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수돌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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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검찰 개혁·민생, 별개가 아니다 최근 보수언론에선 ‘임기 내내 검찰총장 하나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판’이라며 ‘검찰개혁보다 민생’에 주력하라 했다. 일견 옳다. 민생(民生), 즉 민초의 삶이 정치나 경제의 근본이니. 그러나 이 논리를 펴는 언론의 속내는 못내 수상쩍다. 우선 모든 개혁과 민생은 서로 밀접하다. 오늘날 민초의 삶은 코로나19와 같은 공포로부터의 해방, 부동산·물가 폭등 해소, 일자리 안전·안정과 일-삶 균형, 출산·양육·교육 불안 해소, 식품 안전 확보 및 노후 불안 해소 등으로 개선된다. 그런데 이 민생 이슈들 뒤엔 늘 이해관계가 꼬인다. 일례로, 최근 부동산 폭등은 민생을 압살한다. 하지만 부동산꾼들은 속으로 환호하며 표정 관리를 한다. 심지어 산을 파괴해 농지처럼 만든 뒤 전원단지를 개발하려는 자나 대형 아파트단지를 만드는 건설자본 등은 문서 위조 내지 공무원 매수를 해서라도 사업을 강행한다. 이 과정에서 온갖 고소·고발, 감사·수사 청원, 민형사 소송 등이 전개되지만 십중팔구 건설자본의 승리다. 경찰이나 검찰, 공무원 다수가 부동산 개발을 경제발전이라며 당연시하는 데다 행여 자신도 개발 이익을 얻는다면 자본 편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난개발과 투기가 판을 치면, 논밭에서 땀 흘리던 농민은 피눈물을 흘린다. 더 슬픈 것은, 그 농민들조차 농사보다 개발 이익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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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부동산, 근본 요법과 현실 요법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두 가지를 들면 교육과 부동산이다. 그중에서 부동산 문제는 더 복잡하다. 이해관계가 노골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부동산’이라는 말 자체부터 불편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집과 땅, 이 말이 더 좋다. 거주나 생명의 의미가 깃든 집과 땅이라는 말에 비해 ‘부동산’이라는 말은 이미 상품 가치, 자본 가치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1854년 북미 시애틀 추장의 말처럼 땅과 숲, 동물, 식물 등은 모두 “우리의 형제자매들”인데, 어떻게 사람들이 쉽게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설사 사고팔더라도 땅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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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통령께 드리는 상상의 편지 존경하는 촛불대통령께 드립니다. 저는 2017년 3월에 ‘정의로운 나라를 위한 리더의 품격’이란 부제가 붙은 <대통령의 철학>을 썼고, 그 책을 대통령과 촛불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에서 청와대에 보내드렸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 선물을 받고 감사카드를 보내주셨지요. 고맙습니다. 대통령과 새 정부는 100년 묵은 적폐를 말끔히 청산하고 더 이상 “이게 나라냐?”라는 민중의 함성이 나오지 않게 새 정치를 하라는 역사적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간 대통령의 호감도나 국정 지지도가 들쭉날쭉할 때마다 가슴 졸이셨지요? 표본 적합성이나 통계적 타당도와는 무관하게 여론조사의 힘은 막강합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대통령 임기가 1년 반 남짓 남은 지금부터라도 촛불민중의 열망에 부합하는 새 정치를 잘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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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코로나 시대, 디지털 교육자본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이제 온라인, 비대면 교육이 대세처럼 됐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조차 온통 온라인 수업이다. 물론 고3 학생들만큼은 예외다. 다른 학생들이 원격 수업을 해도 고3은 등교한다. 이 학생들은 사실상 여름방학도 없이 대면·비대면을 가리지 않고 공부한다. ‘대학 입시’ 덕(?)이다. 막상 대학에 가봤자, ‘이걸 위해 그토록 목을 맸나?’ 싶지만, 한국에서 고3은 거의 전투 중인 병사다. 아무 말도 말고 대입으로 돌진! 한편 일각에서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20년 지구촌 인류의 삶을 집어삼킨 코로나 사태, 이 범지구 재난 앞에 우리는 어떤 교육으로 어떤 삶을 가르쳐야 하나? 