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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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신진서의 승전보 다시 읽기 2016년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가 감히 최고의 프로기사 이세돌에게 도전했다. 이세돌은 여유로웠다. 기계는 기계적으로 둘 것이고, 이에 자신은 창의적으로 대처할 것이라며 승리를 장담했다. 모두 인간의 완승을 의심치 않았다. 대국이 시작되자 예상대로 AI 실력이 형편없어 보였다. 인간의 눈에는 포석부터 엉성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뜬금없는 수를 두는데도 형세가 만만치 않았다. 어느 순간 해설자들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인공지능이 지구촌 최고수를 소리 없이 베고 있었다. 형체가 없는 인공지능은 잔인했다. ‘두 뼘 천하’ 바둑판에 풍운이 일었다. 그날 이세돌은 자신을 덮치는 거대한 기계음을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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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스포츠는 꼭 일어날 일만 일어난다 불멸의 축구감독 히딩크는 한국축구에 세 가지가 부족하다고 했다. 바로 철학과 전략, 시스템이다. 전략과 시스템은 알겠는데, 한국축구에 철학이 없다니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다. 그가 생각하는 철학이란 무엇인지는 문답에 없다. 굵은 땀방울 속에 어떤 철학이 들어있느냐고 물었다면 히딩크는 아마도 웃어넘겼을 것이다. 히딩크가 말한 철학은 한국축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서로 질문하여 승리를 위한 최적의 공통점을 찾아보았느냐는 충고였을 것이다. 히딩크가 남긴 물음대로 물어본다. 지금 한국축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분명 우리만의 특장이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가. 아무도 답을 하지 않는다. 감독도, 선수도 모른다고 했다. 세계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전술을 준비해야 마땅하지만 우리는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확실한 것은 월드컵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이다. 축구협회는 팬들이 원하는 반대방향으로 역주행을 거듭했다. 국민들은 이대로 가면 한국축구는 망할 것이라고 예감했다. 스포츠는 일어날 일만 일어난다. 그리고 모두의 우려대로 대참사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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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국민이 못질한 관 뚜껑을 누가 열었나 지방선거 투표일이다. 그들만의 싸움이 끝났다. 선거전은 예상보다 치열했지만 예상대로 감동은 없었다. 막판에는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박근혜가 선거판을 휘젓고, 뇌물을 먹은 잡범 이명박도 어물쩍 끼어들어 “나는 순수하다”며 웃었다. 깊이 묻혀있어야 할 자들이 국민이 못질한 관 뚜껑을 열고 나와 대명천지에 깨춤을 추고 있다. 이 땅에서는 숨 쉬는 것조차 조심해야 하건만 저렇듯 ‘정치 좀비’가 되어 활개를 치는 배경은 무엇인가. 바로 정치가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비아냥거린다, “너희들은 깨끗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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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옵니다. 녹색 잎들이 세상의 속기(俗氣)를 지웁니다. 정갈해서 더 눈부신 푸름 속에 그날이 얹혀 있습니다. 새싹이 움트는 날부터 음력 4월 초파일까지는 어떤 풀도 독성이 없다고 합니다. 햇살도, 바람도, 비도 순합니다. 산하가 이처럼 맑고 고운데도 인간의 탐욕이 일으킨 전쟁을 보고 듣습니다. 지구인들은 이분법이 소용돌이치는 블랙홀로 빨려들고 있습니다. 세상이 불타는 집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화택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비극의 실상을 제대로 통찰하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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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폭군 트럼프 부활절에도 폭탄은 떨어졌다. 예수께서는 보혈로 대속하였건만 인류가 갈고닦은 이성은 피를 흘리고 있다. 교황은 모두가 폭력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증오와 분열의 파장에 무감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중동지역에서 들려오는, 기름이 잔뜩 묻은 포성에 묻혀버렸다. 교회마다 평화를 내려달라는 기도를 올려도 신께서는 답이 없다. 아침마다 영상매체에서 화염이 치솟는다. ‘요한계시록’이 가리키는 불지옥이 저런 것일까. 저런 폭탄을 맞고도 지구가 멈추지 않는 게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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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지구가 한쪽으로만 돌아서 인간이 미치는가 봄이 오고 있다. 눈이 녹아버려 대머리가 된 겨울이 외딴집에서 아무도 모르게 털모자를 벗는다. 해진 옷을 걸친 동장군을 향해 개들이 짖으면 남풍이 불어온다. 대지의 혈관으로 햇살이 흐르고, 나무에 물이 오른다. 그리고 절대 고요의 순간에 움이 튼다. 온갖 새싹들에게 비로소 새로운 시간이 주어진다. 