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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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나훈아와 남진, 그리고 어른 은퇴 무대에서 나훈아가 왼팔을 들었다. “니는 잘했나?”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12·3 내란사태를 입에 올렸다. 작심했던 모양이다. 얼핏 들으면 정치권을 싸잡아 개탄하는 양비론처럼 들리지만 새겨보면 왼쪽을 향한 조롱이다. 내란을 획책한 대통령을 단죄함이 어찌 왼쪽·오른쪽 문제인가. 그럼에도 자신의 노래인생을 정리하는, 어쩌면 생의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왼쪽을 힐난했다. 가황이라 불리는 나훈아가 정치적 발언의 파장을 모를 리 없다. 아마 은퇴를 하기 전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나 보다. 자신의 어머니도 형제가 싸우면 둘 다 팼다고 했다. 어머니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훈아는 만인의 어머니가 아니다. 결국 나훈아는 왼쪽이 싫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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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주여 어디로 임하셨나이까 예수 오신 날입니다. 간밤 예수께서는 어디로 내리셨을까요. 그냥 사람의 마음으로 헤아려보면 내릴 곳이 마땅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늘에는 주술사들의 삿된 주문이 떠돌고, 땅에는 음모의 살기가 자욱합니다. 더욱이 거룩한 날에도 친위쿠데타를 옹호하는 무리가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저들이 감히 십자가를 들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계엄령 선포가 하나님의 나라를 살리는 일이라고 악을 쓰고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을 선동하는 사탄을 향해 그저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코 ‘십자가 군병’이 될 수 없건만 저들은 알지 못합니다. 어쩌다 그리스도교가 아스팔트 위로 끌려나와 극우세력의 뒷배가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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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김진숙, 그가 다시 길 위에 섰다 2021년 2월, 백기완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전 여섯 글자를 썼다. “김진숙 힘내라.” 앞으로는 노동자가 억울하게 죽는 일, 해고되는 일은 없게 하라는 마지막 당부였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당시 그는 암과 싸우면서도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34일 동안 도보행진을 했다. 공권력에 의한 불법연행과 폭력을 인정하고 부당한 해고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실로 피맺힌 호소였다. 그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또 다른 김진숙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 대신 공돌이, 공순이로 살아야 했던 노동자, 그들에게 가해졌던 학대와 착취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를 요구했다. 수백명의 시민과 노동자가 함께 걸었고, 언론은 그의 행적을 비상하게 추적했다. 도보행진을 마치고 김진숙은 청와대를 향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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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대통령의 허수아비 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백척간두의 위기인데도 김건희라는 이름 속으로 모든 현안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성난 민심은 여러 비리 의혹에 휩싸인 대통령 부인을 노려보고 있다. 대통령 주변에 간신이 들끓고, 정치브로커들이 위험한 칼춤을 추며 권력을 조롱하고 있다. 갈피를 못 잡는 권력의 빈자리를 노려 까마귀들이 몰려와 용산 하늘을 덮고 있다. 바람결이 음산하건만 대통령은 그 바람에 나부끼며 허수아비 춤을 추고 있다. 임기가 반이나 남았는데도 대통령 권위가 증발해버렸다. 퇴임을 앞둔 김철홍 인천대 교수가 대통령 훈장을 거부했다. 김 교수는 “정상적으로 나라를 대표할 가치와 자격이 없는 대통령에게 받고 싶지 않다”며 “나라를 양극단으로 나누어 진영 간 정치적 이득만 챙기는, 사람 세상을 동물의 왕국으로 만들어놓았다”고 한탄을 쏟아냈다.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요즘 백성의 소리다. 폐망 직전의 구한말에도 그랬다. 고종이 임금의 권위를 잃고 아무한테나 상을 내리자 백성들이 훈장 받은 자들을 우습게 여겼다. 더러는 훈장을 받으면 녹여서 팔아먹었다. 어쩌면 검증되지 않은 초짜 정치인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을 때 재앙은 예고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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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농정에도 멸구가 붙어있다 수확을 앞둔 논들이 벼멸구의 침공에 초토로 변했다. 흡사 폭탄을 맞은 듯 군데군데가 움푹움푹 꺼졌다. 추석 전에는 황금색으로 출렁이던 들녘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중국에서 바람을 타고 건너온 벼멸구는 가장 먼저 호남 들녘을 유린했고, 그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임실지방은 70%가 넘는 논이 멸구 서식지로 변했다. 임실군 오수에서 농사를 짓는 최영록 생활글 작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서울에서 추석을 쇠고 내려와 보니 자신의 논이 온통 붉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새벽 들판에서 가슴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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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밀정은 있다 두 쪽으로 갈라진 광복절 기념행사는 생각할수록 엄중하다. 지난 26일 국회에 불려간 독립기념관장 김형석은 친일역사관 논란에도 1945년 8월15일을 광복절로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문수는 인사청문회에서 “일제시대 때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국적이 있느냐”며 당시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했다. 또 “(1919년 건립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정식 정부가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일은 1948년 8월15일”이라고 강변했다. 국무위원이 되겠다는 사람이 나라 헌법을 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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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사람 김민기 김민기 선생이 떠났다. 