이런 근본 성찰 없이 단지 ‘스마트스쿨’, 즉 비대면 온라인 교육용 인프라를 깔고 개인별 도구를 사주고 사용법만 알려주면 그만인가? 이런 식이라면 향후엔 코로나보다 더 센 놈이 나타나 되돌리기 어려운 파국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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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0년 전 ‘타이타닉호’의 교훈 영화 <타이타닉>은 실제 있었던 참사이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유럽의 많은 빈민들이 한창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이주하던 1912년 4월15일, 총 탑승자 2200여 명, 길이 260m의 5만t급 대형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출발 5일 만에 침몰했다. 거대한 빙산과 충돌한 것. 어떻게 큰 빙산을 미리 피하지 못했을까 싶지만 차근차근 따져보면 다 이유가 있다. 우선, 빙산 등 위험물을 발견하려면 쌍안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출항 때부터 승무원이 쌍안경 보관함 열쇠를 받지 못했다. 망지기가 ‘맨눈’으로 앞을 살펴야 했다. 달이라도 있으면 나았겠지만 오직 별빛과 배 자체의 조명에 기댔다. 게다가 따뜻한 봄기운에 녹은 빙하가 바다에 떠돈다는 경고가 수차례 있었지만 전신 장비 불량으로 제대로 수신이 안 됐다. 배의 속도도 문제였다. 사실 이 배는 첫 항해였는데, 선사 측은 ‘유럽에서 최단 시간 미국 도착’이라는 해외 토픽을 만들려 했다. 그래서 배의 최고 시속 44㎞에 가까운 41㎞로 달렸다. ‘맨눈’으로 20m 높이의 빙산을 인지한 건 불과 400여m 앞! 260m 길이의 공룡 같은 배가 효과적으로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빙산은 우현에 구멍을 냈고 바닷물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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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자본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단편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있다. 1880년대 봉건 러시아의 가난한 구두장이 세몬이 아내 마트료나 및 아이들과 함께 사는데, 우연히 벌거벗은 나그네 미하일을 만난다. 이들은 없는 살림에도 서로를 보살피며 약 7년간 구두 가게를 꾸린다. 그간 크게 두 가지 일이 생긴다. 하나는 거구의 부자 신사가 1년 이상 신을 독일제 가죽장화를 주문한 일. 둘째는 정숙한 부인 마리아가 일곱 살배기 쌍둥이 여아들을 위해 봄맞이 구두를 주문한 것. 그런데 묘한 반전이 있다. 알고 보니, 미하일은 원래 천사였다. 하나님 명령 불복종으로 세가지 질문에 답을 찾는 중이었다. 첫째, 사람에게 있는 건 뭔가? 둘째, 사람에게 없는 건 뭔가? 셋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 처음과 끝의 답은 사랑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환대하기다. 쪼들리게 가난한 마트료나가 불청객 미하일에게 숙식을 베푼 것도, 마리아가 이웃집 고아 쌍둥이를 키워온 것도 모두,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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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피해의식을 넘어 공감의 연대로 ‘일하는 국회’를 내건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재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주목을 끈다. 즉, 특별한 사유 없인 집주인이 임차인의 계약 연장 요청을 거부할 수 없고, 전세 기간도 2년에서 2년 더 연장할 수 있다. 임대료 인상률도 연 5% 이내다. 일종의 갱신청구권! 이 안에 대해, 가진 자들과 그 대변 언론들이 요란하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건물주 위에 임차인’이라 한다. “임차인이 원하면 무기한” “건물주 좋던 시절, 안녕!” 모두 가짜뉴스다! ‘조물주 위 건물주’는 일리 있지만, ‘건물주 위 임차인’은 거짓이다. 피해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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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포스트 코로나’ 뭣이 중헌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혼란이 줄어들면서 ‘포스트 코로나’ 담론이 활발하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 제발 그러길 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어떤 이는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의 연장선에서 사람들이 타인과 친밀한 접촉을 꺼리고 (카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비대면 접속 위주로 살 것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온라인 세계와 ‘언택트’가 우리 삶을 점점 많이 지배할 것이라 한다. 