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슬
음악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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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종소리 종소리에 관해 생각하게 된 건 이 문장을 읽은 뒤부터였다. 음악 연구자 이희경의 책 <작곡가 강석희와의 대화>에 기록된 강석희의 말이다. “종이 울리면 낮은 소리는 내려가고, 높은 소리는 위로 올라가서 만나거든요. 흔히 소리에는 ‘멸(滅)한다’는 말을 쓰는데, 이 말은 진행형이에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라진다’인데,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사라진다는 뜻이에요. 계속 사라져가는 거지, 없어지지를 않는다는 거죠. ‘멸’은 한번 울린 소리는 우주에 존재한다는 현대물리학 이론과도 맞는 거예요.” 계속해서 사라져가는 과정 중에 있을 뿐,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게 되었더라도 소리는 끝끝내 존재할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는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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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굿의 현재와 미래 지난 11월9일부터 10일, 서울 선정릉역 인근 민속극장풍류에서는 ‘김정희 오구굿’이 열렸다. 동해안 별신굿의 대가 김정희 명인이 세상을 떠난 2019년 이후, 3년이 지난 뒤에 열린 오구굿이었다. 굿의 현장에서는 그야말로 긴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배포된 안내 책자에 따르면 그 이틀간의 굿은 망자자리말기로 시작해 부정굿과 골매기굿, 청혼, 문굿, 문답설법, 오는뱃노래, 조상굿으로 쉼없이 이어졌고, 그 이후로도 열 개 이상의 다른 굿거리가 더해졌다. 이렇게 큰 형태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누적되었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긴 시간 속에서 굿의 형태가 단단히 굳어지기만 했다기보다는 꾸준히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복해왔으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망자의 집이 아닌 극장에서도 굿이 열리고, 고 김정희 명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책자도 제작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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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기술, 그리고 전자음악을 다루는 여성들 작년, 서울문화재단 사업 모니터링차 ‘저항하는 기술 The Resisters’라는 프로젝트 현장을 방문했다. 이 프로젝트는 젊은 여성 창작자를 대상으로 전기, 용접, 해킹 등의 기술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내가 갔을 때는 볼트와 너트의 종류와 그걸 어디에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걸 몰랐던 나도 덩달아 그 작은 부품들의 이름을 정확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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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사라진 동물들의 목소리 나긋한 말씨의 내레이션이 이어지던 중, “시간은 마음이 쓰이는 쪽으로 흐르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들려왔다. 공연이 시작한 지 약 5분쯤 지났을 때였다. 그 앞에도 적지 않은 말들이 있었지만 내게 공연의 진짜 시작점처럼 느껴진 것은 이 문장이었다. ‘멸종동물생활협동조합×날씨’라는 타이틀만 보고 찾아간 신촌극장은 그날 따라 유독 어두웠다. 깜깜한 극장에 들어서자 중앙에 매달린 작은 오브제가 보였다. 유일하게 빛을 내고 있던 그 오브제 안에는 계곡처럼 보이는 풍경이 있었다. 극장 벽에는 스피커 열 대, 무대에는 모니터 두 대가 보였다. 극장에 들어설 때 극장장이 건넨 손전등을 켜 뭔가 적혀있었던 극장 티켓을 다시 비춰보았다. “거의 소리만 있는 공연입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소리들입니다.” 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재생 장치들을 바라보며 오브제 아래에 반원 모양으로 둘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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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태양과 바다 ‘태양과 바다’라는 제목의 작업을 알게 된 것은 3년 전이었다. 노래하는 이들이 인공해변에 누워 가만히 있거나 가끔씩 노래하는 장면을 보여준 이 ‘오페라-퍼포먼스’는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리투아니아관에서 공개됐다. 무대와 성악가, 서사가 있는 오페라이긴 했지만, 보통 오페라에서 기대될 법한 대대적인 클라이맥스는 없었다. 긴박하게 몰아치는 갈등도 없었다. 아무도 열창하지 않았다. 특별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루함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해변가에서 시간을 보내며 종종 노래하는 피서객이 누워 있었을 뿐이다. 이 묘한 광경에 대해 작가들은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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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청음 훈련 피아노를 적당히 칠 줄 알았던 중학생 시절을 지나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 전문적인 음악 수업을 들었던 때, 무엇보다도 달라진 것은 나의 귀였다. 그건 대체로 학교에서 매주 한 시간씩 했던 시창 청음 수업 때문이었다. 