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선
원광대 평화연구소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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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여순사건과 미완의 국가 추석 명절을 경주에서 지내고 광주대구고속도로에서 익산으로 차를 몰며, 문득 이 산하가 무덤 아닌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자들이 묻힌 거대한 공동묘지다. 얼마 전 여순사건 희생자들의 영혼이 떠도는 여수 만성리 용골에서 느낀 감정은 이를 더욱 생생하게 했다.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어 있던 부역 혐의자 수백 명을 필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학살되었다. 여수·순천만 해도 이런 곳이 50여 군데나 있다. 한 달 뒤인 10월19일이면 여순사건 76주기다. 과연 이 사건은 한반도 역사에서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건의 여파는 지금도 미치고 있으며, 완성되지 못한 국가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는 점이다. 희생자 수가 1200명에서 1만명일 것이라는 불명확한 통계처럼 이 사건의 정체성 또한 정치동향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분명한 것은 이승만이 이 사건을 발판 삼아 잔혹한 독재정권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국가보안법과 계엄법 제정은 물론, ‘빨갱이’를 만들어 국민보도연맹원 포함, 학살된 민간인이 100만에 이르듯이 국가 권력은 힘없는 백성을 법적 보호도 없이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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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정의의 역사는 결코 지배될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김대중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진보세력이 계승되는 와중에 등장한 것이 뉴라이트다. 그들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2008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발간을 통해서였다. 학문의 자유를 빙자한 식민지근대화론의 등장이었다. 반역사적인 뉴라이트 언설의 근원지다. ‘대한민국 성립의 역사적 의의’의 장에서 그들은 1948년 건국 이후의 역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60년간 세계사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존중하고, 그것을 국가체제의 기본 원리로 채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가, 인간의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행복을 증진하는 올바른 방향이었음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골고루 잘산다는 공산주의 이상은 자유와 합리적 이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나라의 약진은 1960년대 박정희 개발독재의 혜택이며, 근대화 기반은 일제에 의해 축적된 자본과 기술에 있었다. 경제와 군사력은 세계 5%에 속하고, 한류로 문화의 세계화도 이뤘으니, ‘일본의 마음’을 헤아려 식민지 지배의 사과 요구도 그만하자고 한다. 그때는 우리가 일본국 국민이었으므로 식민지 모국에 저항한 ‘김구는 테러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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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원전 수명연장 철폐를 핵발전소(핵전)는 과학과 자본의 총아다. 수백만개에 달하는 부품이 자본 힘으로 조립되고, 청정한 무공해와 안전 불패라는 신화를 두른 에너지로 둔갑한다. 과연 그럴까. 핵전은 가장 비자본적 산업이다. 원료인 우라늄 채굴과정의 환경 훼손, 막대한 원전 건설비용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공동체 파괴, 핵폐기물 처리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과 후대로의 전가 등을 생각하면,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는다는 자본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신비한 자연을 파괴한 죄과는 흘러넘친다. 자연의 품에서 꺼낸 우라늄을 강제 분열시켜 얻은 열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동안 발생한 독성물질인 방사능은 지구 속을 돌고 돌며 자연계나 인간을 병들게 한다. 방사능이 중화되는 기간은 길게는 수백만년 걸린다. 붕괴된 후쿠시마 핵전을 식힌 방사능 오염수는 바닷물에 희석되고 있지만, 삼중수소 등 복잡한 이름의 방사능들이 먹이사슬을 거쳐 지금도 인류의 몸속에 쌓이고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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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공화국을 허무는 지도자의 분노 분노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난해한 감정이다. 하나는 자신과 주위를 해치는 화염, 다른 하나는 진보적인 역사를 창출하는 힘이다. 대표적으로 전자는 인간을 극한의 고통에 몰아넣는 전쟁이며, 후자는 억압된 자들이 새 질서를 세우는 혁명이다. 