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슬
음악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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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에코 체임버’와 음악 인터넷은 음악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망망대해 같았다. 음악 블로그, 음원 사이트, 음반사 홈페이지, 음악 웹진, 음악가가 직접 운영하는 웹페이지 등 음악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그 수를 다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었다. 무한한 자원이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았던 그 공간에서 나는 ‘서핑’을 하거나 ‘디깅’을 하며 음악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나를 몹시 즐겁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음악을 적극적으로 찾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발견의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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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좋은 대화를 위한 평론 지난 일 년간, 음악평론가로서 글쓰기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토크 행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최근엔 정말 많은 음악인들이 토크가 연계된 콘서트를 진행하고, 미술인들 역시 전시장에서 수많은 전시 연계 토크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예술가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런 자리에서 나는 주로 사회자 또는 음악평론가로 참여해 질문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작업을 선보인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등 그간 창작자에게 궁금했던 것을 공론장에서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이 토크의 현장은 일종의 비평 ‘현장실습’과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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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조용한 공간에 대하여 최근 바깥에서 귀마개를 끼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수도권 인근에 살고, 사무실 없이 불규칙하게 이곳저곳 오가며 일하기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긴 편이다. 혼자 일을 하거나 바깥 업무 중에 뜨는 시간이 생기면 도시생활자 프리랜서들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카페를 주로 찾는다. 곳곳에 자리한 수많은 카페 중에서도 내가 선호하는 곳은 무엇보다 조용한 곳이다. 일하기에 좋고 쉬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공간을 찾아갈 일말의 여유도 없거나 간혹 아무리 돌아다녀도 조용한 곳이 없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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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음악저작권에 관한 단상 2008년, 한 작곡가가 독일음악저작권협회에 7만200개의 음악저작물 사용허가 신청서를 트럭으로 제출했다. 33초 분량의 그의 음악 ‘제품 간접 광고’(product placements)에 그 수많은 음악을 모두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요하네스 크라이들러라는 인물로, 그는 당시 디지털 환경에서 벌어지는 음악 개념의 변화를 적극 반영하며 기존 관념과 충돌하는 작업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던 차였다. 인용된 음악으로만 만들어진 ‘제품 간접 광고’도 그 일환이었다. 음악학자 신혜수의 표현처럼 이는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끌기 위한 젊은 작곡가의 해프닝처럼 보일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기존 체제가 디지털 시대에서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야기”했다. 그 작품을 과연 크라이들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인용의 허용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디지털 환경에서 한 음악의 정체성을 가르는 핵심요인은 무엇인지 등 이 33초의 소리더미는 음악에 관한 적지 않은 질문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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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소리 아닌 공연예술로서의 음악 알렉상드르 타로의 에세이집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는 무대에 올라서기 직전에 그가 거울 속에서 만난 한 피아노 연주자의 외양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책의 서문이자 필자를 소개하는 이 짧은 글은 이어질 내용이 ‘피아노 연주자인 자신을 아주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는 나’의 글이 될 것을 짐작하게 한다. 서양음악에 관한 글쓰기에서 ‘무대 위의 연주’는 가장 까다로운 글감 중 하나다. 그 원인은 여럿이겠으나 우선 가장 근본적인 난점은 이것이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시간이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다. 음반이나 영상과 달리 공연으로만 접한 연주에 관해 쓸 때는 정량화된 데이터나 기록물에 의존하기가 어렵다. 그저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만 의지해 그 연주를 복기하며 뭔가를 써내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또 공연장에서는 연주 말고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일이 얽히고설키며 연주에 개입하는데, 그 모든 미묘한 관계를 글에 모두 담아내기도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의 원성을 사는 기침 소리는 물론 연주자들끼리 주고받는 눈짓, 소리로 들려오진 않지만 분명히 감지되는 객석의 기류 같은 것이 그 예다. 