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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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의 공정성은 ‘공명정대’한가 “단일팀 구성으로 그간 열심히 훈련한 우리 선수들 출전 기회가 줄면….” “비트코인 규제는 2030세대에게 금수저가 될 길을 박탈한 것….”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 힘겹게 된 정규직인데….” “이번 시험은 너무 쉬워 변별력이 없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해야….” 최근 한국 사회는 인간성이나 대의명분보다 공정성이나 권익추구에 목을 맨다. 전자가 윤리 영역이라면 후자는 실리 영역이다.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남북한 선수들로 단일팀을 짜기로 하자 국민의 60% 이상, 2030세대의 80% 이상이 반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땀 흘린 우리 선수들이 맘껏 뛸 기회를 뺏겼다는 박탈감이다. 정부가 비트코인 규제를 하자, 안 그래도 청년실업 등으로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청년 세대가 대박 찬스를 잃었다고 억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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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최저임금 상승과 인정 투쟁 “(2015년 독일의 최저임금제 도입은) 지난 수십년간 가장 큰 사회개혁이며, 일부 염려하는 목소리와 다르게 전혀 경제적으로 부정적이지 않고 일자리 손실을 가져오지 않았다.” 독일의 안드레아 날레스 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제 도입 1년을 맞아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물론 고용주들의 시각은 달랐다. 독일 수공업연합 대표 칼-세바스찬 슐터는 “최저임금 인상은 아직 이르다”고 했으며, 친기업적인 뮌헨 경제연구소 또한 “최저임금을 낮추거나 최소한 올리지 않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그러나 뒤스부르크-에센 대학 ‘직업숙련 연구소’의 토르스텐 칼리나 박사는 “최저임금제 도입 뒤 소매업·호텔 등에서 임금이 10%가량 늘었지만 일자리는 오히려 늘었다”며 “최저임금 도입으로 인건비 경쟁 대신 품질로 공정 경쟁해야 한다는 여론이 사용자들에게도 퍼지고 있다”고 했다. 결국 독일의 최저임금은 2015년 8.5유로에서 2017년 8.84유로로 올랐다. 그럼에도 경제는 탄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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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개인적 합리성과 사회적 비합리성 장면 하나. ‘개인의 자유로운 영리 추구는 나라의 부를 극대화한다.’ 영국의 애덤 스미스가 1776년에 낸 <국부론>의 기본 명제다. 봉건 잔재가 강했던 18세기의 사상으로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가격 경쟁, 즉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모든 걸 맡기면 봉건 귀족이나 군주국가, 종교 권력의 비합리적 힘을 제어할 수 있다는 원리. 그러나 생각지 못한 게 있었다. 독과점이 대표적이다. 19세기 후반, 영국 내 독점 대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했고, 더 넓은 시장과 원료를 찾아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자유 경쟁이 아니라 기득권 동맹이 정치경제 권력을 독차지했고, 해외에서는 식민지 선주민들을 마을공동체에서 내쫓거나 노예로 만들었다. 이 제국주의 패러다임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기득권 동맹 밖의 세상 사람들을 피와 눈물, 트라우마로 내몰았다. 안타깝게도 21세기조차 이 역사적 성찰을 도외시한 채 18세기 패러다임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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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년 전 이맘때, 20년 뒤 이맘때 “정부는 심각한 외환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1일 밤 국제통화기금(IMF)에 2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했다.” 20년 전, 이맘때였다. 캉드쉬 IMF 총재가 한국에 왔고, 1997년 12월3일 김영삼 정부와 IMF 간 협상이 타결됐다. ‘IMF체제’의 시작이었다. 당시 주류 학계나 언론들은, 1997년 7월 태국발 동남아 외환위기라는 외부 요인과 재벌 중심 경제, 방만한 차입경영과 관치금융, 부정부패, 대립적 노사관계 등 내부 요인이 결합, ‘IMF체제’가 왔다 했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급속 추진되었으나 노동계나 시민사회의 저항도 만만찮았다. 경제 및 사회의 개혁이라는 명분에 이견은 없었지만, 과연 어떤 방향과 내용으로 바꿀지에 대해선 시각차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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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과정의 불법성, 결과의 합법성, 그 이후 사례 1. 