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수돌
고려대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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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일상의 킬링필드 ‘킬링필드’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죽임의 들판이다. 이는 1970년대 후반의 ‘민주 캄푸치아’ 시기에 (반미, 반봉건, 반부패, 공산 혁명을 내세우며) 폴 포트가 이끌던 크메르루즈 정권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다. 2만여 킬링필드에서 200만명 내외가 죽었다 한다. 비슷한 대규모 학살로 ‘홀로코스트’가 있다. 대표적인 것은 독일 극우 나치가 반유대인, 반공산주의를 내세우며 1930~1945년 사이에 유럽 전역에서 벌인 대량학살이다. 최소 600만명 이상이 희생되었으며, 지금도 유럽엔 그 학살 현장 집단수용소가 역사기념관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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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노동시간 단축, 시간주권의 연대를! “하루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자유!”를 외친 이들이 있었다. 1886년 5월1일 미국 시카고 헤이마켓광장이었다. 노동절, ‘메이데이’의 기원이다. 그간 130년이 훌쩍 넘었지만 8시간 노동은 아직 꿈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1970년 11월13일, 청년 전태일이 분신하며 외친 말이다. 1인당 국민소득 약 250달러 시절이었다. 그런데 1인당 3만달러가 넘는 지금도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다. 실은 근기법 준수도 힘겨운데 되레 퇴보 일로다. 세계적 장시간 노동국의 오명을 벗고자 2004년부터 점진적으로 주 5일제, 하루 8시간, 주 40시간제를 실시하던 중이다. ‘이명박근혜’ 때는 ‘주 68시간제’가 상식처럼 통했다. 촛불혁명 뒤 현 정부조차 ‘주 40시간제’를 ‘주 52시간제’라 부르는 프레임에 빠졌다. 마침내 2020년 1월부터 시행할 ‘300인 미만 기업 주 40시간제’도 유예하려 한다. 설상가상, 초과근로 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노동시간 정산기간을 (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려 한다. 소위 ‘탄력근로제’다. 6개월간 노동자에게 일을 들쑥날쑥 시켜놓고 주 평균 40시간 이내면 50% 초과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경총이나 전경련은 당초 그 정산기간을 아예 12개월로 하려 했다. 1년 내내 초과수당 없이 일 시킨다는 창조(?)경제! 18세기식 발상! 노조가 기겁을 하니, 못 이긴 척 6개월로 타협하려 한다. 문제는 ‘촛불정부’도 이에 동조하는 점. ‘사람답게 살자’던 촛불민심은 어디에 묻히고 자본의 이윤 욕망만 넘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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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내가 만일 촛불대통령이라면 아래로부터의 민생 요구는 분출하는데, 보수세력의 발목잡기 속 적폐청산은 갈수록 태산이다. 답답한 마음에 상상을 해본다. 내가 만일 촛불대통령이라면, 45년 전의 작고 가난한 나라 부탄처럼 더 이상 GDP(국민총생산)가 아닌 GNH(국민총행복)로 나라를 경영하겠다! 우리는 부탄보다 10배나 잘사니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오해 마시라, 나는 마을이장 너머의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첫째, 중립국 선언을 하고, 미국 트럼프가 요구하는 6조원 규모의 방위비를 거부한다. 약 3만명 미군을 집으로 보낸다. 이미 천문학적인 미군 주둔비와 국방비 등을 절약해 민생을 위한 농업, 교육, 복지, 평화통일 분야에 쓰겠다. 세계 중립국 동맹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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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물신이 된 돈, 언론, 권력 “신안리 아파트, 주민 불만 해소되어 계획대로 진행…” 2005년 6월경, 한 지역신문 1면 톱기사였다. 당시 나는 마을 이장으로 주민들과 함께 그간 물밑에서 진행하던 불법 아파트 사업을 막고 마을공동체 수호를 위해 투쟁 중이었다. 그런데 지역언론 ○○신문은 그 불법적인 1000가구 아파트 사업에 대한 모든 주민 저항이 끝나 순항한다고 보도했다. 그 기사를 본 나와 공동대책위원 15명은 ○○신문사로 달려갔다. 신문사를 불태우고 싶었다. 사장더러 “즉각 해명하라!”라고 외쳤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당시 군수와 그 사장은 사실상 공동 소유주였고, 군수 측은 ○○신문에 정기적으로 광고비조로 돈을 주고 있었다. 돈과 가짜뉴스, 언론 조작이 한 덩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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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누가 조국에게 돌을 던지나?