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최신기사
-
정동칼럼 ‘이준석 현상’을 이해 못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칼럼은 좀 더 긍정적이고 따듯한 주제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이준석 현상을 바라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사건은 현재 진보진영 내 주류들이 가진 한계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나는 이를 5가지 정치학으로 이해한다. 진정성을 ‘표현하는’ 정치학. 이재명은 계산하고 이준석은 내뱉는다. 물론 당내 지형이 제약하는 곤혹스러움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최근 이재명의 말에 하품하고 윤석열의 선문답에 답답해하는 사이에 이준석은 쇼미더머니 게임을 평정했다. 누구의 마음속에 진정성이 있는가는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 많은 유권자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정치에서는 더 중요하다. 역사는 언제나 진정성을 드러내는 문법을 습득한 자가 승리한다.
-
정동칼럼 달까지 가자, 개헌까지 가자 요즘 <달까지 가자>라는 작품의 인기가 계속 상승세이다. 이 소설은 오랜 취업 전쟁 끝에 겨우 회사에 출근했지만 아무리 해도 자기 직장의 한 가지 좋은 점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 이들의 ‘가상통화’ 떡상(시세상승) 성공 스토리이다. 첫 장을 펼치자 등장하는 장류진 작가의 “달달한 일들만 가득하길 바랍니다”는 당의정 문구가 가슴을 파고든다. 작가님, 다음 작품은 “개헌까지 가자”이면 안 될까요? 40세 이상만 대선에 나갈 수 있는 이 곰팡내 나는 차별 조항 철폐 성공기 말입니다. 물론 너무 구린 제목인 걸 나도 안다. 개헌이란 단어를 꺼내는 순간 갑자기 작가님 주변 친구들의 대화에 어색한 침묵이 흐를 테니까. 하지만 오죽했으면 이런 민원을 다 제기할까. 너그러운 이해 부탁드린다. 요즘 소위 MZ 세대에 대한 다차원의 구애가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다. 언제는 ‘유권자 비중에서 중요하지 않다’ ‘회사에 충성도가 없다’ 등 온갖 냉소와 불평을 늘어놓던 꼰대들이 갑자기 친절해지니까 난 오히려 불안하다. 자기들 회의 뒤에 조용히 구색 맞추길 기대하던 이들이 요즘은 청년들에 대한 열공 모드이다. 노동전문가들이 한국에서 성과급 체계 정착은 아직 무리라고 했는데 최근 일부 대기업에서 이 MZ 세대의 항의 덕분에 드디어 이 불가능해보였던 어젠다가 추진 중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열풍도 물론 이윤 동기도 있지만 결국은 MZ 세대의 지구적 운동의 압력과도 연결되어 있다.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은 20대 청년들에게 회초리 맞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역시 대한민국은 다이내믹 코리아다.
-
정동칼럼 이제 이재명·윤석열에게 회초리 들 때 기존 노선의 계승·관리형인가? 아니면 해체·재구성의 유형인가? 지금 출마를 생각하는 대선 후보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정신과 자신의 DNA가 일치하지 않으면 괜히 가족들만 고생시키기 때문이다. 두 유형 중 우열은 없다. 다만 지금 시대의 물결은 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재차 확인되었지만 다수 시민들은 기득권을 견제하고 공정한 문제해결을 통한 재구성을 원한다. 경선이라는 험난한 벽을 넘어야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만 보면 이재명과 윤석열이 이 시대정신 퍼즐의 일부 조각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재명은 김대중 정부의 레임덕 시기에 전환적 리더십으로 재구성된 질서를 탄생시킨 노무현 시즌 II가 될 수 있을까? 이재명은 기득권 부수기와 문제해결 능력이란 점에서 문재인 행정부보다 낫다. 하지만 그는 그간 당 내부와 본선 민심 간 큰 격차의 곤혹스러운 구조 때문에 기득권 타파의 브랜드가 훼손 중이다. 그럼 윤석열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기대처럼 혜성처럼 무대를 평정한 한국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는 인생의 쓴맛을 겪었기에 풍선처럼 부푼 과잉 자아가 없다는 점에서 기존 제3의 후보들과 다르다. 하지만 경제사기범 수사의 귀재라는 것과 교착된 경제구조의 대안을 만들어가는 건 다른 차원의 업이다.
