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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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거리두기 기본소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AI 시대 문명사적 전환기에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사회학적 상상력…기본소득 구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다만, 새 사회에 맞는 새 제도로서 기본소득이 아닌기존 복지제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접근 중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기본소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AI 대전환은 우리의 삶과 사회뿐만 아니라 기존의 모든 제도를 바꿔 놓는다. 그 변화의 성격과 규모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울수록 이에 대비해야 할 정치는 언제나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은 결국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심해질 ‘양극화’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연스럽게 ‘기본소득’ 이념을 소환한다. 당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공지능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라며 “기업의 초과이익 일부를 국민에게 지급하는 ‘국민배당금’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어떤 정치인은 반도체 산업 호황은 농어민들의 시장 개방이라는 희생과 인내가 축적된 결과라며 “이익 일부를 농어촌에 환원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선택적 모병제, 왜 정의의 문제인가 선택적 모병제의 치명적인 함정은모병과 징병을 가르는 기준이 경제적 형편이란 점이다병역은 자유와 안전이란 공공재를어떤 원칙에 따라 유지하는가를 드러내는 정치적 정의의 시험대다이런 문제들을 간과하고 병역을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면,공동체의 안보는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택적 모병제’를 하겠다고 한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은 해병대 연평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선택적 모병제란 “충분한 보수를 지급받는 직업군인을 선택하든지 혹은 그게 싫으면 단기 징병에 응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합한 이 새로운 제도는 언뜻 ‘선택’을 강조하여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국민에게 상당히 많은 자유를 허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적게 받고 짧게 복무하는 징병과 많이 받고 오래 복무하는 모병 사이의 선택은 병역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한국의 보수는 왜 몰락하는가 견제와 균형의 한 축을 담당할 보수를 재건하는 길은 단순하다보수는 진보와 싸우는 대신 ‘윤어게인’의 극우와 자신을 구분해야 한다지금 한국 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극우가 아니라 더 성숙한 보수주의다 한국의 보수가 몰락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보수당 국민의힘이 몰락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국적으로 압승하였다. 당 지도부와 거리를 둔 오세훈 시장의 서울 사수를 제외하면, 국민의힘은 전통 텃밭인 대구·경북과 경남만 지켜냈다. 지방선거 결과를 지도로 보면 보수당이 마치 지역 정당처럼 보이는 게 분명한데도 당대표는 어처구니없이 희망의 불씨를 지켜냈다고 자위한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인식은 국민의힘에 닥친 위기가 일시적이기보다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 만성적 질병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보수는 외부적 충격으로 급격하게 추락한 것이 아니라 내부적 요인에 의해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노동 시대, 그 종말의 시작 노동 시대의 종말은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다.분배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AI 시대의 사회적 문제는 노동 시대 패러다임으론 해결할 수 없다.삼전 파업이 ‘노동 시대, 그 종말의 시작’인 이유다.그것은 노동의 사회적 약자성, 노조의 도덕적 정당성,보상과 분배 원리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희생자 기억이 도덕적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이스라엘이 과거의 상처를 이유로 타국 공격에 침묵해서도 안 되지만,현재의 불의를 고발하려 과거 기억을 오용해서도 안 된다과거를 기억하는 게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보편적 문제라면,현재 일어나는 일과 불의에 집중해야 한다현재의 전시 살해를 위안부와 유대인 학살과 연결한 순간,우린 스스로 희생자 의식에 갇힌 것인지도 모른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AI, 핵무기 이후 가장 정교한 ‘죽음의 기계’가 되다 인공지능 시대의 위험은 핵무기보다 더 미묘하다그것은 인간의 결정을 대체하고, 정치적 책임을 분산시키고전쟁을 일상화할 수 있다인공지능은 새로운 권력이 될 것이다그런데도 그 효율성에 눈이 멀어AI의 실존적 위험을 간과한다 전쟁이 사람들을 다시 한번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침략으로 시작해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둔감해진 시점에 새로운 전쟁이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2026년 2월28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장대한 분노’라는 작전으로 이란을 공습해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제거했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AI 시대 러다이트 운동은 가능한가 AI에 의한 실업의 대재앙이란 공포를 확산시켜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려는 태도로는 AI 시대의 토네이도를막지 못한다. AI 자동화는 천천히, 분야별로, 미세하게, 그리고지속적으로 침투한다. 그래서 러다이트 운동은 사실 불가능하다.AI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기보다 무조건 반대하는그곳이 토네이도의 취약지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