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성경에 나오는 예수 말씀이다. 한 사람을 죄인으로 내몰며 돌을 들고 단죄하려는 분노한 군중이 있었다. 그들을 향해 예수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했다. 죄 없는 자가 없었기에. 약 2000년 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 논란 때문이다. 당시 군중이 오늘의 많은 군중(언론 포함)과 다른 점은, 스스로 죄를 ‘인정’한 것! 지금은 예수가 없어서일까? 특히, 죄 ‘많은’ 자들이 돌로 ‘융단 폭격’하는 건 왜? 사회심리학적으로, 경쟁과 차별의 사회에서 상처받아 두려움에 빠진 이들은 그 트라우마를 특정 대상에게 공격적으로 투사하기 쉽다. 이를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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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무역전쟁’보다 절실한 ‘식량 평화’ 과연 우리의 밥상은 얼마나 건강한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 즉 1만㎡당 국내 농약 사용량은 (2016년 기준) 무려 11.8㎏이다. 세계 최대의 농업 생산국인 미국의 2.6㎏보다 약 5배이고 호주의 1.1㎏보다 10배 넘는다. 화학비료도 많이 쓴다. 한국은 1㏊당 268㎏의 비료를 쓴다. 미국의 2배, 캐나다의 3.4배다. 자연경관과 생태계 보전, 기후변화 예방, 건강 유지 등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크게 실현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곡물 자급률은 꼴찌다. 이는 국내 곡물 소비량 대비 국내 곡물 생산량의 비율이다. 한국은 그 자급률이 23%로, 국내 곡물 소비의 77%를 수입에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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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그레타 효과’와 그 한계를 넘어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라는 스웨덴 소녀가 있다. 2003년생이니 올해 만 16세다. 지난 3월, 그레타는 201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범지구적 기후위기에 대한 그레타의 일관된 신념과 행동 덕이다. 그레타는 초등생인 8세 때 기후위기를 처음 배웠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직감한 그는 부모나 친구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들 “맞다” 하면서도 아무도 ‘행동’하지는 않았다. 11세 때부터 그는 말문을 닫았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부모를 포함, 온 세상이 위선자였다. 세상이 미워졌다. 기후위기만 골똘히 생각했다. 의사는 이를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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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올해 유럽의회 선거가 남긴 질문 지난 5월23일부터 26일까지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에선 임기 5년의 유럽의회 의원 751명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만 18세 이상의 유권자는 약 4억명. 선거의 주 쟁점은 유럽연합 자체에 대한 찬반, 유럽행 이민자에 대한 격론, 최근의 기후위기나 경제위기 대책에 대한 논란 등이 핵심이었다. 투표율 약 51%를 기록한 이 선거는 5년 전과 비교해 몇몇 특징이 있었다. 우선, 참여율(젊은층 포함)이 꽤 높아졌다(48%→51%). 선거 결과에선 반이민 정서 및 기득권 상실의 두려움에 편승한 극우당이 부상하고(48석→112석), 환경이슈를 일관되게 제기한 녹색당이 도약한 반면(50→75), 기후위기나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기존 거대 보수당과 사민당·좌파 정당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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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등가교환 법칙과 인생청춘 법칙 “이 세상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 뭔가 갖고 싶으면 그 가치만큼의 뭔가를 희생해야 한다 그거야. 이것만 기억해놔, 등가교환! 거저 주어지는 건 없어!” 최근 JTBC 인기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선 품격 높게도, 70대 혜자 할머니가 20·30대 청춘에게 ‘등가교환 법칙’을 쉽게 설명한다. 뭘 갖고 싶으면 그 가치만큼 희생하라. 그렇다. 시장경제는 같은 가치(等價)들끼리 교환하라 한다. 과연 자본주의 등가교환 법칙이다. 그럼 무엇과 무엇이 교환된단 말인가? 이 드라마에선 젊음과 늙음의 맞교환이 핵심이다. 한편엔, 취업은 어렵고 빚은 쌓이고 연애도 어려운 ‘청춘’이 있다. 