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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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혁명하기 좋은 때 6·3 대통령 선거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 나라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모두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민심이 흉흉하다. 들여다볼수록 심각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지구촌에서는 일찍이 소멸된 이데올로기가 오로지 이 땅에서만 춤을 추고 있다. 서민들의 눈물까지 삼켜버리는 불평등이 곳곳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또한 사회 전반에 ‘차별’이라는 폭력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런 음습한 토양에서 생겨나 급속하게 번진 진영 논리가 국민들을 편싸움에 내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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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총구에 스며든 민주주의 “죄송합니다” 나라가 대체로 평온하다.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키고 나라가 쪼개질 듯이 패를 나눠 싸웠지만 을사년 봄은 그런대로 화사하다. 과거에는 지배자의 흉기였던 헌법도 민주주의 성곽으로 튼실하다. 초헌법적인 왕을 꿈꾸던 자는 거꾸러졌다. 세계의 시선도 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의 폭주에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미국 시민들도 한국이 부럽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분명 특별함이 있다. 그 특별함에 들어있는 피와 눈물 또한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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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이 땅의 봄은 헌재에서 피어난다 하늘을 이고 있는 산들이 불타고 있다. 거대한 화염이 태양을 가렸고, 시뻘건 화마는 동물들 비명마저 삼켰다. 집채만 한 불더미가 날아다녔다. 천년 동안 기도가 끊이지 않았던 고찰도, 마을을 지키던 당산목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산청, 의성, 울산, 안동, 하동 지역을 굽어보던 산들은 영묘한 자태를 잃고 검은 숨을 내뱉고 있다. 저 숲들은 왜 우리 시대에 사라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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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김삼웅의 붓칼 김삼웅 선생이 생애 처음으로 소설책을 펴냈다. 바로 <네 칼이 센가, 내 칼이 센가>이다. 선생은 평전작가이며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소설 한 편 쓰는 것은 오래된 소망이었다. 소설 주인공은 단재 신채호이다. 어떤 허구도 경계하며 이미 <신채호 평전>을 출간했지만 다시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단재에게 날아갔다. 김삼웅은 단재를 늦게 알아서 죄송하고, 그래도 알게 되어 행복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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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나훈아와 남진, 그리고 어른 은퇴 무대에서 나훈아가 왼팔을 들었다. “니는 잘했나?”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12·3 내란사태를 입에 올렸다. 작심했던 모양이다. 얼핏 들으면 정치권을 싸잡아 개탄하는 양비론처럼 들리지만 새겨보면 왼쪽을 향한 조롱이다. 내란을 획책한 대통령을 단죄함이 어찌 왼쪽·오른쪽 문제인가. 그럼에도 자신의 노래인생을 정리하는, 어쩌면 생의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왼쪽을 힐난했다. 가황이라 불리는 나훈아가 정치적 발언의 파장을 모를 리 없다. 아마 은퇴를 하기 전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나 보다. 자신의 어머니도 형제가 싸우면 둘 다 팼다고 했다. 어머니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훈아는 만인의 어머니가 아니다. 결국 나훈아는 왼쪽이 싫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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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주여 어디로 임하셨나이까 예수 오신 날입니다. 간밤 예수께서는 어디로 내리셨을까요. 그냥 사람의 마음으로 헤아려보면 내릴 곳이 마땅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늘에는 주술사들의 삿된 주문이 떠돌고, 땅에는 음모의 살기가 자욱합니다. 더욱이 거룩한 날에도 친위쿠데타를 옹호하는 무리가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저들이 감히 십자가를 들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계엄령 선포가 하나님의 나라를 살리는 일이라고 악을 쓰고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을 선동하는 사탄을 향해 그저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코 ‘십자가 군병’이 될 수 없건만 저들은 알지 못합니다. 어쩌다 그리스도교가 아스팔트 위로 끌려나와 극우세력의 뒷배가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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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김진숙, 그가 다시 길 위에 섰다 2021년 2월, 백기완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전 여섯 글자를 썼다. “김진숙 힘내라.” 