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선
원광대 평화연구소 교무
최신기사
-
사유와 성찰 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한다 2000년대에 한반도는 이미 통일을 경험했다. 개성공단이 그것이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그곳을 “날마다 작은 통일이 이뤄지는 기적의 공간”(<개성공단 사람들>)이라 했다. 70년 분단으로 이질화된 남북이 개성에서 만나 실질적 대화와 작은 협상들을 이끌어온 것이다. 그것의 확산이 통일이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정권’에 의한 반통일 국면은 이 사업을 파탄냈다. 거짓말과 권력 사유화로 이들이 감옥에 갔으니 개성공단도 원점으로 돌려야 정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외세의 개입으로 난관에 처했다.
-
사유와 성찰 차별금지법에 대한 기초적 성찰 국민 10명 중 9명이 찬성하는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어야 마땅하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오랜 여정이었다. 종적 질서에 기반한 봉건주의 타파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정치학 교과서를 쓴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노예와 여성은 정치참여를 할 수 없는, 합리적 이성이 결여된 존재로 본다. 남성과 여성을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로 분리한다. 내성외왕의 윤리를 구축한 공자 또한 <논어>에서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을 한다”는 말로 당대의 질서를 추인한다.
-
사유와 성찰 바이러스에 의해 추방되고 있는 종교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그리스도인이 믿는 하느님은 인간의 투사물이라고 했다. 하느님은 인간이 성취하고자 하는 힘과 재능을 표현하는 상징 언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를 받아들인 마르크스는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고, 냉혹한 세계의 감정이며, 영혼 없는 상태의 영혼이다. 그것은 민중의 아편이다”(<헤겔법철학 비판>)라며 독설을 날린다. 자본주의에 의해 소외된 노동자들을 돌볼 생각은 않고, 오히려 권력의 편에 서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종교의 처신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
사유와 성찰 지구의 눈물, 인간의 눈물 2007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2050년대 아시아권에서는 대형 삼각주에서 홍수로 인한 강의 범람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요 며칠 동안 한탄강의 범람으로 마을이 잠기는 것을 보며, 임진강, 북한강, 남한강이, 마침내 한강 또한 장담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앞당겨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에 전율이 인다. 전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다가 어떤 계기로 터진다. 환경위기는 명백한 파국의 기반이 서서히 쌓여간다. 전쟁은 마지막 순간에도 막을 수 있지만, 환경위기는 티핑포인트를 지나면 되돌릴 수 없다. IPCC의 2018년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는 지금 당장 세계가 탄소중립사회로 전환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인류가 행동할 기간은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비상종이 울리고 있다. 어떤 인간안보도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인간의 마음이 결정한다. 불교의 가르침인 신토불이(身土不二)는, 몸은 지금까지의 행위에 의한 결과인 정보(正報)로, 땅은 그 몸이 의지하고 있는 환경인 의보(依報)로 나타나는데 둘이 아니라고 한다. 지구의 환경은 인간의 마음이 만든다는 뜻이다. 지금의 코로나19가 그 예증이다.
-
사유와 성찰 스포츠 인권을 확립해야 한다 레슬링 선수였던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청소년들에게 기하학, 수학, 철학 등을 배우기에 앞서 시가(詩歌)와 체육을 기본 교육으로 할 것을 주장한다. 절제와 용맹의 덕을 기르기 위해서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과 체육 교육은 명맥만 유지된다. 이 때문에 청소년의 심신이 병들어 가고 있다. 더욱이 자본이 지배하는 체육계에서 육체는 돈벌이의 도구에 불과하다. 고 최숙현 선수는 스포츠자본의 희생자다. 승리지상주의를 향한 전투적 스포츠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전문스포츠인들은 로마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나 다름없다. 차이는 자본의 경기장이라는 점이다. 지금 스포츠는 인간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고, 상업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그저 박수치거나 환호하는 대리만족의 대상일 뿐이다.
-
사유와 성찰 평화의 별이 된 효순·미선아 18년 전, 꽃보다 아름다운 너희들이 미군의 장갑차에 치인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사진을 보며 오열했단다. 도대체 그때 부처님은,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원망과 한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한반도의 고통을 고스란히 껴안고 간 우리의 딸들아! 우리가 너희들을 대신해 갔어야 했는데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한없이 부끄럽다. 너희 몸 위로 지나간 장갑차는 이 나라 백성들을 짓누르는 고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제는 한반도를 자신들이 보호해야 될 여성으로 전락시켜 이 땅을 침탈했단다. 그들은 강탈한 이 땅을, 마구잡이로 노략질했지. 위안부는 그 고통의 일부란다. 해방 후 또 다른 외국 군대가 들어와 이 국토를 맘껏 휘젓고 다녀도 이 나라의 위정자들은 사대근성으로 침묵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어 군대와 경찰은 그들을 지키기 위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있단다.
