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신기사
-
세상읽기 연애 연애-결혼-출산-육아의 자연적 연계를 당연하게 여기는 낭만적 사랑이 파탄나고 있다. 젊은 여성이 벌이고 있는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라는 4B 운동이 대표적인 징후다. 이에 대해 국가는 저출산이라는 인구 문제로 접근하고,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 혐오로 대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젠더 분리주의가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낭만적 사랑이란 두 남녀가 서로 자아를 탐색하고 존중하고 숭배하면서 각자 분리된 자아를 합쳐 공통된 자아로 확충하는 것이다. 낭만적 사랑에서는 나의 자아를 확충시켜줄 상대방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방의 자아를 엄청나게 탐색하는데, 그게 바로 연애다.
-
세상읽기 고시사회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기다렸다는 듯 진보와 보수가 다시 격렬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진보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움켜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던 검찰을 시민사회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고 환영한다. 검찰과 공수처가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의 틀을 마련했다며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감격한다. 반면 보수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개혁을 빌미로 시민사회의 통제 아래 있는 검찰을 권력의 도구로 전락시킬 거라며 비판한다. 검찰과 경찰이 범죄를 인지한 단계부터 공수처에 보고해야 할 의무를 규정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이상인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렸다고 비판한다.
-
세상읽기 아재와 노땅 청년에게 진보는 아재요, 보수는 노땅이다. 둘 다 청년을 가르치려 드는데 ‘진보아재’의 설교는 거짓 위선으로 비치고 ‘보수노땅’의 훈시는 아예 헛소리로 들린다. 진보아재가 잘하는 거라곤 뒤늦게 헛웃음 나오게 하는 말장난 개그뿐이요, 보수노땅이 내세울 거라곤 남들 다 먹는 나이밖에 없다. 진보아재는 정치민주화한답시고 일상의 악습에 젖어들었고, 보수노땅은 경제성장한답시고 인간의 염치를 놓아버렸다. 자기들은 다르다고 항변하는데 서로 욕하고 싸우면서 닮아갔다. 작은 일상도 도덕으로 재단하는 진보아재가 큰 염치를 잃어가니 분노가 치밀고, 대놓고 아랫사람 깔아뭉개는 염치없는 보수노땅이 일상의 악습을 바꾸자고 하니 꼴불견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현실 권력을 두고 다투는데 마치 누가 먼저 소멸하나 내기하는 것 같다.
-
세상읽기 공정 사회 청년세대가 공정에 과민하다는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선배세대의 진보와 보수가 서로 다투면서 이룩한 민주화와 경제성장이 이들에게는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체험된다. 진보의 민주주의는 공정하지 않다. 소수자라는 이유로 별다른 노력 없이 남이 이룬 성과를 빼앗아 누리는 무임승차자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나는 온갖 진입장벽을 넘어 정식으로 여기 들어왔는데 너희는 평등 운운하며 데모해서 날로 먹겠다고? 보수의 성장주의도 공정하지 않다. 스스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능력주의를 믿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 보상이 부모가 뿌리고 거둔 성과를 누리는 세습과 비교해 너무도 초라하다. 빽 없이 혼자 힘으로 성과를 이루려고 애쓰고 있는데 너희는 잘난 부모 둔 것도 능력이라고 우리를 조롱하며 알맹이를 모조리 차지해?
-
세상읽기 국과원 조국과 나경원. 386세대의 대표주자로 각각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대표한다. 조국은 ‘민주주의’를 최고 가치로 삼는다. 민주주의는 경제민주화와 표현의 자유를 뜻한다. 소득주도성장과 국민성장 모두 경제민주화를 위한 것이다. 검찰개혁은 군사 언어가 통제하는 검찰의 위계질서를 시민 언어로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 나경원의 제일 가치는 ‘성장주의’. 성장주의는 경제성장과 시장의 자유를 말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모든 문제는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사회주의 포퓰리즘 정책 탓에 생긴 것이다. 기업가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지속해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사회 전 영역에 시장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
-
세상읽기 스펙 사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어떤 이들은 그가 한때 대한민국의 체제전복을 꾀했던 사노맹 소속으로 활동했다는 점을 들어 빨간색을 덧칠한다. 또 어떤 이들은 진보주의자가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십억원대의 자산가가 될 수 있었냐며 냉소를 퍼붓는다. 다른 이들은 그의 딸이 온갖 편법으로 스펙을 쌓아 명문 대학에 입학한 것 아니냐며 분노한다. 앞의 둘은 별 관심이 안 갔지만, 마지막 문제는 달랐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스펙에 빠져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가시적 징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세상읽기 키오스크 사회 얼마 전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휴게소에 잠시 내렸다. 15분의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화장실에 잠깐 들른 후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터라 출출했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주문대로 갔다. 사람 대신 사람 키의 입간판이 맞이했다. 더 이상 사람이 주문을 받지 않으니 키오스크(Kiosk)라는 무인자동결제기를 사용하라고 일러주고 있었다. 키오스크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스크린 터치를 몇 번 하다 연이어 실수를 하니 조바심이 났다. 우물쭈물 제대로 주문도 못하고 나왔다. 가판대에서 핫도그나 살까 했더니 여기도 키오스크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 포기하고 돌아섰다. 어느새 버스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
-
세상읽기 ‘박 대 백’ 대구·경북의 소문난 맛집에 가면 어김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이 맞이할 때가 있었다. 박 전 대통령과 악수하며 기뻐 어쩔 줄 몰라하는 음식점 주인의 사진을 보자고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2016년 탄핵 국면을 지나면서 슬그머니 사진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진이 있던 자리는 철 지난 바닷가처럼 한동안 휑하니 비어 있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한 맛집에 들렀더니 그 자리를 <백종원의 삼대천왕> 사진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박근혜에서 백종원으로!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만약 대구·경북의 모든 음식점에 <백종원의 골목식당> 사진이 걸리는 날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는 ‘박의 국가언어’로 살던 대구·경북 사람들이 ‘백의 시장언어’로 살아가는 날을 상상해본다.
