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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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이제야 뼈가 저리다니 잭 매키는 이름난 병원의 잘나가는 외과의사다. 행복한 가정과 고급저택을 가지고 있다. 유능하지만 환자의 고통에 냉담한 그가 어느 날 후두암에 걸렸다.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환자로 신분이 바뀌자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검사를 시행하는 의사는 불친절하고 일방통행이다. 병원은 방사선 치료 시간을 지키지 않고, 간호사에게 따져보지만 여의치 않다. 무신경, 무성의, 무대응에 분노하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병원 관계자는 없다. 환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병원에, 환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던 의사가 절망한다. 1991년에 나온 미국 영화 <더 닥터>의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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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사법연수원 동기 노무현, 그립다 내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75년 가을 사법연수원에서였다. 7기생 전원 58명이 교실 하나에 모여 앉아 2년을 보냈으니, 나도 그를 조금은 안다고 할 만하다. 동기생 중 유일한 고졸 학력이고, 늘 웃는 얼굴의 촌사람풍이었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거셌다. 맨 처음 기억나는 일은 연수원에서 소풍을 갔을 때였다. 연수생들이 나와서 각종 장사치 흉내를 내는데, 뱀장수, 속옷장수 다음에 그가 나와서 면도날장수 흉내를 냈다. “그럼 이 돈을 다 받느냐?”라며 물건값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사람들이 예상한 다음 대사는 “아니에요. 절반 뚝 잘라서 단돈 천 원 한 장!”이었다. 그런데 그가 한 말은 “네, 다 받습니다. 받고요”였다. 모두들 포복절도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자랑 사회를 봤다. ‘무너진 사랑탑’이라는 노래를 한 곡조 하더니만, 돌아가며 노래를 시키는데 그는 “심리미진의 위법이 없어야 한다”고 법률용어를 써 가며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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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까마귀의 항변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는 미국 연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1920년 프로야구연맹의 초대 총재로 취임했다. 프로야구계가 제시한 영입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종신직인 데다 총재 연봉이 판사 연봉의 다섯 배가 넘었다. 겸직으로 물의가 일자 법무부가 조사한 후 총재 일을 해도 판사로서의 직무 수행에 지장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미국변호사협회는 랜디스의 행위가 ‘온당치 못한 외관’을 보였다는 이유로 제재를 결의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실체가 어떻든 외관상 의심스러운 행위는 그 자체로 사법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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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 훌륭한 헌법재판관의 자질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현 정부의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에 대한 인사 정책이 파당적이라며 비판하는 견해와 헌재 구성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이라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앞으로 있을 청문회에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질 것이다. 아무려나 현 정부의 인사 패턴을 보면 이들이 재판관으로 임명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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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낙태죄 헌법재판에 바란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자신이 재임 중 저지른 최대의 정치적 실수가 얼 워런을 연방대법원의 대법원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고 말한 일이 있다. 워런은 골수 공화당원이고 보수주의자로서 캘리포니아주의 지사를 세 차례나 역임하였지만, 막상 대법원장이 되고 나서는 수많은 진보적 판결을 주도하였다.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도 비슷한 실수를 했다. 낙태권은 미국의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간 대립구도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다. 그런데 닉슨이 임명한 해리 블랙먼 대법관은 1973년에 여성의 낙태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법률이 위헌이라는 이정표적 판결을 내렸다. 임명권자의 입장에서는 ‘배신 때리기’이겠으나, 사법사를 읽을 때 이런 이야기는 흥미롭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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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법정의 훈계 사기죄로 재판을 받던 건축업자에게 판사가 판결을 선고했다. 집행유예가 붙어 풀려나는 것은 좋았는데, 판사가 준엄하게 피고인을 꾸짖었다. 돈도 없는 사람이 무슨 사업을 하겠다는 거냐, 앞으로는 절대로 건축 일을 하지 말아라, 이런 요지였다. 판사의 동정을 사려고 재판받는 날마다 법정에 목발을 짚고 나와 죽는 시늉을 하던 그 건축업자가 판결을 선고받고 법정 밖을 나오자마자 목발을 집어던지며 하는 말인즉, “나 참, 내가 돈이 있으면 뭣하러 건축 일을 해? 그냥 놀고 먹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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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웃기는 사람, 웃는 사람 어느 유수한 대학의 교수가 아내와 딸에게 자랑을 했다. 내가 우스운 이야기를 하면 그때마다 학생들이 포복절도를 한다고. 아빠에게 평소 유머감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딸이 이상하다 싶어 말했다. 아닐 거예요, 아빠가 교수라서 웃어 줄 것 같은데. 그 교수가 다음 날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그동안 내가 우스갯소리를 하면 별로 우습지도 않은데 웃어 준 것 아닌가. 학생들이 기겁을 하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요, 교수님이 하시는 농담은 정말 웃깁니다. 이건 정말이에요. 그 교수가 집에 돌아와 다시 딸에게 말했다. 아니야, 나 정말 웃긴데. 음… 그렇다, 아닌 게 아니라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