-
사유와 성찰 사드는 철폐되어야 한다 지난 8일 외교부 장관을 피고로 한 ‘사드부지공여승인처분무효’ 소송 최후변론에서 김천 노곡리 박태정 이장은 당연히 자신들이 피해 당사자임을 주장했다. 임시 배치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장비 X밴드레이더는 최대출력 410㎾로 2000㎞를 탐지할 수 있는 고출력의 전자장비이며, 3.6㎞ 안에는 허가받지 않은 인원은 차단되어야 한다고 미군교범은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 전방에는 노곡리를 포함한 3개 마을에 3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박 이장은 과수농가가 대부분인 농민들을 대변하여, 사드가 전자파에 민감한 벌과 같은 곤충에게 해를 입혀 농사에 큰 피해를 본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주민 의사도 묻지 않고, 법적 절차도 무시한 소성리 미군기지는 헌법에 명시된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
사유와 성찰 연민의 정치, 연민의 경제 AI(인공지능)가 아니더라도 문명의 특이점은 이미 와 있다. 영화 <엑스 마키나> 속 기계가 인간의 욕망을 비웃듯 그것을 이용해 세상으로 탈출하는 장면은 일상의 현실이 됐다. 장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허망한 기호의 질서에 지배당한 현대의 소비문명이 그것이다. 자본주의와 그것의 고속도로인 신자유주의는 물신에 지배당한 인간의 비극이다. 코로나19는 이 통로를 맘껏 휘젓고 다닌다. 어떤 경제학이 이 사건을 예측할 수 있었는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을 절단, 분리, 배제, 고립시킨 경제를 초토화한, 보이지 않는 적은 우리 안에 있다. 더욱 비극적인 일은 미래 예측의 후각을 잃은 것이다.
-
사유와 성찰 의료는 정치다 과연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코로나19는 왜 존재하며, 어떻게 그렇게 긴 세월을 생존해왔는가. 빠른 확산을 지휘하는 이 바이러스의 사령부는 어디에 있을까. 설사 그들을 퇴치한다고 해도 승리한 것일까. 이 사건은 관찰하고, 진단하고, 실험하는 근현대 의학의 한계를 보여준다. 의학은 병의 이름을 새롭게 짓기도 하고, 인식하지 못하던 병원체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병의 존재 이유를 다 해명할 수는 없다.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의료인들은 때로는 원인 부재의 전쟁터로 보내야만 하는 전사이기도 하다.
-
사유와 성찰 코로나19와 우리 안의 바이러스들 인간은 큰 것을 짓거나 부술 수는 있지만 미세한 바이러스조차 감당할 수 없는 약한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사명감 투철한 의학은 인간의 몸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서 많은 성과를 냈다. 늘 그렇듯 지금의 사태 또한 인간 자신이 재촉했다. 스스로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길 자청했다. 인간을 조종하는 탐욕바이러스에 의해서다. 코로나19처럼 탐욕바이러스에 효과적인 백신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실천 없는 처방만 난무한다. 코로나19와 탐욕바이러스는 닮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닮은 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로나19는 전자현미경이라야 볼 수 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탐욕바이러스 또한 저지른 일의 흔적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다. 기획단계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욕망의 대명사인 자본주의를 통해 ‘기관 없는 몸’이라고 한다. 이 양자는 증식만이 있다. 코로나19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체로 대사작용과 같은 생물학적 기능이 없다. 증식이 있을 뿐이다. 탐욕바이러스 또한 문명이라는 실체는 있는데 예측, 상상, 경쟁 등을 통해 무한히 확산된다.
-
사유와 성찰 함께 사는 세계를 위한 지구윤리 새해 벽두부터 세계는 전쟁 직전까지 간 이란과 미국 간 갈등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사이 민간항공기가 미사일에 격추되어 힘없는 민중들만 희생당했다. 슬픔을 가눌 길 없는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또는 그녀의 죽음이 언젠가는 우리 자신이 되지 않을까. 국가 간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무력행사 금지를 위해 1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맹을, 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합을 설립했음에도 지난 한 세기 동안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원인은 힘을 앞세운 국가들의 폭주에 있다. 국가는 인권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 평화적 생존권과 행복권 보호를 제1의 의무로 한다. 그렇다면 분쟁에 동원되는 젊은 병사들과 그 가족들은 과연 행복할까.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나라와 싸워야 한다고 하지만 국가가 전쟁터로 내보내는 국민 개인의 목숨은 도구에 불과하다. 백성들에게는 불안과 공포뿐이다. 헌법에 각인된 국민의 행복권을 지키지 못한 국가는 매뉴얼에 따라 그들을 사지로 몰아세운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듯 죽은 뱀을 건드리면 독이 발사되는 것과 같다. 죽기 직전 본능으로 장착된 것이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여 합법적으로 휘두른다고 하지만 폭력의 해독은 이처럼 개인이든 국가든 다르지 않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에 쏟아부은 돈만 2조달러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4배다. 이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가.
-
사유와 성찰 종교와 자본주의 중학생 때, 내가 다니던 교회는 담쟁이넝쿨이 본당의 벽을 뒤덮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설레는 마음에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갔다. 어느 날부턴가 노동이 전부였던 어머니가 새벽녘 자고 있는 내 머리맡에 던져놓던 백원짜리 동전이 보이지 않았다. 일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헌금시간이 돌아오자 손을 헌금 자루에 집어넣고 돈을 내는 척했다. 장부에도 거짓말로 금액을 적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번이지 몇 주가 지나자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다. 거짓말은 하느님이 잘 아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