이진우의 거리두기 ‘힘의 정치’와 민주주의의 역설 적도 포용할 수 있는 정치적 매력은 언제나 ‘힘’보다는 ‘책임’에 무게를 둔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공격서 교훈을 얻는다면, 그건 한국 정치의 현실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힘의 정치’는 책임보다는 힘을 선호함으로써 민주적 가치와 제도를 파괴한다. “깨어나 보니 다른 세계였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의미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이 말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우리의 정치 현실을 잘 말해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를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비교적 오랫동안 지속된 ‘평화의 시기’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떤 갈등도 법과 협약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과거의 죄가 현재를 덮칠 때 과거의 죄가 아무 탈 없이 편안하게 살아온 어떤 사람의 현재를 덮칠 때, 우리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과거의 죄를 용서하고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부여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시는 그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가? 지난 몇년 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직자·유명인·지도자들이 청소년 시절의 폭력·범죄 전력으로 비난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건이 잇따랐다. 법적 처벌을 이미 마쳤고 이후 수십년 동안 사회적으로 기여한 인물들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의 잘못과 허물을 어디까지 현재의 책임으로 돌릴 것인가? 이 오래된 질문이 다시 우리에게 던져졌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혐오 표현’과 민주적 관용 자신에게 불쾌하고 불편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입법 만능주의는 오히려 법을 통해 복원하려 하던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논란이 된 반중 집회를 계기로 특정 집단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손을 법적으로 제재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특정 국가, 특정 국가의 국민, 특정 인종의 명예를 모욕하고 훼손한 자”는 형벌에 처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 개정안은 혐오 표현, 집회 구호 등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배경으로 제안된 것으로 현행 형법상 피해자를 특정인으로 한정한 것을 “특정 국가와 국민 그리고 인종” 등 집단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그러나 혐오 표현을 법적으로 강하게 금지할 경우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공공 문제를 자유롭게 논의하는 시민의 능력 자체가 약화할 위험이 있어 이 법안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합법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 “왕의 목은 단두대에서 잘렸지만, 왕의 통치 방식은 살아 있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여겨지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만천하에 공표한 프랑스 대혁명은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처형하고 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절대왕정이 지배하던 ‘앙시앵레짐’, 즉 구체제를 전복했다. ‘왕의 목’은 어떤 견제도 없이 정치권력을 집중화한 권력 체제를 상징한다. 절대군주인 왕이 사라지면 인민의 삶이 좋아질 것이라는 혁명의 약속과 기대는 빗나갔다. 프랑스 혁명이 구체제를 무너뜨린 후 공화정, 제정, 군주정으로 국가 체제가 바뀌며 불안한 정치 상황이 지속됐다. 사실상 독재자로서 프랑스를 지배했고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로 많은 반대파를 단두대로 보낸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단두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왕이 사라지고, 왕의 자리에 수많은 다른 정치 지도자들이 어떤 이름으로 등장하건 ‘통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위협하는 ‘구체제’는 여전히 지속된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민생쿠폰은 정말 민생을 살리는가 돈이 없어도 소비를 하면 할수록 돈이 생긴다는 경제 이론이 있다. 터무니없는 소망처럼 들리지만 사실 한때는 효과가 있었던 케인스 경제학의 기본 전제이다. 수요와 공급을 통해 움직이는 시장은 자율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총수요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가 위축되어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면 시장은 더욱 나빠진다. 경제 침체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경기순환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개입에 정당성을 제공한 것이 바로 케인스 경제학이었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거나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라는 전례 없는 정책을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이 이론은 20세기 중반 이후 대공황 탈출, 전후 재건, 1970년대 전까지의 자본주의 황금기에는 유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