-
정동칼럼 ‘인테그리티’가 훼손된 진보의 비극 인터넷과 민주화운동의 공통점은 ‘트릭 미러’(왜곡된 거울)이다. 지아 톨렌티노 뉴요커 기자의 걸작인 <트릭 미러> 책을 보다가 드는 생각이다. 인터넷은 한때 해방과 자유의 공간으로 찬사받았다. 하지만 인터넷은 결국 각 개인의 불완전한 자아에 정직하려고 하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왜곡된 장이라는 걸 이 책은 드러낸다. 어쩌면 내가 참여했던 80년대 민주화운동도 그 경이로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사회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기능을 퇴화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적폐’와 투쟁하는 가운데 부지불식간에 자아와 정체성은 부풀려지고 권력 욕망은 스스로를 속인다. 나는 민주화운동+인터넷 시대의 의도하지 않은 결합이 오늘날 나르시시즘, 성찰의 부재, 증오, 내로남불, 수치심 결핍이 작동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을 생각한다. 이는 민주화를 곧 다수주의로 착각하는 사고의 한계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의 뿌리이다.
-
정동칼럼 ‘정치·검찰·법원’은 이제 바뀌어야 정치, 검찰, 법원, 각 영역의 진정한 소명은 무엇인가? 최근 장혜영 의원, 윤석열 검찰총장과 김명수 대법원장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언뜻 스쳐가는 질문이다. 장 의원은 이번에 피해자의 존엄 보호 및 공동체적 성찰과 해결을 제기했다. 그런데 고통을 겪는 구체적 인간에 대한 공감능력이 항상 고장났던 일부 관념적 평론가들은 엉뚱하게 사법처리를 강요한다. 이에 대해서는 깊은 공부와 예리한 비평의 정희진과 홍성수 칼럼(경향신문 2월10일자)이 새로운 교과서가 될 만하다. 내가 첨언하고 싶은 부록은 이번 장 의원의 화두가 정치와 검찰, 법원 영역이 원래의 정신과 소명을 복원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바로 인간 존엄 가치에 기초한 공동체의 통합적(Holistic) 문제해결 말이다. 이 점에서 미국은 이미 오래전에 민주당 정치와 사법체계에서 다양한 실험들이 일어나고 있다.
-
정동칼럼 트럼프 오판한 정부, 바이든엔 다를까 휴, 다행이다. 혼돈과 막장의 에이전트인 트럼프가 가고 질서와 품위의 화신인 바이든 시대가 열렸다. 한국과 북한의 정보기관들도 이제 마피아 사고방식과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가 만들어 놓은 이 비틀린 인간에 대한 프로파일링 상자를 창고에 집어넣어도 된다. 하지만 천성이 비관주의자인 나는 트럼프 분석에서 한계를 보인 정부가 과연 바이든 이해에서는 유능할지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트럼프 이단아와 달리 수십년간 워싱턴 정가를 지켜온 인물인데 우리는 그를 잘 알지 않을까? 글쎄, 나는 우리가 알던 미국 민주당을 빨리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정동칼럼 안철수의 ‘퀸즈 갬빗’과 정부의 위기 정계 개편의 서막이 올랐다. 안철수 대표가 마치 넷플릭스의 드라마 <퀸즈 갬빗>처럼 던진 퀸즈 오프닝(체스의 초반 전략)으로서 서울시장 도전 말이다. 상황 전개에 따라 시즌1의 결말이 여권의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물론 안철수·윤석열(+α) 중도연합의 대선 석권까지 배제할 수 없다. 여권은 분열할 것이다. 나는 조국 사태 초기 여권에 조국 후보자를 철회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에도 가치와 중장기적 전략, 전문가 경청 대신에 단기 시야 속에서 정치 어젠다는 물론이고 코로나19 방역조차 오만하고 무능하게 대처했다. 더구나 그 폭압적 군사독재 시절에 진보의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어 본 적도 없는 인간들이 감히 진보의 이름으로 그 중요한 검찰개혁 과제를 향후 미로 속으로 밀어 넣었다. 절차적 적법성과 정당성을 무시한 윤석열 징계와 진보의 법치주의 핵심 가치인 시민(대통령이 아니라)의 통제권도 없는 공수처법 개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좀비 상태인 수구 진영에 수혈과 정권 교체 시의 복수 기회를 열어줄 가능성이 높다. 나중에 이 주역들은 역사와 현실의 법정에 불려 나올 운명이다.
