 쓰고 설쳐”, “노동자들의 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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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법의 정신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나왔다. “담당 업무, 액수를 볼 때 50억원은 이례적으로 과하”지만 “아들이 받은 성과급을 곽 전 의원이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뇌물수수에 관한 공소사실은 무죄로 판단한다.” 재판부는 일상의 상식 차원에서 볼 때 분명 50억원의 성과금은 이례적으로 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 형식을 따라 따져볼 때 뇌물로 판단할 증거가 명백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일상의 ‘가치 판단’과 재판부의 ‘사실 판단’이 어긋난다. 이러한 어긋남은 법을 일상의 사회적 삶과 괴리된 법 기술로 보는 도구주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법의 ‘형식 합리성’을 기술적 차원에서 세밀하게 따질 뿐 법이 사회적 삶의 ‘실질적 요구’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에는 애써 눈감는다. 사회적 삶에서 유리된 법은 현실권력에 복무하는 법 기술자의 도구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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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신자유주의의 끝물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안타깝게도 마중물이 아니라 끝물로 첫 칼럼을 시작한다. 신자유주의의 끝물! 지난 칼럼에서 대구 아파트 사례를 들어 지역에 만연한 악덕 자본가 흉내 내기를 지적했다. 가치 혁신 대신 인건비 깎아 이윤을 추구한다. 경비원의 직업 안정성은 물론 아파트 주민의 안전마저도 위협하는 일이다. 왜 그럴까?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남들도 하는 것 같아 덩달아 끝물에 올라탄다. 이는 대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신자유주의의 끝물에 올라타 위태로운 ‘바닥으로의 질주’를 가속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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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끝물 대구의 한 아파트. 주민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했다. 공식 안건은 경비원 근무 시간 단축.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경비원 인건비 삭감이다. 사정은 이렇다. 지금까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간 근무제를 시행해 왔다. 총 12시간 중 점심 2시간, 저녁 2시간 무급 휴식 시간이다. 이후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야간 및 심야 근무를 한다. 심야 시간 중 4시간은 무급 휴식 시간이다. 총 20명의 경비원이 24시간 중 무급 휴식 시간 8시간을 제외하고 16시간 교대로 일한다. 문제는 심야 근무다. 경비원 휴게실에서 5인이 돌아가며 순찰을 하는데, 입주민은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지 않다고 인지하고 있다. 어차피 인지도 안 되는 심야 근무를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 이참에 폐지하자는 것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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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학회와 친교 얼마 전 박사 학위를 받은 제자가 학회에 처음 발표하러 다녀왔다. 사회학자 박영신을 중심으로 해서 1970년대부터 학회지를 발간해온 유서 깊은 학회인데, 신진학자 발표 자리를 흔쾌히 마련했다. 막스 베버의 이론을 활용하여 한국 사회를 분석한 걸 높게 평가한 듯하다. 학회에서 돌아온 제자가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갓 박사 학위를 받은 저를 깍듯이 학자로 대해주셨어요.” 할아버지뻘 되는 원로학자가 30대 초반의 초짜 박사를 마치 동등한 학자인 양 존중했다. 그 어려운 막스 베버의 이론을 분석적으로 재구성하여 한국 사회에 적용하였다 한들, 평생 학문에 몸 바친 원로학자의 눈에 뭐 그리 대단하게 보였겠는가? 그런데도 두 세대나 아래인 젊은 박사의 연구를 귀히 여겨 초청해서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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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저출산과 저출생 대한민국 소멸론이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 합계출산율, 즉 15세에서 49세까지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지표가 1.0이 안 된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단순 인구 재생산조차 어렵다. 2003년 대통령 직속 ‘인구고령사회대책팀’을 설치하고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까지 만들어 온갖 출산장려 정책을 펼쳤다. 2015년에는 하다 하다 지역별 가임기 여성 분포도까지 만들었다. 이전부터 내오던 통계였지만 저출산 위기를 시각화해서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지난 20여년 동안 저출산 극복을 위해 약 380조원의 재정을 투입했지만, 합계출산율은 계속 떨어져 2022년 현재 0.8 아래다. OECD 평균이 1.59인데 한국이 최하위이니, 사실상 전 세계에서 꼴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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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프로당구협회와 가치 영역 어두침침한 조명과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동네 달건이들이 당구를 치고 있다. 스리 쿠션을 칠 때마다 돈을 주고받는 ‘죽방 당구’가 한창이다. 공이 먼저 맞았느니, 쿠션 먼저 맞았느니 시비가 붙더니 급기야 패싸움까지 벌일 기세다. 당구장 주인이 황급히 싸움을 가라앉히고 음료수를 다시 내와 달랜다. 호기심에 당구장 밖을 기웃거리던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은 소동을 틈타 당구장 안에까지 호기롭게 들어선다. 뒤늦게 알아차린 당구장 주인이 장사 망치려고 작정을 했냐며 호통친다. 못 들은 척 까까머리들이 구석 테이블을 하나 차지하고 공을 달라고 해서 신나게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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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얼굴 한 대학이 등 떠밀려 재조사에 착수한 논문 표절 사건을 그냥 덮어버렸다.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날 정도의 연구부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교수회가 전체 교수를 상대로 박사학위 논문 검증위원회 구성 찬반 투표까지 시행했지만, 이마저도 반대가 다수였다. 그러면 그렇지.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군. 학문의 자율성이 전혀 없는 대학 현실이니 그럴 수밖에. 다들 혀를 차는데, 보다 못한 표절 피해자가 시정과 사과를 요청하고 나선다. 표절 당사자와 대학 당국은 마치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듯 전혀 응답하지 않고 깔아뭉갠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 모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부끄러워야 마땅한데 어쩜 저렇게나 당당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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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추앙할 결심 요즘 모임에 가면 영화 <헤어질 결심> 얘기가 반드시 나온다고 한다. “<색, 계>에서부터 알아봤지만, 탕웨이는 정말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이야. 관능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정말 사람 미치게 하네.” “멜로, 스릴러, 미스터리를 솜씨 좋게 버무린 박찬욱의 미학적 미장센은 또 어떻고.”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칸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불륜 미화라는 악플 세례로 극장에서 금방 사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입소문을 타고 다시 불붙는가 싶더니 n차 관람러의 찬탄하는 글이 인터넷 공간에 줄지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보니까 비로소 영화의 아름다움이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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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기업가 정신과 노예 노동 2022년 6월21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우주로 솟구친 누리호가 지구 고도 700㎞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2010년 누리호 개발을 시작한 후 12년3개월 만에 순전히 한국 항공 기술로만 이룬 쾌거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1t 이상의 실용위성을 독자 기술로 발사할 수 있는 우주 강국이 되었다며 환호했다. 한 유력신문은 러시아의 기술을 빌려 처음 나로호를 개발할 때 “너희가 뭘 아느냐”는 식으로 무시를 받은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 벅찬 일이라며 감격했다. 누군가는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주도적으로 기회를 포착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 덕분이라며 이를 온 나라에 퍼트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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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학위보다 자격증 예상대로 대학은 자신이 준 학위가 표절인지 아닌지 여전히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는 세상 다 그런 거지 뭘 그리 까탈스럽게 구냐고 배짱부린다. 어쩌다 운 없이 일찍 표절이 들통난 이는 왜 나만 갖고 그러냐며 학위 반납을 선언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천연덕스럽다. 이쯤 되면 도대체 왜 석·박사 학위를 따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도 대학은 온갖 석·박사 학위 과정을 만들어 수강생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려는 듯 ‘온 나라 학위 따기’가 성행한다. 도대체 왜 이 모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