오선보에 적힌 선율을 보고 노래하거나, 들려오는 음을 파악한 후 오선보로 옮겨 적는 것이 수업의 주 목적이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악보 위의 기호와 내 머릿속에 있는 그 소리를 하나하나 꿰맞춰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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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이론, 사유의 도구 <케임브리지 서양음악이론의 역사>가 번역·출간됐다. 서양음악 연구자라면 한번은 들춰봤을 이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까지의 서양음악이론사를 다루는 핵심 문헌으로, 음악이론가와 음악사가들이 힘을 모아 만든 것이다.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만큼 국문 번역본의 무게도 상당하다. 물성만으로도 그 역사를 체감하게 하는 이 책은 1184쪽, 2250g에 육박한다. 국내 음악학자 아홉 명의 공동 번역으로도 총 5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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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끝없이 흘러나오는 음악 오랜만에 비행기를 탔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만 착륙 후엔 기내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확인했다. 기다림의 시간을 채워준 음악은 클로드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1번’이었고, 연달아 비슷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다른 비행기에서 냇 킹 콜의 ‘Unforgettable’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 문화 속에서 이들이 어떤 기호로 통용되는지 분명히 알고 선곡해 놓은 듯한 이 음악들은 도착지에 대한 설렘 혹은 떠나온 여행지에 대한 기호화된 그리움 같은 것들을 내 인식에 필터처럼 끼워 넣었다. 딱히 그 장소들을 그렇게 떠올리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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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퍼포먼스 펼쳐보기 음악가 진유영은 공연 도중 제사장으로 분해 축문을 낭송하고, 항아리를 망치로 깨부수려 했다. 또 다른 공연에선 팽팽한 붉은 풍선의 표면에 날카로운 칼끝을 들이밀었다. 벨라는 작은 노트를 손에 쥐고 적힌 말들을 노려보며 그로울링하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발산하던 그의 몸은 형형하게 빛났다. 위지영은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편지봉투에 행운의 편지를 담아 관객 모두에게 건넸다. 봉투엔 이곳으로부터 먼, 지금으로부터 오래전의, 지금은 그의 생사도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수신인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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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지금, 우리의 피아노 이제는 온라인 중고 마켓에서 피아노 매물을 보는 일이 낯설지 않다. 상태 좋은 악기도 있지만,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올라와 있거나 운송비만 내고 가져갈 수 있는 낡은 피아노도 눈에 띈다. 그 피아노들은 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던 차, 얼마 전 그들의 행방을 알게 됐다. 몇몇 조율사들이 그런 피아노를 찾아가 여전히 쓸 만한 것들을 고르고, 누군가 폐기물로 처리한 피아노를 수거해와 이리저리 고쳐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피아노들은 이름 없는 창고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드물게나마 중고 피아노를 구하는 구매자를 제외하곤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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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봄날의 통영에서 만나는 음악 날이 따사로워지며 남쪽부터 서서히 꽃이 피어오르는 시기, 많은 음악가와 애호가들은 통영으로 향한다. 매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를 찾기 위해서다.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 출신 작곡가 윤이상과 그의 음악을 기리며, 동시대 음악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음악제다. 특히나 통영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봄날, 바닷가에 인접한 음악당에서 공연을 보고 듣는 일은 근사한 음악 경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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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음악을 듣고 글 쓰는 일을 하지만, 가끔 음악에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이 든다. 최선을 다해 지식과 경험을 쌓아도 음악의 가장 중요한 본질에는 가닿지 못하는 것만 같다. 음악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그 크기와 무게를 재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음악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가질 수 없다. 시간 속에서 생겨났다 금세 사라진다. 음악을 듣고 나면 깜깜한 방에 혼자 남는 것 같았다. 음악은 무엇일까. 어딘가에 있긴 한 걸까. 막막함 속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