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선
원광대 평화연구소 교무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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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구시대의 종언과 새 시대의 출발 유시민 작가 말처럼,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 당시 ‘이것은 국헌문란이며 내란이다’라고 외친 자들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국가 안위를 다루는 국무위원과 국방을 책임진 최고위 장성들이었다. 명문대와 사관학교 출신 또는 외국 유학을 경험했거나 학생을 가르친 엘리트들이며, 국민 선택을 받은 국회의원을 지냈거나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자들이었다. 그러나 마비된 판단력으로 전 국민 경전인 헌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국민의 공복을 자처한 자들이 주인을 배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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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또다시 백성이 나섰다! 4일 오전 1시쯤 나는 후배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TV를 켰다.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 분노는 백성을 지키라고 준 군통수권을 반역의 총칼로 사용한 어리석음에 대해, 슬픔은 백성들이 다시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운명 때문이었다. 후배가 요청한 원불교사회개벽교무단의 성명서를 썼다.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를 행한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 백성이 국가의 살림을 맡긴 자가 오히려 도둑이 되고, 반역자가 된 이 사태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헌정질서 파괴는 물론 민주주의를 말살하기 위한 불법 계엄령을 선포한 그 대가는 마땅히 하야이거나 탄핵이 되어야 한다. 하루라도 지체한다면 국민의 분노는 온 국토를 뒤덮을 것이다. 헌법을 준수한다는 대통령 취임선서 내용을 심각하게 위반한 윤석열 대통령은 그 자격을 상실했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로 끝을 맺고 오전 5시쯤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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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하늘과 민심을 두려워해야 한다 1980년대 민주화를 이끌던 대학가의 대자보와 시국성명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비판 내용은 민주주의 붕괴, 법치주의 훼손, 몰락하는 경제, 권력사유화, 역사퇴행, 불공정과 비상식, 전쟁위기 등 국가 전체 차원에서부터 김건희 여사의 국정농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품 수수, 국회법안 거부, 검찰권력 사적 이용, 채 상병 사망사건, 뉴라이트 인사, 이태원 참사, 공천개입 등 구체적인 사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국가권력의 모든 부패상을 보는 것 같다. 지성사회가 일어섰다는 것은 국가위기의 징후를 탐지했다는 신호다. 사태의 원인은 민주주의의 결함에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현 대통령의 능력과 자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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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전쟁 신학에 포위된 이스라엘 전쟁은 물질이 인간의 정신을 소멸시키는 행위다. 아무리 찬란한 철학·문학·역사인들 폭탄 하나로 사라진다. 전쟁에서 인도적 대우에 관한 국제협약인 제네바협약도 종잇장에 불과하다. 국가는 형법으로 개인의 복수를 금지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국가나 단체의 복수를 금지시킬 힘이 없다. 이·팔전쟁은 이러한 약육강식의 현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대한 보복뿐만 아니라 이제는 헤즈볼라와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유엔평화유지군 공격도 불사하며 폭주하고 있다. 그 선두에 서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언설에는 전쟁의 광기가 서려있다. 신정국가 건설을 위해 무소불위의 패권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지중해와 유럽을 제패한 로마제국의 멸망처럼 힘으로는 결코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교훈을 그는 잊어버린 것 같다. 이스라엘은 증오와 말살의 전쟁 신학에 기대어 자신들이 당한 홀로코스트를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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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여순사건과 미완의 국가 추석 명절을 경주에서 지내고 광주대구고속도로에서 익산으로 차를 몰며, 문득 이 산하가 무덤 아닌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자들이 묻힌 거대한 공동묘지다. 얼마 전 여순사건 희생자들의 영혼이 떠도는 여수 만성리 용골에서 느낀 감정은 이를 더욱 생생하게 했다.