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선
원광대 평화연구소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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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인간적 자본주의는 가능한가 지난해 말 국회 청문회에서 사망 노동자의 가족들이 쿠팡에 대해 책임을 물으며 분노와 눈물로 절규하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자본은 왜 이토록 비정한가. 수천만 건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각종 비리가 들통나자 정부도 이제야 나서고 있다. 영업을 취소하고 기업가들을 감옥에 보낸다고 달라질까. 자본주의 시스템에 근본적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착취당한 노동자들이 빈곤과 파멸에 처할 것이라고 예언한 마르크스의 말이 다 맞지는 않았지만, 자본주의는 여전히 인간에 대한 예의 없음이 충분히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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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해학으로 전복시킨 12·3 내란 지난해 12월3일부터 올해 4월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될 때까지 4개월간은 대한민국 민중혁명사에 종지부를 찍은 기간이다. 동학농민혁명, 여순 사건 및 제주4·3항쟁,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에서 미완된 혁명을 완결 지은 역사인 것이다. 더욱이 민중의 계약에 의해 쥐여준 권력을 사유화한 이상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무상한 권력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형체 없는 마음을 사용하는 것처럼 권력도 민중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때 효용성이 있다. 그러나 부패한 권력은 쉽게 반환되지 않는다. 민중은 12·3 내란을 단죄하기 위해 카니발 같은 축제를 선택했다. 해학과 웃음으로 연대의 끈을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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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한빛 1·2호기, 영구정지되어야 한다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한 일본이 다시 원전 위기에 처한 것은 안전신화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원전은 안전하다’는 선전은 거짓말이 됐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1978년 방사선과 열이 급격히 방출되는 임계사고가 났지만 은폐됐다. 남쪽 약 100㎞ 아래 일본 최초의 원전이 건설된 도카이 마을에서 1999년에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담당자들은 ‘예상 밖’이라고 했다. 2011년 후쿠시마에서 체르노빌과 같은 최고 7등급의 원전폭발이 일어났다. 사고 전, 기업은 진도 8 이상의 지진에 의한 초대형 해일 발생 예측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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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관타나모 기지에 갇힌 동맹 미국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구금되었을 때, 정부는 왜 캄보디아 사태 때처럼 자국민 보호를 위해 강력하게 항의하지 않았을까. 미국을 위해 일하러 간 국민이 관타나모 수용소의 전쟁포로처럼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분노와 충격으로 잠 못 이룬 국민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울어진 동맹 때문이다. 미국은 애초에 동맹으로 시작된 나라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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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새들이 전투기를 이겼다 전라북도 현 인구가 170만명 남짓인데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서는 2058년 국내외 여객은 105만명이 되리라 전망한다. 인구 감소는 물론 각 지자체에 공항이 즐비한데 무엇을 보고 이곳에 전 세계 비행기가 들락날락할까. 황당한 추산이다. 신공항 건설계획 취소 판결을 내린 서울행정법원의 1심은 사필귀정이다. 지난 11일, 전주에서 법원까지 한 달 동안 걸어간 ‘새·사람 행진’ 참가자들이 울 때, 나도 연구실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빛의 혁명 이후 오랜만에 정의의 빛을 보았다. 인간의 젖줄인 갯벌을 뒤엎고 돌아온 이익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름다운 어촌들을 파괴하고, 선량한 어민들을 내쫓고 무엇을 얻었는가. 욕망의 환상을 좇는 새만금개발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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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무도한 미국식 자본주의 세계 100대 기업 중 약 60%, 시가총액의 약 70%가 미국에 몰려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이 보여주듯 파급력은 말 그대로 지구적이다. 전 세계 기업들을 선도하는 힘은 인간 이성을 체계화한 효율·정직·투명·공평·책임·혁신의 토양에서 나온다. 아메리칸드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미국은 프랑스혁명을 촉발했고, 정치·경제·군사 분야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절대적이며,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끊임없이 창출한다. 