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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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미션 임파서블’ 선거부정 지난 4·15 총선의 결과를 놓고 한 달 가까이 선거부정 시비가 이어지고 있다.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사전투표함 바꿔치기와 득표수 전산조작이다. 선거사무와 선거소송에 여러 번 관여한 내 경험을 바탕으로 사전투표함 바꿔치기 시나리오를 구상해 본다. 우선 사전투표지를 구한다. 사전투표지는 투표소에서 본인 확인 후 투표용지발급기로 즉석에서 인쇄되는 데다 일련번호가 새겨진 QR코드가 있어서 위조는 불가능하다. 도리 없이 투표용지발급기와 투표지 원고, 각 지역구 선관위의 청인과 전국 사전투표소의 투표관리관 사인을 비밀리에 확보했다가 투표일 전에 대량으로 출력해서 은밀하게 보관하고, 거사에 앞서 각 선거구에 보내야 한다. 이 정도 일엔 여러 사람이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손발을 맞춰야 하는데, 무슨 수로든 동조자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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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신앙이 사람을 해칠 때 196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의사가 일요일에 급한 수술을 하느라 환자의 수염을 면도했다가 형사범으로 기소되었다.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이유였다. 안식일에 일정 행위를 금하는 기독교의 계율이 17세기 식민지 시절부터 ‘블루 로(Blue Law)’라는 이름의 법으로 강제되어 위반하면 형사범으로 처벌되었는데, 1960년대까지도 그 법조항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블루 로는 안식일의 일하기, 여행, 요리, 귀금속 착용, 키스, 빗자루로 쓸기, 침대 정리 등을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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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너! 고소’와 ‘너! 기소’ “너! 고소.” 몇 년 전 어느 변호사가 사무소 인근에 붙인 포스터의 광고 문구다. 고소는 범죄의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고 고하는 행위다. 고소권 없는 사람이 처벌을 바라며 고하는 행위는 고발이다.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고소 건수는 연간 55만건쯤 된다. 일본의 경우 대략 1만건인 데 비하면, 절대수로 50배이고 인구비를 감안하면 100배를 상회한다. 공직자와 공조직도 고소 대열에 끼어 있다. 검찰총장이 신문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민간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정당 대표가 칼럼을 쓴 교수와 이것을 게재한 신문사를 고발한다. 고소는 일단 고소한 사람을 피해자로 만들고 고소당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든다. 이 구도에서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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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전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가 문제를 일으킨 데 이어, 현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이런저런 리스트가 있다고 시비가 일자, 공무원들 사이에 ‘일을 열심히 하면 직권남용죄, 무서워서 아무 일도 안 하면 직무유기죄’라는 탄식이 돌았다는데, 과장이다 싶으면서도 한편 걱정스럽긴 했다. 어디까지가 남용이고 어디서부터는 남용이 아닌가. 공무원이 권한을 행사하여 남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남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것이 직권남용죄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겉으로는 권한 내의 행위 같지만 실은 의도가 불순한 행위를 말한다. 권한 밖의 행위는 직권남용죄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세무공무원이 세무조사를 나가 몸수색을 하면 직권남용죄가 아니라 불법수색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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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검사님, 앉으세요” 유신 시절, 깐깐하다고 소문난 어느 재판장이 검사를 혼낸 이야기다. 공판에 참여한 검사가 무료했던지 시도 때도 없이 볼펜을 손에 쥐고 촉을 내밀었다 들였다 하면서 딸깍 딸깍 소리를 냈다. 재판장이 정리(현재의 칭호는 법정경위다)를 부르더니 검사를 가리키며 일렀다. “어이, 정리, 저기 저 볼펜 가지고 장난하는 사람 있잖아, 법정 밖으로 내보내게.” 그 검사, 얼굴이 벌게지더니 다시는 그 짓을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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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사법개혁 어디까지 왔나 소송제도 일부를 개선하자고 만든 위원회에 어느 법과대학 교수가 외부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간사의 브리핑이 끝나자 그 교수가 물었다. “그래서, 이 제도로 국민에게는 어떤 혜택이 돌아간다는 겁니까?”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발언이 좀 생뚱맞다 싶었고 솔직히 듣기 싫었다. 그 기억은 변호사로서 법정의 운영 실태를 보면서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개선이든 개혁이든 관청에서 하는 일은 그 신선함이 국민에게 피부로 느껴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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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일본의 망상과 불안 해체되기 전의 유고연방 헌법은 “유고가 적국에 항복하는 문서는 이 헌법에 의하여 무효다”라고 선언하였다. 나치 독일에 끈질기게 항전한 유고 국민들의 결기가 보인다. 적국에 항복한 후 이런 헌법 조항을 만든 나라도 있다. “(…)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1945년 패전 후 만들어진 일본 헌법 제9조다. 