2015년이었다. 자산 규모 8조원대의 제일모직이 26조원대의 삼성물산을 3:1로 흡수한 뒤 다시 삼성물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람들이 ‘코미디 아닌 코미디’라 불렀던 바로 그 합병이다. 핵심은 (4조원의 비자금을 지녔던) 이건희 체제로부터 이재용으로의 지배구조 이동(경영권 승계)이었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제일모직(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전자 등 ‘순환출자’로 이어져 있었다. 그 뒤 2년도 못 된 2017년 2월 중순, 특검에 의해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수감되었다. 삼성 총수의 첫 구속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 독대 시 합병 관련 도움을 받기 위해 부정 청탁을 했고 그 대가로 대통령의 최측근 최순실 모녀에게 승마 지원을 했다고 봤다. 당시 국민연금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대주주로, ‘외압’ 탓에 불공정 조건으로 인한 수천억원 손실을 무릅쓰면서 합병에 동의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10월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재판은 위 합병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합병이 포괄적 승계 작업의 일환이었다 하더라도 경영상 합목적성이 있기에 경영권 승계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할 수 없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바, 지배구조의 부당한 승계 과정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정당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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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성찰하는 부모, 서로 살리는 교육 “나는 부모가 아니라 감시자였다. 아이를 살린 건, 인정, 존중, 지지, 칭찬이었다.” 이유남 교장선생님이 쓴 책 <엄마 반성문>의 일부이다. 그랬다. 하마터면 아이는 죽을 뻔했다. 학창 시절 이후 ‘모범’으로 살아온 엄마는 늘 성취지향적이었다. 엄마의 자녀 교육 지침은 3가지였다. 성적, 상장, 임원. 공부도 잘하고 상도 많이 받고 반장 등 리더가 되는 것이었다. 엄마가 교사이기에 자기 반에서 가장 잘하는 아이들이 모델이었다. 그걸 은연중에 자기 아이에게 강요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결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언젠가 아이 나름 자기 삶을 찾아가기 마련. 고3 아들이 자퇴 선언을 하고 뒤이어 딸도 자퇴하자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내 인생도 여기서 끝’이란 생각에 앞이 캄캄했다. 내키진 않았지만 아이들의 자퇴 선언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진짜 자살할 것 같았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에서는 10대 청소년이 1년에 300명 안팎이 자살한다. 그러니 엄마도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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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병든 시스템이 부른 ‘살충제 달걀’ 기차를 타고 가다 문득 달걀에 얽힌 추억을 떠올린다. 중학 시절 처음 서울행 기차를 탔는데, 내 가방엔 어머니가 챙겨 주신 삶은 달걀이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스무 평 남짓 했지만 헛간에 작은 닭장이 있었다. 닭은 열 마리 안쪽이었다. 닭 모이는 쌀겨나 청치였다. 가끔 아버지는 몸보신 하자며 키우던 닭을 잡기도 했다. 그런 닭이 낳은 달걀을 기차간에서 먹는 재미는 쏠쏠했다. 당시 기차 안에서 삶은 달걀 까먹는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이제는 모두들 달걀 대신 휴대폰을 즐긴다. 그런 달걀을 전문가들은 완전식품이라 했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비타민과 무기질 등 신체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뜻. 당연히 건강에 좋다. 적어도 그 당시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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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사람, 동물, 민주주의 “아소 장관은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희망했다’는 망언을 한 바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들은 언제까지 이런 자의 헛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까요? 여기서 자는 놈 자(者) 자입니다.” 손석희씨가 2005년 5월,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일본 총무성 장관 아소 다로의 망언에 대해 한 말이다. 