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어 있던 부역 혐의자 수백 명을 필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학살되었다. 여수·순천만 해도 이런 곳이 50여 군데나 있다. 한 달 뒤인 10월19일이면 여순사건 76주기다. 과연 이 사건은 한반도 역사에서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건의 여파는 지금도 미치고 있으며, 완성되지 못한 국가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는 점이다. 희생자 수가 1200명에서 1만명일 것이라는 불명확한 통계처럼 이 사건의 정체성 또한 정치동향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분명한 것은 이승만이 이 사건을 발판 삼아 잔혹한 독재정권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국가보안법과 계엄법 제정은 물론, ‘빨갱이’를 만들어 국민보도연맹원 포함, 학살된 민간인이 100만에 이르듯이 국가 권력은 힘없는 백성을 법적 보호도 없이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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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정의의 역사는 결코 지배될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김대중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진보세력이 계승되는 와중에 등장한 것이 뉴라이트다. 그들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2008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발간을 통해서였다. 학문의 자유를 빙자한 식민지근대화론의 등장이었다. 반역사적인 뉴라이트 언설의 근원지다. ‘대한민국 성립의 역사적 의의’의 장에서 그들은 1948년 건국 이후의 역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60년간 세계사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존중하고, 그것을 국가체제의 기본 원리로 채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가, 인간의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행복을 증진하는 올바른 방향이었음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골고루 잘산다는 공산주의 이상은 자유와 합리적 이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나라의 약진은 1960년대 박정희 개발독재의 혜택이며, 근대화 기반은 일제에 의해 축적된 자본과 기술에 있었다. 경제와 군사력은 세계 5%에 속하고, 한류로 문화의 세계화도 이뤘으니, ‘일본의 마음’을 헤아려 식민지 지배의 사과 요구도 그만하자고 한다. 그때는 우리가 일본국 국민이었으므로 식민지 모국에 저항한 ‘김구는 테러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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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원전 수명연장 철폐를 핵발전소(핵전)는 과학과 자본의 총아다. 수백만개에 달하는 부품이 자본 힘으로 조립되고, 청정한 무공해와 안전 불패라는 신화를 두른 에너지로 둔갑한다. 과연 그럴까. 핵전은 가장 비자본적 산업이다. 원료인 우라늄 채굴과정의 환경 훼손, 막대한 원전 건설비용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공동체 파괴, 핵폐기물 처리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과 후대로의 전가 등을 생각하면,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는다는 자본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신비한 자연을 파괴한 죄과는 흘러넘친다. 자연의 품에서 꺼낸 우라늄을 강제 분열시켜 얻은 열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동안 발생한 독성물질인 방사능은 지구 속을 돌고 돌며 자연계나 인간을 병들게 한다. 방사능이 중화되는 기간은 길게는 수백만년 걸린다. 붕괴된 후쿠시마 핵전을 식힌 방사능 오염수는 바닷물에 희석되고 있지만, 삼중수소 등 복잡한 이름의 방사능들이 먹이사슬을 거쳐 지금도 인류의 몸속에 쌓이고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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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공화국을 허무는 지도자의 분노 분노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난해한 감정이다. 하나는 자신과 주위를 해치는 화염, 다른 하나는 진보적인 역사를 창출하는 힘이다. 대표적으로 전자는 인간을 극한의 고통에 몰아넣는 전쟁이며, 후자는 억압된 자들이 새 질서를 세우는 혁명이다. 같은 분노인데도 어째서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까. 대개 종교는 이를 해로운 감정으로 본다. 불교에선 열반과 해탈을 방해하는 3독심, 즉 탐욕과 성냄과 무명에 속할 정도로 중대한 번뇌다. 자신의 참된 심성을 가리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기독교의 7대 죄악에도 분노가 들어 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 또한 <화에 대하여>에서 이성의 통제를 떠난, 보복하고 싶은 욕망인 악덕으로 보았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불급이 없는 중용에 따른 분노의 표출은 온화한 인격과 통한다고 보았다. 