같은 분노인데도 어째서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까. 대개 종교는 이를 해로운 감정으로 본다. 불교에선 열반과 해탈을 방해하는 3독심, 즉 탐욕과 성냄과 무명에 속할 정도로 중대한 번뇌다. 자신의 참된 심성을 가리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기독교의 7대 죄악에도 분노가 들어 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 또한 <화에 대하여>에서 이성의 통제를 떠난, 보복하고 싶은 욕망인 악덕으로 보았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불급이 없는 중용에 따른 분노의 표출은 온화한 인격과 통한다고 보았다. 연구자들은 위협적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진화의 본능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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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헌재는 평화적 생존권을 인정해야 헌법은 개인과 개인의 믿음으로 만든 약속이다. 그 속엔 권리와 의무에 기반해 평등과 자유, 행복과 평화를 향한 공동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 이 때문에 헌법은 모든 하위법에 우선한다. 그것이 충돌할 때 헌법재판소(헌재)는 위헌법률심사를 하게 된다. 시민의 대리자인 재판관은 헌법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권력자들이 그 약속을 잘 이행하는지도 살펴본다. 지난 3월28일 헌재는 성주와 김천 주민, 원불교 교도를 비롯해 총 2550명의 시민들이 2017년에 청구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승인 위헌헌법소원에 대해 주민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평화적 생존권, 건강권, 환경권, 종교의 자유 침해를 부정했다. 마치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과 같다. 과연 현실은 그럴까. X-밴드 레이더 배치 후, 바로 앞 1㎞ 이내의 마을인 김천 노곡리 주민 100여명 가운데 현재까지 암 환자가 12명이나 발생하여 7명이 사망했다. 재판관들은 현장에 와서 그곳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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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채 상병을 살려내는 길 지난해 7월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해병대 채모 상병은 내가 강의하러 다니며 한 번쯤 마주쳤을 대학생이었다. 복학했으면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교정에서 인생의 다음 단계인 취업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과대 앞 추모수와 추모석 위에 그의 영혼이 깃들어 있을 뿐이다. 분단국가에서 다반사인 군 사망 사건은 기삿거리조차 되지 않지만, 이 일은 역사적 전환점을 만든 1894년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 이 땅에서 되풀이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두 사건은 거짓말과 변명, 은폐와 조작으로 일관되었다. 적국인 독일과 내통했단 매국 혐의를 참모본부의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에게 덮어씌운 것과 채 상병 사망 책임을 상급자가 아닌 하급자에게 떠넘기려고 한 것이 유사하다. 유대인에 대한 인종 편견과 사병의 사물화로 인간 존엄성을 침해당했다. 5년 뒤 정보국장 피카르 중령이 진범을 찾아냈지만 오히려 피카르 중령을 체포한 것이나 새 군사법원법에 의해 책임자들을 적시, 경찰에 즉각 이첩한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을 항명죄로 입건한 것 또한 판박이다. 이들은 국민이 우선인가, 국가가 우선인가라는 국민국가의 본질을 되묻는다. 적법한 처리를 상급자들이 권력자들과 내통해 한순간 뒤바꾸고, 혼란을 초래한 이들은 반성은커녕 비겁하게 법의 틈새에 숨어 자신들을 변호하고 있다. 책임을 묻는 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은 공공재인 권력을 사유물 삼고 공공조직을 사당화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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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총선은 국민 화합의 장이 되어야 22대 총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집으로 배달된 국회의원 후보들의 선거 홍보물을 보면 일자리 조성, 교통 여건 개선, 공무원 처우 개선, 예방접종 추진, 심지어는 스포츠단 창단, 박물관이나 전문학교 설립 등도 있다. 이들은 만능박사인가? 그럼 행정부 공무원, 선출직 시장이나 군수, 지자체 의원들은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 헌법에서 국회의원은 법률안 제출, 국가 예산 심의·확정, 국내외 조약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 국정 감사나 조사 등이 핵심 역할이다. 예산을 마음대로 주무르니까 그런 것 같지만, 후보들의 공약들을 다 이루려면 이웃 나라 예산을 끌어와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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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역사 퇴행시키는 이승만의 소환 최근 이승만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흥행과 열린송현광장의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논쟁 소식에 아연실색했다. 