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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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언택트 사회 코로나19 사태로 이참에 ‘언택트’(untact) 사회가 앞당겨질 거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언택트란 접촉을 뜻하는 contact에 부정접두어인 un을 이어붙인 신조어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는 상호작용이 없이 첨단기술을 활용해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뜻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인 편의점에 가서 신용카드로 출입인증을 받고 들어가 우유와 빵을 고른 후 카운터에 가서 안면 인식 카메라의 감시를 받으며 셀프 결제를 하고 혼자 아침을 먹는다. 차량과 사물 간 통신 인프라 덕분에 가능해진 자율주행 버스를 타고 회사에 출근해서, 온라인 메신저와 화상회의로 업무를 진행하고, 무인 식당에 가서 로봇 셰프가 만든 점심을 먹은 후 로봇 바리스타가 서빙한 커피를 마신다. 잠깐 틈을 내어 그동안 미뤄놓았던 원격진료로 건강상태를 점검한다. 퇴근 후에는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해 저녁을 먹고, 홈트레이닝 운동 앱을 따라 운동한 후, 스마트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다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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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도시 공공장소의 질서 지난 2월25일 서울의 한 엘리베이터 안.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한 남성이 기침하자 다른 남성이 왜 마스크도 안 쓰고 기침을 하냐고 따졌다. 뭔 훈계냐며 맞받아치자 격분해 몸싸움을 벌였다. 3월9일 광주의 한 주차장. 마스크 없이 운전하러 온 대리기사에게 왜 마스크를 안 쓰고 왔냐고 손님이 물었다. 대리기사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분노로 멱살을 휘어잡고 주먹을 휘둘렀다. 같은 달 17일 부평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나가던 행인을 한 남성이 쫓아가 따져 물은 후 목을 조르고 폭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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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포스트 코로나 사회 지하철, 버스, 택시, 고속철, 비행기, 선박을 타고 자유롭게 이동한다. 사무실, 공장, 농장, 공사장 등 일터에 나가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한다. 시장, 백화점, 쇼핑몰, 음식점, 술집, 공원, 야구장, 축구장에 나가 사람들과 함께 소비하고 즐긴다. 교회, 성당, 사찰, 서원에 나가 사람들 틈에 끼여 공동 집회를 연다. 학교, 학원, 유치원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공부한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의 삶이다. 이 당연한 삶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통해 의심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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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사회적 거리’ 없애기 대학원 제자와 공유하는 단톡방에서 카톡이 울린다. 40대 후반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현재 박사과정을 수료한 대학원 여제자다. “모두 잘 계시나요? 저는 코로나 땜에 무서운 게 아니라 삼시세끼 밥 땜에 무서워요. 친밀성의 영역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나갈 데도 없고, 책도 못 보고 논문도 손도 못 대고 답답해요.” 킥킥 웃을 사이도 없이 또 다른 여제자가 메시지를 보낸다. “저는 바깥 코로나가 무서운 게 아니라 집에서 밥 달라는 코로나 때문에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습니다. 얼른 친밀성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비슷한 글이 연이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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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 모두가 당사자 세계화가 새로운 초국적 협치체제를 만들 거라는 주장이 한동안 유행했다. 절대주권을 가진 국가가 명확하게 구획된 영토 안에 사는 자국민을 통치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섣부른 주장도 나왔다. 영토의 경계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사회적 삶이 그러한 주장의 주요 근거로 활용되었다. 이주의 지구화, 기업의 초국적 활동,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가능해진 초국적 공론장, 온난화와 같은 지구적 환경문제, 초국적 테러리즘 등이 그러한 예다. 낙관적 전망과 달리 아직 이에 대처하기 위한 초국적 협치체제는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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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연애 연애-결혼-출산-육아의 자연적 연계를 당연하게 여기는 낭만적 사랑이 파탄나고 있다. 젊은 여성이 벌이고 있는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라는 4B 운동이 대표적인 징후다. 이에 대해 국가는 저출산이라는 인구 문제로 접근하고,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 혐오로 대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젠더 분리주의가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낭만적 사랑이란 두 남녀가 서로 자아를 탐색하고 존중하고 숭배하면서 각자 분리된 자아를 합쳐 공통된 자아로 확충하는 것이다. 낭만적 사랑에서는 나의 자아를 확충시켜줄 상대방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방의 자아를 엄청나게 탐색하는데, 그게 바로 연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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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고시사회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기다렸다는 듯 진보와 보수가 다시 격렬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진보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움켜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던 검찰을 시민사회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고 환영한다. 