그리고 12년이 훌쩍 지난 최근, 그는 JTBC ‘앵커 브리핑’에서 동일한 말을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자들의 망언을 듣고 있어야 하는가? 여기서 ‘자’는 ‘놈 자(者)’입니다.” 분노가 섞인 이 발언의 계기는 “국민들이 레밍(나그네 쥐) 같다”라고 한 충북도 K의원이다. 그는 7월 중순경 국지성호우가 청주 지역을 물바다로 만든 와중에 동료들과 ‘물의 도시’ 베네치아 등 유럽 출장을 떠났다. 시민들의 분노와 질타가 들끓자, 조기 귀국해야 하는 억울함에 국민을 레밍으로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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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민주주의는 밥’이란 명제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2017년 6월10일, 6월항쟁 30주년에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명언이다. 30여년 전의 나 역시 군부 독재 타도를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물론 공안 기관의 고문에 목숨을 잃은 박종철이나 폭력 경찰의 최루탄에 쓰러진 이한열을 생각할 때, 브레히트 시인이 고백한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평생 안고 살지만, 당시엔 군부 독재를 종식하고 정치민주주의만 이루면 죽음이 아닌 삶(밥)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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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 미국 워싱턴 D C에 있는 ‘전국민주주의연구소’는 “민주주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이란 구호를 내걸고 있다. 예를 들면, 무려 30년 동안 수하르토 독재를 겪은 인도네시아가 1998년 이래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는데, 이 연구소 시각에 따르면 무려 1만7000개 섬에서 40여 다른 언어를 쓰는 2억5000만명이 민주주의를 일구는 일은 결코 불가능은 아닐지라도 대단히 장구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같은 도시에 있는 ‘미국평화연구소’ 역시 “민주주의는 일련의 과정이자 긴 여정”이라 말한다. 2017년의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2016년 10월 말경부터 촛불민중들은 손잡고 광장으로 몰려나와 “나라를 바꾸자!”고 외쳤다. 촛불의 힘은 강했다. 지금 하라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 같은 국회 탄핵 소추, 그리고 헌재의 “피고인 대통령 박근혜 파면” 결정 역시 촛불 덕이었다. 2017년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라는 사건은 1차 촛불혁명의 완결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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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후보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 “사드 비용 10억달러(1조원 이상) 한국이 내라.”(미국) “이미 한·미 합의에서 한국은 땅만 주기로 했다.”(한국) “맥매스터 미 안보보좌관과의 통화에서 기존 합의를 재확인했다.”(한국) “사드 비용은 재협상하게 될 것.”(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와 관련된 논란 중 일부다. 핵심은 ‘비용’ 문제다. 전형적인 ‘안보 장사’다. 그런데 여기서 저들이 말하지 않는 게 있다. 사드 배치를 (한창 선거 국면인) 4월26일 새벽, 비밀 강행한 작태다. 절차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이 (한국민 동의) 절차를 무시한 일을 은근슬쩍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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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젠, 바이 코리아(Bye, Korea)다 한때 내 마음이 불편했던 ‘바이 코리아(Buy Korea)!’ 캠페인이 있었다. 1997년 말 이후 이른바 ‘IMF 외환위기’ 극복의 맥락에서 비교적 값싼 한국 주식을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많이 사라고 권하는 자본 운동이었다. 지금은 KB증권 아래로 통합된 현대증권이 1999년경 ‘바이 코리아 펀드’를 팔면서 유행한 운동이다. 역설적이게도,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때였다. 그 덕에 현대증권은 당시 10위권에서 금세 1위로 떠올랐다. 이 캠페인이 내게 불편했던 까닭은, ‘제2의 국치일’인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나라를 세계 자본에 팔자는 이완용식 모순 논리,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애국심 프레임 때문이었다. 애국심과 자본이 결합하면, 일견 자본은 위기를 쉽게 극복하지만, 그 뒷감당은 반드시 민초들이 해야 한다. 해고와 자살이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