앞으로는 노동자가 억울하게 죽는 일, 해고되는 일은 없게 하라는 마지막 당부였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당시 그는 암과 싸우면서도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34일 동안 도보행진을 했다. 공권력에 의한 불법연행과 폭력을 인정하고 부당한 해고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실로 피맺힌 호소였다. 그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또 다른 김진숙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 대신 공돌이, 공순이로 살아야 했던 노동자, 그들에게 가해졌던 학대와 착취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를 요구했다. 수백명의 시민과 노동자가 함께 걸었고, 언론은 그의 행적을 비상하게 추적했다. 도보행진을 마치고 김진숙은 청와대를 향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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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대통령의 허수아비 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백척간두의 위기인데도 김건희라는 이름 속으로 모든 현안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성난 민심은 여러 비리 의혹에 휩싸인 대통령 부인을 노려보고 있다. 대통령 주변에 간신이 들끓고, 정치브로커들이 위험한 칼춤을 추며 권력을 조롱하고 있다. 갈피를 못 잡는 권력의 빈자리를 노려 까마귀들이 몰려와 용산 하늘을 덮고 있다. 바람결이 음산하건만 대통령은 그 바람에 나부끼며 허수아비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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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농정에도 멸구가 붙어있다 수확을 앞둔 논들이 벼멸구의 침공에 초토로 변했다. 흡사 폭탄을 맞은 듯 군데군데가 움푹움푹 꺼졌다. 추석 전에는 황금색으로 출렁이던 들녘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중국에서 바람을 타고 건너온 벼멸구는 가장 먼저 호남 들녘을 유린했고, 그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임실지방은 70%가 넘는 논이 멸구 서식지로 변했다. 임실군 오수에서 농사를 짓는 최영록 생활글 작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서울에서 추석을 쇠고 내려와 보니 자신의 논이 온통 붉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새벽 들판에서 가슴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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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밀정은 있다 두 쪽으로 갈라진 광복절 기념행사는 생각할수록 엄중하다. 지난 26일 국회에 불려간 독립기념관장 김형석은 친일역사관 논란에도 1945년 8월15일을 광복절로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문수는 인사청문회에서 “일제시대 때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국적이 있느냐”며 당시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했다. 또 “(1919년 건립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정식 정부가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일은 1948년 8월15일”이라고 강변했다. 국무위원이 되겠다는 사람이 나라 헌법을 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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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사람 김민기 김민기 선생이 떠났다. 독재시대를 건너온 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었다. 누군가에게 부음을 전하려 했건만 받을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깨동무를 하고 구호를 외쳤던 무명의 청춘들은 어디에서 늙어갈까. 언제 어디에서 자신의 젊음을 벗었을까. 먼 하늘을 보다가 ‘아침이슬’ 맺혀있는 젊은 날의 어디쯤에 내렸다. 1970년대는 살기(殺氣)가, 1980년대는 광기(狂氣)가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있었다. 20세기에 청춘을 묻었건만 기억하면 아직도 최루탄 냄새가 났다. 여기저기서 김민기의 죽음을 ‘아침이슬’로 씻기었다. 잿빛 하늘 아래 희뿌연 거리에서 ‘아침이슬’을 부른 자들은 이제 흰머리에 등이 굽었다. 정연했던 논리에도 검버섯이 피었다. 용케 살아있구나. 많이 흘러왔구나. 그런데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를 가려다가 멈춰서 있는가. 왜 이리 남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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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남과 북은 다시 ‘괴뢰’가 될 것인가 1979년 늦봄, 3명의 이등병이 철책 너머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교육을 받았던 신병들은 흩어지고 셋만 남아 GOP(일반전초)에 떨어졌다. GOP 부대의 주 임무는 휴전선 철책을 지키는 것이었다. 북쪽 산들은 무심하게 푸르렀고, 철책과 철책 사이는 고요했다. 흡사 시간이 멎은 듯했다(어떤 연유인지 몰라도 당시 남과 북은 확성기를 틀지 않았다). 그 고요가 기이하고 날카로웠다.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이등병 셋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