-
세상읽기 택시 드라이버 얼마 전 늦은 밤 갑자기 카톡이 울렸다. “대구에서 발표할 일이 있어 왔다가 동대구역 가는 길입니다. 불금의 저녁, 대구도 길이 많이 막히네요. 엄청 덥고요. 기사 아저씨는 계속 문 정부 욕만 하시고.” 아는 교수였다. 답장을 보냈다. “제가 반복적으로 겪는 일 겪으셨군요. 서울 말씨만 쓰면 바로 나옵니다.” 위로의 문자가 왔다. “아…그런 거군요. 대구에서 사는 거 만만치 않으시겠습니다.” 어쩌다가 대구가, 참내. 목구멍으로부터 쓴물이 올라왔다. 2005년 대구로 이사 왔으니 벌써 십 수 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택시를 타면 몇 마디 말에 바로 타지 사람인 걸 알아챈다. 구어 활용 습득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아무리 대구 말씨를 흉내 내도 금방 티가 나는 모양이다. 열의 여섯, 일곱은 ‘소위’ 진보 정권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
세상읽기 침팬지 공화국 사고로 우주를 떠돌던 한 우주인이 침팬지 혹성에 불시착했다. 우주선을 간신히 빠져나와 헤매고 다니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침팬지 공안에게 붙잡혔다. 이 혹성에서는 지위가 높을수록 허리를 곧추세우고 걷는데 침팬지를 닮지 않은 이상한 자가 ‘곧선 보행’을 하고 다니니 난리가 난 것이다. 침팬지 공안마저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다니는 판에 ‘듣보잡’이 감히 허리를 펴고 다니다니. 과학수사대로 바로 압송돼 인지능력 테스트를 받았다. 컴퓨터 화면상에 0부터 5까지 숫자와 그 위치를 보여줬다. 잠시 후 그 숫자들을 모두 가리고 숫자 순서대로 위치를 짚어내라 했다. 우주인은 순간 기억능력을 활용해 정확히 숫자의 위치를 짚어냈다. 이제 0부터 7까지 숫자를 보여준 후 다시 테스트했다. 이번엔 잘 짚어내지 못했다. 그러자 숫자를 9까지 높였다. 몇 개를 맞히다가, 도저히 계속할 수가 없었다. 침팬지들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허리를 펴고 다니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침팬지 혹성의 법전 몇 권을 주고 다 외우라 했다. 일주일 후 4지선다형 시험을 보았다. 단순 암기하지 않으면 시간 내에 풀 수 없는 퀴즈풀이였다.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시험을 보았다. 예상보다 시험 성적이 잘 나왔다며 침팬지들이 감탄했다. 또 다른 시험지를 가져왔는데, 이번엔 5지선다형이었다. 고향별에서는 이미 이런 시험은 인공지능이 다 대체해 쓸모없게 된 지 오래라 오히려 어려웠다. 논술시험도 보았다. 말이 논술시험이지 법전을 통째로 암기하지 않으면 한 문장도 제대로 쓸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변방으로 쫓겨났다. 수도에 살 수 있는 인지능력이 부족하다고 판정받았기 때문이다. 땅만 보고 걸으라고 척추압박 장치로 허리를 구부러트려 놓았다. 구부정한 허리를 끌고 변방으로 가보니 모두들 땅을 내려다보고 기어 다녔다. 알고 보니 이곳에선 세습제를 없애고 민주주의를 한답시고 시험을 통해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눈다. 태어나자마자 모두 단기 기억능력 키우는 교육을 받는다. 일정 교육기간이 지난 후 시험 성적에 따라 허리 각도가 정해진다.
-
세상읽기 주술 사회 얼마 전 서울대의 한 창업동아리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페에 자신들이 사용하던 볼펜을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다. 취지는 이랬다. “좋은 기운을 전해드리고자 직접 손편지를 쓰고, 공부할 때 사용한 펜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해당 게시물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번지면서 학벌주의에 대한 개탄이 이어졌다. 결국 이 창업동아리는 사과문을 올리고 상품 판매를 중지했다. 이 ‘우발적인 해프닝’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주술에 빠져 있는지 새삼 일깨워준다. 이 동아리는 ‘공부의 신’이 사용하던 볼펜을 사서 공부하면 ‘좋은 기운’이 수험생에게 전염되어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다. 단지 ‘사물’에 불과한 볼펜이 현실세계에서 ‘실제 효과’를 발휘하는 주술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셈이다.
-
세상읽기 골든벨 사회 공영방송 KBS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방영하고 있는 <도전 골든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생존주의 시대답게 청소년 100명이 50문제를 풀면서 매 순간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포맷이다. 50문제를 모두 맞힌 사람은 골든벨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새길 수 있다. 하다보면 중간에 학생들이 대거 탈락하는데, 패자부활이란 이름의 매우 간단한 게임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50번 문제 근처에 가보지도 못한 채 탈락한다. 가끔 최후까지 살아남은 한 명이 50번 문제에 도전할 때도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대부분 생존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구나.’ ‘최후의 승자는 결국 한 명이구나.’ 일상의 삶이 서바이벌 게임처럼 변한 지금 사회 전 성원이 모두 이런 생각에 빠져들면 사회가 지속될 수 없다. 좌절과 냉소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달래어 다시 생존경쟁에 복귀시켜야 한다. 패자부활 게임이 필요한 이유다. 힐링을 시켜 다시 희망을 갖게 만들어 생존경쟁에 복귀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