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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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정인지를 기억하며 “늙은이에게 술은 아기의 젖과 같다오.” 노년에 밥은 잘 먹지 못하고 술만 마시는 까닭을 묻는 이에게 정인지가 답한 말이다. 막걸리는 빛깔이 젖과 비슷할 뿐 아니라 이가 빠져 씹기 어려운 노인도 술술 넘길 수 있으니 아직 이가 나지 않은 아기가 마시는 젖이나 다름없다며 너스레를 떤 것이다. 정인지는 병조정랑을 지내던 20대에도 금주령을 어겨 처벌받은 적이 있고, 노년에 조정 연회에서 만취하여 세조에게 말실수를 크게 하는 등 여러 번 물의를 빚을 정도로 애주가였다. 조선의 천재로 여럿이 꼽히지만, 전시와 중시에서 연거푸 장원에 오른 정인지도 그중 한 사람이다. 다섯 살에 글을 읽었고 눈만 스치면 다 암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문장에 능했을 뿐 아니라 수학과 음악에도 탁월했고, 행정력 역시 매우 민첩하여 태종부터 성종까지 7대에 걸쳐 벼슬하며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세종실록>을 찬술하며 이례적으로 ‘지리지’를 따로 만들어 붙임으로써 오늘날 독도 관련 최초의 기록물이 남아있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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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완연한 가을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가 순식간에 물러나고 어느덧 ‘완연한’ 가을이다. 원래 ‘완연(宛然)’은 지금 실재하지 않는 대상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이 떠오를 때 쓰는 말이었다. 사라져버린 옛날 모습 그대로라든가, 존경하는 어떤 이의 풍모와 매우 비슷하다거나, 꿈에 그리던 신선세계가 펼쳐진 듯할 때, 그런 실감 나는 상상을 두고 완연하다고 표현했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주 뚜렷하다’는 사전적 풀이도 그런 전통을 반영한다. 하지만 요즘은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 증세나 분위기가 뚜렷한 것을 의미하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되는 듯하다. 그렇다. ‘완연한 가을’은 상상이 아니라 우리의 눈과 피부에 실제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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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보물상자를 내주지 않으려면 조선시대에도 고양이 집사가 있었을까? 궁금증을 간편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다. ‘한국고전종합DB’ 사이트에서 한글로 ‘고양이’를 검색하면 1000여건의 용례가 나온다. 쥐 잡는 재주, 호랑이와의 대조 등이 주된 내용이지만, 고양이를 손 위에 올려놓고 손자처럼 털을 빗어주는 노승의 모습도 보이고, 기르던 흰 고양이가 죽자 슬픔에 겨워 지은 제문도 눈에 띈다. 평생 한문을 배우고 읽어도 찾기 힘든 자료들이 클릭 몇번으로 쏟아진다. 궁금증뿐 아니라 학술 목적, 글쓰기나 문화콘텐츠 창작을 위해서도 고전 데이터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활용은 한문자료들을 누군가가 한 땀 한 땀 번역해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2007년 한국고전번역원이 설립된 이래 총 3331책 분량의 번역 성과가 제출되었고 한문 번역에 종사하고자 하는 후속 세대가 적게나마 끊이지 않는다. 기록유산을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창작자 양성 프로그램도 한국국학진흥원 주관으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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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광복의 의미 광복절은 1949년 5월 국무회의에서 8월15일을 ‘독립기념일’로 의결했고, 국회의 의결 과정을 거쳐 같은 해 10월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 ‘광복절’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는 명칭인 독립기념일을 굳이 광복절로 수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처럼 독립을 선언한 날이라면 1919년 3월1일이 그에 해당할 수 있고, 타자로부터의 독립 혹은 해방을 강조하기보다 당연히 우리 것이어야 하는 나라를 되찾았다는 의미인 광복이 더 적절하다고 합의했을 수도 있다. 광복(光復)에는 무단에 의한 강탈과 점유가 끝나고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왔다는 벅찬 감동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굴곡 속에도 광복절만큼은 이념과 정파를 넘어서 한뜻으로 기릴 수 있었다. 독립운동 선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일본의 역사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 옳지 않다고 여길 국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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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설립하여 유지해 나아가는 모임’인 협회(協會)는 다양하게 쓰이는 명칭이다. 