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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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2020년 음악계를 되돌아보며 코로나19가 없는 평행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곳에서 우리는 작년과 꽤 비슷한 연말 풍경을 마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김없이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기념하기 위한 반짝이는 조명과 캐럴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재미난 사건을 벌이기 좋아하는 기획자들은 앞다퉈 파티를 꾸미고 있었을 테다. 그 세계에서라면 2020년을 회고하며 이런 문장들을 과거형으로 쓰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올 한 해, 버스킹 무대에서 차근히 팬층을 쌓아오던 한 음악가는 공중파 TV에 데뷔해 활동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고, 이날치의 전국 순회공연이 계속됐으며,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도 꾸준히 지속되어 팝스타 미카, 피아니스트 랑랑 등이 국내 관객과 만났다. 베토벤 250주년 기념공연도 방방곡곡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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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극장을 미래화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 “이 공연은 관객 각자의 역할에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미래에는 절대 일방적으로 공연을 전달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메타 퍼포먼스: 미래극장’ 인터뷰 기사 중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의 말이었다. 경기도립국악단이라는 아명에서 벗어나 새 이름을 얻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이달 초 ‘메타 퍼포먼스: 미래극장’을 선보였다. 이 공연은 기존 공연예술계에서 참정권을 갖지 못했던 온라인 관객과의 적극적 공존을 시도하고, 새로운 극장을 모색하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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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무대를 만드는 기쁨 평론가로서 글을 쓰는 것이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는 직업이지만, 수많은 프리랜서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기꺼이 ‘N잡’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생계를 위해서도, 배움을 위해서도 다른 일을 경험해보는 것은 언제나 큰 도움이 된다. 능력 부족 탓에 할 수 있는 업무는 제한적이지만, 녹취나 교정부터 공연 스태프, 아카이빙, 리서치 보조 등 음악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보면 음악의 표면 아래에 얼마나 많은 사건이 우글거리고 있는지를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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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새로운 음악의 장소에서 음반과 축음기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음악을 다른 시공간으로 내보낼 수 있게 해준 이 발명품은 인류의 음악문화에 유례없는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수월하게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한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영화였던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 처음 상영됐을 때 사람들이 기겁해서 도망쳤다는 전설 같은 일화까진 아니지만, 음반과 축음기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예컨대 공연은 라이브로 이루어지는 입체적인 시청각 경험인 데 반해 음반에 담긴 것은 통조림 음악이라거나 반쪽짜리 음악이라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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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등불 같은 음악가들을 떠올리며 몇 해 전의 일이다. 모교 음악대학의 교지에 실릴 기사를 위해 얼마 전 별세하신 작곡가 강석희 선생님을 짧게 뵈었던 적이 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전자음악 ‘원색의 향연’을 발표한 작곡가이자, 88서울올림픽의 음악감독, 지금까지도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범 음악제’의 기획자, 그리고 윤이상의 제자이자 진은숙의 스승이었다. 작곡가와 기획자와 교육자라는 영역에서 모두 대체 불가능한 역사를 써내려간 그의 행보는 누구라도 그 발자취를 쉽게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강석희와의 짧은 대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가 한국 현대음악계에서 이끌어낸 음악적 변혁들,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음악적 태도, 그리고 그의 음악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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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다름의 조화, 음의 세계 “음치라는 말 자체도 모르던 시절,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노래 부르는 곳에는 음치가 있을 리 없었다. 음치는 교육을 통해 낯선 음과 리듬을 배워서 불러야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찬송가, 창가를 비롯한 서양음악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음치가 새로이 등장하였다. 창가, 가곡과 마찬가지로 음치도 근대적 산물인 셈이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9호에서 음악학자 이경분은 이렇게 썼다. 음악 수업에서 가창 시험을 보거나 합창을 할 때면 언제고 음높이를 잘 못 맞추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너 음치냐?’라는 장난 섞인 말이 꼭 한 번씩은 들려오곤 했지만 맞고 틀리고의 영역이 존재하는 이 음들을 가지고 노래하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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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성희롱·성폭력 좀 그만하세요 처음엔 음악계만 엉망인 줄 알았다. 음악학교에서 조심해야 할 남자 선생들에 대한 소문들이 꾸준히 들려왔다. 놀랍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몰라서는 안 될 일이었다.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건 모두가 공유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2016년, 문화예술계의 각계각층에서 성폭력 고발이 이루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_내_성폭력’이라는 형태의 해시태그를 단 고발문이 분야만 바뀐 채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2018년, ‘미투 운동’이 시작되자 이것이 특정 업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삶에 만연한 문제였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됐다. 단 한 번도 성폭력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그것에 단 한 번도 분노해보지 않은 여성은 없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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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소리’를 잃은 음악 서구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올해는 ‘베토벤의 해’가 될 예정이었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연초부터 베토벤을 기념하려는 공연 일정들이 쏟아져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상반기 일정은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취소됐고, 많은 이들이 지난 과거보다는 ‘코로나 이후’를 상상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사태가 조금 진정세를 타자 잠시 사그라들었던 베토벤 250주년이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베토벤이라니. 애초에 서구 클래식이 대단히 오래된 음악이긴 하지만 요즘은 특히 더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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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온라인 공연에 대한 단상 공연장의 문이 굳게 닫히고 모든 것이 이대로 영영 멈춰버릴 것만 같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공연의 세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닫힌 공연장 문 안에서, 스튜디오에서, 집 안에서 음악가들은 계속해서 공연을 만들어내며 이를 온라인으로 송출하고 있다. 지난 주말만 해도 서울남산국악당은 네이버TV로 혜원·민희의 ‘남창가곡’ 녹화 중계를 선보였고 음반사 도이체그라모폰은 유튜브로 조성진의 독주회를 상영해 많은 시청자를 모았다. 약 2주 전 레이디 가가는 대형 페스티벌 수준의 라인업을 갖춰 의료계 종사자들을 위한 초대형 온라인 자선 콘서트 ‘원 월드: 투게더 앳 홈’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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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인간의 시간, 고래의 시간, 곤충의 시간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 왔다. 물리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와중에 불가피하게 밖에 나갈 때면 꽃과 나무를, 새와 고양이를, 매일같이 변화하는 자연의 풍경을 눈여겨보곤 한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세계는 여전히 생동한다. 코로나19가 인수공통감염병이기 때문일까. 비인간과 인간, 자연과 사회라는 근대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인간중심적 시각을 반성하자고 말했던 사상가들의 의견을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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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사라지는 관객과 공연을 바라보며 불특정 다수와의 대면이 가장 두려운 일이 되어가는 요즘, 예술계 창작자들이 제안하는 대안들이 눈에 띈다. 한 작곡가는 관객 없이 음악회를 진행해 추후 기록을 공개하기로 했고, 한 작가는 미술관이 문을 닫은 탓에 전시 중이던 영상 작업을 스트리밍으로 한 차례 선보였다. 조르조 아르마니는 빈 극장을 빌려 관객 없이 패션쇼를 진행해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낯선 방식은 아니다. 실제 공연과 미디어 기록은 공존하며 서로를 보완해왔고, 나 또한 현장에 가지 못하면 영상이나 스트리밍으로 공연을 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무 관객도 없는 현장을 미디어로 보여주기만 한다고 하니, 어쩐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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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연습의 시간 연습, 그것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다. 악기든 노래든 춤이든 무엇이라도 연습해본 사람이라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괴로움을 겪는 것인지 한 번쯤 자문해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눈앞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동시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직시하고, 연습을 하지 않았던 과거를 후회하며, 나아가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해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