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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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슬픔과 분노의 연하장 지독한 분노와 슬픔 가운데 새해 인사를 띄웁니다. 최고 권력자가 저지른 난동이 국민의 일상을 앗아가고 나라 살림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것만으로도 참기 어려운데, 다툴 여지조차 없어 보이는 사태를 지지부진한 정쟁으로 끌고 가는 추악한 모습들을 연일 목도하면서, 분노의 게이지는 이미 한계를 넘은 지 오래입니다. 그 위에 벌어진 비극적인 참사 소식에 온몸과 마음이 슬픔으로 떨려 옵니다. 집단 우울증에라도 걸릴 것 같은, 가혹한 겨울입니다. 견디기 힘든 시절, 묵은 시를 꺼내 읽습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라는 말을 건네며 시작하는,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 이 시가 나오고 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사이 이 시는 교과서에도 실리며 널리 읽혀 왔습니다. 이기적인 삶을 반성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자는 메시지로 보자면 구세군 종소리와 함께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연말연시에 어울리는 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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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탄핵에서 협상의 정치로 조선은 탄핵의 나라였다. 조선왕조실록에 탄핵(彈劾)이 463번 언급되고, 유의어인 대론(臺論), 거핵(擧劾), 탄론(彈論), 대탄(臺彈) 등을 합치면 1852건에 이른다.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신진 관료들을 대간(臺諫)으로 임명하고 면책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거침없는 직언의 길을 보장해 주었다. 이마저도 당쟁의 수단으로 전락한 면이 있지만, 적어도 왕이나 권세가의 폭주를 막는 제도적 기능은 이어졌다. 탄(彈)은 무기로 이루어진 글자다. 왼쪽은 활, 오른쪽은 돌을 던져서 짐승을 잡는 도구의 모양이다. 핵(劾)은 돼지의 각을 뜨듯 힘껏 캐묻는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일찍부터 죄지은 자를 처벌한다는 뜻으로 사용해 왔다. 이 두 글자가 결합하여 특정한 대상을 정조준하여 처벌한다는 의미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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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묵은 술, 오랜 지혜 중국의 명주 가운데 하나로 ‘루저우라오쟈오(瀘州老)’가 있다. 루저우는 예로부터 술로 유명해서 주성(酒城)이라고 불려온 고장이고, 라오쟈오는 이곳에 있는 오래된 교(), 즉 술을 발효시켜 저장하는 ‘지하 광’을 말한다. 1573년에 만들었다는 궈쟈오(國)가 남아 있어 더욱 유명하다. 수백 년 묵은 발효로만 낼 수 있는 깊은 향을 지녀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아왔다. 저장 기술은 고대에도 필수적이어서, 땅굴처럼 판 거대한 지하 광이 일찍부터 만들어졌다. <화식열전>의 선곡 임씨는 지하 광으로 큰돈을 번 인물이다. 진시황이 허무하게 죽자마자 전국 각지에서 호걸들이 들고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들의 집중 타깃이 된 곳이 망해버린 진나라의 창고였다. 다들 값어치 나가는 금은보화를 차지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임씨는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무거운 곡식만 묵묵히 지하 광으로 옮겨 쟁여두었다. 그런데 항우와 유방의 대치가 길어지면서 인근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자 곡식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오르는 바람에, 호걸들이 가져갔던 금은보화는 결국 임씨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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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성명의 의미 기원전 710년의 이야기다. 노나라 군주 환공이 송나라 대부 화보독이 보내온 대정(大鼎·진귀한 솥)을 받았다. 사욕으로 난을 일으켜 자기 군주를 갈아엎고 주변 국가를 무마하려는 뇌물이었다. 이를 본 노나라 대부 장손달이 환공에게 간언했다. “군주란 도덕을 밝히고 사악함을 막아서 백관을 감독하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하더라도 백관이 잘못을 범할 우려가 있으므로, 성명으로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어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임금 자신이 덕을 버리고 옳지 못한 자를 비호해서야 장차 백관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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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농단에 오른다는 말 “누군들 부귀를 원치 않겠습니까? 