천지에 흐르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가. 대자연의 순환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거대한 의식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우주의 질서를 깨뜨리는 재앙이 해마다 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바로 산불이다. 올해는 겨울 산불이 빈발했다. 심지어 설날에도 문경, 달성 등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정초에 초목들이 불에 타다니 심상치 않다. 하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 올봄에는 화마가 언제 어디를 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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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님의 침묵’ 100년 시집 <님의 침묵>이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다. 시인이고 선승이며 절세의 항일투사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은 1925년 8월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했다. 그리고 이듬해 5월20일 회동서관에서 출간했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동인지 ‘창조’ ‘폐허’ ‘백조’ 등이 속속 출현했고, 시인들이 몰려다니며 서양에서 들어온 신시들을 뜯어보고 흉내 내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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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한마디에 정국이 얼어붙었다. 민주화를 이뤘다는 대명천지에 돈 공천이라니, 도대체 누가 의원 강선우를 살려줬는가. 흔히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속설이 이 땅에서는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에 불과하다. 돈 앞에서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 그 당이 저 당이고, 그자가 저자이다. “수사 중이니 결과를 지켜보자” “개인의 일탈이다” “억울할 테니 소명할 기회를 주자”. 윤석열 정부에서 지겹게 들었던 말들이 요즘 더불어민주당에서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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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종로3가의 배신 노을이 내리면 젊은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화사한 차림에 큼직한 웃음을 머금고 삼삼오오 거침이 없다. 외국인들도 섞여 있다.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에 불이 켜지고, 고기와 생선을 굽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지글지글 자글자글, 소리마저 맛있다. 아무렇게나 입어도, 아무 얘기를 해도 젊음은 아름답다. 불빛이 출렁이고 흥이 넘친다. 종로3가의 밤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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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순천만 흑두루미 순천만 일몰을 보았다. 탐조(探鳥)대원들과 갈대숲을 지나서 용산에 올라 순천만을 굽어보았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11월, 그 계절의 틈새는 온통 철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새들의 울음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만(灣)으로 진격했던 바닷물도 집으로 돌아가고, 갯벌이 드러났다. S자형으로 구부러진 물길만 남았다. 그 물길을 타고 하루가 돌아오고 있었다. 이윽고 먼 산에서 흘러내린 어둠이 노을을 지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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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슬프지 않은 슬픔 조용필은 살아있었다. 추석날 보름달은 보지 못했지만 조용필은 보았다. 한국인들은 KBS에서 방영된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공연을 통해 조용필을 재발견했다. ‘그래, 우리에겐 조용필이 있었지.’ 그의 노래는 세월의 모서리를 닦아주었다. 물기 어린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젊은 시절을 불러내어 옆에 앉혔다. 과거를 더듬어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동안 수고했어.” “그래도 이렇게 살아냈잖아.” 그의 노래에는 모두의,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그렇게 조용필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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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여의도에서 하이에나를 볼 것이다 지난해 여름, 손글씨로 써 내려간 10장 분량의 독자 편지를 받았다. 윤석열의 내란이 일어나기 전이다. 그는 시국을 나름 면밀히 진단하고, 윤석열에게 정권을 바친 배경을 분석했다. 4월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었지만 혁명의 주체가 아닌 민주당이 정권을 ‘주워서’ 5·16 반동 세력에 뺏겼고, 촛불혁명 때도 민주당이 정권을 거저 주워서 윤석열 반동 정권에 내주었다고 비분강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