눈치 빠른 이들은 비대면, 간접 소통, 온라인 강의, 재택근무 관련 주식 투자의 호기라 한다. 이미 그런 분야의 자본이 호황세다. 또 일부는 그간 한국(인)이 ‘헬조선’의 오명 속에 사회적 자존감이 바닥이었지만, 이번 ‘K-방역’에서 보여준 시민의 성숙함이나 민주 정부의 신속·적절한 대응이 세계적 칭송을 받았다며 자랑스러워한다. 다른 편에선 이제 세계화나 도시화, 미국화와 시장화 시대가 저물고 지역화나 공동체, 자급화가 부각됨을 지적한다. 동시에, 공공성이 강한 병원을 민영화하는 등 그간 신자유주의 정부가 해온 일들이 사람 목숨조차 구하지 못함을 지적하며, 이제라도 온갖 안전망 구축이 절실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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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설마? 노동절의 교훈 “우리를 목매달아 노동운동을 짓밟을 수 있다고 본다면, 그래서 궁핍과 고통의 고된 노동 속에서도 해방을 열망하는 수백만 임금노예를 짓밟을 수 있다고 본다면, 차라리 우릴 죽여라! 당신들은 지금 불꽃 하나를 끄지만, 운동의 불길은 온 들판으로 번질 것이다.” 1886년 5월1일,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 약 8만 노동자와 가족들이 일어섰다. 미국 전체로 수십만이었다. 이들의 핵심 구호는 ‘8시간 노동, 8시간 학습, 8시간 휴식’이었다. 그 이후 13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 8시간 노동이 상식이지만, 현실은 엉망이다. 당시 사람들은 산업화 초기의 법칙, 하루 12~16시간 노동 중이었다. 살인적 노동에 심신이 소진됐다. 그래서 요즘 말로 ‘사람답게 살자!’고 나선 것이다. 헤이마켓 광장에서 며칠째 시위 중 경찰 발포로 인명 피해가 났다. 시위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 와중에 누군가 경찰에게 다이너마이트를 던졌고, 경찰 몇 명이 죽자 무차별 사격이 이어졌다. 마치 우리나라 1970~1980년대의 모습이 떠오른다. 체포된 8명 중 7명은 사형을, 1명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위 인용문은 사형 직전 A. 스파이스의 최후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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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사회적 거리 두기, 정치적 거리 두기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 전 지구로 퍼졌다. 4월 초 현재 전 세계 누적 확진자만도 100만명이다. 20만여명이 회복됐지만 이미 총 사망자가 5만명을 넘었다. 치사율 5%는 공포를 부른다. 페북처럼 바이러스도 지구촌을 덮친다. 누적 확진자는 막상 중국이 8만여명인 데 비해, 미국은 20만명을 넘어 최고이고 이탈리아(11만명), 스페인(10만명), 독일(7만명) 등이 뒤따른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국은 1만명 수준이다. 한편, 전통적 구호 ‘뭉쳐야 산다!’가 이제는 ‘흩어져야 산다!’로 됐다. 이를 보다 품위 있게 ‘사회적 거리 두기’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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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공포 마케팅과 우리 안의 바이러스 “두려움이 돈이다.” 무서운 말인데, ‘현실’이다. 두려움, 즉 공포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상업 행위가 ‘공포 마케팅’이다. 잘 보면 우리 주변에 많다. 첫째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이다. 코로나19 확진자 급증, 사망자 속출로 코로나 공포가 도처에 퍼진다. 세계 곳곳도 난리다. 관리와 통제만 잘하면 될 것 같지만 좀체 안 된다. 에피데믹을 넘어 팬데믹 수준으로 갈지 모른다. 이런 공포 분위기에서 마스크나 손 소독제는 ‘떼돈’ 기회다. 한편으로는 독과점 가격을 노린 사재기가 극성, 다른 편에선 너도나도 사려고 장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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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70대의 트럼프와 10대의 툰베리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70대 노인과 10대 청소년. 이들은 2019년 9월 미국 뉴욕의 어색한 첫 만남 이후 2020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또 만났다. 이들의 입장을 재구성해보자. 트럼프가 툰베리에게 말한다. “잘 알겠네. 우리도 나무 1조 그루 심기에 동참하겠네.” “아니, 나무 심기로는 불충분해요.” 툰베리가 쏘아댔다. “지금은 비관이 아니라 낙관할 때란다. 비관론을 퍼뜨리는 예언자나 대재앙에 대한 예언을 거부해야 돼.” 기후위기에 놓인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가 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