농단에 올라 독점하려는 게 문제지요.” 맹자는 편안한 거처와 풍족한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왕에게 이런 대답을 전하고 제나라를 떠났다. 그에 따르면 본래 시장은 필요에 따른 물물교환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곳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농단(龍/壟斷)’ 즉 시야가 확보되는 언덕에 올라 시장의 흐름을 두루 관찰함으로써 모든 이익을 독차지했다. 그러자 모두 그 사람을 천박하게 여겼고, 이것이 시장에 세금을 징수하는 사유가 되었다. 남보다 뛰어난 정보력을 기반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되는 오늘, 맹자의 시장 인식은 소박하다 못해 어리석어 보인다. 다만 맹자가 이런 비유를 들어서 왕의 제안을 거부한 뜻은 그것대로 음미할 만하다. 자신이 제안한 정책을 받아들여 실천할 마음도 없으면서 작은 은혜를 베풀며 안정과 존중을 약속하는 왕을 향해서, 내가 여기에 넘어가 만족한다면 이익에 급급해 기민하게 농단에 오르는 저 천박한 사람과 뭐가 다르겠냐는 말로 거부의 뜻을 당당히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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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문해력 붕괴시대 한글날마다 ‘요즘 아이들’의 우리말 실력이 문제라는 성토가 이어진다. ‘혼숙’, ‘두발’, ‘시발점’, ‘우천시’…. 자극적인 사례들을 거론하며 문해력 저하를 질타하는 글들이 올해도 지면을 채웠다. 기초학력 미달을 우려하고 독서 교육 강화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한자 교육이 부실해서 그렇다는 지적도 다시 제기되었다. 우리말 어휘의 상당 부분이 한자어니 우리말의 올바른 구사를 위한 한자 교육은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어휘력은 문해력의 일부일 뿐이다. 더구나 우리는 모르는 어휘를 간편하게 찾아볼 수 있는 방대한 사전을 늘 손에 쥐고 다니고 있지 않은가. 문해력의 핵심은 어휘력을 기본으로 글 전체를 바르게 이해하고 온당하게 추론하는 역량이고, 글 이면의 맥락과 의도를 깊이 파악하는 소양이며, 글의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이다. 나아가 나와 생각이 다르고 사용하는 어휘마저 다른 사람이 있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이해의 영역을 넓혀 가고자 애쓰는 겸허하고 열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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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정인지를 기억하며 “늙은이에게 술은 아기의 젖과 같다오.” 노년에 밥은 잘 먹지 못하고 술만 마시는 까닭을 묻는 이에게 정인지가 답한 말이다. 막걸리는 빛깔이 젖과 비슷할 뿐 아니라 이가 빠져 씹기 어려운 노인도 술술 넘길 수 있으니 아직 이가 나지 않은 아기가 마시는 젖이나 다름없다며 너스레를 떤 것이다. 정인지는 병조정랑을 지내던 20대에도 금주령을 어겨 처벌받은 적이 있고, 노년에 조정 연회에서 만취하여 세조에게 말실수를 크게 하는 등 여러 번 물의를 빚을 정도로 애주가였다. 조선의 천재로 여럿이 꼽히지만, 전시와 중시에서 연거푸 장원에 오른 정인지도 그중 한 사람이다. 다섯 살에 글을 읽었고 눈만 스치면 다 암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문장에 능했을 뿐 아니라 수학과 음악에도 탁월했고, 행정력 역시 매우 민첩하여 태종부터 성종까지 7대에 걸쳐 벼슬하며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세종실록>을 찬술하며 이례적으로 ‘지리지’를 따로 만들어 붙임으로써 오늘날 독도 관련 최초의 기록물이 남아있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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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완연한 가을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가 순식간에 물러나고 어느덧 ‘완연한’ 가을이다. 원래 ‘완연(宛然)’은 지금 실재하지 않는 대상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이 떠오를 때 쓰는 말이었다. 사라져버린 옛날 모습 그대로라든가, 존경하는 어떤 이의 풍모와 매우 비슷하다거나, 꿈에 그리던 신선세계가 펼쳐진 듯할 때, 그런 실감 나는 상상을 두고 완연하다고 표현했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주 뚜렷하다’는 사전적 풀이도 그런 전통을 반영한다. 하지만 요즘은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 증세나 분위기가 뚜렷한 것을 의미하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되는 듯하다. 그렇다. ‘완연한 가을’은 상상이 아니라 우리의 눈과 피부에 실제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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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보물상자를 내주지 않으려면 조선시대에도 고양이 집사가 있었을까? 궁금증을 간편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다. ‘한국고전종합DB’ 사이트에서 한글로 ‘고양이’를 검색하면 1000여건의 용례가 나온다. 