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시인
최신기사
-
김택근의 묵언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옵니다. 녹색 잎들이 세상의 속기(俗氣)를 지웁니다. 정갈해서 더 눈부신 푸름 속에 그날이 얹혀 있습니다. 새싹이 움트는 날부터 음력 4월 초파일까지는 어떤 풀도 독성이 없다고 합니다. 햇살도, 바람도, 비도 순합니다. 산하가 이처럼 맑고 고운데도 인간의 탐욕이 일으킨 전쟁을 보고 듣습니다. 지구인들은 이분법이 소용돌이치는 블랙홀로 빨려들고 있습니다. 세상이 불타는 집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화택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비극의 실상을 제대로 통찰하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
김택근의 묵언 폭군 트럼프 부활절에도 폭탄은 떨어졌다. 예수께서는 보혈로 대속하였건만 인류가 갈고닦은 이성은 피를 흘리고 있다. 교황은 모두가 폭력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증오와 분열의 파장에 무감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중동지역에서 들려오는, 기름이 잔뜩 묻은 포성에 묻혀버렸다. 교회마다 평화를 내려달라는 기도를 올려도 신께서는 답이 없다. 아침마다 영상매체에서 화염이 치솟는다. ‘요한계시록’이 가리키는 불지옥이 저런 것일까. 저런 폭탄을 맞고도 지구가 멈추지 않는 게 신기할 뿐이다.
-
김택근의 묵언 지구가 한쪽으로만 돌아서 인간이 미치는가 봄이 오고 있다. 눈이 녹아버려 대머리가 된 겨울이 외딴집에서 아무도 모르게 털모자를 벗는다. 해진 옷을 걸친 동장군을 향해 개들이 짖으면 남풍이 불어온다. 대지의 혈관으로 햇살이 흐르고, 나무에 물이 오른다. 그리고 절대 고요의 순간에 움이 튼다. 온갖 새싹들에게 비로소 새로운 시간이 주어진다. 천지에 흐르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가. 대자연의 순환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거대한 의식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우주의 질서를 깨뜨리는 재앙이 해마다 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바로 산불이다. 올해는 겨울 산불이 빈발했다. 심지어 설날에도 문경, 달성 등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정초에 초목들이 불에 타다니 심상치 않다. 하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 올봄에는 화마가 언제 어디를 칠 것인가.
-
김택근의 묵언 ‘님의 침묵’ 100년 시집 <님의 침묵>이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다. 시인이고 선승이며 절세의 항일투사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은 1925년 8월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했다. 그리고 이듬해 5월20일 회동서관에서 출간했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동인지 ‘창조’ ‘폐허’ ‘백조’ 등이 속속 출현했고, 시인들이 몰려다니며 서양에서 들어온 신시들을 뜯어보고 흉내 내던 시기였다.
-
김택근의 묵언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한마디에 정국이 얼어붙었다. 민주화를 이뤘다는 대명천지에 돈 공천이라니, 도대체 누가 의원 강선우를 살려줬는가. 흔히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속설이 이 땅에서는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에 불과하다. 돈 앞에서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 그 당이 저 당이고, 그자가 저자이다. “수사 중이니 결과를 지켜보자” “개인의 일탈이다” “억울할 테니 소명할 기회를 주자”. 윤석열 정부에서 지겹게 들었던 말들이 요즘 더불어민주당에서 튀어나온다.
-
김택근의 묵언 종로3가의 배신 노을이 내리면 젊은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화사한 차림에 큼직한 웃음을 머금고 삼삼오오 거침이 없다. 외국인들도 섞여 있다.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에 불이 켜지고, 고기와 생선을 굽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지글지글 자글자글, 소리마저 맛있다. 아무렇게나 입어도, 아무 얘기를 해도 젊음은 아름답다. 불빛이 출렁이고 흥이 넘친다. 종로3가의 밤풍경이다.
-
김택근의 묵언 순천만 흑두루미 순천만 일몰을 보았다. 탐조(探鳥)대원들과 갈대숲을 지나서 용산에 올라 순천만을 굽어보았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11월, 그 계절의 틈새는 온통 철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새들의 울음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만(灣)으로 진격했던 바닷물도 집으로 돌아가고, 갯벌이 드러났다. S자형으로 구부러진 물길만 남았다. 그 물길을 타고 하루가 돌아오고 있었다. 이윽고 먼 산에서 흘러내린 어둠이 노을을 지우기 시작했다.