수구세력은 기회가 되면 언제든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헌법은 명백히 이 나라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숱한 민중의 피와 눈물을 뿌리며 여기까지 왔음에도 그들은 정의의 역사를 왜곡, 전복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 삶을 옥죄는 환경은 이승만 독재 권력이 켜켜이 쌓아왔던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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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비판을 되받는 황폐한 정치 언어 한국 사회가 갈수록 정신의 세력이 약화되어가는 이면에는 정치의 타락이 있다. 국민 모두를 위한 전략인 척 위장한 정치는 전술에서 편가르기와 합종연횡의 사술을 드러낸다.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도덕은 선악, 미학은 미추, 경제는 이해로 나누는 것처럼 정치는 적과 동지의 실존적 기준을 근거로 나눠진다고 했다. 적이란 한 집단의 존재 방식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낯선 집단이며, 이러한 이질성은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피아의 정치 대립으로 내전 중이다. 총포만 없을 뿐, 정치가들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백성들은 깊은 내상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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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다르마에 의한 정복이 필요한 시대 학생들과 해를 넘기며 인도 불적지 순례를 하고 있다. 석존의 성도지 보드가야의 마하보디대탑을 생애 처음 방문했다. 수만명의 티베트 승려들이 대탑을 중심으로 자리를 깔고 앉아 독송하거나 절을 올리고 있었다. 이 모든 정경이 육체와 정신이 따로 노는 혼미 속에서 우주의 카오스처럼 느껴진다. 다음날 석존이 깨달음을 얻기 전 수행한 전정각산을 오르는 길에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달리트(불가촉천민)들을 보며 정신이 번쩍 깨었다. 아니 이들은 2500년 전 성자가 나신 나라의 후손들이 아닌가. 손과 발은 부르터 있고, 눈은 휑하니 초점이 없다. 삶의 원초적 의지를 상실한 달리트들, 무려 1억명이나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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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중독사회,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한국사회가 중독으로 병들고 있다. 알코올·도박·마약·인터넷의 4대 중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청소년과 직장인으로 확산되는 마약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미국의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에서 보는 좀비 같은 현상을 목격할 날이 머지않았다. 강수돌과 홀거 하이데는 공저 <중독의 시대>에서 그 원인을 근대의 탈자연화와 인간해방에서 찾는다. 자연과의 분리를 통해 외부에 존재하는 신으로부터 인위적인 해방을 이룬 인간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공동체의 분열과 경쟁이 강화되고, 심층적 분열은 내면의 두려움을 초래해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에 기대는 것이 곧 중독이라는 질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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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이스라엘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팔레스타인과 한반도는 제국주의가 훑고 간 역사적 공통점이 있다. 전자는 오스만제국의 패망 이후 국제연맹을 통해 또 다른 제국인 영국의 위임통치가 있었고, 후자는 아시아 각국을 침략한 일본제국의 식민지 중 하나였다. 1948년에 이스라엘과 남한은 각각 단독으로 정권을 수립했다. 전쟁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고 여전히 그 연장선에 있다. 전쟁국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양국은 최첨단 무기로 자신을 고슴도치처럼 무장하고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양 지역은 같은 운명에 처해 있음을 느낀다. 가자지구 무장단체 하마스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촉발된 현재의 이·팔 전쟁은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며, 중동은 물론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지도 모른다. 총과 미사일로 숱한 생목숨이 날아가는 생생한 현실은 몸서리치는 인간의 야만성을 여실히 폭로한다. 과연 신은 있는가. 야훼든 알라든 분명 신은 하나다. 그렇다면 이토록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상대를 무화시키겠다는, 그의 피조물들의 허망한 의지를 왜 거둬들이지 않는 것일까. 인간 모두를 향한 신의 공평한 자비가 있기나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