독재시대를 건너온 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었다. 누군가에게 부음을 전하려 했건만 받을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깨동무를 하고 구호를 외쳤던 무명의 청춘들은 어디에서 늙어갈까. 언제 어디에서 자신의 젊음을 벗었을까. 먼 하늘을 보다가 ‘아침이슬’ 맺혀있는 젊은 날의 어디쯤에 내렸다. 1970년대는 살기(殺氣)가, 1980년대는 광기(狂氣)가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있었다. 20세기에 청춘을 묻었건만 기억하면 아직도 최루탄 냄새가 났다. 여기저기서 김민기의 죽음을 ‘아침이슬’로 씻기었다. 잿빛 하늘 아래 희뿌연 거리에서 ‘아침이슬’을 부른 자들은 이제 흰머리에 등이 굽었다. 정연했던 논리에도 검버섯이 피었다. 용케 살아있구나. 많이 흘러왔구나. 그런데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를 가려다가 멈춰서 있는가. 왜 이리 남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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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남과 북은 다시 ‘괴뢰’가 될 것인가 1979년 늦봄, 3명의 이등병이 철책 너머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교육을 받았던 신병들은 흩어지고 셋만 남아 GOP(일반전초)에 떨어졌다. GOP 부대의 주 임무는 휴전선 철책을 지키는 것이었다. 북쪽 산들은 무심하게 푸르렀고, 철책과 철책 사이는 고요했다. 흡사 시간이 멎은 듯했다(어떤 연유인지 몰라도 당시 남과 북은 확성기를 틀지 않았다). 그 고요가 기이하고 날카로웠다.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이등병 셋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산등성이에 납작 엎드린 벙커가 중대본부였다. 철모를 쓴 중대장이 벙커에서 나왔다. 전입신고를 받고는 한 명씩 이름을 불러주고 이등병의 손을 잡아주었다.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오전에는 자고, 오후에는 작업, 밤에 경계근무를 섰다. 철책 안전이 우리의 안전이었다. 우리가 철책이었다. 고참들은 언제 습격을 받아 무덤이 될지 모르니 초소를 깨끗이 청소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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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알면서도 방관하는 악당들 대기는 신선하고 태양은 명랑하며 달은 살갑다. 성가신 벌레들도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월의 멋진 날들이 펼쳐지고 있다. 한데 밤바람이 수상하다. 한기가 묻어있다. 거의 초가을 바람이다. 숲속의 꽃들을 만지고, 보리밭을 헤집고 나와서 채 열꽃이 가시지 않았을 텐데도 그 숨결이 차갑다. 이맘때의 바람에서는 비린 듯 달착지근한 풀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바람이 아니다. 식물들은 더 깊이 느낄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기에 모든 촉각을 동원하여 바람이 전하는 말을 판독할 것이다. “식물은 세상에 대해 반응한다. 식물도 보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들을 줄 안다.”(샤먼 앱트 러셀 <꽃의 유혹>) 모든 문을 열어 빛과 공기, 소리까지 흡입하던 풀과 나무들은 낯선 바람을 맞아 당황할 것이다. 사과나무는 지난해 혹독했던 찬바람을 떠올리며 몸을 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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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아무도 ‘효’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꽃을 드렸습니다. 불효자의 꽃을 받고도 어머니는 그저 웃습니다. 어머니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자식은 머리로 이해할 뿐 가슴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시대가 어머니들을 버렸습니다. 아버지들은 먼저 세상을 뜨고, 홀로 남은 어머니들은 쫓겨다닙니다. 시대의 난민들입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지아비 무덤과 고향을 지키다가 결국 새끼들을 따라나서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 집 작은 방에 갇혀있습니다. 밤마다 생각은 천리 길을 달려갈 것입니다. 평생을 살아온 마을, 앉으나 서나 정겨운 이웃, 손때 묻어 더 번쩍거렸던 장독대, 눈물마저 거름이 됐던 텃밭. 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되어 달을 보며 눈물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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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중도주의, 정하룡의 마지막 당부 선거판을 지켜보다 비상한 책을 접했다. 동백림 사건의 사형수가 쓴 <정하룡 회고록-나의 20세기>이다. 사적인 회고록이 아니다. 변혁의 시기마다 느꼈던 사색의 산물이며 근현대사에 대한 관조이다. 밑줄을 치면서 다시 읽었다. 통일의 꿈이 멀어지고, 민생이 피폐해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시점이라 그랬을까. 모진 풍파를 겪었지만 논리가 가지런하고 가식 없는 문장은 고졸하다. 선생은 ‘전쟁과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수백만 인간의 피와 한숨으로 얼룩진’ 20세기를 살아냈다. 평생 두 장면을 잊지 못하고 있다. 융단폭격을 당한 평양의 끝없는 폐허 속에서 전봇대 하나만 서 있는 풍경과 한 마을 사람끼리 서로를 죽인 시신이 수없이 뒤엉켜 있는 현장이다. 선생은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상처를 입고 ‘절망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찾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살펴 통일의 묘안을 찾아보려 평양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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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박용진을 위하여 박용진 의원이 끝내 낙천했다. 민주당의 ‘비명횡사’라는 기이한 공천 학살극이 어림 끝났나보다. 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이를 시인하고 사과했다. “투명성, 공정성, 국민 눈높이라는 공천 원칙이 잘 지켜졌는가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께서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의 뭇매에도 ‘공천 혁명’이라 항변했던 이재명 대표와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도 이제 그만 솔직해져야 한다. 유감이라도 표했으면 좋겠다. 낙천자들은 독설을 퍼붓고, 탈당을 하고, 당적을 바꿨다.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국회부의장은 민주당을 버리고 국민의힘으로 옮겨 총선에 출마했다. 25년 넘게 자신을 품어준 둥지를 박차고 나가 불과 보름 만에 빨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또 급했으면 그랬을까. 하지만 이번 총선 승패와 관계없이 그의 정치인생은 냉혹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나중에는 그것이 더 억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