-
김택근의 묵언 슬프지 않은 슬픔 조용필은 살아있었다. 추석날 보름달은 보지 못했지만 조용필은 보았다. 한국인들은 KBS에서 방영된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공연을 통해 조용필을 재발견했다. ‘그래, 우리에겐 조용필이 있었지.’ 그의 노래는 세월의 모서리를 닦아주었다. 물기 어린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젊은 시절을 불러내어 옆에 앉혔다. 과거를 더듬어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동안 수고했어.” “그래도 이렇게 살아냈잖아.” 그의 노래에는 모두의,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그렇게 조용필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물했다.
-
김택근의 묵언 여의도에서 하이에나를 볼 것이다 지난해 여름, 손글씨로 써 내려간 10장 분량의 독자 편지를 받았다. 윤석열의 내란이 일어나기 전이다. 그는 시국을 나름 면밀히 진단하고, 윤석열에게 정권을 바친 배경을 분석했다. 4월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었지만 혁명의 주체가 아닌 민주당이 정권을 ‘주워서’ 5·16 반동 세력에 뺏겼고, 촛불혁명 때도 민주당이 정권을 거저 주워서 윤석열 반동 정권에 내주었다고 비분강개했다.
-
김택근의 묵언 감성과 추상에 악마가 숨어 있다 오늘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죽음의 문턱에서 생환한 날이다. 망명객 김대중은 일본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되어 죽을 고비를 두 차례나 넘겼다. 약술하면 이렇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더 이상 선거로는 승산이 없자 1972년 10월17일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1971년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은 박정희의 권력욕을 간파했다. “이번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이 나라는 박정희씨의 영구집권 총통시대가 온다.” 예언은 적중했다. 박정희는 병영국가를 획책했다. 김대중은 이에 맞서 ‘망명 투쟁’을 선택했다. 권력은 최대의 정적 김대중을 제거하기로 했다. 1973년 8월8일, 중정 요원들이 일본 도쿄 그랜드팰리스 호텔에서 김대중을 납치, 객실로 끌고 갔다. 하지만 살해하기 직전 목격자가 나타나 실패했다. 다시 김대중을 바다 한가운데서 익사시키려 했다. 칠성판 위의 송장처럼, 김대중을 판자 위에 눕히고 밧줄로 결박했다. 쇳덩이를 달아 바다에 던지면 끝이었다. 김대중은 상어에게 하반신을 뜯긴다면 상반신만으로라도 살고 싶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났다. “살려주십시오, 우리 국민들을 위해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자 배가 미친 듯이 달렸다. 폭음이 들려오고, 비행기가 나타났다. 구사일생이었다. 박정희의 지시로 이후락 부장이 지휘했던 살해미수 사건이었다. 8월13일 밤, 저들은 김대중을 동교동 집 앞 골목에서 풀어주었다. 망명 생활 10개월, 납치된 지 5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
김택근의 묵언 고양시장의 ‘산황산 죽이기’ 경기 고양시 복판에 산황산이 있다. 해발 62m에 불과하지만 낮아도 깊은 산이다. 그래서 야산이 아니라 버젓한 이름을 지녔을 것이다. 산황산 넓이는 49만9000㎡(약 15만평), 그 반쪽(24만4000㎡)에는 이미 9홀 규모 골프장이 들어섰다. 그런데 최근 나머지 반쪽도 수용해 골프장을 18홀 규모로 넓히겠다는 계획을 고양시가 전격 승인해버렸다. 골프장 증설을 반대하는 단체들과 시민들은 경악했다. 이동환 시장이 2년 전에 산황산 훼손을 막겠다고 선언했고, 모두가 시장의 결단에 찬사를 보냈기 때문이다. 사실 업자들은 10년도 넘게 산황산을 노려보며 군침을 흘렸다. 하지만 재정 능력이 없는 사업자가 덤벼들어 부도를 냈고, 환경오염을 막으려는 시민들의 끈질긴 저항에 저들의 야욕은 몇번이나 부서졌다. 그럼에도 고양시장이 입장을 바꿔 ‘산황산 죽이기’에 총대를 멨다.
-
김택근의 묵언 ‘진달래꽃’ 100년 한국인은 누구나 김소월(1902~1934)의 시 한 구절은 외우고 있다. 어느 집을 가도 소월 시집이 꽂혀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 소월 시가 흐르고 있다. 산, 강, 집, 계절, 죽음, 사랑과 이별 속에도 소월이 들어있다. 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있어 가슴에 진달래 꽃물이 들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