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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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김대중 그리고 임동원 김대중은 공직을 떠난 임동원을 주시했다. 임동원은 노태우 정권 때 북방외교의 산물인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의 주역이었다. 김대중이 보기에 임동원은 강직하면서도 섬세했다. 자신이 설립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아태재단)의 사무총장에 앉히고 싶었다. 1994년이 저물 무렵 비서실장 정동채를 보내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임동원은 김대중이 그냥 싫었다. 빨갱이, 과격분자, 거짓말쟁이가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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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그러므로 나는 당신입니다 바이러스는 이기적 삶을 겨냥“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자비와 사랑만이인류를 지켜줄 불멸의 백신 마스크를 쓴 스님들이 흡사 묵언수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처님오신날의 사찰은 고요해서 더 깊었다. 불교 조계종단은 봉축행사를 미루고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 정진에 돌입했다. 부처가 계셨다면 바이러스 침공에 어찌 대처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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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붙박이별, 정의당 여의도에 떠 있는 위성정당들정의당 홀로 탑승 거부지더라도 이기는 길 선택축제가 끝나면 더 단단해질 것 분노도 사치다. 이처럼 타락한 선거가 있었는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석을 삼키려는 거대 양당의 아귀다툼이 가관이다. 이제 막 투표용지를 받아드는 학생들에게 정치권은 무얼 보여주고 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 여의도 상공에는 위성정당(위성이란 용어가 점잖다. 어떤 이는 괴뢰라 칭한다)이 떠 있다. 위성정당에서 쏟아지는 요설(妖說)이 봄날을 어지럽힌다. 국민들이 코로나19와 싸우는 사이 정당정치는 십리나 후퇴했다.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가 왜소해지고 있다. 군소정당과 함께 가겠다던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당명에서 ‘더불어’를 떼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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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저기 병든 자들이 있다, 교회 문을 열라 교회는 왜 바라만 보는가사랑의 예수를 믿는다면섬김의 시설들을 내어주라치유의 은혜를 받을 것이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는 코로나19 창궐이 마귀의 짓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마귀는 쫓지 못하고 ‘박근혜 시계’를 찬 채 큰절로 용서를 빌었다. 그렇게 스스로가 세상의 바이러스임을 인정했다. 그는 ‘평화의 궁전’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평화는 결코 거창한 궁전에 깃들지 않는다. 결국 그는 예수 이름을 파는 속세의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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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미담이 괴담을 밀어내고 있다 전염병 같은 대재난을극복하는 역량이 곧 국력이 되고이에 대처하는 국민들의 자세가우리의 국격이 될 것이다마스크를 쓰고 투표장에 가고또 봄날을 건널 것이다 전쟁이 끝났어도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가난한 땅에 돌림병이 떨어졌다. 소리 없는 폭탄, 결핵이었다. 마을마다 기침을 했다. 변변한 치료약도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슴만 쥐어뜯었다. 거의가 죽어나갔다. 폐병쟁이의 각혈은 슬픔 속에도 스며들지 못했다. 그저 하늘 아래,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죄인이 되어야 했다. “푸른 하늘에게 죄스러워/ 기침을 하면 땅바닥에/ 빨간 피가 번져나가고/ 하늘에게 죄스러워/ 꾸부리고만 사는/ 결핵이란 벌레와 살고 있는 인간아.”(권정생의 시 ‘결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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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석유동물 시대의 종말 새해가 밝았다. 사흘째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는 보지 못했다. 추위가 물러가자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해를 가렸다. 