-
정동칼럼 정의당은 당론을 바꾸길 제안한다 아이쿠, 오늘도 어김없이 지인들에게 욕먹는 소재가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내가 참 싫다. 최근 여야는 인사청문회 ‘개혁’ TF를 구성해서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는 안을 다시 논의할 모양이다. 사실 청와대 인사수석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처럼 인사하기 어려운 나라가 없다. 심지어 능력 있는 분들이 거의 6명 이상 고사하는 끝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를 임명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사소한 실수도 마치 파렴치범으로 매도되고 가족들까지 모욕을 당하는 원형 경기장의 무대에 누가 오르고 싶겠는가? 우리 인준청문회의 원형인 미국은 심지어 정쟁으로 1년간 인준이 계류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마 집권 정당이 아닌 정의당도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국정을 고민하는 책임 있는 진보로서 비공개 도덕 검증을 당론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
정동칼럼 바이든·문재인의 ‘브로맨스’ 어떨까 세상에, 미국은 향후 최소한 4년간 민주당 대통령 및 2년간 민주당 의회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은 최소한 2년간 민주당 대통령과 의회, 더 나아가 정권 재창출 시 7년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한·미 간에 이런 정도의 환상적 사이클은 없었다. 물론 미국 대선은 향후 10여일에서 몇 달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11월4일은 그간 내가 가졌던 두려움 증세를 스스로 마음껏 조롱하는 시간이길 간절히 고대한다. 나는 작년부터 바이든 당선 가능성을 이야기해왔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가 ‘중장기적으로는’ 결코 트럼프 재선 시나리오보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불리하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바이든 당선 시 오바마 시기의 전략적 인내 반복 가능성을 주장해오던 전문가들도 최근 흔들리는 것 같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의 답변에서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난 불안하다. 단지 미국과 중국 블록의 신패권 경쟁의 제약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미국과 한국의 공통 가치 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
정동칼럼 기후 제국 시대의 한반도 미국 일각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설령 바이든이 당선되더라도 미·중 간 신냉전은 불가피하다고 전망한다. 다른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나는 과거 닉슨과 덩샤오핑의 놀라운 미·중 협력처럼 ‘지구적 기후 제국’들의 ‘갈등 속 협력’도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지난 22일 시진핑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놀랍게도 2060년까지 탄소중립화를 선언했다. 여전히 화석연료 산업이 60% 이상 비중인 중국이? 연설 동기에 대한 중국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내년에 시작될 새 5개년 경제계획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이다.
-
정동칼럼 제도적 애국주의와 ‘조국백서’ 2주 전 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는 가치와 제도를 사랑하는 이들의 감동적인 고해성사 장이었다. 미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제도적 애국주의’라 부른다. 제도에 내장된 가치와 윤리규범을 존중하고 이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이성과 감정을 말한다. 조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는 아직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저소득층 백인들이 기성 제도를 증오하는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잘 설계된 제도가 작동하던 ‘정상’ 시대로의 복원? 이미 건국의 시조들이 디자인한 근대 소프트웨어 자체가 금권과 거부권 정치, 그리고 자연 착취 시스템으로 변질되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선의와 윤리의식을 존경한다. 민주당 리더들과 콜린 파월 같은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은 트럼프라는 전체주의와의 절박한 싸움을 위해서 자유주의 정치의 규칙을 내던지거나 자식들의 스펙을 비윤리적 방식으로 디자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조국(미국 말이다)에 대한 진심 어린 공화주의적 애국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존경한다.
-
정동칼럼 노무현의 반쪽을 계승한 이재명 노무현의 뜨거운 가슴을 계승하고 차가운 머리를 버리는 이재명. 나는 지금부터 2022년 대선까지 펼쳐질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이렇게 요약한다. 즉 실용적 포퓰리즘을 계승하고 도덕적 자유주의를 버린다. 전자는 기득권과의 영리한 투쟁이고 후자는 도덕과 적법한 절차(Due Process)의 이성적 존중이다. 사람들마다 각자 좋아하는 노무현이 다 다르다. 어떤 이들에게 노무현은 가슴을 뛰게 하는 포퓰리스트이다. 여기서 포퓰리즘이란 보수언론의 저주와 달리 학문적으로는 기득권과 싸우는 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정치 담론을 말한다. 지역 차별 구조에 대한 노무현의 평생에 걸친 담대한 도전이 그런 예이다. 단 여기에 실용적이란 형용사가 붙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가 보다 이념적인 좌파 포퓰리스트라면 노무현은 현실적 문제해결을 중시한 실용주의 포퓰리스트이다. 노무현이 지역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이 고리를 통해 공정, 혁신, 성장, 삶의 질 등이 한꺼번에 풀리기 때문이다.
1
2