그럼에도 고작 250년밖에 안 된 이 나라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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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철학 없는 한국 교육의 위기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교육부 장관 지명 철회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참된 교육 철학을 가진 사람이 교육 수장에 오른 것을 보지 못한 이 나라의 현실이다. 교육의 공공성·자율성은 교육 행정의 당연한 역할이다. 지도자들이라면 그 위에 ‘어떤 교육이어야 하는가’라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또한 페스탈로치나 방정환처럼 아이들을 진정 사랑한다면, 자본과 권력의 사다리를 향한 숱한 사교육과 그 카르텔을 보고도 묵인할 수 있을까. 청소년의 10% 이상이 자살 충동을 느끼고, 매년 수백명이 자살하는 이 고통의 현실을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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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결단 군사 사상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적을 굴복시키는 폭력행위”라고 정의했다. 욕망에 기반한 감정을 내세워 적과 아군으로 나눠 싸움을 일으키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아마도 인간 존재는 기본적으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성의 철학자 칸트 또한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고, 국가가 해야 할 최고의 정치적 선은 영원한 평화 수립이라 했으며, <영구평화론>이라는 책을 쓰기까지 했다. 전쟁은 정치적 도구라는 말은 그저 수사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인간의 추악한 모든 면을 발산하는 지옥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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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파사현정’ 투표가 돼야 한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윤석열이 ‘비상대권’을 언급해 아연실색했다. 그것은 일본이 1889년에 선포한 ‘대일본제국헌법’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제31조가 바로 왕의 비상대권 조항이다. 제2장 ‘신민의 권리와 의무’ 중 제31조는 “본장에 게재된 조규(條規)는 전시 또는 국가사변의 경우에 천황대권의 시행을 방해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제1장(천황)의 제1조부터 제17조까지 명시한 무소불위 권력이 비상시에도 그 권한을 침해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연히 비상대권은 시행된 적도, 필요도 없었다. 근대 일본은 전쟁으로 시작해 전쟁으로 끝났다. 그 사이 헌법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고, 국민들만 전쟁터로 끌려나갔다. 식민강권통치를 당한 우리야 말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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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불교는 자본주의 폭주 막아야 한다 지난달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한 해인 2013년 <복음의 기쁨>에서 배제와 불평등, 화폐 숭배, 금융투기 등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고 비판했다. 이듬해 한국의 미사 강론에서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라고 했다. 불교가 태어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500년 전 석존은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고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막기 위해 평생을 길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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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대한민국 헌법’을 읽고 나서 헌법 제정에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그것은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보호막이다. 내심 승인하는 이유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졌거나 태어나보니 이미 적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상낙원을 만들기 위한 성현의 경전에 비추어 현실은 여전히 미완성인 것처럼, 헌법 내용도 이 나라에 완전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헌법은 정치적 대결의 산물이다. 하도 급하게 만들다보니 문장이 산만한 부분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이 땅을 떠나지 않는 한 금과옥조로 받들며 살아야 한다. 오랜만에 정독하며 나름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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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타락한 극우 종교의 정치화 한때 개발독재 체제 아래 신음하던 민중의 눈물을 닦아주던 종교가 기독교다. 하나 교회는 권력에 순응하며 개인의 성공은 이끌었지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외면했다. 이후 대중을 자본으로 보는 시장신학, 경영기법이 도입된 기업교회, 예수의 이미지와 말씀을 상품화한 천국경제가 뒤를 이었다.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을 추동하는 자본의 신을 숭배하게 된 것이다. 일찍이 발터 베냐민이 “기독교 자체가 자본주의로 변형되었다”고 한 말 그대로다. 욕망긍정의 신학이다. 일부의 극우 기독교인들은 이제 이 나라를 정교일치의 국가로 만들고자 광장으로 나온다. 혐오와 증오의 얼굴로 적을 찾으며, 온갖 욕설과 저주로 맑은 하늘을 오염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