기상캐스터는 중국에서 스모그가 유입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미세먼지가 해를 가림은 이제 웃어넘길 일이다. 나라마다 찬란한 인공의 빛이 새해를 장식했지만 정작 태양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던 박두진 시인의 ‘해’도 미세먼지에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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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새만금 갯벌의 저주 새만금 방조제는 세계 최장을 자랑한다. 무려 33.9㎞에 이른다. 하지만 생각을 뒤집어보면 갯벌과 그 속의 생명을 죽였던 세계에서 가장 긴 ‘학살의 둑’이다. 또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여의도의 140배)만큼 국토를 넓혔다고 자랑한다. 이 또한 죽임의 현장이 이리도 넓다는 뜻이다. 그래서 새만금 방조제에 서면 그저 슬프다. 직선으로 뻗은 방조제가 요새처럼 견고해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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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나는 먹방이 슬프다 마을마다 ‘배고픈 다리’가 있었다. 다리 가운데가 파여서 그리 불렸다. 지금은 사라져 지명으로만 남아있지만 옛날에는 흔했다. 허기져서 배가 홀쭉해진 사람에게는 움푹 꺼진 다리조차도 배가 고파 보였을 것이다. 배고픈 사람들이 짐을 지고 배고픈 다리를 건너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아프다. 지금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나온 배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가 허기를 면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시대만 해도 두 끼만 먹었다. 점심(點心)은 그야말로 좁쌀 한 움큼이나 미역 몇 조각을 씹어서 ‘마음에 점을 찍었다’고 한다. 백성들의 굶주림은 일상이었다. 배 터지게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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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신태인 100년 ‘신태인’ 역사는 역사(驛舍)에서 시작됐다. 호남선이 놓이면서 태인과 가까운 마을에 기차역이 생겨났다. 유서 깊은 태인이 인접해 있어 역 이름을 ‘새로운(新) 태인’이라 지었다. 1914년 1월 호남선이 개통되고 아주 작은 마을 ‘서지말’에 기적이 울렸다. 천둥소리보다 컸다. 철마는 거침없이 달려와 신식 물자를 내려놓았다. 신태인역은 수탈의 거점이었다. 일제는 인근 곡창지대에서는 가장 큰 도정공장을 세웠다. 쌀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신태인으로 향하는 길마다 볏가마를 실은 수레와 마차가 줄을 이었다. 역 구내에 쌓여 기차를 기다리는 쌀가마가 하늘을 가렸다. 쌀이 흔하니 돈도 흔했다. 역 앞에 음식점, 술집, 잡화점, 약국 등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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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봄날은 간다 바람이 분다. 나무로부터 사람에게로, 김소월로부터 진달래꽃으로, 사랑으로부터 슬픔에게로 바람이 분다. 우리를 앞질러간 봄은 흰 조팝나무 꽃 속에 숨었다. 봄은 슬프다. 하나의 꽃이 피는 것은 개벽(開闢)이지만 꽃들의 잔치는 혁명이 될 수 없다. 나비 한 마리가 조팝나무 꽃을 뒤져서 겨우 남아있는 한 줌의 봄을 끌어내고 있다. 날개 위에 실린 봄이 위태롭다. 다시 바람이 불고, 나비를 좇던 마음까지 나풀거린다. 그렇다. 우리 사랑 또한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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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전라도 놈, 김 과장 정치학자 전인권의 글은 가수 전인권의 노래만큼이나 빼어났다.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글은 다시 읽어도 여운이 짙다. 그가 겪은 얘기 한 토막을 잘라서 옮겨본다. “나는 판매부서에 근무했던 영업사원이었다. 그 당시 광주·전남지역의 영업소장은 전라도 광주사람이었다. 이름은 김영진(가명)씨였고, 직급은 과장이었다. 어느 날 영업회의가 끝난 후 회식을 하는데 옆 부서의 박 부장이 동석했다가 아주 끔찍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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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하나의 달이 천 강에 양평 용문산에 큰 눈이 내렸다. 설산은 거대한 침묵이었다. 정월 대보름, 스님들의 동안거(冬安居)가 끝나는 날이었다. 수행을 마친 스님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상원사 용문선원에서 선방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동안거는 음력 10월15일에 시작해서 이듬해 1월15일까지 석 달 동안 이어진다. 화두 하나씩 품고 낙엽을 밟으며 선방에 모여든 선승들. ‘이번 겨울엔 성불하리라.’ 그들의 결기로, 또 눈빛으로 한국불교는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