검찰과 공수처가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의 틀을 마련했다며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감격한다. 반면 보수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개혁을 빌미로 시민사회의 통제 아래 있는 검찰을 권력의 도구로 전락시킬 거라며 비판한다. 검찰과 경찰이 범죄를 인지한 단계부터 공수처에 보고해야 할 의무를 규정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이상인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렸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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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아재와 노땅 청년에게 진보는 아재요, 보수는 노땅이다. 둘 다 청년을 가르치려 드는데 ‘진보아재’의 설교는 거짓 위선으로 비치고 ‘보수노땅’의 훈시는 아예 헛소리로 들린다. 진보아재가 잘하는 거라곤 뒤늦게 헛웃음 나오게 하는 말장난 개그뿐이요, 보수노땅이 내세울 거라곤 남들 다 먹는 나이밖에 없다. 진보아재는 정치민주화한답시고 일상의 악습에 젖어들었고, 보수노땅은 경제성장한답시고 인간의 염치를 놓아버렸다. 자기들은 다르다고 항변하는데 서로 욕하고 싸우면서 닮아갔다. 작은 일상도 도덕으로 재단하는 진보아재가 큰 염치를 잃어가니 분노가 치밀고, 대놓고 아랫사람 깔아뭉개는 염치없는 보수노땅이 일상의 악습을 바꾸자고 하니 꼴불견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현실 권력을 두고 다투는데 마치 누가 먼저 소멸하나 내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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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공정 사회 청년세대가 공정에 과민하다는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선배세대의 진보와 보수가 서로 다투면서 이룩한 민주화와 경제성장이 이들에게는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체험된다. 진보의 민주주의는 공정하지 않다. 소수자라는 이유로 별다른 노력 없이 남이 이룬 성과를 빼앗아 누리는 무임승차자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나는 온갖 진입장벽을 넘어 정식으로 여기 들어왔는데 너희는 평등 운운하며 데모해서 날로 먹겠다고? 보수의 성장주의도 공정하지 않다. 스스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능력주의를 믿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 보상이 부모가 뿌리고 거둔 성과를 누리는 세습과 비교해 너무도 초라하다. 빽 없이 혼자 힘으로 성과를 이루려고 애쓰고 있는데 너희는 잘난 부모 둔 것도 능력이라고 우리를 조롱하며 알맹이를 모조리 차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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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과원 조국과 나경원. 386세대의 대표주자로 각각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대표한다. 조국은 ‘민주주의’를 최고 가치로 삼는다. 민주주의는 경제민주화와 표현의 자유를 뜻한다. 소득주도성장과 국민성장 모두 경제민주화를 위한 것이다. 검찰개혁은 군사 언어가 통제하는 검찰의 위계질서를 시민 언어로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 나경원의 제일 가치는 ‘성장주의’. 성장주의는 경제성장과 시장의 자유를 말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모든 문제는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사회주의 포퓰리즘 정책 탓에 생긴 것이다. 기업가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지속해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사회 전 영역에 시장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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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스펙 사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어떤 이들은 그가 한때 대한민국의 체제전복을 꾀했던 사노맹 소속으로 활동했다는 점을 들어 빨간색을 덧칠한다. 또 어떤 이들은 진보주의자가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십억원대의 자산가가 될 수 있었냐며 냉소를 퍼붓는다. 다른 이들은 그의 딸이 온갖 편법으로 스펙을 쌓아 명문 대학에 입학한 것 아니냐며 분노한다. 앞의 둘은 별 관심이 안 갔지만, 마지막 문제는 달랐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스펙에 빠져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가시적 징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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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키오스크 사회 얼마 전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휴게소에 잠시 내렸다. 15분의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화장실에 잠깐 들른 후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터라 출출했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주문대로 갔다. 사람 대신 사람 키의 입간판이 맞이했다. 더 이상 사람이 주문을 받지 않으니 키오스크(Kiosk)라는 무인자동결제기를 사용하라고 일러주고 있었다. 키오스크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스크린 터치를 몇 번 하다 연이어 실수를 하니 조바심이 났다. 우물쭈물 제대로 주문도 못하고 나왔다. 가판대에서 핫도그나 살까 했더니 여기도 키오스크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 포기하고 돌아섰다. 어느새 버스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