특수법인인 대한변호사협회도 있고, 상인협회처럼 공동의 영리를 위해 자치적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다만 조직의 생리상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 중 일부가 임원이 되어 이끌어가다 보면 본래의 목적이 변질될 가능성도 늘 존재한다. ‘낭만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의 금메달 소식에 마냥 기뻐하다가, 인터뷰 내용과 사회관계망에 본인이 올린 글을 보며 죽비로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부터 “귀국 후 회견을 열어 제기할 일이지 그 좋은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할 것까지야 있느냐”며 ‘품위’ 운운하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었으며, 그 말을 위해서 견디고 올라선 자리이기도 했다. 2018년 국가대표에 선발된 때부터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원동력이 자신의 ‘분노’였다며 “제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 제 꿈은 어떻게 보면 ‘목소리’였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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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아름다운 사람 청나라 관리 박명은 현판 글씨를 잘 쓰기로 소문이 났다. 그가 다른 글씨는 그만 못한데 유독 현판 글씨만 잘 쓰게 된 사연이 있다. 해마다 북경에 들어가는 조선 사신과 역관들이 단골 상점 주인의 사위였던 그에게 당호(堂號)를 담은 현판을 부탁하곤 했는데 늘 그게 그거여서 같은 글씨를 하도 여러 번 쓰다 보니 잘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이 이야기를 전하며, 호는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것인데 사물(四勿)이나 삼성(三省), 눌와(訥窩), 묵재(墨齋) 따위를 너도나도 쓰는 현실을 풍자했다. 박지원이 예로 든 호는 대부분 <논어>에서 따온 것이다. 그 가운데 눌와는 “군자는 말은 굼뜨고(訥) 행동은 재빠르게(敏) 하고자 한다”라는 말에서 가져왔다. 말 잘하는 것을 경계하고 차라리 어눌하게 살겠노라고 표방한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말은 상황마다 적실하고 균형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위 구절은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겠다는 뜻을 강조하는 문맥이니 공자가 지향한 것은 눌(訥)이라기보다 민(敏)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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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역정’이라는 말 영조가 취약한 출신을 딛고 왕위에 오른 지 4년째 되던 어느 날, 송인명은 경연에서 “끝을 잘 맺으려면 시작을 잘해야 한다”라는 <서경> 구절을 풀이하며 당나라 문종의 사례를 거론했다. 문종은 환관의 전횡을 바로잡으려 애썼지만 집권 초기에 일어난 변란으로 기세가 꺾여서 요절하고 말았다. 영조가 뜻대로 되는 일이 없고 마음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해서 혹 문종처럼 주눅 들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건넨 권면이다. 영조는 무릎을 치며 말한다. “나의 속마음 그대로다. 한밤중에 이런 생각이 들면 너무나 못마땅해서 세속의 말로 역정이 나곤 한다.” 당론을 없애고자 하는 자신의 진심을 신하들이 몰라주고 따르지 않는 상황을 개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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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한국어 교육과 한자 교육 은은한 장미 향기처럼 소박하면서 매력적인 도시, 불가리아 소피아에 와 있다. 30년 역사의 소피아대학 한국학과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는 귀한 기회를 얻어서, 삼만리 길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어를 배워 K팝을 부르는 것이 관심사인 학생들에게 고전문학을 진지하게 소개하는 일이 가능할지 걱정이었는데, 끝까지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는 모습이 참 고맙고 놀라웠다. 시대와 언어를 넘어 공감을 주는 문학의 힘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소피아대학과 세종학당의 교원들이 참여한 간담회 자리에서 지원이 더 필요한 부분을 묻자, 현지인 교원이 꺼내는 첫마디가 한자 교육에 대한 수요였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어휘력이 중요해지는데, 한자를 모르면 무작정 암기할 수밖에 없어 학생들이 힘들어한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교원들도 한국어의 정확한 구사를 위한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입을 모았다. 삼만리 너머 불가리아에서 예기치 않게 한자 교육 이야기를 들으며, 출국 전 읽은 한 학생의 답안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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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이해되지 않는 것들과 살아가기 생전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가상세계에 고인을 복원해서 영상통화로 교감할 수 있게 해 주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다룬 영화 <원더랜드>를 봤다. 