다른 편엔, 만날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공짜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도 받고 별생각 없이 죽을 날만 기다려도 되는 ‘노인’이 있다. 이를 맞바꾸자고 할머니가 청춘에게 제안한다. 청춘들은 유구무언이다. 취업과 돈, 인간관계 등 뭐 하나 되는 게 없는 현실이지만 막상 청춘을 늙음과 교환하자니, ‘손해’ 막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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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스웨덴의 ‘아빠육아’ 스웨덴의 육아휴직 문제를 연구하느라 경험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아이들이 노는 현장을 방문했다. “이미 육아휴직으로 3개월을 보냈어요. 아이랑 함께 1개월 더 보낼 겁니다. 만일 둘째 아이를 낳게 되면 그때는 더 오랫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예전보다 신경도 더 써야 하고 개인 시간도 많이 못 내지만, 마음은 굉장히 즐거워요. 아내의 마음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요.” 1987년생 뵤른(32)은 13개월 된 딸아이의 아빠로, 스웨덴의 화장지 제조용 기계 회사(민간기업)에 다닌다. 아내는 사회보험 기관에 다닌다. 스웨덴은 1974년부터 육아휴직제를 시작, 1995년부터는 아버지 할당제를 도입했다. 2016년부터 아버지는 최소한 3개월을 쓸 수 있고, 쓰지 않으면 소멸된다. 현재 스웨덴 법은 8세 미만의 아이 양육을 위해 아이 1명당 부모 총 16개월을 육아휴직으로 보장한다. 한국의 아빠들이 육아휴직자의 약 15%임에 비해, 스웨덴 아빠들은 45%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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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북유럽 스웨덴 생활, 첫 한 달 연구를 위해 스웨덴 소도시(인구 10만)에서 산 지 한 달이 됐다. 단기 관광이나 출장과는 달리, 몇 개월 이상의 해외 생활은 현지 적응에 어려움도 있지만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유심히 살피게 된다. 흔히 스웨덴 하면 ‘복지국가’ 개념과 양성평등의 상징인 ‘라떼파파’를 떠올린다. 틀린 말은 아니나 학계나 언론 분야 용어일 뿐, 실제 사람들의 일상 속엔 상당히 다른 결들이 느껴진다. 길거리 풍경을 보자. 우선은 한국의 미세먼지가 별로 없다. 어릴 적 당연하던 푸른 하늘, 그러나 그간 잃었던 것을 낯선 곳에서 만난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대개 느긋하다. 햇살이 좋으면 강변 산책로로 많이 몰린다. 자전거도 많다. 한국에선 왜 그리 바쁘게만 살까? 오히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느라 푸른 하늘을 잃어버리고 이제 미세먼지와 같은 악순환의 덫에 빠진 건 아닐까? 여기선 엄마들이 아이를 유아차에 태워 다니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아빠들도 많이 몬다. 애를 본답시고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떠는 ‘라떼파파’는 아직 못 봤다. 그럼에도 육아휴직자의 절반 가까이가 남성이고, 육아를 포함한 가사노동도 부부가 곧잘 분담한다. 차들은 사람에게 양보한다.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려 하면 달려오던 차들이 멀찍이 멈춘다. 미안할 정도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차를 외면하다가 차가 간 뒤 건너야 맘 편하다.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강엔 다리가 셋 있는데, 하나는 승용차가 못 다니게, 다른 하나는 자전거와 사람만 다니게 했다. 차보다 사람이 존중받으니, 사람 사는 곳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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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5·18민주화운동을 보는 ‘다른’ 시각 2000년 8월12일, 러시아의 핵잠수함 ‘쿠르스크’ 호가 군사훈련 도중 노르웨이 인근 바렌츠해에서 2차례나 수중 폭발했다. 이 참사로 무려 118명이 생명을 잃었다. 1991년 소련 해체 뒤 부족해진 예산과 열악한 군용장비 문제가 컸다. 더 참담한 것은 해군 지휘부 및 당시 블라디 미르 푸틴 정부의 대응 방식이었다. 이들은 잠수함 침몰 자체를 인정하고 신속히 대처하기보다 숨기기에 바빴다. 인명 구조도 지연시켰다. 서방 측의 지원 손길마저 ‘보안’ 문제라며 일단 거부했다. 기술적 문제보다 인재(人災)였다. 가장 안타까운 건, 최종 생존자 23명이 지하 100미터 배 안에서 8시간 이상 사투를 벌이며 구조를 기다렸는데도 ‘높은 분’들의 안일함 탓에 절망적 죽음을 당한 점이다. 2014년 4·16 세월호 참사와 꽤 닮았다. 이 실화를 담은 영화 <쿠르스크>에서 희생자 가족은 해군 제독을 향해 “우리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바보도 아니다!”라고 외쳤다. 장례식 때 제독이 아빠 잃은 꼬마에게 손을 내밀자 아이는 째려보며 결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다른 애들도 이 ‘위대한’ 거부에 동참했다. 무능·무책임한 권력에의 저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