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신기사
-
세상읽기 고통의 신정론 기독교인도 한때는 고통의 신정론을 말했었다. 한민족이 겪은 모든 고난이 사실은 한민족을 단련시키기 위한 신의 섭리라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암울한 일제강점기 함석헌이 ‘성서조선’에 연재한 조선역사가 대표적인 예다. 조선역사는 굴욕과 좌절,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 맡겼던 사명을 망각하자 고난을 주었다. 그러한 고난을 통해 민족에 재생의 기회가 온 것이니 고난을 일종의 시험으로 받아들이자.
-
세상읽기 행운의 신정론 “자꾸 다툼이 생겨요.” 전업주부로 살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오십대 중반의 제자가 괴로움을 토로한다. 아이 낳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며 시부모 봉양하고 사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죽 살아왔다. 이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사회학을 시작했는데 공부할수록 그동안 잘 지내왔던 주변 사람들과 자꾸 부딪힌다. 그들이 여자에게 바라는 삶은 명확하다. 현모양처. 다른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할라치면 이기적인 존재로 몰아붙인다. 개인의 목소리를 도저히 낼 수가 없다.
-
세상읽기 성실 사회 “검찰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 2016년 11월6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기자를 노려보며 쏘아붙인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7년 3월21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구한 표정으로 내뱉는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8년 2월26일 검찰청에 들어서던 안태근 전 검사장이 무심한 표정으로 내던진다.
-
세상읽기 편입 딸 올해 개봉한 유지영 감독의 독립영화 <수성못>. 이 영화는 서울공화국 아래 지방에서 살아가는 ‘편입 딸’의 곤궁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대 초반 딸은 대구에서 유원지로 유명한 수성못에서 알바를 하며 서울 소재 대학에 편입 준비를 하고 있다. 대구에는 청년이 할 만한 일이 없어 뭐라도 선택할 수 있는 서울에 가고 싶다. 엄마는 딸이 멀쩡히 잘 다니던 지방대를 때려치우고 되지도 않는 서울타령을 하고 있어 속이 잔뜩 상해 있다. 이왕 공부하려면 공무원 준비나 할 것이지, 철딱서니 없는 딸은 허파에 바람이 들어 서울로 내뺄 생각만 한다. 뭐라고 하고 싶지만 80만원 받으며 고달프게 일하는 딸이 안타까워 차마 입도 못 뗀다. 먹고사느라 ‘근로’하기 바빠 딸을 관리경영하기는커녕 변변히 돌봐주지도 못해 이 지경에 이른 것 같아 미안하다.
-
세상읽기 공무원 엄마 박소진 교수가 작년에 펴낸 <신자유주의시대의 교육 풍경>은 사교육시장의 소비자이자 관리자인 ‘매니저 엄마’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이에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하는 기업가가 되라고 다그친다. 이에 발맞추어 매니저 엄마는 자녀의 자아를 기업가로 만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자녀의 모든 것을 관리경영한다. 든든한 남성 부양자 덕분에 매니저 엄마가 계층상승을 위한 자녀교육에 몰입할 수 있다. “효율성과 경쟁을 중시하면서 ‘남성 부양자와 여성 전업주부’와 같은 가부장적 성별분업을 강화하고 자녀의 (교육) 성공을 중시하는 ‘성별화된 세대 간 전략’을 통해 사회 이동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저자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모성 담론이 계급을 불문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보고한다.
-
세상읽기 좀비 사회 2016년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서울역>(사진). 이 영화는 한국 경제 성장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정확히 보여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게 되면 어린 딸이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다. 낮은 노동가격을 지닌 딸이 현실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성 노동시장이다. 열악한 성 노동에 시달릴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위로한다. 그는 딸이 성 노동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우면서 남자친구가 된다. 하지만 돈을 벌어 여자친구를 부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원조교제로 내몬다. 남자친구와 포주가 한 모습이다. -
세상읽기 다시 조직사회와 개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재판부가 내세운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으로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기 어려웠다고 보이고, 이러한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말해 최고 권력자의 겁박에 못 이겨 힘없는 개인이 수동적으로 뇌물을 바쳤다는 것이다.
-
세상읽기 조직 사회와 개인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재판부가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의 지위나 업무 내용을 고려하면 무면허 의료행위를 청와대 내에서도 받으려는 대통령의 의사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는 만큼 피고인에 대해선 비난 가능성이 낮다.” “차명폰을 제공한 것 역시 대통령의 묵인 아래 안봉근 전 비서관 등 상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