인공지능 기술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기발하다고까지 할 만한 발상은 아니지만, 잔잔하고 고달픈 일상과 웅장하고 세련된 환상을 넘나들며 사람을 안다는 것의 의미, 혹은 그리움을 아련히 떠올리게 했다. 다른 분들은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궁금해서 포털사이트의 일반인 영화평에 들어갔다가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많은 지지를 받은 평일수록 원색적이고 단선적인 비난 일색이었다. 물론 누구나 쓸 수 있는 관람평이니 어떤 말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각 인물의 서사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고 편집의 흐름이 다소 매끄럽지 못하다는 평가에는 동의가 되는 면도 있다. 하지만 어떤 평들은, 돈을 지불했으니 자신의 취향에 맞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화가 난다는 비난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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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자객의 추억 <자객열전>은 5명의 자객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전저와 섭정은 자신을 알아준 이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장렬하게 죽는다. 예양과 형가의 경우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암살 시도와 죽음에 이르는 맥락은 같다. 그런데 첫 인물 조말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조말은 춘추시대 노나라의 장군이었다. 제나라와의 전쟁에서 세 번이나 패했지만 노나라 군주 장공은 그를 끝까지 신임했다. 그 신임에 보답하려 조말은 제환공과 노장공이 협정을 맺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환공에게 비수를 들이대 땅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상황 종료 후 분노한 환공은 약속을 깨려 했으나 소탐대실을 경계하는 관중의 조언으로 약속을 지킨다. 위협으로 목적을 달성하긴 했지만, 조말을 자객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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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착한 사람이 지닌 힘 ‘착하면 손해 본다’는 게 통념이다. ‘착하다’는 말이 자기주장 없이 남의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한다는 뜻으로 흔히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면의 욕구를 무시한 채 부모의 기대에만 부합하려고 애쓰다 보면 성인이 되어 병리적인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가 더해져서, ‘착함’은 더 이상 추구할 덕목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어휘사 연구에 의하면, ‘질서정연한 모양이나 동작’을 가리키는 ‘착’이라는 만주어가 17세기 후반 우리말에 유입되어 ‘분명하고 바람직한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는 형태소로 쓰이기 시작했다. ‘착하다’는 18세기 중엽 <주해 천자문> 등에서 ‘선(善)’의 풀이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善’이라는 한자가 ‘말다툼의 옳고 그름을 판정해 주는 양’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처럼 ‘착하다’의 본디 의미 역시 ‘옳다, 훌륭하다’ 등이었다. 현대의 국어사전에 ‘착하다’의 뜻에 ‘바르다’가 들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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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외로움을 즐길 수 있으려면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가 11년을 넘겼다. 독신으로 사는 이들이 많은 세태를 잘 반영하는 데다 유명인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해서 시청률이 매우 높다. 서울의 1인 가구 비율이 40%에 육박한다고 하니, 새로운 삶의 패턴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식사 때면 왁자지껄 몰려 다니는 풍경이 여전한 대학가에도, ‘혼밥 환영’을 써 붙인 식당이 늘어간다. 혼자 식당에 가는 게 어색해서 같이 먹을 사람을 찾곤 하던 필자 역시 혼밥 횟수가 늘어났다. 가끔은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혼밥이 가능해진 이유 중 하나는, 혼자 있음을 잊게 만드는 스마트폰이다. ‘고독사’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릴 만큼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감은 현대인에게 치명적이다. 그런데 스마트폰 덕분에 혼자 있으면서 혼자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더욱 치명적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 속에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고립되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속 인터넷 세계에도 사람이 있고 소통이 넘친다. 하지만 좁은 취향으로 거르고 가린 이들과의, 쉽게 휘발되고 언제든 끊을 수 있는 관계가 대부분이다. 그 와중에 정작 곁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