누가 읽어도 무력을 행사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하지만, 실상 이 나라는 이름만 자위대일 뿐 세계 5위의 전력을 가진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아예 자위대의 설치 근거를 명문화하려고 헌법 개정을 꾀하고 있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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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판사의 의견표명 어느 대기업이 근거 없는 투서로 ‘우지파동’이란 고초를 겪고 결국 무죄판결은 받았지만 경영상 타격으로 법원의 화의절차에 들어간 지 10년 만에 절차가 종결되었다. 절차의 특성상 종결에 어떤 결정이 따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담당판사가 경영주인 회장이 꼭 판사실로 와야 한다고 연락을 해 왔다. 그와 함께 출석해서 절차 종결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서류를 한 장 받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준엄한 목소리로 판사의 일장 훈시가 이어졌다. 경영에 만전을 기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며 어쩌고 하는 내용이었다. 백발의 회장이 마냥 조아리며 듣고서 판사실을 나오더니 법원 마당의 벤치에 주저앉았다. 내가 미안하다고 하자 그가 한 말은 “내가 죄인이지요”였다. 도대체 판사에게 무슨 권한이 있어 그런 훈계를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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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안중근의 전쟁과 평화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를 겨눈 브라우닝 M1900 권총에서 났던 총소리다. 이 총은 칠연발형이었으나 실제로 발사된 것은 여섯 발이었다. 세 발이 이토에 명중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수요(數謠)는 “육혈포로 칠 발을 쏜” 안중근을 기리며 그 총소리를 일곱 발로 듣는다. 제국주의는 무도하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적어도 조선에 관한 한 단순한 식민지배가 아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지적대로 그것은 독립국에 대한 강탈이고 침략이다. 더 나쁘다. 안중근은 이 침략에 대항하는 의병활동을 전쟁으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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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검찰개혁은 왜 어려운가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과거의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과제다. 그중 피부로 느껴질 만한 것은 로스쿨 제도의 도입 정도 아니었나 싶다. 그 외에는 매번 거의 같은 내용으로 개혁을 운위했으며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 개혁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나 정치적 중립성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그렇게도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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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내게 ‘보수냐 진보냐’ 묻는 이들에게 법원 근무 시절, 칠판에 “소신 없는 판사가 되자”라고 써 놓은 일이 있었다. 방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그걸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판사는 대쪽 같은 소신을 가져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소신 없는 판사가 되자니 웬 말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판사가 한번 소신이라는 똬리를 틀고 앉아 있으면 그것만큼 고약한 일이 없다. 소신이라는 이름 아래 사건을 선입관이나 편견으로 보게 될 우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하는 소송이나 납세자가 세무서를 상대로 하는 소송에서 어느 일방이 늘 잘못을 저지르거나 나쁘다는 식의 인식을 갖고 판사가 사건의 결론을 낸다면 끔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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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당앙의 길, 상앙의 길 권력관계란 누군가가 다른 누구를 우월적으로 지배하는 관계다. 권력은 곳곳에 있다. 정치판에서, 관청에서, 법정에서, 군대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사람들은 권력을 행사하고 권력에 지배당한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권력자가 되고 싶은가? 여기 아주 효과적인 길이 있다. 전국시대의 송나라 강왕은 형의 왕위를 찬탈한 자이고 포악하기로 이름이 났다. 그가 재상인 당앙에게 물었다. “과인이 살육한 자들이 많은데도 군신들이 갈수록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당앙이 대답한다. “왕께서 죄를 물은 것은 모두 좋지 않은 자들입니다. 좋지 않은 자들만 죄를 물으니, 좋은 자들은 이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왕께서 군신들이 모두 두려워하기를 바라신다면 좋은 자와 좋지 않은 자를 가리지 말고 닥치는 대로 죄를 물으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군신들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얼마 안 있어 강왕이 당앙을 죽였다. <여씨춘추> 중 ‘음사’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야기 끝에 “당앙이 대답한 것은 대답하지 않은 것만 못하였다”라고 하여 악한 자의 말로를 논하였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법치주의와 관련하여 가지는 함의다. 순자는 강왕이 당앙에 의하여 나쁘게 ‘물들여졌다’고 한 바 있다. 그렇게 실컷 나쁜 짓을 가르치긴 했으나 그래도 선생인데, 배운 자가 배운 걸 써먹는다고 가르친 자를 죽인 것이다. 그만하면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강왕을 두려워하게 되었을 것이다. 잘해도 죽고 잘못해도 죽는 세상, 살길은 왕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길밖에 없다. 법 따위는 소용없게 된 것이다. 오늘날 법학에서 말하는 법적 안정성이 무너진 상태에서, 송나라에 남은 것은 벌거벗은 권력의 횡포였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송나라는 강왕의 대에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