쥐 잡는 재주, 호랑이와의 대조 등이 주된 내용이지만, 고양이를 손 위에 올려놓고 손자처럼 털을 빗어주는 노승의 모습도 보이고, 기르던 흰 고양이가 죽자 슬픔에 겨워 지은 제문도 눈에 띈다. 평생 한문을 배우고 읽어도 찾기 힘든 자료들이 클릭 몇번으로 쏟아진다. 궁금증뿐 아니라 학술 목적, 글쓰기나 문화콘텐츠 창작을 위해서도 고전 데이터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활용은 한문자료들을 누군가가 한 땀 한 땀 번역해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2007년 한국고전번역원이 설립된 이래 총 3331책 분량의 번역 성과가 제출되었고 한문 번역에 종사하고자 하는 후속 세대가 적게나마 끊이지 않는다. 기록유산을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창작자 양성 프로그램도 한국국학진흥원 주관으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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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광복의 의미 광복절은 1949년 5월 국무회의에서 8월15일을 ‘독립기념일’로 의결했고, 국회의 의결 과정을 거쳐 같은 해 10월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 ‘광복절’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는 명칭인 독립기념일을 굳이 광복절로 수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처럼 독립을 선언한 날이라면 1919년 3월1일이 그에 해당할 수 있고, 타자로부터의 독립 혹은 해방을 강조하기보다 당연히 우리 것이어야 하는 나라를 되찾았다는 의미인 광복이 더 적절하다고 합의했을 수도 있다. 광복(光復)에는 무단에 의한 강탈과 점유가 끝나고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왔다는 벅찬 감동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굴곡 속에도 광복절만큼은 이념과 정파를 넘어서 한뜻으로 기릴 수 있었다. 독립운동 선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일본의 역사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 옳지 않다고 여길 국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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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설립하여 유지해 나아가는 모임’인 협회(協會)는 다양하게 쓰이는 명칭이다. 특수법인인 대한변호사협회도 있고, 상인협회처럼 공동의 영리를 위해 자치적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다만 조직의 생리상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 중 일부가 임원이 되어 이끌어가다 보면 본래의 목적이 변질될 가능성도 늘 존재한다. ‘낭만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의 금메달 소식에 마냥 기뻐하다가, 인터뷰 내용과 사회관계망에 본인이 올린 글을 보며 죽비로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부터 “귀국 후 회견을 열어 제기할 일이지 그 좋은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할 것까지야 있느냐”며 ‘품위’ 운운하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었으며, 그 말을 위해서 견디고 올라선 자리이기도 했다. 2018년 국가대표에 선발된 때부터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원동력이 자신의 ‘분노’였다며 “제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 제 꿈은 어떻게 보면 ‘목소리’였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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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아름다운 사람 청나라 관리 박명은 현판 글씨를 잘 쓰기로 소문이 났다. 그가 다른 글씨는 그만 못한데 유독 현판 글씨만 잘 쓰게 된 사연이 있다. 해마다 북경에 들어가는 조선 사신과 역관들이 단골 상점 주인의 사위였던 그에게 당호(堂號)를 담은 현판을 부탁하곤 했는데 늘 그게 그거여서 같은 글씨를 하도 여러 번 쓰다 보니 잘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이 이야기를 전하며, 호는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것인데 사물(四勿)이나 삼성(三省), 눌와(訥窩), 묵재(墨齋) 따위를 너도나도 쓰는 현실을 풍자했다. 박지원이 예로 든 호는 대부분 <논어>에서 따온 것이다. 그 가운데 눌와는 “군자는 말은 굼뜨고(訥) 행동은 재빠르게(敏) 하고자 한다”라는 말에서 가져왔다. 말 잘하는 것을 경계하고 차라리 어눌하게 살겠노라고 표방한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말은 상황마다 적실하고 균형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위 구절은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겠다는 뜻을 강조하는 문맥이니 공자가 지향한 것은 눌(訥)이라기보다 민(敏)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