이러한 ‘현장성’은 연주에 대한 일목요연한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주범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직접 공연장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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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인간조건을 넘어선 음악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세돌과 알파고 간 대국 이후, 서양음악계에서도 인공지능은 토론의 현장에서 한 번쯤은 꼭 언급되는 이슈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 인공지능 이슈가 떠돌기 시작했을 때는 인공지능이 창작이라는 성역에는 접근하지 못하리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 인공지능이 옛 작곡가의 음악을 학습해 이른바 바흐풍이나 모차르트풍의 음악을 만들었다거나 정장을 갖춰 입은 로봇 연주자가 연주자와 무대에서 연주 대결을 펼쳤다는 소식이 화젯거리가 됐지만, 그래도 ‘음악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반응이 조금은 더 지배적이었다. 답습은 가능하나 창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그간 서양음악계에서 느낀 중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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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어린이를 위한 음악 “어린이에게는 너무 쉽고, 예술가에게는 너무 어렵다.” 피아니스트 아르투어 슈나벨은 모차르트의 소나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차르트를 잘 연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랜 경험과 숙련된 기교가 아니라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이라는 의미였을까? 정말로 모차르트의 음악과 어린이 사이에 일맥상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모차르트의 음악은 어린이 피아니스트의 단골 레퍼토리로 연주되고, 소위 ‘어린이를 위한 음악’ 같은 제목을 내건 음반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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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귀 기울여 듣는 경험 “청자는 화자가 이야기할 때 평상시에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거나 딴청부리는 자세를 취해 최대한 듣지 않도록 합니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을 계속 보거나, 자료를 보거나 하여 화자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화자와 눈을 맞추지 말고, 어떠한 응대 또는 대꾸도 하시면 안됩니다. 실습이 끝나는 시간까지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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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음악을 지칭하는 말들 세상에는 음악 장르를 지칭하는 수많은 이름이 있다. K팝, 트로트, 재즈, 국악, 인디, 힙합, 월드뮤직, 뉴에이지, 클래식 등 음반 가게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 장르의 이름은 음악을 분류하는 데 뿐 아니라 “무슨 음악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대답할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나에게도 종종 무슨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이 찾아온다. 보통 나는 현대음악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대답하는데, 가끔은 “현대음악은 뭔가요? 현대적인 음악인가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그럴 때 나는 “현대음악은 현대의 모든 음악을 지칭하기보다는 서양음악사의 맥락에서 현대라는 시기를 지칭하고 여전히 유럽 악기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클래식 음악 장르에서의 현대인 셈인 거죠”라고 거칠게나마 그 이름 뒤에 숨은 맥락을 설명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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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박물관에서 만나는 음악, 전시장에서 만나는 소리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박물관이 있다. 자연사박물관, 민속박물관, 화폐박물관, 책박물관, 쇳대박물관, 안경박물관 등 여느 도시에나 있는 주요한 박물관부터 각 지역의 특색을 반영하거나 수집가의 개성이 돋보이는 박물관까지 사람들은 실로 다양한 사물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보존하고 진열한다. 박물관에서 전시품들은 대체로 유리벽으로 보호되거나 좌대 위에 얹혀 ‘쇼케이스’ 안에 놓인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보기에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수집하고 보존해야 할 것이 꼭 유형의 사물에 국한되는 건 아니므로 종종 무형의 문화유산을 다루는 곳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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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우리는 누구의 음악을 듣는가 연일 갱신되는 ‘버닝썬-승리 사건’을 보며 새삼스레 ‘음악’을 되돌아본다. 그런 일이 벌어진 곳은 음악을 즐기는 공간이었고, 범죄 혐의를 받는 그들은 노래하는 자였고, 그들의 삶을 지탱해준 것은 화려한 퍼포먼스로 가득 찬 무대였다. 음악을 통해 부와 명예를 쌓은 이들은 이제 검찰에 소환되어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죄가 곧 음악의 죄는 아닌 탓에 법이 그들의 음악까지 심판하지는 않는다. 음악에 대한 판단은 듣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는다. 이제 그 음악들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