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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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외롭고 창백한 점 하나 “천지가 한 번 생겼다가 사라지는 데에는 12만9600년이 걸린다. 긴 시간이라 할 수 있지만 현실 너머의 이치를 터득한 사람은 이것도 순식간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 시간의 일부를 살아가는 사람이 장수한다고 해봐야 80~90년이니, 이는 순식간 중에서도 순식간이다. 그사이에 질병과 고통이 있다고 한들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기껏해야 얼마나 되겠는가? 이것이 내가 나의 병에 대해 너그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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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각하의 추억 “사륜각 아래 문서 더미 고요하고 종고루 안의 물시계 더디 가네. 홀로 앉은 황혼에 누가 내 벗 될까, 자미화만이 자미랑을 마주하는구나.”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중서성 관원으로 근무할 때 지은 시다. 사륜(絲綸)은 왕의 조서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왕명을 관장하던 중서성 건물을 사륜각이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이곳에 자미화를 많이 심었기에 자미성이라 불리기도 했다. 혼자 야근하며 자미화와 마음을 주고받는 시인의 고즈넉한 풍경이 담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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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탄식이 없는 자 <사기(史記)>에서, 한고조 유방으로 진시황의 뒤를 잇지 않고 굳이 그 사이에 ‘항우본기’를 넣은 것은 사마천의 독특한 역사 서술 방식 때문이다. 같은 시기를 다룬 반고의 <한서>에서 항우를 본기는커녕 세가도 아닌 열전에 포함한 것과 대비된다. 본기에 올렸다고 해서 항우를 높이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사마천이 ‘항우본기’ 서술에 그 어떤 편보다도 공력을 더 들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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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개의 죽음과 이의 죽음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사람부터 소, 돼지는 물론 곤충과 개미까지 살기를 바라고 죽기 싫어하는 마음은 다 같은 법이지. 어찌 큰 것만 죽음을 싫어하고 작은 것은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니 개의 죽음과 이의 죽음은 동일한 것이네.” 이규보가 남긴 <슬견설>의 한 대목이다. 요새 학생들에게는 ‘이’가 무엇인지부터 설명이 필요하긴 하지만, 교과서에 여러 차례 실려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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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사람을 평가하는 일 관중은 춘추시대에 제나라 환공을 첫 번째 패자(者)로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힘에 의한 패도가 아니라 덕에 의한 왕도를 이상적인 정치로 추구해온 유교와 성리학의 관점에서 소환된 관중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150여년 뒤인 공자의 시대에 이미, 관중은 자신이 모시던 공자 규를 환공이 죽였을 때 따라 죽지 않고 오히려 환공을 도왔다는 행적 때문에 인(仁)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지목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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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말의 품격 맹자는 말을 아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치우친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무언가에 가려 있는 것이고, 지나친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은 그 마음이 어딘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리에 맞지 않는 말에서 그 사람이 보편적인 상식을 외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빙빙 돌리는 말에서 논리가 궁색해졌음을 간파할 수 있다고 했다. 맹자는 바로 그런 말들이 결국 정치를 해치고 많은 이들의 삶을 망가뜨리게 된다는 점을 준열히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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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칼럼 ‘윤석열 대통령’과 전작권 환수론의 역설 작전통제권은 한 나라의 군사주권을 상징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용어 대신 ‘전시에 군대의 작전을 지휘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하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라는 용어를 흔히 쓴다. 이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작전통제권 환수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음에도, 공약 실천 과정에서 작전통제권 환수를 꺼리는 분위기에 밀려 궁여지책으로 작전통제권을 전시와 평시로 나누면서 나온 말이다. 무언가 환수했다는 명분을 찾기 위해 평시작전통제권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1994년 12월 한미연합사로부터 이를 되찾아왔다. 그러나 작전통제권의 요체가 전쟁 발발에 대비하는 것인 만큼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빛 좋은 개살구만도 못하다. 정작 전작권 환수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많은 이들이 자주 국가로서 군사주권의 온전한 행사를 위한 작전통제권의 환수를 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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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어지러운 군주와 어지러운 나라 모든 게 멈췄다. 민생도, 의료도, 외교도, 교육도, 기술경쟁력도, 어디 하나 막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동안 얼마나 애써서 싹틔워 보듬고 키워온 것들인데, 이렇게 동시에 총체적으로 주저앉혀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일부는 저성장 고령화로 접어들며 어느 정도 예견된 위기이고 책임을 특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난제들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하나하나 조심스레 풀어나가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독선과 아집에 가득 찬 통치자가 마치 그 모든 일의 선악과 시비를 쾌도난마로 가를 수 있기라도 한 듯이 계엄이라는 황당무계한 카드를 내던진 순간, 그나마 해결 가능성조차 모조리 막혀 버리고 대한민국은 동맥경화의 마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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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아름다운 풍경 많은 현인들이 세상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를 말해왔다. 적절한 근거와 치밀한 논리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때로 시적인 몇 마디 말에서 더 깊고 길게 마음을 울리는 깨달음을 만나기도 한다. “솔개는 하늘에 닿도록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마음껏 뛰노네.” <시경>을 인용한 이 <중용> 대목도 그렇다. 세상의 이치는 누구나 볼 수 있게 어디에나 드러나 있지만 그것을 알아볼 눈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각득기소(各得其所)’, 각자 제 살 곳을 얻어 즐거움을 누리는 솔개와 물고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지금 내 앞에 놓인 사소한 일상에서 그 무엇보다 크고 심원한 사람의 도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시적 언어만이 담을 수 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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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레거시의 추억, 혹은 쓸모 사회의 흐름에 따라 언어가 변화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새 어휘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기존 어휘의 뜻이 분화 혹은 확대되기도 한다. 어느 날 급격하게 추락하는 운명을 맞는 어휘도 있다. 우리말은 아니지만 요사이 부쩍 많이 쓰이는 ‘레거시(legacy)’가 그런 예다. 원래 레거시는 법적으로 인정받은 유산을 뜻한다. 고인은 가고 없지만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듯이 도움을 주는 것이 유산이다. 점차 과거의 일이 현재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상징하는 말로 의미 영역을 넓혀 갔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레거시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를 규정하는 요소로 사용됐다. 어제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오늘이 없듯이 내일 역시 오늘의 집적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선한 가치를 지닌 레거시야말로 우리가 후손에게 남겨줄 수 있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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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뉴스 안 봐도 되는 세상 설이 지나고 입춘도 지났으니 영락없는 새해, 새봄이다. 요즘은 누구나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로 설 인사를 건네고는 하지만, 가족과 친지가 모인 자리에서 손아랫사람이 세배하면 어르신이 덕담을 건네는 오랜 풍속이 있다. “새해에는 승진했다지.” “새해 돈을 엄청 많이 벌었다며?” 축하하는 과거형의 말에 더욱 강한 소원을 담아 복을 빌어주고는 했다. 입춘에 문이나 기둥에 써 붙이는 춘첩 역시 복을 비는 덕담이 주를 이룬다. 잘 알려진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외에도 부귀와 장수, 풍년을 기원하는 다양한 글귀들이 내걸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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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참을 수 없는 언어의 구차함 구차하다는 말에 사용되는 ‘구(苟)’는 풀이름이었는데 음을 빌려 ‘진실로’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글자의 더 이른 자형인 갑골문을 보면 머리 장식을 한 사람이 꿇어앉은 모양이다. 양을 토템으로 섬기던 종족이 상나라에 ‘진정으로’ 굴복하는 것을 뜻하는 데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구차해진 모습을 담은 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