연구자들은 위협적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진화의 본능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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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헌재는 평화적 생존권을 인정해야 헌법은 개인과 개인의 믿음으로 만든 약속이다. 그 속엔 권리와 의무에 기반해 평등과 자유, 행복과 평화를 향한 공동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 이 때문에 헌법은 모든 하위법에 우선한다. 그것이 충돌할 때 헌법재판소(헌재)는 위헌법률심사를 하게 된다. 시민의 대리자인 재판관은 헌법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권력자들이 그 약속을 잘 이행하는지도 살펴본다. 지난 3월28일 헌재는 성주와 김천 주민, 원불교 교도를 비롯해 총 2550명의 시민들이 2017년에 청구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승인 위헌헌법소원에 대해 주민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평화적 생존권, 건강권, 환경권, 종교의 자유 침해를 부정했다. 마치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과 같다. 과연 현실은 그럴까. X-밴드 레이더 배치 후, 바로 앞 1㎞ 이내의 마을인 김천 노곡리 주민 100여명 가운데 현재까지 암 환자가 12명이나 발생하여 7명이 사망했다. 재판관들은 현장에 와서 그곳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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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채 상병을 살려내는 길 지난해 7월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해병대 채모 상병은 내가 강의하러 다니며 한 번쯤 마주쳤을 대학생이었다. 복학했으면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교정에서 인생의 다음 단계인 취업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과대 앞 추모수와 추모석 위에 그의 영혼이 깃들어 있을 뿐이다. 분단국가에서 다반사인 군 사망 사건은 기삿거리조차 되지 않지만, 이 일은 역사적 전환점을 만든 1894년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 이 땅에서 되풀이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두 사건은 거짓말과 변명, 은폐와 조작으로 일관되었다. 적국인 독일과 내통했단 매국 혐의를 참모본부의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에게 덮어씌운 것과 채 상병 사망 책임을 상급자가 아닌 하급자에게 떠넘기려고 한 것이 유사하다. 유대인에 대한 인종 편견과 사병의 사물화로 인간 존엄성을 침해당했다. 5년 뒤 정보국장 피카르 중령이 진범을 찾아냈지만 오히려 피카르 중령을 체포한 것이나 새 군사법원법에 의해 책임자들을 적시, 경찰에 즉각 이첩한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을 항명죄로 입건한 것 또한 판박이다. 이들은 국민이 우선인가, 국가가 우선인가라는 국민국가의 본질을 되묻는다. 적법한 처리를 상급자들이 권력자들과 내통해 한순간 뒤바꾸고, 혼란을 초래한 이들은 반성은커녕 비겁하게 법의 틈새에 숨어 자신들을 변호하고 있다. 책임을 묻는 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은 공공재인 권력을 사유물 삼고 공공조직을 사당화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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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총선은 국민 화합의 장이 되어야 22대 총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집으로 배달된 국회의원 후보들의 선거 홍보물을 보면 일자리 조성, 교통 여건 개선, 공무원 처우 개선, 예방접종 추진, 심지어는 스포츠단 창단, 박물관이나 전문학교 설립 등도 있다. 이들은 만능박사인가? 그럼 행정부 공무원, 선출직 시장이나 군수, 지자체 의원들은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 헌법에서 국회의원은 법률안 제출, 국가 예산 심의·확정, 국내외 조약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 국정 감사나 조사 등이 핵심 역할이다. 예산을 마음대로 주무르니까 그런 것 같지만, 후보들의 공약들을 다 이루려면 이웃 나라 예산을 끌어와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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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역사 퇴행시키는 이승만의 소환 최근 이승만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흥행과 열린송현광장의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논쟁 소식에 아연실색했다. 수구세력은 기회가 되면 언제든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헌법은 명백히 이 나라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숱한 민중의 피와 눈물을 뿌리며 여기까지 왔음에도 그들은 정의의 역사를 왜곡, 전복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 삶을 옥죄는 환경은 이승만 독재 권력이 켜켜이 쌓아왔던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